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7화 은인
진남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석인에서 사람이 튀어나온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을 것이었다.
"됐다."
진남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찌 됐건 구룡석인이 큰 우환을 해결해줬다.
진남은 계속 앞으로 움직였다.
깊이 들어갈수록 그는 점차 깨달았다.
구룡석인이 떨린 건 그가 신비한 기운의 침입을 받지 않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는 아무런 살기와 금제를 만나지 않았다.
가끔씩 정신이 이상한 요수들이 그를 공격할 뿐이었다.
여기는 서극지였다.
문도지지가 나타난 이래 많은 무인들이 전승과 기연을 욕심냈지만 마지막에는 사라지고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곳에 어찌 요수들만이 있을까?
진남은 추측했다.
'살기와 금제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신비한 기운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구룡석인의 위엄에 나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 같다. 잠깐, 왜 위엄…….'
"공주가 여기 있다면 기뻐 미칠 것이다."
진남은 순간 몸을 날려 붉은색 나무에 달린 금색 무늬가 가득한 열매를 세 개 저장주머니에 넣었다.
속으로 감탄했다.
그는 왜 그렇게 많은 구천지존들이 이곳이 위험한 걸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오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이곳은 기연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는 길에 적어도 서른여 가지의 천재지보를 긁어모았다.
천재지보들은 선력이 매우 강하고 가치가 진귀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정상 등급의 지존이라 이런 천재지보를 연화해도 아무 소용 없었다.
하루가 지났다.
진남은 구천지존들도 두려움을 느끼는 곳에서 태어나서 가장 재미없는 여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천재지보들을 긁어모았다.
그는 이제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중간쯤 왔겠지?"
진남은 걸음을 늦추었다.
바닷물은 암홍색으로 변했다.
핏방울이 섞인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여러 가지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에 기이한 부문이 나타났다.
진남은 나무들을 힐끗 봤다.
나무의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힘이 꿈틀거렸다.
나무들은 기개가 없었다.
진남이 주먹을 날리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부서졌다.
진남은 어깨를 으쓱하고 속도를 높였다.
잠시 후 진남은 걸음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래에 있는 바닷물이 크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살기가 동서남북에서 흘러나와 커다란 그물을 이룬 것처럼 진남을 도망갈 수 없게 가뒀다.
"드디어 무인을 만났구나!"
"저자의 심장은 내가 먹을 거다. 누가 빼앗으면 나는 가만 있지 않겠다!"
"맘대로 해, 두려울 것 없어."
거칠고 날카로운 말다툼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협상을 이룬 듯 더는 싸우지 않았다.
바닷물이 출렁거리더니 여섯 개의 형상이 바다 밑에서 떠올랐다.
진남은 눈에 묘한 빛이 스쳤다.
여섯 개 형상은 두 명의 지존정상, 네 명의 지존대성이었다.
네 지존대성은 백골이었다.
뼈에 시커먼 무늬가 가득하고 송곳니가 날카롭고 눈동자가 시뻘겠다.
두 지존정상은 절반은 골격이고 절반은 빼빼 마른 혈육이었다.
검은 선이 가득하여 기이하고 추했다.
진남은 입을 실룩거리며 물었다.
"너희들은 나를 공격하려는 거냐?"
눈이 완전히 붉은색으로 변하지 않은 정상지존은 흉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어볼 필요 있느냐? 걱정하지 말거라. 너는 죽지 않을 거다. 우리처럼 될 뿐이다."
말이 끝나자 여섯 개의 기세가 폭발해 사방을 흔들었다.
"대광명여래인(大光明如來印)!"
"적멸사방술(寂滅四方術)!"
"화고신권(化古神拳)!"
여섯은 호흡이 잘 맞았다.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어 대진을 이루어 방대한 대세를 움직이고 도술들을 드러내 진남을 공격했다.
"보제고찰종의 중?"
진남은 어리둥절하여 바로 공격하지 못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천지를 덮는 살기가 그의 앞에까지 왔다.
그는 과천일격을 드러내 옆으로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수단이 기이하구나. 하지만 우리를 만났으니 죽는 길뿐이다!"
보제고찰종의 정상지존은 전혀 불도제자답지 않았다.
살기를 드러내고 법인을 만들었다.
"진도도결!"
진남은 열두 개의 문도법을 동시에 움직여 칼에 모아 내리쳤다.
몇천, 몇만 개의 방대한 도세가 몰려왔다.
여섯 명이 만든 진법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빛무리로 변해 사방으로 날아갔다.
"열…… 열두 개 문도법? 너 열두 개 문도법을 장악했어?"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여섯 명의 구천지존들은 경악했다.
엄청난 위기감이 들어 빠르게 술법을 드러내 대응했다.
하지만 그들의 도술은 하늘 가득한 도세와 비하면 반딧불과 햇빛처럼 차이가 너무 컸다.
퍼퍼퍼펑-!
연이은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그들의 도술은 전부 파괴되었다.
나머지 도세들도 그들을 내리쳤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뼈가 부서져 바다에 떨어졌다.
진남이 전력을 다했다면 그들은 바로 죽었을 것이었다.
정상지존들 사이에도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제대로 말하면 죽이지 않겠다."
진남은 정상지존들을 보고 말했다.
"이번에 지존방에 이름이 오른 자를 만날 줄이야."
한 정상지존은 시커먼 피를 토하고 말했다.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흥분했다.
"너의 심장은 매우 맛있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섯 명도 흥분했다.
이때,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들은 부서졌던 뼈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잠깐 사이에 원래대로 회복되어 도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응?"
진남은 미간을 찌푸리고 칼을 휘둘러 두 명의 지존대성의 해골을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뼛가루들이 빠르게 한데 모여 원상태를 회복했다.
"헛수고하지 말거라. 네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네가 지존방에 이름이 오른 걸 봐서 고통받지 않도록 통쾌하게 죽여줄게."
정상지존들은 큰소리로 웃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미있구나."
진남은 담담하게 웃으며 화도선염을 드러냈다.
정상지존의 말대로 그들은 죽지 않았다.
진남이 어떤 공격을 해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진남은 한참을 관찰했지만, 아무런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남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불사지신(不死之身)'이지만 경지는 그와 비하면 너무 차이가 컸다.
진남이 수단을 많이 드러내면 그들을 짧은 시간 누르고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이때 진남의 영혼 속의 구룡석인이 또 나타났다.
세 개의 빛이 반짝거리고 흐르는 물처럼 진남의 단전 속 지존지력에 들어갔다.
"응?"
진남은 놀랐다.
그들을 진압하려던 걸 포기하고 정상지존을 공격했다.
"너 진짜 고집불통이구나. 우리는 불사지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애쓰지 말거라. 내가 진짜 화나면 너는……"
정상지존은 멸시하듯 말했다.
진남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지도 않고 다가갔다.
퍼엉-!
정상지존은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오른쪽 가슴팍의 뼈가 두 개 부서지고 오른쪽의 빼빼 마른 혈육이 찢어졌다.
회색 기운이 안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로 날아올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전에 없던 아픔을 느꼈다.
하나, 다섯, 열…….
잠시 시간이 지나고 다섯 명은 깜짝 놀랐다.
비명을 지르던 정상지존도 뭔가 느낀 듯 오른쪽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라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회…… 회복되지 않았어?"
그들은 진남이 열두 개의 문도법을 모두 수련했을 때보다 더 놀랐다.
"구룡석인은 계속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진남은 중얼거리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이대로 죽을 거냐, 아니면 나에게 사실을 말해줄 거냐?"
여섯 명의 구천지존들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두렵고 놀라 눈빛이 복잡했다.
상처를 입은 정상지존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변한 건 차천대주(遮天大呪) 때문이다."
말을 마친 그는 어안이 벙벙하고 기뻤다.
다른 다섯 명의 구천지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차천대주? 그건 뭐냐?"
진남은 계속 물었다.
"……은인이구나. 너는 나의 은인이다. 앞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나더러 보제고찰종을 공격하라고 해도 나는 싫은 소리 하지 않을 것이다."
석명은 흥분해 말했다.
그는 의문이 가득한 진남을 보자 진정하고 말했다.
"은인, 너는 모른다. 우리는 차천대주에 걸려 죽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육신도 나중에는 백골이 된다. 또, 외부에서 온 무인들을 계속 죽여야 한다. 게다가 차천대주나 서극지에 관해서 우리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다. 즉, 아무런 정보도 말해줄 수 없었다. 말하려 하면 무형의 힘의 구속을 받았다."
석명은 머뭇거리다 물었다.
"은인, 넌 서극지에 들어올 때 차천지기(遮天之氣)의 침식을 받지 않았느냐?"
진남은 물었다.
"차천지기라면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기운을 말하는 거냐?"
석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맞다. 그것이 바로 차천지기다! 차천지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다. 그것이 무인을 절반쯤 침식하면 차천지수(遮天之?)가 깊은 곳에서 걸어와 차천대주를 건다. 저주에 걸린 자는 좀 전의 우리처럼 변하고 그곳의 사냥개가 된다."
그는 서둘러 말했다.
"은인, 차천지기를 만만하게 보지 말고 꼭 주의해야 한다."
진남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괜찮다. 그것은 나를 침식하지 않을 거다."
석명 등은 깜짝 놀랐다.
'차천지기가 이자를 침식하지 않을 거라고? 맞아, 이자의 칼은 차천대주도 물리칠 수 있다. 그럼 차천지기가 이자를 이길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한 가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좀 전의 한 방이 너의 차천대주를 완전히 풀었느냐?"
진남은 물었다.
석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십 분의 일 정도를 풀어 나는 자유를 조금 얻었다. 잠깐. 은인, 너 좀 전의 공격을 다시 펼칠 수 있느냐?"
석명의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
다섯 명도 기대에 찬 눈으로 진남을 바라봤다.
진남은 그자의 생각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
"펼칠 수 있다."
석명 등은 크게 놀랐다.
그들은 구천지존이라 많은 시련을 겪어 마음이 강했다.
그들은 몇백 년을 갇혀 지내며 산송장처럼 살았다.
동문도 많이 죽이고 살아도 죽은 것보다 못한 시간을 보냈다.
석명은 흥분을 누르고 깊이 생각하고 말했다.
"은인, 저를 도와 차천대주를 풀어준다면 저는 맹세를 하겠습니다. 은인이 도움이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은인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서극지에는 우리 같은 사람이 몇백 명 있습니다. 그중에는 큰 세력의 성자와 성녀들도 적지 않습니다. 은인이 이들도 도와준다면 그들은 은인에게 고마워하고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진남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럼 나는 백여 명의 구천지존의 지지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백여 명의 구천지존이다! 문도지지에서 가장 강한 세력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남 등과 망금성승 등이 사람이 많다고 나를 죽이려 해도 불가능하겠다.'
가장 중요한 건 차천대주가 통제하는 '허수아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서극지에 대해 잘 알 것이었다.
진남은 그들을 통해 시대전장으로 가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네 말이 맞다. 우선 너희들을 도와 사람마다 십 분의 일의 저주를 풀어주겠다. 나를 나머지 백여 명에게 데려다주거라. 나중에 한꺼번에 저주를 풀어주겠다. 어떠냐? 동의한다면 앞으로 나를 진남이라고 부르거라."
진남은 제안했다.
"좋습니다!"
여섯 명은 기뻐하며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도 긴말하지 않고 다섯 번 칼을 휘둘렀다.
다섯 명의 무인들은 괴로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속으로는 크게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