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세전혼-1089화 (1,089/1,498)

1089화 은천수

"날짜를 계산해보니 구천선역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났구나. 가까운 소선역에 가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지……"

진남은 중얼거렸다.

두 달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 게 분명했다.

제일 소선역의 소식들은 대부분 만상선령에 나타나지 않았기에 스스로 알아봐야 했다.

변신을 하고 기운을 거둔 진남은 먼 곳으로 날아갔다.

진남은 곧 한 고성에 도착했다.

그는 천선 경지 오 단계 이상의 무인들만 갈 수 있는 주루에 갔다.

그는 꽤 많은 선석을 지불하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주루에는 무인들이 북적거렸는데, 그들은 신념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그 소식 들었소? 며칠 전에 허령천계에서 주경거물 셋이 연합하여 비월여제를 죽이려고 했는데 결국은 비월여제가 위기를 해결했다고 하오.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고 하더군."

"그리 큰 사건을 왜 못 들었겠소. 비월여제는 정말 대단하오. 문도성주가 되자마자 무적의 기세를 풍기지 않겠소."

"얼마 후면 그녀는 구천제일주가 될 것 같소."

진남은 깜짝 놀랐다.

'비월여제가 문도성주가 됐다니?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 구천지존이 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문도성주가 되다니……,"

진남은 감탄했다.

그리고 비월여제에게 축하한다고 신념을 보냈다.

손목의 붉은 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비월여제는 진남을 무시했다.

진남은 머쓱해져 코를 만지곤 계속 술을 마셨다.

비월여제 외에 무인들이 가장 많은 대화주제는 화존좌경과 화존우경이었다.

허령천계에 대해 그들은 적게 언급했다.

허령천계는 더 높은 단계라서 아무리 큰일이 벌어져도 이곳에 있는 무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극생문의 강역은 너무 강하오. 지난번에 패자원만의 경지를 돌파했다고 하오. 구천지존 둘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때도 여유롭게 상대하고 밀리지 않았다고 하오."

"그런 쓸데없는 말은 왜 하시오? 강역은 주경거물이 환생한 자요. 구궁금선종에서 홍보하는 십 대 절세천재 중 한 사람이잖소."

"강역과 묘문 성자, 시도족의 성자들 중 누가 가장 강할 것 같소?"

진남은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강역, 역시 왔구나!'

"며칠 전에는 어디 갔었소? 허허, 선령족과 질타족, 문고족 등 여러 고족의 절세천재들이 제삼 천지성구에 모여 싸우는 걸 못 보았소?"

"육경음은 정말 아름답더군!"

"그거 발견했소? 절세천재들과 주경거물 후계자들이 점점 많이 모이는 것 같소. 특히 십 대 성구에서 싸움이 자주 일어나서 다른 무인들을 놀라게 하오."

"형씨, 경고하는데 제십구 천지성구에는 가지 마시오. 그곳에 장고와 음일이라는 절세천재들이 나타나 살벌하기 그지없소. 그들은 보는 족족 죽이오. 이미 많은 자들이 그들의 손에 죽었소."

"아, 참. 주선제오인의 후계자라는 진남은? 요즘 그자의 소식이 좀 있소?"

"말도 마시오. 그자를 생각하면 짜증이 나오! 원래 제이십사 천지성구에 가려고 했는데 시도족, 태고금기 그리고 다른 대세력들이 가득하지 않겠소? 내 눈치가 빠르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수도 있소."

진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천선 경지와 패자들의 잡담을 듣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한 모금씩 마시다가 결국은 한 병씩 들이켰다.

이 주루의 선주는 유난히 달았다.

진남은 술기운에 가슴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 곁에서 안정된 날을 보냈다.

그러나 진남은 역시 군웅이 가득하고 천재들이 많으며 피와 불이 함께 타오르는 이곳에 더 어울렸다.

"이만하면 다 들은 것 같은데 제칠 천지성구로 가자."

진남은 혼잣말을 하며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그 시각, 성존해역.

제일 소선역의 변연지지.

여러 큰 세력 중 하나인 영허의 배가 나타났다.

평소 오만하기 그지없던 영허의 제자들은 웬일인지 억울한 표정을 하고 구석에 쪼그리고 있었다.

"꼬맹이들아, 좋은 건 안 배우고 하필 해적을 따라 하느냐? 너희들의 저장주머니는 내가 가져가겠다. 교훈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라."

아름다운 여인이 주먹을 흔들며 거만하게 말했다.

영허의 제자들은 울고 싶었다.

'대체 누가 해적인지 모르겠어. 예쁘면 단 줄 알아?'

"계속 멍청한 척할 거야? 먼저 선마도세를 하고 문도대세를 하거라."

짧고 하얀 머리카락의 여인이 살짝 웃었다.

"다 하고 나면 이곳을 떠나도 되고 우리 대신 배를 운전해도 된다."

영허의 제자들은 어이가 없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기는 한 거야? 배를 운전하지 않으면 성존해역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대인들."

불만스러웠지만 그들은 결국 굴복했다.

여인들이라 쉽게 봤는데 경지가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

"뭐라는 게냐?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공주마마라고 불러!"

* * *

제칠 천지성구, 화존좌경.

여러 대성구에서 제칠 천지성구로 옮겨 오는 무인, 패자, 절세천재들이 적지 않았다.

제칠 천지성구의 깊은 곳에 천재지보와 전승기연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존혈대라고 하는 신비한 지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지존혈대는 수많은 지존의 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가져갈 수 없고 연화하거나 망가뜨리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무인들은 하루만 그 위에 앉아서 수련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수련하는 시간이 길수록 깨달음도 더 깊이 얻을 수 있었다.

몇천 년 동안 무인들은 그 혈대에서 경지를 돌파하거나 절세지법(?世之法)을 연마하고 구천지존이 되는 기연을 얻었다.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은 혈대였다.

물론, 혈대가 있는 곳까지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패자 정상급이나 천선 경지 무인들은 은천수(隱天獸)를 잡아야 혈대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진남은 전생이 남긴 피 한 방울이 지존혈대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몇 시진이 지나, 진남은 제칠 천지성구 부근에 도착했다.

그는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성들에 들어가지 않고 전신선동으로 살폈다.

"이곳에 적어도 일곱 무상도통의 제자들과 열세 개의 고족의 제자들이 있구나……."

진남은 한참 서 있다가 기세를 드러내고 눈부신 청색 빛으로 변해 입구로 날아갔다.

강자들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지만,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 * *

한참 후, 진남은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다.

주변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바닥에 골짜기가 가득 패어 낭패하기 그지없었다.

공중에는 아직 흩어지지 않은 선술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늘은 희뿌옇고 얇은 망사를 씌운 것 같았다.

무언가 느낀 진남은 선술을 사용했다.

기이한 장면이 벌어졌다.

선광이 일정한 높이까지 올라가더니 사라졌다.

그러나 아무런 힘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남은 전신선동으로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늘이 가진 힘은 진남의 경지보다 훨씬 높았다.

진남은 고개를 젓고 더 살피지 않았다.

그는 기운을 거두고 신념으로 주변을 살피며 동쪽으로 날아갔다.

하루가 지났다.

진남은 수림에서 날아다녔다.

그는 은천수가 아니라 요수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명망이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진남은 문득 기회가 되면 대요 한 마리를 굴복시켜 데리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요는 때로는 그를 도와줄 수도 있고 때로는 탈 것으로 부릴 수도 있었다.

그는 소충의 머리에 섰을 때 기분이 좋았던 생각에 선룡을 굴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구천선역에 용족은 매우 적었다.

선룡은 더 찾기 힘들었다.

소충은 구천선역으로 비승을 했지만 경지가 아직 낮아 궁우태황종에서 수련을 더 해야 했다.

"응?"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진남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먼 곳에서 열 개의 선술의 기운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진남의 두 눈에 빛이 돌았다.

그는 속도를 더 높였다.

잠시 후, 그의 앞에 방원 몇백 장이 되는 초원이 나타났다.

하늘에서 열 개의 형상이 싸우고 있었다.

그들 중 넷은 패자 초급이었고 나머지는 천선 경지 정상급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선술이 번쩍이는 나무로 된 우리가 있었다.

말처럼 생겼는데 털은 하얗고 네 다리가 튼실하며 눈에 빛이 도는 요수가 갇혀 있었다.

바로 은천수였다.

"주변에서 몰래 지켜보는 자들이 적지 않구나. 패자대성 두 명하고…… 응? 절세천재 등급의 패자?"

진남은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제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나무 우리 위에 나타났다.

손으로 힘껏 내리치자 나무 우리가 부서졌다.

진남은 은천수의 등에 올라탔다.

은천수는 앞발을 쳐들고 버둥거리며 구구구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나 진남이 뿜는 기운이 그것을 진압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 나설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포위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너 감히!"

싸움 중이던 네 명의 패자 초급들은 정신을 차리고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한 손으로 결인을 만들고 선술을 사용했다.

진남은 주먹을 날렸다.

쿵-!

만 마리 용처럼 엄청난 힘이 폭발했다.

패자들은 안색이 확 바뀌었다.

도망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들은 힘에 맞아 튕겨 나가 꽤나 큰 상처를 입었다.

"엄청난 경지다!"

숨어있던 무인들도 놀랐다.

"박력이 있구나. 은천수를 독차지하려고 하다니!"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리에 수피를 감은 이목구비가 짙은 빡빡머리 사내와 몸이 비실거리고 한쪽 눈만 있는 흑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둘은 모두 패자대성이었다.

"어라? 너는……."

흑발 노인은 진남을 보자 한눈에 본 모습을 알아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진남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라!"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패자대성은 수림에서 엄청난 살기가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보라색 머리카락에 파란 무늬가 있는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이 낡은 선검을 들고 진남에게 날아왔다.

"일권분천(一拳焚天)!"

진남은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주먹 끝에 흰색 불꽃이 달려 있었다.

두 공격이 부딪히며 굉음이 들리고 강기가 퍼졌다.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은 뒤로 다섯 걸음 밀려났다.

그는 검 끝에 타오르는 흰색 불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까는 몰랐는데 농염족의 절세천재였구나!"

패자대성들도 보라색 머리카락의 청년을 발견했다.

빡빡머리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설마 검왕족의 소족장인 검교(劍驕)냐?"

검교는 그를 힐끗 보더니, 체내의 문도법을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검의가 느껴졌다.

"마침 잘 됐다. 지난번에 축염과의 싸움이 후련하지 않았다. 오늘 농염족의 수단을 다시 한번 체험해보자."

검교의 검 끝이 진남을 가리켰다.

이때, 호탕한 웃음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하하하, 드디어 은천수를 만났구나. 검교 도우, 우리 함께 공격하자!"

녹이 슬고 피가 묻은 중년 사내가 기세를 뿜으며 달 모양의 칼을 휘두르며 멀리서 다가왔다.

진남과 다른 사람들은 그자를 몰랐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엄청났다.

패자 정상급은 되는 것 같았다.

검교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 명의 강적을 상대로 그는 다른 사람과 연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결인을 하고 오른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땅 위의 풀들이 수많은 검의에 산산이 부서졌다.

"검회구곡(劍回九曲)!"

검교는 또 공격했다.

그는 수많은 그림자로 변했는데 그림자마다 진남에게 검을 휘둘렀다.

또, 휘두르는 검마다 천지를 대표하여 규칙을 집행하는 것처럼 심판의 의지가 느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