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2화 왜 도망가십니까
"이 정도 대가를 치르는 건 우리를 봐준 거다. 나는 그녀가 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진남에게 전해줬을 줄 몰랐다."
무구지존은 설명했다.
그는 진남과 그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같은 종문 출신이고 차하계에서 왔기에 그 사람이 진남에게 기연을 준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만 낭패를 본 건 아니다. 제왕고도의 그자들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쩌면 제왕고도의 그자들은 아마……. 허허."
무구지존은 뭔가 생각난 듯 미소를 지었다.
* * *
진남과 혈안인선은 전송진법을 타고 어느새 영접도장에 돌아왔다.
동경으로 날아가려던 그들은 서삼을 만났다.
서삼은 좀 전에 자신의 아버지와 진남이 한바탕 싸운 걸 몰랐다.
그들이 떠난다는 걸 듣더니 공손하게 둘을 데리고 제일공간으로 들어갔다.
서삼의 설명을 듣고 둘은 깨달았다.
만중선루와 제왕고도는 몇만 년의 발전을 거쳐 제사소선역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동서남북 사경에 지부를 설립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을 파견했다.
무인들은 탐험을 하던 중 위기를 만나거나 어떤 특이한 보물이나 단약이 급히 필요할 때면 영패를 통해 그들과 연락하여 보물을 주기로 약속하고 도움을 받았다.
양대 세력은 동서남북 사경과 육합금구에 많은 전송대진을 세웠다.
선석을 지불하면 바로 도착할 수 있어 매우 편리했다.
진남 등도 꽤 많은 걸 느꼈다.
제사소선역은 혼란선역이라고 불렸다.
만중선루와 제왕고도의 영향으로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심지어 충분한 보물을 내놓으면 어떤 일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만약 보물이 없으면 경지가 아무리 높아도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후, 방대한 전송의 힘에 끌려 진남과 혈안인선의 형상이 천천히 동경에 나타났다.
둘은 순식간에 동경의 천지에 짙은 선의가 가득하고 상하경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상하경은 선의가 매우 부드럽고 깨끗해 무인이 수련하기 적합했다.
하지만 이곳의 선의는 오래되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경지가 부족하고 여기서 많은 선의를 흡수하면 오래되고 무거운 느낌의 영향을 받아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동서남북 경에 아무도 세력을 만들지 못 하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진남은 중얼거리며 전신선동을 움직였다.
그들은 매우 낡은 고성에 있었다.
아무도 없지만, 허공에는 많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와 혈안인선이 오기 전에 많은 무인들도 동경에 왔던 게 분명했다.
"갑시다."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려 하늘로 올라갔다.
이번에 얻은 모든 물건은 빼앗은 것이었다
하지만 만중선루는 일 처리하는 방식이 꼼꼼했다.
그에게 성국에 들어간 후 어디로 가면 두 개의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노선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동경의 대략적인 지도도 주었다.
방향을 통해 성국으로 가는 길을 확정할 수 있었다.
많은 패자와 구천지존이 다니는 혼란선역에서 진남은 속도를 최고로 빨리지 않고 기운을 감추고 조용히 다가가기로 했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가는 길에 혈안인선은 웬일로 계속 수련을 했다.
진남은 끊임없이 관찰했다.
마지막에 진남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는 이미 오십 개 이상의 싸움을 봤다.
인신과 지신이 싸우는 것도 있고 지선과 천선이 싸우는 것도 있었다.
그중 두 번은 몇 명의 패자들 사이의 싸움이었다.
그의 반응이 빨랐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싸움에 말려들 뻔했다.
더 중요한 건 크고 작은 유적들, 여러 가지 동천복지, 진귀한 천재지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많은 무인들이 꿈에도 바라던 물건들이 이곳에는 가득했다.
'서삼은 동경에는 성국과 같은 등급의 상고유적이 서른 개 넘는다고 했다. 또 아직도 조용하고 발견되지 않은 유적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나의 체내의 백남지화가 이곳에 영향을 주어 그중의 일부를 깨운다면…….'
진남은 속으로 생각했다.
* * *
나흘 밤낮이 빠르게 지났다.
진남과 혈안인선은 성국 부근에 도착했다.
성국은 다른 상고유적과 달리 이천여 년 전에 이미 깨어났다.
많은 무인들이 연달아 안으로 들어가 탐색했다.
크고 작은 전승과 여러 가지 천재지보들을 이미 거의 다 가져가고 남은 곳들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해 무인들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하여 최근 일이백 년 동안 성국으로 오는 무인들이 점점 적어졌다.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의 행방을 얻은 자들만 왔다.
"응?"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방금 그는 머나먼 하늘에 여덟 명의 인선 경지의 무인들과 한 명의 지선 경지의 무인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걸 봤다.
평소라면 그는 인선 경지나 지선 경지의 무인들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서 그는 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진남, 방금 저들은 상고 고족의 사람들이냐?"
혈안인선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네? 선배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남은 의아했다.
"극생대도진경을 조금 이루고 나니 나의 혈안이 극생생혈안(極生生血眼)으로 변했다."
혈안인선이 진전을 이룬 것이었다.
"선배님 축하합니다. 한데, 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여기 나타날 리 없습니다. 우리 어서 갑시다."
진남은 말했다.
만중선루에서 파는 여러 가지 천재지보의 정보는 매우 큰 대가를 치러 '독점'하지 않은 한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판매할 수 있었다.
그가 이번에 빼앗아온 많은 정보를 만중선루에서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었다.
* * *
둘은 몸을 날려 광문으로 들어가 성국에 도착했다.
성국은 세월이 흐르고 무인들이 몰려들면서 생전의 웅장함과 위엄, 방대함을 잃었다.
싸움의 흔적이 가득하고 바닥은 너저분했다.
진남 등은 조금도 쉬지 않고 지도를 따라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성국은 예전처럼 대단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위험한 곳이었다.
진남과 혈안인선은 오는 길에 많은 위험에 부딪혔다.
많은 무인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진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낀 무인들은 전전긍긍할 뿐 공격하지 못했다.
약 스무 시진이 지난 후에야 진남 등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그들의 앞에 방대한 삼림이 나타났다.
삼림의 나무들은 모두 십오 장 정도로 높게 자랐다.
그중에는 높이가 삼십여 장 되고 줄기가 굵고 곧게 자란 나무도 많았다.
나뭇잎에는 오래된 의지가 가득했다.
지도에 표기된 대로라면 팔안음양화와 추선지수는 이 수림의 깊은 곳에 있었다.
지도에는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매우 위험하다. 이천여 년 동안 여기서 서른 명의 패자, 몇백 명의 천선 정상의 경지의 무인들이 죽었다.'
진남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방심하지 않고 혈안인선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깊게 들어갈수록 그들은 희미하게 전해오는 현묘한 힘이 그들의 기운을 누르는 걸 느꼈다.
마지막에 그들의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패자가 먼 곳에서 신념이나 동술을 움직여도 그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는 진남 등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 * *
몇 시진이 빠르게 지났다.
진남과 혈안인선은 깊은 곳에 도착했다.
방대한 수림도 그것의 흉악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천재지보나 조용한 풀밭 등에는 커다란 살기가 있었다.
그중 몇 개의 살기는 천선 경지의 무인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대단했다.
"진남, 앞쪽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기서 싸우고 있다!"
혈안인선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표정이 굳었다.
진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짜 누군가 팔안음양화와 추선지수를 눈독 들였나? 설마 고족의 사람들일까?'
그는 선력을 움직여 속도를 빨렸다.
잠시 후 그는 방대한 동력으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발견했다.
그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온몸에 각양각색의 여러 가지 화염이 용솟음쳤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이마에 색이 다른 '고'자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의 등 뒤에는 선영이 떠올랐다.
이들은 도합 백여 명이 되고 실력이 약하지 않았다.
인선 정상의 경지는 몇 명밖에 안 되었다.
대부분은 지선 경지고 천선도 몇 명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초식이 부딪히면서 매우 큰 힘의 파동이 생기고 수많은 강풍이 휘몰아치는 걸 느꼈다.
그들 주위의 여러 가지 고목은 바람에 날려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작은 전장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진남, 이들은 모두 고족의 사람들이다. 화염을 드러내는 건 백 대 종족 중 하나인 농염족의 사람들일 것이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할까?"
혈안인선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고족들은 평범한 무인들에게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대단한 존재였다.
백 대 고족은 더욱더 대단했다.
진남은 시름을 놓았다.
주위의 환경으로 보아 이들은 추선지수나 팔안음양화를 얻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말하려는데 뒤쪽 멀지 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감, 뭐 하는 겁니까? 제가 누군지 아시잖습니까? 다른 사람과 연합할 필요가 없을 건데 바보짓 그만 하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영감님을 데리고……."
말하던 사람은 누군가 입을 틀어막은 것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목소리나 말투가 왜 이토록 익숙하지?'
"앞에 있는 두 도우를 너도 봤을 거다. 저기 앞에서 세 명의 고족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너희들이 스스로 공격한다면 죽을 게 뻔하다. 아니면 나와……."
팔요마왕은 한 청년을 붙잡고 환하게 웃으며 수림에서 진남 등에게로 걸어왔다.
고개를 돌린 진남을 본 팔요마왕은 얼굴이 굳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손에서 발악하던 청년은 몸이 굳었다.
"진, 진남?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느냐?"
팔요마왕과 그 청년은 동시에 물었다.
"공교롭습니다. 커다란 제사선역에서 이렇게 만날 줄 몰랐습니다.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이들을 본 진남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눈에 호기심이 드러났다.
팔요마왕 옆에 있는 청년은 환선도종의 진전제자 수신량이었다.
예전에 승선대조에 참가했던 많은 개세천재들 중에서 그는 수신량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이 남았다.
오회생보다 약하지 않았다.
수신량은 천성적으로 말에 조심성이 없었다.
싸움에서 격파되고 경지가 남보다 약해도 참지 못하고 남을 조롱했다.
"허허, 진남, 우리는 인연이 깊구나. 나와 수신량이 알게 된 건 말하자면 길다. 그날 마침……. 도망쳐!"
팔요마왕은 기뻐하며 낱낱이 설명했다.
마지막에 문득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진남,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아 너와 따지고 싶지 않다. 아니면 너는……."
수신량은 팔요마왕을 따라 도망치면서도 조롱했다.
그는 진남을 원망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원망하는 건 진남을 만날 때마다 재수 없었고 마지막에 많은 정석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의 진남이 두렵고 진남의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진남의 배후에는 비월여제도 있었다.
때문에 그는 도망치고 싶었다.
'이기지 못하면 도망쳐야지.'
수신량은 팔요마왕이 도망치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따라갔다.
"두 분은 저와 안면이 있지 않습니까? 왜 저를 보더니 도망가십니까?"
진남은 담담하게 웃으며 묻는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두 개의 대단한 도기가 순식간에 허공을 찢고 그들의 앞쪽 몇십 장 되는 곳을 내리쳤다.
땅에는 두 개의 커다란 골짜기가 생겼다.
그는 이들의 성격을 잘 알았다.
팔요마왕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성국에 나타난 걸 봐서 뭔가 알고 있고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성국 안의 상황을 몰랐다.
그러니 그가 어찌 이들을 도망가게 할 수 있을까?
"진남! 너 뭐 하려는 거냐! 전에 나를 그렇게 대하더니 지금은 도망가려는 데도 놔주지 않는 거냐?"
팔요마왕은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제가 전에 어떻게 대했습니까?"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너……."
욕설을 퍼부으려던 팔요마왕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전에 그의 정석과 이보를 전부 빨아가고도 진남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때, 쿠웅 하는 커다란 폭발음이 아무 징조없이 수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이어 선인지음(仙人之音)과 수많은 마도지음(魔道之音)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