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9화 그 말 진심이냐?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닷새 후,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했다.
시커먼 허공에 배가 가한 기운을 뿜으며 보이지 않는 장막을 부수었다.
배에 탄 무인들은 파도가 일렁이는 소리를 들었다.
진남도 똑똑히 들었다.
"전신의 선동, 열려라!"
진남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개의 흰색 불꽃이 떠올랐다.
배의 앞쪽에 끝없는 금색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는 어떤 신비한 힘을 받아 파도가 일렁거렸다.
기세가 대단해서 가슴 떨렸다.
"도우들, 이곳은 성존해역이다. 오랜 규칙에 의하면 우리는 억지로 건너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성존해역을 무사히 지나면 제일 소선역에 닿을 수 있다."
배를 운행하는 천선 경지 정상급의 무인이 말했다.
"뭐라? 스스로 바다를 건너라고?"
"선석을 그리 많이 지불했는데 알아서 건너가라고?"
많은 무인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성존해역의 기운은 엄청 강했다.
그들이 강제로 도겁을 하다가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았다.
배 위의 두 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해역으로 날아갔다.
다른 천선 경지 강자들은 불만스러웠지만 그들을 보자 따라가서 날아갔다.
한 천선 경지 정상급의 강자는 진남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진남 사형 경지로 강을 건너는 덴 문제 없습니다. 다만 회색의 해상 폭풍을 만나면 근처의 섬으로 날아가십시오. 억지로 싸우면 안 됩니다."
세 천선 경지 정상급의 무인들은 풍화장사의 측근이었기에 진남을 알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진남은 인사하고 무지개로 변해 사라졌다.
"성존해역은 신비하구나. 바닷물에 의지가 있어 내 동술로도 천장 정도밖에 볼 수 없다."
진남은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문득, 그는 보천정에게 전음했다.
"명망, 제일 소선역에 와본 적이 있습니까?"
명망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와본 적은 있다. 다만, 나도 변연지지에 있었다. 제일 소선역에 대해 잘 모른다."
그는 그와 다른 악들이 제일 처음 제일 소선역에 왔을 때 건방지게 보는 자들마다 죽이고 다니다가 나흘도 되지 않아 한 구천지존에게 맞아 죽을 뻔한 일을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진남은 어깨를 으쓱하고 더 묻지 않았다.
가는 길에 그들은 많은 해수들을 만났다.
해수들은 보통 지선이나 천선 경지 심지어 패자 경지인 것들도 있었다.
또, 해수들은 영지가 없고 오로지 살육 본능만 남아 엄청 난폭했다.
성존해역의 날씨는 변덕이 많았다.
햇빛 찬란하던 날씨가 다음 순간 시커메지고 번개가 쳤다.
진남은 혈안지선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제일 소선역에서 나고 자란 무인들 외에 보통은 패자 이상이 되어야 안으로 날아갈 엄두를 냈다.
이런 위험들 때문에 평범한 천선 경지의 정상급들은 죽을 가능성이 컸다.
"응?"
진남은 파도 위에 멈추었다.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게 회색 폭풍인가?"
잠시 후, 진남의 시선에 수많은 회색 바람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회색 바람은 엄청난 폭풍을 이루고 바다를 봉쇄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폭풍의 속도는 무척 늦었다.
그러나 방대한 압박감이 들어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 정도 거리에서 이런 압박감을 느끼게 하다니 직접 마주친다면 힘을 반 이상 써야 막을 수 있겠구나."
진남은 눈을 빛내며 계속 날아갔다.
"저곳은 섬인가?"
잠시 후, 진남은 엄청난 파도 속에 현무처럼 나타난 섬을 발견했다.
섬은 파도가 아무리 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섬에는 몇백 명의 무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수시로 무인들이 빛으로 변해 날아왔다.
"우선 섬에 가보자."
진남은 섬의 한 도장으로 날아갔다.
진남이 땅을 밟자 멀지 않은 곳에서 시큰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십만 선석을 지불해야 섬에서 사흘 머물 수 있소."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선석을 지불해야 한다고?'
십만 선석은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제일 소선역으로 오는 배도 한 사람당 오만 선석밖에 받지 않았다.
진남이 입을 열기 전에 호통이 울려 퍼졌다.
"섬은 주인이 없다. 무슨 자격으로 선석을 받는 것이냐?"
진남은 고개를 돌렸다.
말을 한 자는 천선 경지 팔 단계가 되는 중년 서생이었다.
그의 몸에서 정직한 기운이 흘렀다.
중년 서생 앞에는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무인이 있었는데 겨우 천선 경지 오 단계였다.
중년 서생의 질문에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무인은 냉소를 짓고 말했다.
"내 인내심이 한계가 있다. 다섯 셀 동안 결정하거라."
중년 서생은 손을 흔들며 못 박아 말했다.
"다섯 셀 동안도 필요 없다. 나는 절대 너희들에게 십만 선석을 지불하지 않을 거다."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무인이 입을 열기 전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우, 화를 내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좋게 하거라."
금색 갑주를 입고 얼굴에 지네 모양의 흉터가 있는 중년 사내가 허공에서 다가왔다.
그는 온몸에 철혈의지를 뿜고 엄청난 위압감을 드러냈다.
그의 경지는 패자 초급이었다.
"도주를 뵙습니다."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무인은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했다.
중년 서생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싸우자는 건가?'
"도우, 오해하지 말거라. 섬은 주인이 없는 게 아니라 내 소유다. 물론, 내가 강제로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영허(靈墟)가 나를 도주로 인정했다."
도주는 살짝 웃었다.
"도우, 처음 제일 소선역에 와서 잘 모르는 것 같구나. 영허는 제일 소선역의 가장 큰 세력이다. 성존해역도 그들의 세력 범위에 속한다. 또. 영허는 많은 도주들을 임명했는데, 천선 경지나 패자나 섬에 들어가려면 도주의 규정대로 해야 한다. 아니면 영허에 대한 불경으로 간주한다!"
말을 마친 도주는 손가락을 튕겼다.
중년 서생과 진남은 동시에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거리에 어떤 형상이 나타났다.
그는 엄청난 기세를 드러냈는데 패자대성이었다.
"그래서 도우, 십만 선석을 받는다는 규칙은 내가 정한 것이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도주는 온화한 표정으로 공수했다.
"그렇구나. 방금 오해를 했다. 도주와 도우는 이해하기를 바란다. 바로 선석을 지불하마."
중선 서생은 부끄러워하며 저장주머니를 꺼냈다.
"도우, 또 오해를 했구나. 우리 제자가 받으면 십만 선석이지만, 내가 나서서 받으면 이십만 개의 선석을 지불해야 한다."
도주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파란색 두루마기를 잎은 무인과 진남 앞에 있던 무인은 비웃음을 지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무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도주가 보기에는 온화해 보여도 사실은 음흉한 자였다.
다른 무인들도 모두 당했다.
"이십만 선석?"
중년 서생은 안색이 확 바뀌었다.
평범한 무인인 그는 빼앗고 죽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십만 개의 선석은 그의 전부 재산이었다.
"오, 잠깐 생각했는데 이십만 개는 너무 싸다. 이제는 삼십만 개를 지불하거라."
도주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너! 이건 분명 사람을 괴롭히려는 거다!"
중년 서생은 화가 잔뜩 났다.
"아니다, 아니야."
도주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아니다. 나는 도주기 때문에 규칙을 정하고 싶은 대로 정한다. 그건 합리적인 거야.
아, 참. 이제 사십만 선석을 지불해야 한다. 선석이 부족하면 다른 보물로 지불해도 된다. 그래도 싫다면 섬을 떠나 식혼폭풍(蝕魂爆風)을 이겨내거라.'
중년 서생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바다와 천지를 이어주고 거대한 흉수가 달려드는 것 같은 회색 폭풍은 섬과 아주 가까워졌다.
폭풍은 기세가 강해 두려운 마음이 들게 했다.
중년 서생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제일 소선역에 처음 오지만 식혼폭풍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었다.
패자들 초기 단계들이나 대성 경지들이 억지로 이겨내려다가 뼈도 못 추스린다는 게 식혼푹풍이었다.
그러니 천선 경지 팔 단계인 그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도주는 그의 표정을 보자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진남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도우는 아직 선석을 지불하지 않았지? 너는 소란을 떨지 않았으니 삼십구만 구천구백아흔아홉 개만 지불하거라."
진남은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는 이렇게 기세를 등에 업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싫어했다.
하지만 진남은 싫어하기만 할 뿐 이런 일로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이곳의 도주이니 백만 선석을 내놓으라고 해도 규칙이었다.
"나, 나는……."
중년 서생은 몸을 살짝 떨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모든 선석과 두 개의 보물까지 꺼낼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목숨을 부지하는 게 더 중요했다.
"도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선석을 지불하지 말거라. 내 너를 데리고 식혼폭풍을 건너겠다."
진남은 살짝 웃었다.
그는 중년 서생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말에 도주는 어안이 벙벙했다.
중년 서생도 깜짝 놀랐다.
거리에 있던 무인들이 놀라서 시선을 진남에게 돌렸다.
잠시 후,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
"방금 저자가 뭐라고 했느냐? 식혼폭풍을 건너겠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패자 정상급의 강자들도 강제로 건너는 일에 오 할의 승산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까지 데리고 간다고?"
"허허, 식혼폭풍이 많은 강자들의 시골을 삼켰는데 왜 해마다 그리 많은 무인들이 죽으려고 하는 걸까?"
거리의 무인들은 조롱했다.
중년 서생은 정신을 차리고 얼른 말했다.
"도우, 식혼폭풍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도주가 말을 끊었다.
도주는 하찮다는 듯 말했다.
"네가 이자를 데리고 식혼폭풍을 지나가면 너에게 백만 개의 선석을 주겠다."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 말 진심이냐?"
도주는 뒷짐을 쥐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도주이니 한 말은 지킨다. 다만, 네가 혹시 잘 안 되어서 섬에 다시 피난 올 경구 둘 다 백만 개의 선석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
진남은 더 말하기도 귀찮았다.
그는 중년 서생을 잡고 식혼폭풍으로 날아갔다.
멀리서 보면 그들은 마치 바다에 놓인 쪽배 같았다.
양자 사이의 차이는 엄청 컸다.
섬에 있던 도주와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허약한 서생이 이렇게 단호할 줄 몰랐다.
"하하하, 도우들 보거라. 이들은 식혼폭풍에 계속 전진하지 못하고 섬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도주는 큰 소리로 말했다.
무인들은 공감했다.
도주가 기세를 빌어 사람을 괴롭히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둘은 엄청난 속도로 식혼폭풍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졌다!"
무인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몇몇 패자들도 둘을 바라봤다.
"큰일 났다……."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회색 폭풍을 본 중년 서생은 대단한 힘을 느끼고 안색이 창백해지고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전에는 소문만 들었다.
들어오니 회색 폭풍이 얼마나 강한 위력이 있는지 느꼈다.
건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경지로 쳐들어가면 서른 개 셀 동안도 안 돼 하늘 가득한 혈무로 변할 것 같았다.
쿠웅-!
이때 진남에게서 대단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위압이 사방을 휩쓸었다.
"화도선염의 용!"
진남의 몸에 흰색 화염이 불타올라 그와 중년 서생을 감싸고 항고의 용처럼 강한 폭풍 속으로 쳐들어갔다.
퍼퍼퍼펑-!
폭발음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폭풍의 힘이 매우 강했지만, 화염에 부딪히자 빠르게 불에 타고 사라졌다.
"패, 패자?"
중년 서생은 화염의 열기에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