1303화 심사가 아닌 큰 기연
"음, 그래, 그래. 임효지의 형제면 내 형제다. 함께 가거라."
심약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약 형님, 고맙습니다."
계현은 너무 기뻐서 진남에게 눈을 찡긋했다.
"심약 형님, 고맙습니다."
진남은 사양하지 않고 공수했다.
그는 문득 다른 이들도 생각나서 말했다.
"참, 심약 형님, 제가 오는 길에 요수 한 마리를 수복했습니다. 저기 있는 요수입니다. 저자도……."
진남의 말이 끝나기 전에 심약주재는 큰소리로 말했다.
"요수 한 마리가 아니라 백 마리라도 통과시키겠다."
심약주재는 고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식, 너도 통과했다."
고비는 어안이 벙벙했다.
고비는 지금의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요? 얼른 오시오."
계현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남도 미소를 짓고 고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현, 세 번째 심사의 두 번째 관문을 자네는 못 건넜을 거요. 나와 임 형은 건널 수 있소."
고비는 코끝이 찡해서 눈을 비비며 '오만하게' 말했다.
고비는 힘껏 발을 차고 진남의 어깨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심약주재 등 뒤의 빛이 나는 다리로 향했다.
마지막에 진남은 사사의를 한번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진남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진남 일행은 빛이 나는 다리로 사라졌다.
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연거푸 일어나는 일들에 무인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자, 다들 뭐 하는 게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그래도 통과를 하지 못한다면 진짜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이제 할 일이 생겨 이곳에서 계속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심약주재는 차가운 표정으로 확 바뀌었다.
그의 말투도 귀찮음이 가득했다.
"아까 너희들이 내 형제를 비웃었지? 알아서 썩 꺼지거라.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심약주재는 사사의 등을 흘겨봤다.
사사의 등은 얼음 구멍에 빠진 것처럼 한기를 느꼈다.
* * *
그 시각, 성천무교의 신비한 곳.
한 저택.
천극방의 영과 자호천존은 옅은 파란색 수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정에는 심약주재가 심사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두 거물은 전부 목격했다.
"하하하. 심약은 아직도 예전 그대로요. 규칙이고 뭐고 전혀 신경 쓰지 않소."
천극방의 영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심약주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천 형, 아까 청년을 혹시 아시오? 나는 그자가 칼을 휘두를 때 자세히 느껴보았소. 도의가 품은 힘이 보통이 아니었소. 참심일도를 진짜 그자가 만들었다면 무예 재능이 진봉화보다 더 강할 거요."
자호천존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엄청난 천재가 나타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오. 그 무인은 엄청난 무예 재능을 갖고 있소. 하지만 진봉화보다는 못할 거요. 아마 심야보다도 더 못할 것 같소. 다만 평범한 천재들보다 좀 더 강하겠지."
천극방의 영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 무인의 몸 주인은 이미 죽었소. 육신을 차지하고 있는 자는 청궁에서 온 자요. 그러니 아까의 술법 또한 청궁에 존재하는 것일 거요."
말을 마친 천극방의 영은 감탄했다.
"다만, 임효지가 통쾌하게 술법을 심약에게 가르쳐준 것은 의외요. 대범한 성격이요."
자호천존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안색이 변해서 말했다.
"천 형, 청궁의 인물이 대상계로 들어왔소? 그 규칙이 설마……."
자호천존은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대상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었다.
대상계의 운명은 어떻게 변할지도 몰랐다.
청궁, 문도지지, 서른여섯 개의 성구…….
천극방의 영은 눈을 흘기고 말했다.
"그럴 리가 있소? 그 녀석은 뜻밖의 경우요. 내가 그 녀석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소. 그 녀석은 더 강해지고 싶어서 대상계로 온 거요. 다른 생각은 없소."
자호천존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그렇다면 다행이요. 참 다행이요. 형님도 참, 그 일을 왜 이제야 말하시오. 하마터면 놀라 죽을 뻔했소."
천극방의 영은 자호천존를 비웃었다.
"십 대 천존이라는 자가 좀 생각이 있는 말을 하면 안 되오?"
자호천존은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다.
"생각이라는 게 뭐요? 먹는 거요?
참. 주천불사산에 이상한 움직임이 자주 일어난다고 들었소. 후계자를 선택하려는 것 같소?"
천극방의 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자호, 어떤 일들은 자네가 궁금해할 게 아니오. 주천불사산이 무엇을 하던 나는 관여치 않을 거요. 자네도 건드리지 마시오.
후계자를 찾는다고 해도 그 넷 중 한 사람이 될 거요. 다른 결과는 없소."
자호는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천 형, 깊이 생각하지 마시오. 나는 이제 무도를 발전시킬 생각밖에 없소. 다른 생각은 하지 않소."
천극방의 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러면 됐소. 세 번째 심사까지 진행되었으니 가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소?"
"좀만 더 구경하다 가겠소. 심약 녀석이 더 통과시키는 자가 있는지 봅시다."
* * *
세 번째 심사 중.
진남, 계현, 고비는 반 시진 정도 날아서 다리의 끝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백 장 높이의 아치형 문이 있었다.
나무 기둥에 여러 가지 꽃무늬가 새겨졌고 위엄을 풍겼다.
"상황을 보니 이제 갈라져야겠소."
진남은 말했다.
"그럼 계현은 난리 나겠구먼. 임 형과 내 도움이 없으면 두 번째 관문을 건너는 것은 희망이 없소."
고비는 계현의 처지를 비웃었다.
"내가 누군지 아시오? 점괘추연술 일인자요. 그런데 왜 못 건너겠소? 내기하겠소?"
계현은 고비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기하자고 하면 못할 줄 아시오? 무슨 내기 하겠소?"
"내가 이기면 아버지라고 부르시오. 나는 자네를 아들이라고 부르겠소. 어떻소?"
"계현, 죽으려고 작정했구먼."
계현과 고비는 마지막까지 입씨름을 했다.
"계속 싸우시오. 나는 먼저 가겠소."
진남은 문으로 날아갔다.
"기다리시오!"
계현과 고비도 따라갔다.
진남의 예상대로 아치형 문을 지나자 엄청난 힘이 나타나 그들을 갈라놓았다.
* * *
잠시 후, 진남은 몸이 흔들리고 낯선 곳에 도착했다.
"어? 이곳은……."
진남은 경악했다.
그가 있는 곳은 옛 기운이 가득한 대전이었다.
태을선목(太乙仙木)으로 만든 책장들이 있고 층마다 옥간이 하나씩 있었다.
옥간들은 색이 다 달랐다.
옥간에서 뿜는 빛에 대전은 오색찬란하게 빛이 났다.
"임효지 도우, 네가 있는 곳은 천지무궁의 갑(甲) 자 층, 구 번 방이다. 이곳에 백여덟 개의 서로 다른 주재지술(主宰之術)이 있다. 너는 열 개의 주재지술을 읽어볼 수 있다.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네 생각, 수확, 깨달음과 연관이 있다."
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지무궁에 들어왔다고?"
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때, 무상의 존재가 빛을 갑 자 방에 주입한 것처럼 광막이 생겼다.
그 위에 힘 있는 글자들이 가득했다.
진남은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대음뇌오법(大陰雷五法), 천지의 번개는 음양이 있다. 양의 번개는 패기가 넘치고 힘이 세다. 음의 번개는 영혼을 진압하고 마음을 공격하는데, 이 공법…….'
'구명검법(九冥劍訣), 하늘은 열세 개의 층이 있고 땅으로 들어가면 열여덟 개의 층이 있다. 땅 아래의 일 층부터 구 층까지 구명이라고 한다. 명(冥)의 힘은 하늘의 힘보다 작지 않고…….'
'역왕지술(逆往之術), 천지의 규칙은 엄청 많다. 그중 시공규칙은 모든 규칙 중 으뜸이다. 과거로 갈 수도 있고 천지를 거꾸로 흐르게 할 수도 있다…….'
각 줄의 큰 글자들은 주재지술이었다.
"성천무교는 손이 크구나. 이것은 심사가 아니라 꽤나 큰 기연이다."
진남은 감탄했다.
주재지술은 주재 강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재 강자가 주재지술을 사용해야 전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을 뿐이었다.
주재 강자는 주술을 펼치거나 천존지술을 펼치거나 상관없었다.
하지만 가진 힘보다 너무 높거나 혹은 너무 낮아도 적합하지 않은 술법이었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술법이 가장 강한 술법이었다.
하지만 대상계에 주재지술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진남처럼 세력에 소속되지 않은 무인들은 주재지술을 배우려면 더 어려웠다.
진남은 여러 문도법을 지금 사용하는 술법으로 변화시켰다.
진남은 마음을 다스리고 광막을 집중하여 쳐다봤다.
백여덟 개의 주재지술 중 열 개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도 함정이 있을 수 있으니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
"응?"
잠시 후,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술법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아무렇게 열 개의 술법을 선택해도 되는 것 같구나. 관문을 돌파하는 비밀은 열 개의 술법에 있을 것 같다."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는 바로 술법을 선택했다.
그가 먼저 선택한 것은 역왕지술이었다.
시공의 힘과 연관된 술법은 대상계에 드물고 귀했다.
진남은 다른 아홉 개의 술법 중 세 개는 도법, 하나는 영혼지법, 그리고 나머지 다섯 개는 보기 드문 술법들을 선택했다.
"이제 깨달음을 얻자."
진남은 광막의 지시대로 책장에서 옥간들을 꺼내 심신을 주입했다.
무인들 대부분은 술법에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진남은 그 과정이 행복했다.
* * *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어느새 열흘이 지났다.
그사이 세 번째 심사는 마무리되었다.
계현과 고비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이레 전에 탈락했다.
그들은 명초노조와 함께 네 번째 심사에 참가했다.
세 번째 심사에서 심약주재, 진봉화, 진남 셋만이 사기 등급을 돌파하고 있었다.
좌 장로는 심사에 참가한 무인들에게 세 사람의 이름을 선포했다.
진봉화와 임효지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특히 임효지는 스스로 술법을 만들어 심약주재도 자세를 낮추고 배움을 청했다.
무인들 사이에서 '임효지'의 무예 재능은 점점 과장되게 부풀려졌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임효지'의 무예 재능이 심약주재를 초월하고 주제와 창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진봉화에 대한 소문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무인들 대부분은 진봉화가 대단한 배경 덕분에 이례적으로 관문을 돌파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진봉화의 무예 재능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네 번째 심사가 시작되었다.
심약주재, 진봉화, 진남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결과가 나오고 사기 등급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네 번째 심사에 참가해야 했다.
* * *
진남은 열흘이 지나자 엄청난 수확을 거두었다.
그는 거의 하루에 술법 하나씩 익혔다.
열 번째 저녁이 되었다.
진남은 첫 번째 선택한 역왕지술을 완전히 깨달았다.
"이 술법은 천존지술보다 약하지 않다. 최대로 수련하면 방원 만 리의 상황을 예측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과 싸울 때 많이 유리할 것 같아."
진남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열 개의 술법을 다 익혔는데 왜 아직도 돌파할 기회가 생기지 않는 걸까?"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깨달음을 다 얻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열 개 술법을 하나하나 펼치는 수밖에 없겠다.'
진남은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규칙지력을 퍼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