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4화 소남자(小南子)
"그래!"
노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말했다.
"네가 그리 건방을 떠니 우리 셋은 떠나겠다. 나는 항계(項啓)와 친분이 있다. 네가 진남을 죽이지 못하면 나는 이 일을 항계에게 알릴 거다!"
말을 마친 노인 일행들은 먼 곳으로 날아갔다.
그가 언급한 항계는 시도족 여든여섯 번째 성자이고 지존방 서열 십 위에 들었다.
그는 통천도수에 있으며 시도족의 주사인(主事人)이었다.
주사인이란 분종(分宗)의 종주와 같았는데 시도족의 문도지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리하고 시도족의 사람들을 관리했다.
주사인은 항한도 다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상을 내리거나 벌을 내릴 수도 있었다.
정상지존까지 돌파한 자들은 여우들이었다.
노인 일행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그들은 항한과 진남이 싸우면 누가 이기든 쌍방 모두 크게 다칠 거라고 확신했다.
그때를 기다려 다시 공격할 생각이었다.
항한은 노인의 말을 무시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짚으니 수많은 검은색 기운이 용솟음쳤다.
검은색 기운은 그들과 진남을 감쌌다.
검은색의 작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진남은 의아해서 물었다.
"항한 도우, 왜 이러시오?"
진남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도족의 사람들은 진남의 소식을 얻으면 온갖 방법을 다 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다.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런데 항한의 행동이 너무 이상했다.
항한이 진남이 가진 것들을 노린다면 진남은 믿지 않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진남은 주제의 아들인 주소의 환생이었다.
항한이 아무리 전력에 자신이 있어도 진남을 죽일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모험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하, 솔직히 말해서 자네를 엄청 죽이고 싶소. 항존 선배님 때문이 아니라 자네 실력이 너무 강해서 흥분되오."
항한은 진남과 싸우는 장면을 상상하고 흥분해서 저도 몰래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년 사내는 어이가 없어서 헛기침을 했다.
"어, 미안, 미안하오. 하마터면 참지 못 할 뻔했소."
항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자네에게 알려줄 것이 있어서 찾아왔소. 시도족은 이제부터 자네의 적이 아니오."
진남은 살짝 놀랐다.
예전에 항존은 배신할 의도로 일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시도족이 봤을 때는 배신과 다름이 없었다.
종족을 배신한다는 것은 고족들에게 있을 수 없는 금기였다.
문도법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보다 더 중한 죄였다.
'시도족이 왜 태도를 바꾸었을까? 내 전생을 주소라고 알았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거다!'
진남은 조령, 정무원, 한추영(韓秋映) 등 세 사람이 그를 대하던 태도가 떠올랐다.
전생의 각성이 어떤 암류를 건드린 게 분명했다.
항한은 허허 웃더니 말했다.
"진남, 다른 세력들도 자네를 찾아와 은근히 연합하자는 뜻을 비추었을 거요. 그들 중에는 묘문도 있겠지."
그의 말에 진남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도우, 그 원인을 알려줄 수 있겠소?"
"도우도우 하지 맙시다. 너무 이상하오. 이제부터 내 이름을 부르시오."
항한은 손을 내젓더니 말했다.
"사실, 복잡할 것도 없소. 천존 때문이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존과 무슨 연관이 있지?'
항한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진남, 이 세상에 천존은 한 명밖에 남지 않았소. 그것도 수명이 거의 다 되어 오래 살지 못하오. 자네, 이 천존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아시오?"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잘 모르는 부분이었다.
"천존의 비밀은 우리도 잘 모르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네 무상천존이 구천선역을 통치할 때의 사람이라는 거요."
그의 말에 진남은 충격을 받았다.
네 무상천존이 통치하던 시기는 아주 먼 옛날이었다.
진남은 천존의 힘에 대해 잘 모르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천존이라고 해도 이렇게 긴 시간 살아 있을 수 없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생각해보시오. 상고대전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천존이 나타나지 않았소!"
진남의 머릿속에 불빛이 번쩍였다.
그제야 깨달은 진남은 말했다.
"지금의 구천선역에서 천존이 될 수 없다는 뜻이오?"
항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상고대전이 구천선역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상계 전체에 천존을 돌파할 수 있는 곳이 없소.
선왕에서 지존이 되려면 일흔두 개의 천지성구에 들어가면 되오. 지존에서 주경이 되려면 문도지지에 들어가야 하오. 또, 주경에서 주재가 되려면 시대전장에 가면 되오. 그런데 주재에서 천존이 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갈 데가 없소."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도 천존으로 진급할 수 있는 곳을 몰랐다.
"그러니까, 시도족이 나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묘문과 다른 세력들이 연합하여 나를 찾는 것도 모두 내 전생이 주소라서 그런 곳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오?"
진남은 마음이 점점 차분해졌다.
"대충 그 뜻이오. 구천선역에 있는 칠 대 천존가문과 묘문, 시도족, 선령족 그리고 다른 상고대족들, 열세 개 무상도통 그리고 주재 강자들은 모두 천존을 돌파할 방법을 찾았소. 상고대전이 끝나고 지금까지 그들은 여러 방법들을 찾았고 계속 시도하는 중이오.
우리 시도족이 찾은 방법을 나도 구체적으로 잘 모르오. 다만, 묘문과 다른 세력들과 비슷하게 자네의 전생과 큰 연관이 있소."
항한은 말했다.
진남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항한이 오늘 한 말에 진남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구천선역에 이렇게 큰 암류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러 큰 세력들과 주재 강자들이 천존경지에 미칠 정도로 집착했다.
그러나 진남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시도족, 묘문, 정씨 가문, 한씨 가문이 어떤 꿍꿍이가 있든, 주소의 신분을 어떻게 이용하려고 하든 상관이 없었다.
적어도 구천선역에서 네 명의 강한 적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시도족이 그를 적으로 대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얼마 전까지 진남과 그들 중 한쪽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물론 진남은 그들과 계속 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익이 필요했고 이익이 충분하면 아무리 큰 원한이라도 한 번에 없앴다.
이익이 없다면 사 대 세력은 계속 태도를 바꿀 게 분명했다.
"진남 도우."
침묵하고 있던 중년 사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알고 있다. 시도족과 네가 서로 불쾌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시도족 전부가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항존 선배는 시도족의 가슴에 박힌 가시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종문의 일부 선배들도 이제는 항존 선배를 이해한다."
지존정상이 선배라고 부르는 자들은 시도족의 주경이나 주재 강자들이었다.
"전에는 우리가 무례했다. 진남 도우가 우리와 연합을 하겠다고 약속하면 일정한 보상을 해줄 생각이다.
중년 사내는 이어서 말했다.
"진남 도우, 시간이 되면 통천도수로 가 보거라. 항계 성자가 너를 만나 이 일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진남은 앞에 말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좋습니다. 통천도수에 가게 되면 항계 성자를 찾아뵙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그제야 안도했다.
진남은 이 제안에 그리 반감을 가지는 것 같지 않았다.
"진남, 전할 말은 다 했다. 이만 가보마. 아,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겨뤄보자!"
항한은 말하면서 중년 사내와 함께 선부를 찢었다.
엄청난 힘이 그들을 감싸더니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둠도 흩어졌다.
"승부가 갈린 거야?"
멀리서 기다리던 세 지존 정상들은 그 모습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실망했다.
'항한과 중년 사내는 어디로 사라졌지?'
이때 방대한 힘이 사방에서 용솟음치고 사방을 흔들었다.
묘묘 공주와 강벽난의 지존지력은 급격하게 늘었다.
그녀들은 지존대성 경지를 돌파했다.
"소남자(小南子), 다친 데는 없어?"
묘묘 공주는 눈을 뜨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강벽난도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돌파를 할 때 다섯 지존정상들의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셋이 먼저 사라지고 나중에 두 명도 사라졌다.
"걱정 마. 다친 데 없다."
진남은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숨어있던 세 지존정상들이 황망히 사라졌다.
진남은 그제야 벌어진 일들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럼 네 개의 큰 세력이 우리에게 부탁을 하는 거네?"
묘묘 공주는 눈이 환하게 빛났다.
'잘됐다! 큰 세력들은 상고대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자원을 축적했을 것이다. 단단히 사기칠 수 있겠구나! 속이 다 후련해!'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그들이 말하는 방법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연합하려는 것도 모르잖아."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매우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진남의 전생은 주소가 아니었다.
다만, 아직 사 대 세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진남은 이해할 수 없었다.
향혼의 말에 따르면 주소는 여색을 즐기는 귀족 도련님일 뿐 아무런 공이 없었다.
그에게 특별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천존이 되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진남, 내 생각에는 네 세력 모두 그런 의도를 비쳤으니 잘 이용하면 많은 시끄러움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강벽난은 말했다.
진남은 두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묘문, 정씨 가문, 한씨 가문은 둘째치고 시도족에는 아무런 호감도 없었다.
그러나 시도문이 스스로 자세를 낮추었다.
진남은 어떻게 연합을 할 것인지 제대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주소라는 이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면 이 잘못된 정보로 진남은 시도족을 단단히 등쳐 먹을 생각이었다.
시도족이 알아차리고 화를 낸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어차피 한 번 틀어진 사이인데 또 틀어진다고 해도 진남은 상관없었다.
"난난, 진남이라고 부르지 말거라. 어떤 사람들은 또 따라 할 수도 있다. 나처럼 소남자라고 불러."
묘묘 공주는 말했다.
"공주, 그건 못하겠다."
강벽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소남자라고 부르는 건 그녀에게 고역이었다.
"오, 이상해? 그럼 아예 부군이라고 불러."
묘묘 공주는 흐뭇해서 말했다.
"입도 뭐라고 하는 자도 소남자를 꼬마 부군이라고 부르더라. 네가 부군이라고 부른다면 지위가 더 높아 보여."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왜 입도지존까지 끌어들이는지 알 수 없었다.
공주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소남자, 너 얼굴이 좀 하얗다?"
묘묘 공주는 미소가 더 짙어졌다.
"켁켁……. 공주. 이 화제는 그만 토론하고 얼른 다음 곳으로 가자. 음, 그래. 다음 곳이 어딘지 알아냈어."
진남과 여인들은 무주궁도가 반응하는 곳으로 날아갔다.
좋은 기운을 다 썼는지 무주궁도는 계속 해골이 만들어진 선수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미 무인들이 쟁탈전을 벌였다.
진남 일행은 그들의 싸움에 끼지 않았다.
사람들 대부분은 진남 일행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포위공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천지가 다시 변했다.
하늘에 있던 네 개의 태양은 사라지고 밝은 달이 떠올랐다.
진남 일행은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밝은 달은 어떤 주경 강자의 눈이 변한 것일 수도 있었다.
잠시 후, 먼 곳에서 몇십 명의 구천지존들이 눈부신 빛으로 변해 빠르게 달 방향으로 날아갔다.
진남은 한번 살펴보더니 중얼거렸다.
"빨리 지존정상이 되어야겠구나."
그들 일행이 모두 지존정상이 되면 장남, 남세지존 등을 만나도 충분히 상대하고 여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
상대방의 지존정상이 열을 넘지 않는다면 누가 이길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