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1화 또 판돈으로 쓰다니
"맞다. 진 시주 의투(意鬪)라는 것을 아느냐?"
원각이 묻자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의투라는 것은 아무런 선술을 펼치지 않고 오직 의지로 승부를 내는 것이다. 보제고찰종은 다른 무상도통과 다르다. 외부에서 온 무인들은 불성이나 절당 심지어 종문까지 찾아가 득도를 한 고승들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 양쪽의 실력 차이가 크지 않으면 상대방을 목숨만 남기면 불구로 만들어도 된다."
원각은 불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서 말했다.
"오? 그거 재미있구나."
진남은 흥미진진했다.
보제고찰종의 이런 규칙은 쉽게 납득이 되었다.
그들은 강자나 천재들의 손을 빌어 제자들을 단련시키려는 목적이었다.
"허허, 진남 그건 모르겠구나. 비월여제가 구천지존이 되기 전에 보제고찰종에 온 적이 있다. 그녀는 혼자 여섯 명의 절세 고승들과 싸워서 이기고 엄청난 좋은 점을 얻었다. 네 실력으로 육계를 죽이는 것은 문제없을 거다. 의투를 하기 전에 우리 큰 내기를 하는 게 어떠냐?"
원적은 눈을 찡긋거렸다.
'보제고찰종의 제자는 무섭구나.'
명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런 세력에 참여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을 들어보니 싸울 만했다.
이 둘은 육계를 불구로 만들기를 원하는데 진남이 실수로 무주궁도에 넣는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역시 내 형제야!"
원적과 원각은 흥분했다.
"진남, 그럼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다. 오불재천(五佛在天), 대천변화(大千變化)!"
원적은 법인을 만들었다.
다섯 개의 커다란 불상이 진남을 향해 불광을 뿜었다.
불광이 진남의 체내로 들어갔다.
진남의 형상, 외모, 기운 등이 전부 바뀌었다.
그는 이제 허약한 서생이 되었다.
"기이한 변신술이구나."
진남은 살짝 놀랐다.
이 선술을 사용할 수 있으면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진 시주, 이 선술은 보제고찰종에서도 원적 사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상고 십 대 체질인 보제지체(菩提之體)이기 때문이다."
원각은 진남의 생각을 읽었는지 설명했다.
"원적이 보제지체라고? 그럼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왜 사용하지 않았소?"
명망은 두 눈을 부릅떴다.
"뭘 안다고 그러시오? 나는 참고 견딘 거요. 중요한 순간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효과를 봐야 하지 않겠소?"
원적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원적에게도 비밀이 많구나.'
진남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비밀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용 고기가 많이 남았다. 다 먹고 가자."
원적은 자리에 앉아 좋은 선술을 꺼냈다.
* * *
반 시진 후, 셋은 문불성의 전송대진을 타고 세심선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엄청난 절당이다."
진남은 고개를 들고 살폈다.
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들 앞에는 높은 산이 있고 산에는 돌 등이 있었다.
오랫동안 불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옅은 금빛이 돌고 약한 파동이 느껴졌다.
산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돌계단이 있었다.
산꼭대기에는 세 개의 기이한 바위가 거인처럼 서 있었다.
세심선사는 기이한 바위 위에 있었는데 불의가 가득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절당에는 방대한 무형의 힘이 모여 있었는데 전신의 선동으로도 안이 보이지 않았다.
원적은 걸어가면서 말했다.
"보제고찰종에는 특이한 비법이 있는데 절당과 불성을 짓고 제자를 들임으로써 향화원력(香火願力) 모으고 경지를 돌파한다. 세심선사는 몇천 년이 되었는데 향화원력이 짙고 의지가 강하다. 육계는 이제 주지가 되었으니 세심선사의 의지를 끌어다 쓸 수도 있다. 그러니 잘 살피거라."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하여 절당에 들어섰다.
분향의 기운과 경을 읊는 소리, 대화 소리가 진남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들이 혼잡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적, 원각? 너희들이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느냐?"
"빨리 가서 큰 사형께 보고드리거라."
제자들은 원각과 원적을 보자 적을 만난 것처럼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들은 신념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외부에서 온 무인들은 의아했다.
"버릇없는 것들, 사형을 보고도 인사할 줄 모르다니! 육계 이놈이 제자들을 다 망치는구나!"
원적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미타불, 두 사형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주전에 도착하자 한 형상이 그들의 앞을 막았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물었다.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천선 경지 정상급에 도경소성을 이룬 자였다.
"혜일(慧一), 나는 주지를 만나러 왔다. 너에게 볼일이 없으니 물러가거라."
원적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무표정한 그는 살짝 위엄이 느껴졌다.
"아미타불, 사형들, 죄송합니다. 주지는 중요한 귀빈 세 분을 접대하고 계십니다. 다른 장로들도 손님을 접대하고 계셔서……."
혜일은 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축객령을 내렸다.
"몇 개월 못 봤더니 많이 컸구나. 네 불법이 어느 정도로 늘었는지 보자꾸나."
원적은 차갑게 웃으며 기세를 드러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불경을 읊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원적이 공격을 했어?"
외부에서 온 무인과 신입 제자들은 경악했다.
보제고찰종의 불성, 절당은 규칙이 삼엄했다.
상대방이 동의한 의투가 아니면 절대 무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규칙을 어긴 자는 도발로 간주되어 제압을 당할 수 있었다.
"너……."
혜일은 화가 났다.
원적이 막무가내로 공격할 줄 몰랐다.
"아미타불, 외부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싶으냐? 혜일, 물러가거라. 원적과 원각은 안으로 들어오너라."
위엄 있는 목소리가 주전에서 울려 퍼졌다.
"네, 장로."
혜일은 화를 겨우 참으며 물러섰다.
원적은 콧방귀를 뀌고 원각과 진남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선 진남은 깜짝 놀랐다.
주전은 몇십만 장으로 엄청 컸다.
형상이 장엄하고 짙은 불기를 풍기는 금빛 불상들이 가득했다.
불상의 양쪽에는 부들방석이 놓여 있었다.
승려들과 무인들이 부들방석에 앉아있었다.
대전의 가운데는 옅은 청색 석판으로 만든 거대한 크기의 원형 도안이 있었다.
도안의 가운데에는 눈썹이 흰 까까머리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허공에 붕 떠 있었다.
그는 왼손에 자금색 불주를 들고 오른손에는 백옥으로 목어를 두드리며 경을 읊었다.
그의 등 뒤에는 강한 불의가 계속 터졌다.
패자의 위엄이 사방을 휩쓸었다.
승려와 떨어진 곳에는 이남일녀가 선광을 뿜으며 몸 안의 문도법을 움직이고 있었다.
세 개의 서로 다른 의지가 절세의 선검처럼 불의를 베었다.
그들이 서 있는 원형 도안이 의지들을 대부분 막았지만 진남은 엄청난 위험과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원적, 경고한다. 지금 육계가 다른 사람과 의투를 하는 중이니 방해하지 말거라. 사고를 치면 네 스승도 너를 지킬 수 없다."
패자 정상의 경지인 승려가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그는 진남을 힐끗 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대장로, 걱정 마세요. 습격 같은 비열한 짓은 육계주지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원적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대장로와 다른 장로, 그리고 무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원적과 육계의 원한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진 시주, 우리 운이 별로 좋지 않구나. 육계가 태연무생종의 절세천재 류청 등과 의투를 하는 중이다.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구나."
원적은 진남에게 전음했다.
"괜찮……. 잠깐, 방금 태연무생종의 절세천재라고 했느냐?"
진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맞다, 이 중 여인은 청류다. 태연무생종의 절세천재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이번에 육계와 싸우러 온 건 도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원각은 말했다.
진남은 눈을 반짝거렸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무슨 방법을 쓰지?'
청색의 원형 도안에서 육계와 류청 등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졌다.
여러 가지 이상이 연달아 나타났다.
'육계는 의지가 보통이 아니구나.'
전신선동을 움직여 바라보던 진남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 같았다.
하지만 육계가 이미 우세를 차지하였고 뿜어져 나오는 불의가 청류 등에게 주입되었다.
시간이 흘러 반 시진 정도 지난 후.
청류 등은 연달아 밀려났다.
어느새 원형 도안의 가장자리까지 밀렸다.
의투의 규정에 따르면 도안을 벗어나면 진 것이었다.
"태연지묘(太衍之妙), 무중생일(無中生一)!"
청류의 의지가 폭발했다.
수많은 희미한 빛이 앞으로 흘러가더니 한데 모여 검을 이루었다.
무상의 검진을 만들려는 것 같았다.
"부처님……. 자비를 베푸십시오!"
육계도 안색이 어두워지고 높은 소리로 불호를 외쳤다.
서른여섯 개의 금색 나한이 등 뒤에 나타나 서로 다른 행동을 취해 무형의 진을 만들었다.
쿠웅-!
강기가 풍겨 대전이 흔들렸다.
청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의지를 끌어올렸다.
마치 속박을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축적한 자질이 적어 성공하지 못했다.
퍼퍼퍼펑-!
폭발음이 울리고 청류 등은 튕겨났다.
입가에 피가 흘러나오고 기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의투에 실패하면 육체가 상처를 입는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가 있어도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미타불, 선재라."
육계는 합장하고 내려왔다.
천지를 뒤엎는 불의와 서른여섯 명의 나한 등은 전부 평온해졌다.
그는 문득 무언가를 느낀 듯 진남 등을 바라보았다.
원적과 원각을 보고 눈에 살기가 번뜩이고 다시 청류 등을 바라보았다.
"시주들, 너희들은 졌다. 우리가 약속한 대로 너희들은 우리 종문의 보제지에 들어가 한 달을 머물러야 한다."
육계는 말했다.
보제고찰종에서 의투를 만든 건 다른 세력의 절세천재들을 보제지에 들여보내기 위해서였다.
상대방을 완전히 인도한다고 할 수 없지만, 마음속의 불성을 키우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연히 한두 명을 인도해도 크게 버는 것이었다.
"잠깐!"
이때, 진남이 소리쳤다.
"응?"
사람들은 일제히 진남을 바라봤다.
원적과 원각도 어리둥절했다.
'진남은 뭐 하려는 거지?'
"이분은……."
육계는 무표정했다.
불가의 사람들이 외부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처음 하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원각과 원적과 어울리는 걸 보아 이 왜소한 서생도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
"나는 이름 없는 무인 임남이오. 원적과 원각 두 분 스님에게서 육계 대사가 불법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걸 듣고 의투를 하려고 왔소."
진남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서 패자 초급의 위압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살짝 놀랐다.
육계의 눈에 불광이 스쳤다.
'원적과 원각은 나의 경지를 안다. 이자더러 나와 의투를 하라고 할 정도면 임남이라는 무인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만약 내가 이긴다면 청류 등이 한 달 동안 나를 따르기를 바라오. 그들을 해치지 않을 거요. 만약 내가 지면 이 정을 주겠소. 어떻소?"
진남은 신념을 움직여 보천정을 꺼냈다.
"자식, 감히 또 나를 판돈으로 쓰다니……!"
명망의 외침이 대전에 울려 퍼졌다.
조금의 이성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는 하마터면 진남의 이름을 부르고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었다.
"상고 십 악에서 서열 이 위인 명망? 저자를 인도한다면 크게 공덕을 쌓을 것이다."
주위의 패자 등급에 도달한 장로들은 대번에 보천정을 알아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청류 등은 어안이 벙벙했다.
'왜소한 서생은 누구지? 왜 우리를 도와주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