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화 엿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진남은 안색이 어두워져 다른 방향을 바라봤다.
팔요마왕은 마존의 다리뼈를 꺼냈고 원적은 금빛 찬란한 가사를 입었다.
그들은 혈안과 수신량을 데리고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엄청난 기세를 풍기는 강각선왕, 축강선왕, 고정선왕, 청리선왕 등 열 명의 패자들이 그들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팔요마왕은 진남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살기를 풍기며 달려오는 용현령 등도 발견하고 피를 토할 뻔했다.
'진남은 내력이 비범하다고 했잖아? 주선제오인의 후계자라면서? 왜 진남의 주변에만 있으면 재수 없는 일만 생기는 거야!'
"진남이 저기에 있소!"
강각선왕, 축왕선왕 등은 진남을 발견하고 살기가 확 늘어났다.
그들은 진남이 가진 지보를 얻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진남을 사무치게 미워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육합금구로 도망치십시오."
진남은 팔요마왕에게 신념을 전했다.
두 무리에게 쫓기던 진남과 팔요마왕은 회합하여 빠른 속도로 선교를 넘었다.
장관을 목격한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저들은 대체 무슨 내력이길래 열 명의 패자들에게 쫓기는 거지?"
진남의 궁금증을 해결해줬던 지선 경지의 무인이 숨을 내쉬었다.
"진남이라, 진남……. 아! 생각났다! 도기가 잘렸다던 제일선 이름이 진남이잖아?"
"뭐? 그자였어?"
"왠지 이름이 익숙하다 했어!"
"옆에 있던 중은 보제고찰종 절세천재인 원적이잖아?"
"원적이라고? 원적이 왜 진남과 함께 있는 거지?"
실력이 강한 무인들은 진남과 원적을 알아보았다.
특히 진남은 어떤 면에서 보면 구천선역에서 일부 패자들이나 구천지존들보다 훨씬 유명했다.
혼잡하고 여러 강자들이 모인 고성에 진남과 원적의 출현은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았다.
소식은 곧 무인들 대부분에게 전해졌다.
"진남과 원적이라……. 재미있구나."
무인들은 미소를 지었다.
* * *
많은 신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남과 팔요마왕 일행은 비월선교의 끝에 도착했다.
그들이 엄청난 속도를 냈지만 강각선왕, 축강선왕 등 패자들은 멀지 않은 곳까지 쫓아왔다.
조금만 지나면 패자들은 무상도술로 진남 일행을 제자리에 묶어둘 수 있었다.
"허허, 진남은 여러 세력의 패자들에게도 미움을 받는구나. 역시 하늘은 내 편이다. 남세지존이 올 필요도 없이 오늘 진남을 죽일 수 있겠다."
용현령은 냉소를 지었다.
"명망, 위기가 닥쳤는데 구경만 할 겁니까?"
진남이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큰 이득을 주지 않으면 나서지 않겠다고. 하지만 오늘은 예외다. 딱 한 번만이다."
명망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너희들 선력을 주입하거라."
진남과 팔요마왕 등은 바로 선력을 보천정에 주입했다.
보천정 안에서 명망은 시뻘건 두 눈을 번쩍 떴다.
악기가 폭발했다.
"저건 뭐지?"
강각선왕, 축강선왕 등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들은 서래 등에게서 진남이 보천정이라는 도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보천정 안의 흉수가 이렇게 강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몸이 서늘해졌다.
"명망지노(冥亡之怒)!"
명망은 시뻘건 입을 쩍 벌리고 포효했다.
방대한 힘이 용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어라?"
강각선왕 등은 엄청난 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향하는 힘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힘은 천선 경지 정상의 무인을 죽이기에는 충분했지만, 패자들에게는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특히 열 명의 패자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야! 명망. 상고십악의 서열 이 위라면서? 왜 이렇게 공격이 약해?"
팔요마왕은 화가 나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명망은 자신이 나서면 모든 위기를 해결할 것처럼 해놓고 이런 모습을 보이니 더욱 기가 막혔다.
"나는 지금 보천정에게 제압을 당한 상태잖아. 게다가 너희들이 준 선력이 부족한 걸 어떻게 하라고?"
명망은 눈을 흘겼다.
그래도 그의 공격과 기선제압으로 인해 진남 등은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진남 등은 바로 비월선교를 지나 육합금구로 날아갔다.
"육합금구의 근처에 들어섰지만, 무형의 힘 때문에 패자들도 제압을 받을 것이다. 진남은 잠깐은 도망갈 수 있겠어."
신념들은 그제서야 사라졌다.
* * *
맹구궁은 신념을 거두었다.
진남이 안전해졌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축자운 등은 아쉬웠다.
"방금 진남은 자신이 액운지체가 아니라고 했다. 표정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건 같지 않았는데 설마……."
맹구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방금 나를 때린 건 우연인가?'
생각을 하던 맹구궁은 축자운 등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축자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리 와서 나를 때려 보거라."
주변의 무인들과 축자운과 함께 있던 청년들은 부러웠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구궁금선종의 소종주를 때리고 좋은 점까지 얻을 수 있어.'
방금 진남이 가진 옥간은 많은 무인들이 꿈에도 가지고 싶어 하던 것이었다.
"진, 진심입니까?"
축자운은 기뻤다.
그러나 왠지 마음에 걸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맹, 맹 도우를 때려도 저를 탓하지 않을 겁니까?"
맹구궁은 짜증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
"때리라고 하면 때릴 것이지 말이 많구나. 나를 때릴 수 있으면 후하게 대접해주마."
"파운장(破雲掌)!"
축자운은 손바닥에 수많은 빛을 모아 맹구궁의 가슴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맹구궁에게 닿으려는 순간 천둥 같은 호통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네 이놈! 비천한 것이 감히 소종주를 공격하다니!"
열세 명의 천선 경지 정상의 강자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선술로 축자운을 천 장 밖으로 날려 보냈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주변의 무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고족 청년들도 당황했다.
'아까와는 상황이 다른데?'
"쓸모없는 놈, 때리라고 해도 못 때리다니……."
맹구궁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진남, 이래도 나를 속일 거냐?'
* * *
같은 시각, 비월선교 끝자락.
"이제 어떻게 하지?"
축강선왕은 두 눈에서 불꽃이 튀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열 명의 패자들과 네 명의 원만등급의 패자들이 지선들을 잡지 못했다.
많은 무인들의 신념이 지켜보고 있으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금 쫓아가면 그들을 잡을 가능성은 삼 할이오. 대이변이 이틀 내에 시작될 것이오. 그러니 구천지존들도 혹시 모를 변화가 생길까 봐 우리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거요."
강각선왕은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의 뜻은 명확했다.
"그럼 대이변이 일어난 후에 진남을 잡읍시다. 그럼, 이틀 동안은 제왕고도와 만중선루에서 수고해주시오. 혼란선역을 잘 살피고 궁우태황종의 강자들이 나타나면 바로 우리에게 알리시오."
고정선왕은 말했다.
진남은 도기를 다시 만들었다.
궁우태황종에서도 분명 지위가 높아졌을 것이었다.
그러니 진남이 위험에 빠지면 궁우태황종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다른 선왕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고성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가자."
용현령은 눈을 반짝거리며 흑포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 *
같은 시각, 육합금구의 근처.
진남 등은 비밀이 많은 이 땅에 방금 들어섰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힘이 내려와 그들을 제압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경지는 다섯 단계는 하락했고 신식도 아흔아홉 장으로 구속되었다.
진남의 선동과 혈안지선의 혈동도 구백아흔아홉 장까지 살필 수 있었다.
진남 일행은 오히려 기뻤다.
강각선왕 등이 쫓아온다고 해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응?"
진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식해에 있던 백남지화가 빛을 뿜었다.
'신비한 백남지화는 금지나 선복도지에 영향을 끼칠 때도 조용했다. 그런데 왜 빛이 나는 걸까?
설마 육합금구가 비범한 탓일까?'
"모르겠다."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팔요마왕 등에게 말했다.
"방금 맹구궁에게서 빙백극령과 육금선옥의 위치가 표기된 옥간을 얻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팔요마왕은 원망이 눈 녹듯 사라지고 두 눈에 빛이 났다.
'역시 주선제오인의 후계자답구나! 곁에 있으니 좋은 일이 끝이 없다!'
진남은 신념으로 옥간을 살폈다.
옥간은 선력으로 그린 지도였다.
위에는 동서남북이 표시되어 있고 비월선교가 있는 곳도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이 있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남은 자세히 훑어보고 알아차렸다.
이 지도는 육합금구의 한 구역 지도이고 그들이 있는 곳과 가까웠다.
지도에는 세 곳이 표기되었다.
"갑시다."
진남이 앞에서 날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그 뒤를 따랐다.
혼란선역에 명성이 자자하고 구천지존들도 죽을 수 있다는 육합금구였다.
아무리 가장자리에 있다고 해도 진남 등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힘을 다 사용하지 않고 날아갔다.
반 시진 정도 날아가던 진남 등은 속도를 늦추었다.
지도에 표기된 첫 번째 지역과 매우 가까워졌다.
팔요마왕은 흥분이 사라지고 걱정이 늘었다.
그는 오는 길에서 많은 시체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열다섯 구는 천선 경지의 시체였다.
이곳은 육합금구의 가장 바깥이었기에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선 경지도 죽은 걸 보면 이곳도 매우 위험했다.
"도착했습니다."
진남이 멈춰 섰다.
그들 앞에 높이가 몇십 장이 되고 나뭇잎이 무성하고 튼실하게 자란 기이한 고목들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는데?"
수신량은 주변을 둘러보고 의아해했다.
빙백극령과 육금선옥이 아니라 천재지보도 보이지 않았다.
진남과 팔요마왕 그리고 원적은 그를 무시했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튕겼다.
의지들이 한 고목에 스며들었다.
순식간에 고목에 파도 같은 무늬가 생겼다.
높이가 여섯 장, 넓이가 두 장이 되는 입구가 나타났다.
이곳은 보이지 않는 진법이 덮여있었다.
천선 경지의 강자가 지나간다고 해도 알 수 없었다.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았으면 그들도 찾아내기 힘들었다.
"이곳은 정말 위험하구나. 내가 앞장서마."
팔요마왕은 허허 웃더니 연기로 변해 먼저 날아갔다.
진남 일행도 그 뒤를 따라갔다.
진남 일행이 바닥에 내려서자 팔요마왕의 욕설이 들렸다.
"제길, 이건 나를 엿 먹이는 거잖아? 조심조심 달려왔더니 겨우 이까짓 것들……."
진남은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서둘러 확인해보니 그들은 높이가 서른여 장이 되고 넓이가 여덟 장이 되는 동굴 깊은 곳에 도착했다.
동굴 끝의 벽에는 손바닥하고 기이한 형태를 가진 얼음 수정들이 있었다.
얼음 수정은 엄청난 의지를 품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엄지손가락만 하고 온통 검은색에 여섯 개의 신비한 무늬가 난 흑옥이 있었다.
흑옥은 기이한 기운을 풍겼다.
얼음 수정과 흑옥이 바로 빙백극령과 육금선옥인 것 같았다.
혈안지선조차 빙백극령과 육금선옥이 어둠 속에서 신비한 힘을 끊임없이 흡수하는 것을 느꼈다.
즉, 빙백극령과 육금선옥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가져가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팔요마왕이 욕설을 퍼부은 것이었다.
진남도 표정이 구겨졌다.
옥간에는 세 개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었다.
첫 번째 지역 보물들이 완전하지 않았으니 다른 두 지역에도 같은 상황일까 봐 걱정되었다.
"설마 맹구궁이 일부러 엿 먹이는 건 아니겠지?"
진남은 미간을 문질렀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하, 내 말이 맞지? 이곳에 천재지보가 있다니까. 다만 진법으로 감췄을 뿐이다. 응? 누구냐?"
이때,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