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광통로(仙光通路)이다. 아무 데나 들어가도 다른 곳으로 전송이 된다."
명망은 기뻤다.
"우리가 운이 좋구나. 선광통로를 통해 가는 곳은 대부분 비범하다. 엄청난 상고전승도 있다."
진남은 머뭇거렸다.
선광통로에 들어가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혹시 먼 곳에 간다면 다시 천문에 와서 시체를 가져가야 했다.
"진남, 망설이지 말거라! 더 머뭇거리면 이 사막에서 죽을 수 있어! 목숨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선광통로에서 전송하는 곳이 깊은 곳일 가능성이 크다."
명망이 외치자 진남은 몸을 흠칫 떨었다.
축염과 고소요 두 무리의 살기를 느끼자 진남은 이를 악물고 과천일격을 펼쳤다.
그들은 순식간에 선광통로에 들어섰다.
진남은 몸이 굳는 것 같았다.
사방의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했다.
한참이 지나 변화들이 멈추었다.
진남은 다른 곳에 떨어졌다.
진남이 고개를 들어보니 동쪽 끝에 웅장한 천문이 여전히 우뚝 서서 찬란한 빛을 뿜었다.
진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그들이 온 곳은 여전히 깊은 곳이었다.
오히려 천문과 거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이곳은 설마 무선지(無仙地)?"
명망은 경악했다.
진남은 주변을 살펴보니 땅이 기이하게도 검은색이었다.
나무와 풀들이 푸르고 색깔도 다 달랐다.
차하계의 가장 가난한 곳에도 적게나마 영기가 있었는데, 이곳의 땅과 허공은 선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영기도 없었다.
"하하, 진남. 아직 모르지? 무선지에는 반드시 귀한 보물이 있다. 등급도 전에 우리가 갔던 절당의 것보다 낮지 않다."
명망은 저도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절당보다 더 좋은 보물이 있다고요? 오늘 운수가 참 좋습니다."
진남은 눈앞이 환해졌다.
그는 계속 앞으로 날아갔다.
무선지에는 더 큰 좋은 점이 있었다.
아무런 영기와 선의가 없으니 금제와 살진도 없었다.
귀한 보물이 나타나도 서로 빼앗으려는 무인도 없으니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쿵-!
잠시 후, 앞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찬란한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진남과 명망은 존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 귀한 보물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어? 마침 잘 됐다. 시끄러움을 덜었어."
명망은 흥분했다.
동시에 그는 감탄했다.
주선제오인의 후계자인 진남은 운이 엄청 좋았다.
명망은 열몇 개의 소선역을 누비고 다녔고 많은 금지를 갔지만 한 번도 무선지를 만난 적이 없었다.
"속박이 다 풀리고도 이 녀석을 따라다녀도 될 것 같아. 십악이 아직 우두머리가 정해지 않았으니 내가 조금 노력한다면……."
명망은 중얼거렸다.
귀한 보물이 나타나자 진남은 더 빠르게 날아갔다.
잠시 후,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골짜기가 있었다.
골짜기는 마치 용이 누워있는 것 같았다.
골짜기 안에는 보라색 빛이 가득해서 전신의 선동으로도 아래를 살필 수 없었다.
진남은 선력을 몰래 움직이며 골짜기로 날아갔다.
"저건……."
진남과 명망은 앞에 벌어진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속의 중앙에 넓이가 서른 여장, 높이가 오백 장이 되고 금빛 무늬가 가득하며 온통 보라색인 기둥이 나타났다.
골짜기의 보라색 빛은 기둥에서 풍기는 것이었다.
기둥에서 엄청난 의지가 느껴졌다.
모든 것을 뚫고 하늘에 커다란 구멍을 내려는 것 같았다.
"보라색 기둥은 보통이 아니다. 팔룡고묘보다 훨씬 강해."
명망은 감탄했다.
"좋은 물건이 맞습니다. 가져갈 수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진남은 법인을 만들어 선력을 사용했다.
이때, 천둥 같은 호통이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누구냐?"
보라색 빛에서 청람색 불꽃에 둘러싸인 그림자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패자의 위엄을 풍겼다.
진남은 그들을 확인하고 안색이 변했다.
"축강선왕, 고정선왕!"
이곳에서 다른 패자들을 만났다면 상대방의 신분 때문에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패자는 예외였다.
"왜 하필 저자들을 만났지?"
명망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축강선왕과 고정선왕도 어안이 벙벙했다.
얼마 전에 그들을 놀라고 화가 나게 만들어 죽이고 싶게 미운 자를 이곳에서 만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때, 무게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축강, 고정 대체 누구요? 왜 아무런 반응이 없소?"
열여덟 명의 사내와 여인들이 보라색 빛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은 모두 패자의 위엄을 풍겼다.
열여덟 명 중에는 진남이 아는 자들도 있었다.
제왕고도, 만중선루의 패자와 극생문, 무액문의 패자까지 열다섯은 안면이 있었다.
오직 세 명의 패자만이 진남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진남, 여기까지 왔느냐?"
패자들은 진남을 보고 경악했다.
"에잇."
명망은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했다.
'운이 좋다고 했잖아? 왜 여기서 적들을 만난 거지? 그것도 한 번에 열몇 명의 패자를 만나다니!'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좋고 나쁨의 기복이 너무 심했다.
"하하하!"
축강선왕은 정신을 차리고 크게 웃었다.
허공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진남, 너는 역시 좋은 길을 두고 지옥 길을 선택하는구나. 농염족 사람들을 죽이니 속이 후련하더냐?"
강각선왕은 시선이 차갑게 변했다.
주변의 온도도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보라색 빛도 일그러졌다.
"진남!"
고정선왕 등 패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살기를 드러냈다.
열몇 개의 전혀 다른 패자들의 위압이 골짜기에 가득했다.
땅이 흔들리고 산에 금이 가서 돌들이 부스러지고 떨어졌다.
진남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마음이 서늘했다.
그러나 겁을 먹을 진남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고함을 질렀다.
"명망, 공격하시오!"
진남은 선력을 최대로 모아 과천일격을 펼쳤다.
그는 골짜기의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명망은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포효했다.
그는 법인을 만들어 진남에게 무형의 힘을 실어줬다.
"진남, 제왕고도의 핵심장로를 죽이고도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제왕고도의 패자가 고함을 지르며 손가락을 펼쳤다.
진남의 사방의 허공들이 찰칵찰칵 소리를 냈다.
그리고 주변을 봉쇄했다.
"진남, 죽어라!"
패자는 호통을 지르며 검광으로 변해 진남에게 날아갔다.
그는 엄청난 검의를 진남을 향해 휘둘렀다.
선산도 벨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진남이 천선 경지 정상급이 된다고 해도 이런 공격은 당할 수 없었다.
진남은 긴장했다.
그가 전신각인을 움직이려고 할 때 수많은 불꽃이 그의 앞을 막았다.
불꽃은 사람 형상으로 변해 검을 막았다.
"축강, 이게 무슨 짓이오?"
패자는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고정선왕과 다른 선왕들도 축강선왕을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봤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진남과 철천지원수요. 그러니 진남은 반드시 죽일 거요. 다만, 죽이기 전에 진남이 가진 강한 불꽃을 빼앗으려고 하오."
축강선왕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진남이 가진 지보가 많지 않소? 우선 지보부터 빼앗는 게 어떻소?"
그의 말에 제왕고도의 패자, 고정선왕 등은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축강선왕의 말에 공감했다.
여러 세력들이 연합하여 진남을 잡으려 한 것은 그가 가진 지보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원한 때문에 진남을 죽일 생각만 하느라 그 일을 잠깐 잊고 있었다.
축강선왕이 진남을 보며 말했다.
"진남, 우리가 서로 적대적인 관계이긴 하지만 나는 네 실력을 인정한다. 지금 불꽃을 내놓고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면 온전한 시체는 남겨주마."
진남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하찮다는 듯 말했다.
"선배님은 불꽃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자격이 없습니다."
축강선왕은 화가 잔뜩 났지만, 냉소를 짓고 말했다.
"죽기 전까지 두려움을 모르는구나. 죽기보다 더 힘들다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말을 마친 그의 손바닥에 벌레 같은 불꽃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이마에 '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농염족의 비법인 서혼충염(?魂蟲焰)이었다.
상대방의 몸에 주입시키면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어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절제천재라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진남은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을 선배님들의 무덤으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축강선왕과 고정선왕 등 패자들은 진남을 비웃었다.
'열몇 명의 패자들을 이곳에 묻겠다고? 심지어 패자 원만 등급도 몇 명 있는데?'
진남이 구천지존을 모셔온다면 그게 아니면 아무리 강한 수단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깊은 곳에 있는 구천지존들은 진남을 도와줄 리 없었다.
축강선왕은 입이 아프게 말하기 싫었다.
그가 손바닥을 밀자 수많은 서혼화충들이 날아갔다.
진남은 피할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 진남은 전신각인을 움직였다.
시공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때 듣기 좋고 늘어진 목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한 무리 패자들이 천선 경지 무인 하나를 괴롭히느냐?"
옅은 청색 치마를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높이 올렸으며 피부가 하얗고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손을 살짝 휘둘렀다.
무형의 힘이 서혼화충을 전부 없앴다.
"누구신지……."
축강선왕과 패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여인에게서 지존의 위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설마 입도지존 대인?"
만중선루의 패자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입도지존 대인을 뵙습니다!"
축강선왕 등은 정신을 차리고 얼른 인사했다.
"괜찮다. 아직 내 기분이 좋으니 얼른 가거라."
입도지존은 살짝 웃었다.
"그게……."
축강선왕과 고정선왕은 안색이 확 바뀌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진남을 죽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뭐야? 문제 있느냐?"
입도지존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아닙니다."
축강선왕은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떠나가려고 했지만 억울한 마음에 용기 내서 말했다.
"입도지존 대인, 진남은 우리 세력의 제자들을 여럿 죽였고 제왕고도의 핵심장로도 죽였습니다. 이자와 아는 사이가 아니면…….."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입도지존은 냉랭하게 말했다.
"썩 꺼지거라."
축강선왕 등 패자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 없었다.
"잠깐."
입도지존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축강선왕 등 패자들은 몸이 굳었다.
느긋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경고할게. 너희들이 내 꼬마 부군을 지금처럼 대하면 내가 크게 화를 낼 거다."
그녀의 말에 축강선왕, 고정선왕 등 패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구천지존이 그것도 구천지존 원만 등급인 거물의 반려자가 진남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진남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입도지존이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기에 그는 전신각인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너무 어색했다.
"여러분, 그런 게 아니라 나와 입, 아니 몽요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진남은 얼른 해명했다.
축강선왕과, 고정선왕 등은 정신이 들자 입도지존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감히 머무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선광으로 변해 골짜기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진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구천지존이 직접 말했는데 가짜일 리 없다고 믿었다.
또, 그런 사이가 아니라면 입도지존이 나설 일도 없었다.
축강선왕, 고정선왕 등은 마음이 무거웠다.
궁우태황종의 강자가 오지 않으니 진남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입도지존까지 진남의 편에 서니 그들은 어쩔 방도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