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9화 선록이 나타나다
진남은 몸을 날려 이백야의 앞을 막고 담담하게 말했다.
"도우, 내가 이자와 거래한 건 양자가 원한 거요. 왜 이자를 사기꾼이라고 하는 거요? 자네는 무슨 자격으로 이자더러 단약을 내놓으라는 거요?"
거리의 노점상과 청년, 그리고 무인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자는 사가를 당하고도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다니.'
"진짜 우습다. 나는 사구에 온 지 삼십 년이 되도록 너처럼 미련한 자는 처음 본다!"
청년은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나는 산선당의 사장로의 아들이다. 썩 꺼지거라. 아니면 너도 함께 혼내주겠다!"
진남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왜 자꾸 배경이 있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을 떠는 자들을 만나는 거지?'
"우두커니 서서 뭐 하느냐?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꺼지거라……!"
진남이 꼼짝 않고 서 있는 걸 본 청년은 다시 소리쳤다.
진남은 긴말하지 않고 청년의 뺨을 때렸다.
짝-!
거리의 무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튕겨 나가 먼 곳에 떨어졌다.
"너 감히……."
청년 옆에 서 있던 무인들은 화난 눈으로 진남을 바라보며 공격하려 했다.
진남은 발로 그들의 가슴을 찼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들 중 경지가 가장 강한 자가 패자대성이었다.
진남은 힘을 조금만 써도 그들을 죽일 수 있었다.
이백야는 진남을 힐끗 보더니 공수했다.
"고맙소."
진남은 손을 저었다.
이백야는 긴말하지 않고 떠나갔다.
진남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빠르게 이백야에게서 산 옥간에 신념을 주입했다.
그는 지존법에 관심이 많았다.
'칠십이 개 천지성구에는 기연 따위는 없다.'
첫 마디부터 끌렸다.
그는 옥간에 푹 빠졌다.
잠시 후에야 진남은 정신을 차렸다.
눈에 묘한 빛이 반짝거렸다.
지존법은 정확히 말해 구천지존이 되는 공법이 아니라 이백야의 느낌이었다.
이백야는 칠십이 개 천지성구에 모두 들어갔다.
그는 들어간 후 어떠한 전승, 지보의 쟁탈에 참여하지 않고 각 천지성구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자세히 느꼈다.
이어 그는 사구에 온 후 자신의 생각을 증명했다.
패자 경지 정상의 무인들은 칠십이 천지성구에 있지 않더라도 구천지존이 될 수 있었다.
매우 어려울 뿐이었다.
칠십이 천지성구는 어려움을 줄일 뿐이었다.
기연 따위는 없었다.
지존에 등극하려면 스스로 경험을 쌓고 한계를 돌파해야 했다.
이 생각은 보기에는 매우 간단하고 진남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증명하려면 매우 어려웠다.
구천선역 안의 무인들 대부분은 '기연'이 있다고 믿을지언정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생각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이백야는 칠십이 개 천지성구를 돌아다니고 사구에 천 년 넘게 있으면서 경지가 정상에서 초급으로 떨어졌다.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아니고 비범지도를 수련하는 것 같다……'
진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짐작이 갔지만 진남은 알아볼 생각이 없었다.
이백야 같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에게는 더 좋았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수련의 길이 더 재미있을 것이었다.
"진남,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때, 맹구궁이 쫓아왔다.
얼굴이 상기된 걸 보아 많이 딴 게 틀림없었다.
"응."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의 효능은 하루뿐이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도령이 말한 신비한 곳으로 가기 전에 그는 폭로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지존산을 날아 나온 후 축록지지 변두리에 있는 수림으로 가 은밀한 대진을 쳤다.
닷새 후 참선하가 열리면 지존성 안의 무인들이 모두 갈 것이었다.
그들도 그때 함께 갈 생각이었다.
맹구궁은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진남은 처음에는 대꾸를 했지만 나중에는 무시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을 시작했다.
맹구궁은 몇 번 지껄여봤지만, 대답이 없으니 입을 다물었다.
"맞다. 진남은 나의 홍운지체를 누른다. 내가 이자 옆에서 홍운지체를 수련하면 다른……."
맹구궁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는 똑바로 앉아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에게서 옅은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많은 무인들이 말하는 기운이었다.
"역시 속도가 평소보다 열 배나 느려졌다!"
맹구궁은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어리둥절했다.
진남도 두 눈을 번쩍 뜨고 맹구궁을 바라봤다.
맹구궁이 수련할 때 그의 식해 속의 영생지화가 움직였다.
"진남, 설마 너는 상고 십 대 체질 중 한 개냐?"
맹구궁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그렇게 묻느냐?"
진남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방금 수련할 때 나는 너에게서 무형의 힘의 파동을 느꼈다. 이 힘의 파동이 나의 홍운지체를 눌렀다."
맹구궁은 말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상고 십 대 체질밖에 없다. 적어도 서열 이 위의 탄서지체(??之體)……."
그는 문득 깨달았다.
진남은 액운지체가 아니지만 탄서지체라서 줄곧 그를 눌렀다.
"괜한 생각이다. 나는 탄서지체가 아니다."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영생지화가 홍운지체를 눌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영생지화는 상고제일체의 물건이었다.
"어? 아니야? 이상하네……."
맹구궁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자 진남은 화제를 돌렸다.
"맹구궁, 너는 만법불침성체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느냐?"
맹구궁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미간을 펴고 존경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만법불침성체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전서에서 본 적 있다. 만법불침성체인 사람은 동급에서 무적이다! 게다가 오래된 소문에 만법불침성체는 계속 진급하여 영생불멸지체가 될 수 있단다! 영생불멸지체가 되면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매우 대단하다!"
진남은 살짝 놀랐다.
'영생불멸지체? 설마 영생지화가 만법불침성체를 진급시키는 데 중요한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럴 것 같았다.
아니면 수피화권의 태도로 줄곧 사람을 파견해 그를 지켜줄 리 없었다.
"됐다. 생각하지 말자."
진남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수피화권을 원수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수피화권의 상대가 안 되었다.
적어도 주경에 도달해야 수피화권과 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둘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했다.
진남은 질고지극과 신비한 깊은 곳에 정신을 집중했다.
식해 속의 영생지화에서 무형의 힘이 뿜어져 나와 천지에 영향 주는 걸 느끼지 못했다.
힘의 대부분은 강처럼 축록지지 위쪽의 끝없는 하늘에 주입되었다.
이틀 후, 맹구궁은 전에 사구에 들어갔던 구궁금선종의 제자들에게서 영롱선등이 곧 제일 천지성구에 나타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진남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도령이 말한 그 물건을 얻기 전에 그는 어떤 지보가 나타나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천지묘과도 몇 알 있었다.
영롱선등처럼 무조건 도경원만에 도달할 수 없지만 도경대성을 이룬 후 좀만 노력하면 한 알만 먹어도 도경원만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응?"
진남은 두 눈을 뜨고 앞쪽 하늘을 바라봤다.
"왜?"
맹구궁은 물었다.
진남의 두 눈에 흰색 불꽃이 타올랐다.
"방금 축록지지의 위쪽 신비한 허공에 작은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맹구궁은 깜짝 놀라 자세히 느끼고선 웃으며 말했다.
"진남, 너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다음번 선록이 나타나려면 적어도 삼 개월이 지나야……."
그는 말을 채 다하지 못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비한 허공에서 금빛들이 뿜어져 나와 엄청난 기세로 방원 몇십만 리에 퍼졌다.
그뿐만 아니라 땅 위의 선초들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흩날리고 약한 빛들이 뿜어져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축록지지에 나타난 건 뜻이 분명했다.
맹구궁이 놀랐을 때 지존산의 많은 무인들도 깜짝 놀랐다.
형상들이 여러 개의 입구에서 날아 나왔다.
"진짜 금빛이 뿜어져 나오자 선초가 춤을 추는구나!"
"어떻게 된 거지? 삼 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잖아?"
"어서 빨리 이곳의 상황을 당주께 알리자!"
천 명이 되는 무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했다.
정신을 차리고는 영패를 들어 신념을 전했다.
진남은 수련을 계속하지 않고 눈앞의 상황을 지켜봤다.
그는 축록지지의 선록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직접 보는 것도 괜찮았다.
세 시진이 지났다.
하늘에는 금빛이 점점 더 많아지고 땅 위의 선초들에서 뿜어져 나온 빛도 점점 밝아졌다.
노랫소리, 금(琴) 소리, 퉁소 소리 등이 천지에 울려 퍼졌다.
소리들은 처음에는 매우 낮았지만, 점점 높아졌다.
"왔다!"
진남은 낮은 소리로 외쳤다.
쿠웅-!
천지를 흔드는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신비한 허공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나고 흰색 선광이 솟아올랐다.
무인들은 호흡을 멈추었다.
천지가 조용해졌다.
마치 시공이 정지된 것 같았다.
한 개, 열 개, 백 개…….
시간이 꽤 지난 후 옅은 파란색의 짐승 발이 허공에서 나와 선광을 밟았다.
짐승 발은 몇 번 발을 굴렀다.
선광이 튼튼한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괜찮은 걸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안에서 걸어 나왔다.
선록은 높이가 오 장이었다.
두 눈은 보라색이고 뿔은 검은색이고 몸은 옅은 파란색이었다.
등과 허리에 생긴 금색 무늬들은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다.
"진짜 기이한 기운이다!"
진남은 눈을 반짝거렸다.
선록은 경지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몸은 사라졌다 나타났다 했다.
도술이나 선술을 쓰면 그것을 맞힐 수 없었다.
선록은 나타난 후 풀밭으로 걸어갔다.
마치 지존산 위에 있는 많은 무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선초들을 먹었다.
선록은 만족한 듯 기이한 울음소리를 냈다.
슉-! 슉-! 슉-!
선록들이 구멍 난 곳에서 연달아 풀밭으로 내려왔다.
잠깐 사이에 칠십여 마리나 되었다.
백 마리가 내려온 후 허공에 난 구멍이 사라졌다.
"선록이 백 마리나 된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선록이 나타난 지 적어도 오백 년은 된다!"
"하하하, 지존이 될 기회가 드디어 왔구나!"
지존산에 있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이어 기뻐하며 대단한 기세를 드러내 여러 가지 선광으로 변해 풀밭으로 날아갔다.
주위의 허공이 흔들렸다.
"헉!"
맹구궁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 굉장했다.
마치 무상의 군대가 지존산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앞쪽의 모든 걸 부술 것 같았다.
지난번에 천지묘과를 쟁탈하던 광경은 지금과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이고 차이가 무척 컸다.
'선록이 갑자기 나타났는데도 이 정도면 원래대로 이삼 개월 후에 나타나면 얼마나 대단했을까?'
쿠쿠쿠쿵-!
잠깐 사이에 귀청을 찢는 폭발음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수많은 도술, 선술이 한데 부딪혀 강기를 일으켰다.
무인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이 축록지지 전체를 비췄다.
이렇게 큰 대전에서는 절세천재라 해도 눈에 띄지 않을 것이었다.
"진남, 얻기 힘든 기회다. 너 진짜 한 마리 가질 생각 없느냐?"
맹구궁은 물었다.
그는 선록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아쉽게도 그는 경지가 너무 약했다.
패자 경지의 초급 단계에 도달했더라도 그는 쫓아갔을 것이다.
"됐다. 여기서 보는 것이 좋겠다."
진남은 고개를 젓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좀 전에 무인들을 힐끗 봤었다.
많은 강자들은 패자의 경지에 도달하고 일부는 도경대성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