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화 뭐, 뭐 하자는 거냐?
두 무리의 사람들이 날아왔다.
우두머리는 패자들이었는데 그들의 복장은 두 가지였다.
한 무리는 흰 두루마기에 아홉 개의 구름을 수놓았고 다른 한 무리는 검은색 두루마기에 섬 그림을 수놓았다.
흑백은 서로 선명한 대비가 되었다.
"하하, 자네들이구먼……."
다른 패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강각선왕 등은 그들을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진남 일행도 시선을 돌렸다.
진남은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 중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와 싸운 적이 있던 서래였다.
서래는 진남을 보자 아는 체하지 않고 무시했다.
서래는 금부의 일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진남에게 당한 것이 여전히 불쾌했다.
"만중선루와 제왕고도의 사람들이구나. 그러니까 몇 시진 전에 도착할 수 있지……."
팔요마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만중선루와 제왕고도는 동경에 상주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다른 전송진법도 가지고 있었다.
동경에 이변이 일어났고 만중선루와 제왕고도는 정보수집 능력이 강했기에 바로 소식을 받았다.
그리고 만중선루와 제왕고도는 극생문 등 강한 세력들과 연합하고 그들이 이곳에 빨리 올 수 있게 도운 게 분명했다.
"제왕고도의 사람들?"
진남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천선 경지들만 받는 이 세력에 흥미가 생겼다.
"응?"
문득, 진남은 두 눈에 이상한 빛이 돌았다.
제왕고도의 무인들 중 그와 나이가 비슷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검은색 짧은 머리에 검 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는 지선 경지 팔 단계에 도경소성을 이루었다.
특히, 그는 은근히 난해한 마의를 풍겼다.
이런 마의는 아주 오래되고 신비했는데 가슴 떨리게 했다.
"네가 진남이지? 방금 듣자 하니 도기를 다시 만들었다면서?"
청년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시선의 주인이 진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다가왔다.
그의 말투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주목했다.
그중에는 패자들도 꽤나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진남에게 시선이 쏠렸다.
직접 진남을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몰래 살폈다.
"내 소개를 할게. 나는 소일우(肖一羽)다. 제왕고도의 핵심장로들 중 한 명이다. 대전에 들어가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소일우는 진남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말을 마친 그는 진남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핵심장로?"
"저렇게 어린데 제왕고도의 핵심장로라고?"
주변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제왕고도의 핵심장로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일우는 고작 지선 경지 팔 단계이고 나이도 어렸다.
그런데 핵심장로가 된 걸 보면 그의 뒤를 지탱해주는 엄청난 세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쿠! 한발 늦었구나. 진남 도우, 반갑다. 네 이름은 많이 들었다."
이때,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몸매가 뚱뚱하고 가사를 대충 걸친 사람이 나타났다.
반지르르한 땋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짓고 진남의 앞에 나타났다.
"이런……."
늙은 중과 구계 그리고 보제고찰종의 중들은 깜짝 놀랐다.
'저자가 왜 왔지?'
"저자도 중이야?"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이렇게 이상한 중을 본 적이 없었다.
"누구신지……."
진남도 어안이 벙벙했다.
"아, 내 소개가 늦었지? 좋다. 그럼 소개할게. 나는 원적이다. 다들 원적소승이라고 불러. 보제고찰종의 속세제자이다."
원적은 웃음기 가득해서 말했다.
"원적?"
진남과 팔요마왕 등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들은 불도의 사람이 아니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원적은 불가에서 고승이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 사용하는 단어였다.
쉽게 말하면 죽음과 같은 뜻이었다.
'이상한 뚱보 중은 왜 재수 없는 불호를 지은 걸까?'
"설마 절세의 천재 원적?"
"옷차림이 난잡하고 행동이 이상하며 뚱뚱한 걸 보니 그가 맞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 인선 경지의 무인들이 더욱 놀랐다.
절세의 천재는 일반 상황에서 보기 드물었다.
"절세의 천재?"
진남과 팔요마왕 등은 더욱 어리둥절했다.
인선 경지를 돌파하고 패자가 되지 못했지만 도경대성을 이루면 절세의 천재라고 불렀다.
진남은 절세의 천재였다.
그런데 행동이 이상한 뚱보 중도 절세의 천재일 줄이야.
"하하……."
이때, 수신량이 차갑게 웃었다.
이제 사람들은 수신량의 비아냥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예감했다.
"원적? 무슨 그리 잔인한 이름이 있어? 절세의 천재? 내가 알려줄게. 너는 저급한……."
수신량은 잠깐 멈추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이름이 잔인하지만 나는 원적대사를 존경한다. 밤하늘의 별처럼 끝이 없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의 말에 진남 일행과 강각선왕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신량은 입이 문제다. 지금껏 스스로도 조절을 못해서 저도 몰래 비아냥거렸다. 그런데 왜 원적을 칭찬하는 거지? 설마 지금껏 연기한 거야?'
진남, 팔요마왕 강각선왕 등은 살기를 드러냈다.
저도 몰래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일부러 연기한 거라면 참을 수 없었다.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런 말을 한 거지?"
수신량은 비아냥거리는 이상한 본능을 나쁜 버릇이라 생각해서 고치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달라지자 그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허허. 도우, 솔직하구나. 좋다, 좋아. 이제부터 나와 함께 다니자. 내가 너를 지켜줄게."
"저자가 한 짓이야?"
진남 일행과 강각선왕 등은 바로 원인을 찾아냈다.
그들은 일제히 원적을 쳐다보았다.
"재미있구나."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방금 원적과 두 장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원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수신량의 본능을 제압했다.
그리고 수신량에게 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하게 하다니 대단했다.
"원적, 장난 그만 치고 이리 오너라!"
자애로운 표정을 유지하던 회색 옷을 입은 중이 안색이 어두워져서 호통쳤다.
구계와 다른 보제고찰종의 제자들은 이를 갈았다.
그들은 원적을 존경이 아닌 분노가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하하! 도우, 사람도 많은데 체면 좀 살려주지."
원적은 어색하게 웃었다.
"나에게도 도우라고 칭하다니? 내가 어떻게 가르쳤느냐? 시주라고 부르라고!"
회색 옷을 입은 중은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는 원적을 잡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흠씬 두들겨 팼다.
원적도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도망 다녔다.
그는 용서를 빌기도 하고 욕을 퍼붓기도 했는데 때로는 돼지 멱따는 소리도 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놀라 제자리에 굳었다.
'절세의 천재라고? 우리가 알던 중도 아니잖아? 저건 분명 시정의 날라리야!'
"제길, 역시 원적 저놈이 특별한 수단으로 나를 반대로 말하게 조종한 거야……!"
수신량은 욕설을 퍼부으며 화를 냈다.
"수신량, 원적의 능력이 좋구나. 네가 그를 따라 말을 하면 비아냥거리는 나쁜 버릇도 고칠 수 있잖느냐?"
팔요마왕은 조용하게 말했다.
그는 수신량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의 입 때문에 언젠가 큰 시끄러움에 봉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사소선역에서 수신량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다녔다.
"아? 그런 것 같습니다?"
수신량은 눈앞이 환해졌다.
비아냥거리는 나쁜 버릇 때문에 그는 여러 번이나 시끄러운 일을 겪고 위험에 빠졌다.
환도선종에서 쫓겨난 것도 이 버릇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중독이 되어서 끊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신량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팔요마왕은 그 말에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도우들, 다 도착한 것 같으니 함께 대문을 엽시다."
농염족의 축강선왕은 말했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대사,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제야 회색 옷을 입은 중은 멈추고 소매를 털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더니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좋소."
강각선왕, 고정선왕, 청리선왕 등은 대답을 하고 유리 대문 앞으로 날아갔다.
다른 무인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진남 등도 따라갔다.
다만, 그들은 몇백 장 떨어져 있었다.
문이 열리고 위험이 벌어지면 다른 사람들은 패자들이 막아주지만, 그들은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공격합시다!"
축강선왕은 외쳤다.
이어 패자들은 기세를 전부 드러냈다.
도광이 번쩍이고 도의가 흘러 사방을 흔들었다.
쿠쿠쿵-!
어둠 속에서 천도의 검이 허공을 지나 베는 것 같았다.
엄청난 힘이 궁전의 대문을 두드렸다.
유리 고궁 전체가 흔들렸다.
대문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폭발음이 또 들리고 대문이 부서졌다.
"열렸다!"
무인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진남 일행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전은 형언할 수 없는 어둠에 덮여있었다.
강한 동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홍목으로 만들어진 문턱만 보일 뿐이었다.
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축강선왕, 강각선왕 등 패자들은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신념을 나누더니 손가락을 튕겨 선광을 들여보냈다.
한참이 지나도 대전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들어가 봅시다."
축강선왕은 앞장섰다.
다른 선왕들도 뒤를 따랐다.
이때, 커다란 폐허가 예고도 없이 흔들렸다.
북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칼을 스치며 웅웅 소리를 냈다.
"응?"
진남은 무언가 느끼고 유리 고궁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크롸아아-!
꼭대기에는 천지와 어울리지 않고 만물을 용납하지 않는 마두(魔頭)가 있었다.
오랜 잠에서 금방 깬 것 같은 마두는 분노에 차서 포효했다.
서른여 명의 패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선들은 안색이 변했다.
진남, 원적, 소일우, 축자황 등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신음을 흘렸다.
보이지 않는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인선 경지 무인들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구멍들에서 피가 흘렀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중상을 입었다.
"엄청난 마도의지이다. 궁전에 설마 마도지존이 잠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팔요마왕은 매우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흥분했다.
멀리 있던 소일우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마도를 수련하는 무인들이었다.
마도지존의 전승을 얻으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역시 평범하지 않은 곳이구나."
축강선왕, 강각선왕 등 패자들은 서로 마주 보며 신념을 나누었다.
그리고 각자 데리고 온 무인들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궁전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상황을 좀 더 살펴봅시다."
진남은 당장 달려가려는 팔요마왕을 말렸다.
궁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궁전에 들어간 후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격이었다.
강각선왕 등 패자들은 진남 일행을 가장 먼저 죽일 게 분명했다.
원적은 사람들이 들어갈 때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진남에게 다가왔다.
"뭐, 뭐 하자는 거냐?"
수신량은 양손으로 가슴을 안고 그를 경계했다.
비아냥거리는 버릇 때문에 그는 많은 거물들을 건드렸다.
덕분에 그는 배짱이 엄청 커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원적만 보면 소름이 돋았다.
"큼큼, 도우들도 보지 않았느냐? 나는 보제고찰종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올 수밖에 없구나."
원적은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연합하는 게 어때? 한 사람이라도 많으면 힘이 더 커지잖아?"
팔요마왕은 단호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썩 물러가거라. 우리는……."
원적은 이상했다.
팔요마왕은 많은 사람들을 겪었지만, 원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원적과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원적이 그들에게 온 것은 좋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진남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원적대사가 우리와 함께 하고 싶다니 그렇게 하거라. 각자 원하는 것을 얻는 거지."
그는 원적대사가 그들에게 접근한 목적이 무엇이고 어떤 수단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