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화 태고를 상대하다
"정적(鄭敵) 주재, 우리 세 세력이 연합을 하기는 했지만 자네와 내가 이씨라고 부를 만큼의 사이는 아니지 않소?"
이백성은 냉랭하게 말했다.
"이 도우의 말이 맞소. 정적, 그 입을 좀 잘 건사하시오."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커멓고 큰 새들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고 무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새들인 한곳에 모이더니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구부정한 형상으로 변했다.
그는 한 쌍의 초록색 눈만 밖에 드러냈다.
"하하, 암효(暗梟)주재가 그리 말하니 주의해야겠소. 단단히 주의하겠소."
정적은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그들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자가 암효주재야?"
정씨 가문과 이씨 가문의 거물, 장로들은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자에게 시선이 쏠렸다.
암효주재는 만 년 전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행적이 기이하고 내력이 복잡했으며 암살에 능했는데 수단이 엄청 잔인했다.
항상 단독 행동을 하고 세력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천존가문이나 무상도통과의 싸움에서 열세에 처한 적이 없었다.
"됐소. 다른 다섯 개 천존가문과 무상도통들 그리고 주재거물들까지 전부 입장해서 수단을 펼치고 있소. 이 도우, 이씨 가문에서 그 물건을 준비했소?"
암효주재가 물었다.
"물론이오."
이백성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법인을 만들었다.
방대하고 형태가 없는 파동이 파도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높이가 백 장이고 넓이가 서른세 장인 거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울 틀에는 옛 신마 그림이 새겨졌다.
"두 도우도 동시에 손을 써주시오."
이백성은 말하고 먼저 주재지력을 거울에 주입했다.
정적과 암효주재는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쿵-!
거울은 오래된 봉인이 풀린 것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거울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빠른 속도로 폭발했다.
힘은 순식간에 북역 전체를 덮쳤다.
거울 속의 장면들이 계속 바뀌었다.
거울은 궐일경(闕一鏡)이었다.
상고시대 한 천존의 본명지보이자 상고 문도지기였다.
그것은 위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천지의 모든 것을 전부 찾아볼 수 있었다.
이씨 가문, 정씨 가문, 암효는 연합하여 이 물건을 사용하여 태고금기가 숨어있는 곳을 찾아내려 했다.
그들 외에 다른 천존가문이나 무상도통 그리고 상고백족 등도 비슷한 수단을 펼쳤다.
태고금기를 빨리 찾아내고 대세력의 힘으로 제압하여 기회를 먼저 잡아야 했다.
"천, 지, 인 삼위귀(三位歸), 구현변(九玄變)!"
이백성, 정적, 암효 셋은 법인을 다시 바꾸었다.
두 개의 허공에 엄청난 파동이 일고 흐릿한 거울이 나타났다.
거울의 깊은 곳에서 궐일경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힘이 폭발했다.
힘은 긍고의 용처럼 순식간에 제삼십이소선역의 장벽을 뚫고 빠르게 제삼십삼소선역과 제삼십일소선역으로 날아갔다.
일 년 동안 그들은 수많은 장로와 제자들을 보내어 조사를 했고 결국 북역을 목표로 정했다.
또, 이 두 소선역의 커다란 구역도 목표로 정했다.
"이 도우, 정적, 진남이 제삼십이소선역으로 올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오."
암효주재는 말했다.
"그 일은 우리도 생각이 있소."
정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시각, 동역의 한 산맥.
진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주재거물들이 참 많이도 오는구나."
진남은 두 눈에 세 가지 빛을 반짝거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허공의 곳곳을 살핀 진남은 대단한 존재들이 엄청난 수단을 펼치는 것을 발견했다.
진남은 빨리 기운을 거두었다.
그의 전력이 엄청난 경지에 이르렀고 평범한 주재초기보다 강했다.
하지만 구천선역의 주재거물들은 대부분 주재대성 이상이고 오랜 시간의 축적을 통해 강한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혹시 만나게 되면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시끄러웠다.
"태고금기, 너를 잡으려고 그물을 물샐틈없이 쳤는데 어떻게 대처할 거냐?"
진남은 중얼거렸다.
어느새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이제 진남이 태고금기를 죽이러 쫓아다녔다.
진남은 움직이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반 시진이 지나고 허공에 물결무늬 파동이 생겼다.
흰색 치마를 입은 여제가 그 안에서 걸어왔다.
그녀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왔습니까?"
진남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의 두 눈 깊숙한 곳에는 놀라움이 가득했고 뜻 모를 감정도 섞여 있었다.
"응."
비월여제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잠시 후에 너는 무상도통을 잘 살피거라. 천존가문, 상고대족 그리고 일부 주재들은 내가 살피겠다."
진남은 궁금해서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비월여제는 대답하지 않고 고경을 꺼내 법인을 만들었다.
방원 만 리의 천지가 희뿌옇게 변했다.
진남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방원 만 리의 천지는 제삼십이소선역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주재들은 대단했다.
비월여제는 더 대단했다.
"무자천서(無字天書), 만물개무(萬物皆無)!"
비월여제는 방대한 규칙지력을 사용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고경이 웅웅 소리를 내며 한 장씩 펼쳐졌다.
마지막 장까지 펼쳐졌을 때 몇백 개의 빛이 솟구쳤다.
빛들은 허공에서 수막으로 변했다.
수막들에는 그림자가 있었는데 어떤 이는 태고대진을 만들고 어떤 이는 고경을 움직이고 천라만상(千羅萬象)이었다.
"이, 이게 여러 세력들입니까?"
진남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제야 비월여제의 말을 이해했다.
여러 세력들의 유명한 주재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힘들게 수련하고 최선을 다해 수단을 사용할 때 진남과 비월여제는 편히 앉아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태고금기가 숨어있는 곳을 알아내는 세력이 누구든 그들은 더 빨리 알 수 있었다.
'비월여제의 지금 경지를 보니 곧 제일주재가 되겠지?'
진남은 생각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여인은 줄곧 구천선역의 전설이었다.
어떤 경지를 돌파해도 그 단계에서는 무적이었다.
비월여제가 주재정상이 되면 영야천존은 '대상계일인자'라는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진남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수막에 집중했다.
그는 여러 세력의 주재 거물들을 잘 몰랐다.
마침 이 기회에 자세히 알아보고 그들의 수단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느덧 닷새가 지났다.
제삼십이소선역의 수많은 무인들은 폭풍전야의 압력을 느꼈다.
며칠 동안 무인들이 함께 무지갯빛으로 변해 떠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지선 이상의 무인들은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들은 엄청난 폭풍에서 기연을 만나면 역천개명하기를 기대했다.
"이백성 일행이 태고금기를 발견했다."
비월여제는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진남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시선을 돌렸다.
수막에는 이백성, 정적, 암효주재 등이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떠 있는 거울에 시커먼 골짜기가 나타났다.
골짜기의 깊은 곳은 혼탁한 핏빛이 반짝거렸다.
크기가 다른 백골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법인을 만들고 주문을 외웠다.
그들의 가장 앞쪽에는 피에 흠뻑 젖은 백골이 있었다.
백골은 두 눈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몸에 법문이 번졌다.
그들은 이상한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았다.
이백성, 정적, 암효 등은 옅은 금색 돛을 꺼내 주재지력을 주입했다.
돛은 커지더니 몇만 리를 휩쓸어 그들을 모두 감쌌다.
그들은 수막에서 사라지고 옅은 금빛이 빠른 속도로 제삼십이소선역을 벗어났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신통한 상고의 문도지기를 사용하여 몸을 감추었다.
"태고금기는 제삼십삼소선역의 한 상고규칙에 숨어있다."
비월여제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가 소식을 퍼뜨리는 건 어떠냐?"
진남은 비월여제의 뜻을 알아차렸다.
태고금기는 창의 심복이었다.
비록 주경 경지밖에 되지 않았지만 평범하지 않기에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또, 태고금기는 이 년 전부터 일을 준비했기에 대응책도 충분할 것이었다.
그들이 쳐들어간다고 해도 빈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다른 세력들에게 알리면 태고금기는 그들을 다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태고금기를 죽인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었다.
여러 세력이 어떻게 싸움을 벌이든지 태고금기는 도망갈 수 없었다.
태고금기가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해도 수많은 수단을 사용하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좋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제삼십이소선역을 벗어났다.
* * *
제삼심삽소선역 북역 깊숙한 곳, 한 상고금지.
이상한 소리가 모여들더니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어떤 힘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대인!"
호랑이 모습을 한 해골이 핏빛을 밟으며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우렁찼다.
"이씨 가문, 정씨 가문, 암효주재가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태고금기는 짧게 대답하더니 무뚝뚝하게 말했다.
"다른 세력이 더 있느냐?"
호랑이 모습을 한 해골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희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다른 세력의 주재들은 아직도 수단을 사용하여 살피는 중이라고 합니다. 제삼십삼소선역의 계벽(界壁)에 있는 도도대진(渡道大陣)도 아무런……."
그는 멈칫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방금 대진에 반응이 생겼습니다. 주재 한 명과 주경 한 명이 제삼십삼소선역에 들어섰습니다."
태고금기는 콧방귀를 뀌었다.
"주재 넷에 겁먹을 거 없다. 그들이 나를 진압하고 싶어 하니 말라 죽은 낙타라도 말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주지!"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주인이 순조롭게 환생을 하게 하고 주인의 환생을 데려가려고 이 년 동안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대응책과 수단들을 준비했다.
지금 보니 그 물건을 내어줄 필요가 없었다.
일 주 향이 타고 진남과 비월여제는 근처에 도착했다.
비월여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십생십세지광이 나타났다.
둘은 천지에서 귀신도 모르게 사라졌다.
잠시 후, 진남은 이백성, 정적, 암효 등 세 주제거물들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나타났다.
"결진!"
이씨 가문과 정씨 가문의 강자들과 장로들이 법인을 만들었다.
수많은 진문이 천지에서 퍼지더니 모든 기운을 덮었다.
"허허, 준비를 단단히 했구나.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싶은 거지?"
태고금기는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은밀한 수단도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태고, 죽고 싶지 않으면 창의 비밀을 털어놓거라."
이백성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그는 질질 끌지 않고 바로 공격했다.
등 뒤에 멘 고검이 챙챙- 소리를 내고 검광으로 변했다.
검광에 의지, 대세, 규칙이 모여 태고금기를 베었다.
정적과 암효도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좌우에서 절세의 살초를 날렸다.
쿠쿠쿵-!
순식간에 커다란 산골짜기에 폭발음이 가득했다.
수많은 허공과 제삼십삼소선역에 속하는 규칙들이 부서지고 혼돈으로 변했다.
싸움은 천지를 멸망시킬 정도로 치열했다.
미리 많은 수단들을 만들어뒀기에 망정이지 제삼십삼소선역 전체가 놀랐을 것이었다.
멀리 있는 제삼십이소선역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불마상(佛魔像)!"
태고금기는 큰손을 뻗어서 잡았다.
도천불광과 긍고마광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엄청난 위압이 천지에 나타났다.
"응?"
진남과 이백성 일행들은 동시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 힘은 엄청 강했는데 태고금기의 것이 아니었다.
"중생상(衆生像)!"
태고금기는 차갑게 웃으며 법인을 바꾸었다.
순식간에 몇만 개의 형상이 천지에 떠올랐다.
형상들은 서로 다른 빛을 뿜었다.
"태고, 의외다. 네가 이런 수단을 펼칠 수 있다니!"
이백성과 다른 세 주재들은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들은 태고를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