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화 역혼등
"두 중이 나에게 선물을 안겨줘서 이런 장면을 구경할 줄은 몰랐다."
멀리서 지켜보는 창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당청산을 없애는 것은 그가 할 일이었다.
그러면 화가 잔뜩 난 진남을 상대해야 해서 무척 시끄러웠다.
무인들은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진남의 화가 자신들에게 떨어질까 봐 잔뜩 긴장했다.
* * *
"당 나무, 당 나무……."
다급한 부름 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주경 강자들은 고개를 돌려 확인을 하고 깜짝 놀랐다.
'구, 구천지존?'
구천지존이 북전장에 온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무상호천령이 제삼금구를 봉쇄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주경 아래나 주경 이상의 강자들은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구천지존이 쳐들어왔다.
"당 나무, 왜 이래? 너……."
조리아는 다른 시선들을 무시했다.
천지에 가득한 엄청난 의지도 무시했다.
그녀는 당청산에게 달려가 그를 꽉 안았다.
줄줄이 빠져나가는 생기를 느낀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무너지고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조리아가 인선 경지를 돌파할 때 한 청년을 만난 적이 있었다.
청년은 그녀에게 애타게 구애를 하고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지만 결국 거절을 당했다.
그녀는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는 구천선역에 신비한 것들이 많아서 탐색하느라고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청년은 실망했다.
떠나기 전에 그는 그녀에게 살면서 한번은 가슴에 사무치고 엄청 신경 쓰이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 했다.
당시 그녀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런데 청년의 말이 들어맞았다.
당청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놀려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당청산은 말수가 적지만 마음이 뜨거운 사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당청산에게 점점 다가갔고 시시각각 함께 있고 싶어 했다.
이제 당청산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그녀는 가슴이 찢어졌다.
수많은 위험과 좌절을 겪었던 그녀지만 지금처럼 아파서 숨을 못 쉬기는 처음이었다.
"당 나무, 정신 차리거라! 구천지존이 되어 손에 든 칼을 잘 다듬으려 했잖아? 지금 잠들면 어떻게 하느냐……."
조리아는 당청산을 흔들었다.
눈물이 툭툭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의 다채롭던 세상이 암흑으로 변했다.
구리등에 불꽃이 더 활활 타오르는 것을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물이 당청산의 얼굴에 닿자 그를 맴돌던 흑기가 사라졌다.
당청산은 표정이 편안해졌다.
꽉 감겨있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 * *
그 시각, 다른 쪽.
주심도와 가엽이 펼친 공격은 아무런 작용도 발휘하지 못했다.
진남이 뿜어내는 엄청난 마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계속 진화했다.
"크아아아-!"
진남은 흉수처럼 고개를 젖히고 포효했다.
그리고 엄청난 힘을 싣고 묵사와 무천마군에게 부딪혔다.
묵사와 무천마군은 엄청난 압력과 위기감을 느꼈다.
그들은 긴장되어 미리 준비해두었던 불가의 상고문도지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곧 엄청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두 불기는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에 흩날렸다.
"여래대불인(如來大佛印)!"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살초를 사용했다.
쿵쿵쿵-!
엄청난 불술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압도적인 힘이 그들을 때렸다.
묵사와 무천마군은 안색이 확 바뀌고 피를 왈칵 토했다.
"개래지법(皆來之法), 환도지술(換道之術)!"
묵사와 무천마군은 다른 것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얼른 법인을 만들었다.
촤르륵-!
제삼금구의 하늘이 강한 힘에 찢어진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 사이로 내려와 두 사람의 몸에 떨어졌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그들은 도망갈 도법을 미리 준비했다.
그들이 전송되려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진남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방대한 힘을 가진 마화는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도법에 날아들어 제단의 힘을 부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묵사와 무천마군은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든 제단은 평범하지 않았다.
게다가 엄청 먼 곳에 있었다.
그들이 경악하는 중에 커다란 손이 날아와 그들의 머리를 붙잡고 허공에 힘껏 눌렀다.
커다란 소리들이 연신 울려 퍼졌다.
"아차!"
그들은 표정이 달라지고 수많은 불법들을 펼쳤다.
평소였다면 이런 공격을 그들은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공을 사용할 수 없었다.
펑펑펑-!
진남에게서 폭발음이 연신 울려 퍼졌다.
흐릿한 마도 장포가 점점 또렷해지고 불후마의도 점점 뚜렷해졌다.
묵사와 무천마군은 깜짝 놀랐다.
강렬한 압박감이 그들의 마음을 눌렀다.
그들이 수련한 마도 공법들은 꿈틀대며 스스로 운행할 준비를 했다.
그들은 동시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남에게 맞아 중상을 입고 신분도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
"소남자, 이러지 말거라. 정신을 차리거라!"
울음이 섞인 목소리가 진남의 식해에 전해졌다.
창과 싸우던 묘묘 공주는 눈물범벅이 되었다.
"진남!"
"부군!"
비범지주가 된 설몽요나 냉정한 강벽난도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초조했다.
진남은 몸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묵사와 무천마군을 공격하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방대한 마기는 천하에 막힌 것처럼 멈추었다.
분노가 가득했던 그의 심신에 청아한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자 화가 사라지고 이성이 회복되었다.
"후-!"
주심도와 가엽은 그제야 안도했다.
진남이 완전히 광마가 되기 전에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진남!"
이때, 진남의 식해에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진남의 심신과 영혼은 깜짝 놀랐고 두 눈에 가득하던 어둠이 반은 사라졌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지만 여전히 익숙했다.
맨 처음에 진남을 무도의 길로 이끈 목소리였다.
"지금이 기회다!"
묵사와 무천마구는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진남에게서 벗어났다.
그들은 온몸의 피가 가득한데도 신경 쓸 새도 없이 다시 법인을 만들고 제단의 힘을 불러 사라졌다.
방금 벌어진 일은 너무 무서웠다.
두 주선은 이 자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사, 사형?"
진남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목소리가 쉬고 말투에 조심스러움이 묻어있었다.
방금 들은 목소리가 환각일까 봐 걱정이었다.
창백한 얼굴의 당청산이 조리아에게 기대 얕게 숨 쉬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양대 무상천존의 환생이고 너도 주경정상이자 곧 주재를 돌파할 사람이 아니냐? 이런 일로 화가 심장을 공격하여 이성을 잃다니, 이게 가당한 일이냐?"
당청산은 호통쳤다.
"사형, 저는……."
진남은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당청산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생기를 보자 심장에 칼이 꽂힌 것 같았다.
꺼져가던 마기가 다시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당청산의 의지가 회복이 되고 있었지만 생명은 끝나가고 있었다.
당청산은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고 몰래 한숨을 쉬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유감스럽기도 했다.
"리아, 진남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당청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조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물은 멎었지만 두 손은 관절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그를 꽉 안고 있었다.
당청산은 그녀의 손등을 토닥거리고 남은 힘을 쥐어짜서 술법을 펼쳤다.
촤르륵-!
주변 환경이 바뀌었다.
주경 강자들이 사라지고 청산녹수로 바뀌었다.
이곳에는 당청산과 진남 둘밖에 없었다.
환술이었다.
"너를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시간이 많이도 흘렀구나. 예전의 일들은 꿈인 것 같고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구나."
당청산은 살짝 웃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은 죽기 전에 마음이 좀 달랐다.
"사형, 죄송합니다."
진남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코끝이 찡했다.
"우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은 왜 하느냐?"
당청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진남, 무망천존의 의지가 나를 완전히 삼킨 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아느냐? 자결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능력도 없었다."
당청산은 앞을 바라보며 다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진남, 어떤 일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너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서라도 나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내 생각은 어떤지 아느냐? 전혀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거 아느냐? 네가 아무리 강해져도 나는 여전히 네 사형이다. 사형이라는 자가 사제의 짐이 될 수 있겠느냐? 네가 진짜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나를 구한다면 나는 계속 자책을 하며 살 거다."
진남은 깜짝 놀랐다.
이에 당청산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물론 너는 내 말에 동의할 수 없겠지. 그래서 결국 나를 구하려고 할 거다. 다만, 명심하거라. 네가 책임져야 할 것은 우리 형제의 정만 있는 게 아니다. 네 도려들, 가족들, 벗, 은인 등이 있지. 너는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된다. 결과가 어떻든, 분노해도 좋고 미친 듯이 날뛰어도 좋다. 다만 이성은 잃지 말거라."
진남은 침묵했다.
그는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와 말을 할 수 없었다.
당청산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분노하지 말라고 하면 불가능할 거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너는 나를 위해 복수를 해다오. 창과 두 땡중들이 대가를 치르게 하거라. 할 수 있겠느냐?"
당청산은 진남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말했다.
그는 이제 복수에 미련이 없었다.
그러나 진남이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주의력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사형,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일은 반드시 열 배로 복수하겠습니다."
진남의 두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럼 됐다. 내세가 있다면 다시 네 사형이 되고 싶구나."
당청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남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환술이 흩어졌다.
진남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당청산의 창백한 얼굴과 점점 옅어지는 생기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큰 도리들을 말하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리아."
당청산은 조리아의 손을 잡았다.
"당 나무, 이별의 말은 하지 말거라! 너를 죽게 두지 않을 거다. 절대 죽게 하지 않을 거야!"
조리아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 말하지 않을게."
당청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 계속 함께 해줘서. 다음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마지막 말을 마친 그는 동공이 흩어지고 생기가 전부 사라졌다.
"당 나무!"
조리아는 정신을 잃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진남, 묘묘 공주, 강벽난 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진남은 심신이 보이지 않는 힘에 힘껏 맞은 것 같았다.
그들은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싸움과 의지, 지보 등 모든 것들이 잠시 그들에게서 멀어진 것 같았다.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조리아가 들고 있던 구리등 속 불꽃이 시커먼 색으로 변했다.
방대한 무형의 힘이 뿜어져 나와 당청산에게 떨어졌다.
"어라? 이건……."
창, 가엽, 주심도 등은 동시에 살펴보았다.
가엽은 두 눈에 이상한 빛을 드러내며 말했다.
"주인님의 사형은 운이 좋은가 봅니다. 저 여인이 들고 있는 것은 역혼등인데 상고시대 영혼에 대한 조예가 깊은 천존이 만든 것입니다.
역혼등은 무인의 영혼을 안에 가두어 천 년 동안은 혼이 흩어지지 않게 합니다. 역혼등은 저자와 가까이 있었고 때마침 움직였습니다. 때문에, 저자의 삼혼칠백을 전부 흡수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넉넉한 생명의 근원을 찾고 육신을 잘 보존한다면 부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