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1화 모두 성이 항씨냐?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우고 왼손을 저었다.
강한 도의가 창을 부쉈다.
이어 짐승 울음소리가 앞쪽에 울려 퍼졌다.
허공에 파문이 일었다.
길이가 만 장 되고 시뻘건 무늬가 가득하고 도광을 풍기는 고선(古船)이 파문 속에서 천천히 나왔다.
우뚝 솟은 옅은 금색 봉황을 새긴 깃발이 눈에 띄었다.
진남은 고선을 바라봤다.
고선은 상고의 도기였다.
게다가 기영도 있어 가격이 비쌌다.
배에는 서른여섯 명의 무인이 있었다.
대부분은 천선 경지 칠 단계나 팔 단계였다.
뱃머리에 서 있는 다섯 명 중 네 명은 패자였다.
둘은 패자대성의 경지에 도달했다.
한 명은 청년이었다.
경지가 지선 정상밖에 안 되었지만 입고 있는 갑주가 상고의 도기였다.
안에 구천지존의 의지가 남아있고 내력이 범상치 않았다.
"저자는……. 치황도의 장원영?"
도주는 안색이 변했다.
전에 제일 소선역에 갔다 온 적 있는 무인들과 패자들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자는 누구냐?"
진남은 물었다.
"선배님, 치황도와 영허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치황도의 제자들이 세력을 만들어 우리 섬으로 와 겁탈하고 불을 지르고 합니다. 장원영은 치황도 종주의 셋째 아들입니다. 재능이 없고 치황도 종주의 중시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신분이나 지위가 고귀하여 건방지고 기세를 빌어 사람들을 괴롭혀 변연지지에서는 악명이 자자합니다."
도주는 빠르게 말하며 속으로 한탄했다.
진남은 그를 힐끗 봤다.
'자기가 다른 사람이 기세를 빌어 사람을 괴롭힌다고 말할 자격이 되나?'
배가 섬 위에 멈췄다.
장원영이란 청년은 무인들을 내려다보며 입꼬리가 비틀렸다.
"사람이 많구나. 누가 도주냐? 어서 나오거라."
도주는 빠르게 날아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 소주, 제가 이곳의 도……."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장원영의 옆에 있던 패자대성의 존재가 빠르게 뛰어와 사정없이 뺨을 때렸다.
팍-!
도주는 오른쪽 얼굴이 부어오르고 몇십 보 뒤로 튕겨났다.
"소주……."
도주의 눈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패자이고 오만함이 있었다.
"왜? 기분이 나쁘냐?"
장원영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눈에 도발의 빛이 가득했다.
"아, 아닙니다. 장 소주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도주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고개 숙인 그는 이마에 핏대가 솟아오르고 눈빛은 싸늘했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이었다.
제일 소선역은 더 치열했다.
제일 소선역에는 강자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었다.
패자들은 다른 소선역에서는 위세를 떨칠 수 있었지만 제일 소선역에서는 겨우 몸을 보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도주나 천선 경지들은 빠르게 경험을 쌓고 크게 싸워 역천개명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들은 참는 걸 선택했다.
"패자인데 어찌 이토록 패기가 없을까."
장원영은 실망하고 손을 저었다.
"긴말하고 싶지 않다. 너는 갖고 있는 선석들을 전부 내놓거라. 그리고 무인들은 한 개씩 내놓거라. 너희들은 처음이라 모를 것이니 말해줄게. 내놓은 물건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도주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금까지 모은 것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많은 선석을 내놓아야 했다.
다른 무인들도 한숨을 쉬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내력이 강했다.
하지만 제일 소선역의 변연지지에서 그들은 치황도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어? 방금 네가 흑염모를 부쉈느냐? 경지가 높구나. 너도 패자냐? 그럼 너부터 하자!"
아래를 훑어보던 장원영은 진남을 보자 입꼬리가 점점 비틀렸다.
'내 물건을 부수다니, 본때를 보여주겠다!'
장원영의 말에 도주와 다른 사람들은 몸이 떨리고 기쁘고 흥분했다.
'섬에 무인들이 백 명 넘게 있었다. 장원영은 왜 하필이면 이분을 선택했을까…….'
"내가 내놓지 않으면?"
진남은 무표정하여 담담하게 말했다.
진남은 도주와 무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말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장원영은 내력이 대단하고 신분이 존귀하지만 어찌 진남과 비교가 될까?
구천지존은 제일 소선역에서도 거물급이었다.
치황도 같은 큰 세력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뭐? 뭐라고?"
장원영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네 명의 패자들과 배 위에 있던 무인들은 넋을 잃었다.
"나는 같은 말을 두 번 하고 싶지 않다."
진남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하하! 좋다, 좋아. 너는 도주보다 담이 크구나. 나와 이렇게 말하다니!"
장원영은 큰소리로 웃었다.
흥분한 것 같았다.
그는 흉악하게 말했다.
"다들 보았느냐? 이자가 먼저 나에게 도발했다. 너희들은 어서 손을 써 이자의 다리를 부러뜨려라!"
네 패자와 배 위의 무인들은 어이없었지만,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장 소주, 잠깐만요!"
도주가 빠르게 소리쳤다.
"왜? 너 이자를 도와주려느냐?"
장원영은 눈빛이 싸늘해졌다.
도주가 그렇다고 하면 명령을 내려 도주를 죽였을 것이었다.
"장 소주, 소주께서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선배님은 우리 섬의 손님입니다. 장 소주께서……."
도주는 공수했다.
그는 장원영이 죽음을 자초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장원영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귀띔해줘야 했다.
일이 커지더라도 그는 귀띔했었기에 치황도의 사람들이나 영허의 사람들이 물어보면 대응할 수 있었다.
"손님? 손님은 무슨."
장원영은 하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두커니 서서 뭐 하느냐? 이자가 어느 세력에서 왔고 신분이 어떻든 우선 다리를 부러뜨리거라. 이곳은 성존해역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두 패자대성 경지의 존재와 다른 두 패자 초급의 무인은 선력을 움직였다.
강한 기세를 드러내 진남을 공격했다.
한 방에 흑염모를 파괴할 수 있으니 이 허약한 서생은 경지가 약하지 않을 것이었다.
도주와 무인들의 눈에 동정의 빛이 스쳤다.
장원영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렇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다니…….
"무슨 뜻이지?"
장원영은 매우 예민했다.
사람들의 눈빛을 보자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이 서생을 죽이고 다시 너희들을 혼내주겠다!"
장원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쿠웅-!
네 패자들은 네 개 방향에서 선술을 드러내 진남을 공격했다.
네 개의 다른 봉황의 형상이 천지에 나타났다.
범상치 않은 짐승의 위압이 풍겼다.
소문에 따르면 치황도는 상고시기의 제일 소선역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치황이 죽기 전에 만든 세력이었다.
치황도의 문도법과 많은 선술들은 치황이 남긴 것이고 위력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진남은 여전히 표정이 평온했다.
네 마리의 봉황 형상의 발이 그를 잡으려는 순간 그는 제자리에서 사라지고 두 패자 초급 단계 무인의 등 뒤로 왔다.
"어떻게 된……."
두 패자 초급 단계의 무인들은 놀라기도 하고 의문스럽기도 했다.
강한 위기감을 느낀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비장의 수를 드러냈다.
선부(仙符) 두 장이 세게 타올랐다.
하지만 그것들이 위력을 드러내기 전에 둘은 강한 기세가 자신들의 등 뒤에 솟아오른 걸 느꼈다.
방대한 도광(刀光)이 선부를 찢고 그들을 내리쳤다.
쿠웅-!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동시에 둘은 비명을 지르며 먼 곳에 있는 바다에 떨어졌다.
한 번의 공격에 중상을 입었다.
"이자는 평범한 패자대성의 강자가 아니구나!"
두 패자대성의 무인들은 안색이 변했다.
망설이지 않고 신법선술을 드러내 빠르게 뒤로 물러가 거리를 두려 했다.
이때 진남의 눈에 선화가 타올랐다.
많은 흰색 화염이 마치 파도치는 바다처럼 용솟음쳐 그들을 덮었다.
"이건 무슨 화염이지?"
패자들은 눈을 찌푸렸다.
그들이 대응책을 생각하기 전에 진남은 많은 도기를 드러냈다.
도기마다 절세지보가 나타난 것처럼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전신 제오 식, 진도도결!'
"치황횡천경(熾凰橫天經), 욕화중생도술(浴火重生道術)!"
위기의 순간에 두 패자대성의 무인은 큰소리로 문도법을 움직여 똑같은 법인을 만들었다.
둘은 예전의 치황(熾凰)으로 변했다.
쿠쿠쿠쿵-!
그들이 드러낸 도술은 평범한 불꽃의 힘을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도선염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몸이 타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묘한 도술도 예전의 위압이 사라지고 도기에 잘렸다.
두 패자대성의 존재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렸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릴 시간도 주지 않고 진남은 신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주먹을 날렸다.
퍼엉-!
둘은 중상을 입어 피를 토하고 먼 곳에 있는 바다에 떨어졌다.
평범한 패자대성이나 패자 정상의 존재들은 진남의 상대가 안 되었다.
진남은 그들과 싸우면 힘을 많이 쓸 필요가 없었다.
"……."
장원영 그리고 배 위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허약한 서생이 이토록 강할 줄 몰랐다.
평범한 패자정상이라도 서른 개 셀 시간도 안 돼 두 명의 패자대성과 초급 단계의 존재를 격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반면 도주와 섬의 무인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앞에 있는 선배가 화가 나면 잠깐이면 그들을 죽일 수 있었다.
"왜? 아직도 나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어?"
진남은 한 걸음씩 배로 걸어갔다.
"너, 너……. 너 뭐 하려는 거냐?"
장원영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언가 생각난 듯 가슴을 쭉 펴고 사납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치황도 종주시다! 나와 의형제를 맺은 형님도 성존해역에 있다. 형님은 시도족의 절세천재이다! 네가 나를 공격하면 치황도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형님도 너를 봐주지 않을 거다!"
도주와 무인들의 눈에 동정의 빛이 짙어졌다.
장원영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쓸모 있을지 몰라도 진남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
퍼엉-!
그들의 예상대로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장원영의 가슴을 찼다.
진남은 별로 힘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선 경지 정상밖에 안 되는 장원영이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비명을 지르며 멀리 튕겨났다.
"너……. 너 감히 나를 때리……."
장원영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제일 소선역의 변연지지에서 몇십 년 동안 다섯 번밖에 맞은 적 없었다.
"왜? 납득이 안 돼?"
진남은 눈빛이 싸늘했다.
쿠웅-!
무형의 기세가 순식간에 배를 휩쓸었다.
깊은 곳에 숨어있던 기영이 비명을 질렀다.
장원영과 무인들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몸을 떨었다.
방금 왔을 때와 태도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너를 죽이지 않을 거다. 네가 몇 개 물음만 대답하면 놔주겠다."
진남은 말했다.
"진, 진짜입니까?"
장원영은 기뻐하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선, 선배님, 뭐든 물으십시오. 아는 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너 방금 네 형님이 시도족의 절세천재라고 했느냐?"
진남은 물었다.
"맞습니다. 제 형님은 항원승(項元升)입니다. 경지가 패자 정상에 도달했고 전력을 다해 공격하면 구천지존 초급의 거물과 싸워도 지지 않습니다. 삼 대 패자 따위는 형님의 상대가 안 됩니다!"
장원영은 오만하게 말했다.
진남은 살짝 놀라 물었다.
"시도족의 사람들은 모두 성이 항씨냐?"
장원영은 깜짝 놀랐다.
'이자는 경지가 높고 나의 배경도 무시하는 걸 보아 내력이 대단한 것 같은데 이런 것도 모르다니?'
의문이 가득했지만,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시도족에서 혈통이 일정한 등급에 도달한 사람만이 항씨 성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