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화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궁우태황종 제이소세계 태황지계.
길이가 이십만 장이 되고 신룡 같은 선기가 흐르는 궁궐이 허공에 떠 있었다.
장소지존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상고선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른쪽 아래에 곱슬곱슬한 수염을 기르고 얼굴에 흉터가 있고 표정이 일그러진 백발노인이 있었다.
"사형, 진짜입니까? 다른 영약이면 몰라도 창명목을 왜 진남에게 줍니까? 진남은 도기도 잘리고 거의 폐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백발노인은 화를 누르며 말했다.
그는 궁우태황종의 서열 삼 위인 독령선왕이자 장소지존의 사제였다.
다른 때 같으면 장소지존이 내린 결정이나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를 사용할 때 반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장소지존은 창명목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창명목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창명목을 연화하게 하고 도경대성을 이루게 할 생각이었다.
도경대성을 이루면 그의 아들은 육 대 핵심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사제, 진남은 우리의 세력 범위에서 도기를 잘렸다. 내가 그의 요구를 하나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제 와서 번복할 수 없지 않느냐?"
장소지존은 헛기침을 했다.
비월여제가 궁우태왕종에서의 진정한 지위나 경지가 아직 구천지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독령선왕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장소지존이 손을 흔들어 말을 끊었다.
"됐다. 그만하거라. 진남이 이미 도착했다."
잠시 후, 진남은 장공과 함께 대전에 도착했다.
진남은 장소지존과 독령선왕에게 인사를 했다.
장소지존은 미소로 화답하고 독령선왕은 콧방귀를 뀌며 불만을 드러냈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독령선왕을 처음 만났는데 왜 미움을 받는지 알 수 없었다.
장소지존이 구리 잔을 내려놓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진남, 태황지계는 처음이지? 어떻느냐?"
진남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견문을 많이 넓혔습니다."
이곳에 오면서 확실히 많은 걸 보았다.
웅장하고 대범한 선궁, 선산, 선성 그리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대진, 눈에 띄는 세 개의 선도복지 등은 잊을 수 없었다.
열 개의 궁우지계를 합쳐도 하나의 태황지계보다 못 했다.
"나이도 어린 자가 정직하지 못하고 아첨만 배웠구나."
독령선왕은 차갑게 말했다.
"선왕님……."
진남은 안색이 싸늘해졌다.
선왕이라고 해도 이유 없이 그를 모욕할 수 없었다.
장소지존은 난처해서 진남의 말을 끊었다.
"진남, 독령 사제는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 마음에 두지 말거라."
말을 마친 그는 독령선왕을 흘겨보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겠다. 이건 네가 찾던 영약이다."
장소지존은 손가락을 튕겼다.
자금색 저장주머니가 진남의 손에 떨어졌다.
진남은 심호흡을 하고 신념을 주입했다.
커다란 공간에 엄청난 선기를 가진 각양각색의 천재지보 삼천 개가 여러 가지 빛을 뿜고 있었다.
길이가 다섯 장이 되고 온통 검은색이며 무늬가 가득한 흉악한 용 모양의 고목이 보였다.
고목이 풍기는 그윽하고 어두운 기운에 다른 천재지보들은 빛을 잃었다.
"장소지존 고맙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절대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진남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그 모습에 독령선왕은 더욱 기분이 언짢았다.
'네 도움이 필요한 일? 궁우태황종이 도기가 잘린 사람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까?'
"하하! 약속 지켜야 한다."
장소지존은 호탕하게 웃으며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물었다.
"진남,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진남은 그의 기명제자였다.
즉, 장소지존은 명의상에서 그의 스승이었기에 진남을 전혀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이제 제사소선역으로 갈 생각입니다."
진남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사소선역? 너는 궁우태황종의 제자이다. 그러니 그곳에 가면 함부로 신분을 노출하지 말거라."
장소지존은 한마디 당부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장공, 네가 진남을 배웅하거라."
진남은 인사를 하고 장공을 따라 자리를 떴다.
장소지존은 무상도통의 종주라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대전에는 독령선왕만 남았다.
"에잇, 이대로 저 자식이 창명목을 가져가게 둔단 말인가?"
독령선왕은 내키지 않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생각이 떠올라 두 눈에 빛이 스쳤다.
'사형이 방금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명목을 진남에게 준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창명목을 빼앗아오면 모른 척해줄 거다.'
여기까지 생각한 독령선왕은 영패를 꺼내 신념을 전했다.
"그만 수련하거라. 네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창명목을 너에게 주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러니 너는……."
말을 마친 그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패자인 그는 직접 나설 수 없었다.
진남은 지금 명의뿐이긴 하지만 장소지존의 기명제자이고 궁우태황종의 핵심제자였다.
일을 크게 벌이면 그에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핵심제자인 그의 아들이 나선다면 상황은 달랐다.
* * *
같은 시각, 태황지계의 한 구름 속.
장공은 진남을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진 사제,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같이 천재무예시합을 구경하는 게 어떻느냐?"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사형, 저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다음에 함께 갑시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이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스물아홉 개의 선광이 아래에 있는 선산에서 연속 솟아오르더니 장공과 진남을 포위했다.
진남이 힐끗 살펴보니 스물아홉 명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 중 열셋은 인선 경지이고 나머지는 지선 경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둘은 지선 경지 팔 단계에 도달하고 무도 사극지경까지 장악했다.
"하(何) 사제, 간이 부었구나. 감히 나를 막느냐?"
장공의 말투는 평온했지만,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는 신분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선 경지에 도경대성을 이루었다.
"장공 사형, 우리는 사형을 막으러 온 게 아닙니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 사제라고 불리는 청년은 할 수 없이 솔직히 말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간이 열 개라도 그는 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장공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청년의 말이 채 끝내기 전에 그는 소매를 휘둘렀다.
선광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엄청난 파도로 변해 제자들을 파묻었다.
궁우태황종에서는 싸울 수 있었다.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상처를 입히지만 않으면 되었다.
슉-!
이때 날카로운 검광이 바다에서 솟구친 용처럼 선광을 뚫고 날아왔다.
장공과 진남은 고개를 돌렸다.
"하하, 장공 사형은 패기가 넘치십니다. 사형, 미안합니다. 제가 이들에게 막으라고 시켰습니다. 이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검은색 짧은 머리에 왼쪽 얼굴에 칼자국이 있고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 자금색 옥패를 찬 청년이 나타났다.
무표정하고 키가 다섯 장이 되는 건장한 사내와 초록색 치마를 입고 청순하게 생긴 소녀가 함께 나타났다.
호탕하게 웃은 건 청년이었다.
"응?"
그들을 살펴보던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셋은 지선 정상의 경지이고 도경소성을 이루었다.
이 정도 경지에 나이도 어린 걸 보니 궁우태황종의 핵심제자인 것 같았다.
"우(尤) 사제, 왜 우리를 막은 거냐?"
장공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 사제가 말하지 않던가요? 장공 사형도 참, 하 사제가 말을 다 하게 두지 그러셨습니까?"
우 사제라 불리는 청년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장공 사형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막으라고 한 건 사형이 아니라 옆에 있는……."
그는 말투가 차갑게 변하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제일선 진남입니다."
세 핵심제자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장공은 진남에게 신념을 전했다.
"진 사제, 이 청년은 우홍이고 독령선왕의 아들이오. 그리고 저 사내와 여인은……."
그는 세 사람의 신분을 소개하고 한마디 보충했다.
"소문에 독령선왕은 창명목을 아들이 대경도성을 돌파하는 데 사용하게 할 계획이었다고 하오."
그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진남을 대신해 시끄러움을 해결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독령선왕은 장소지존의 사제라 그가 나서기 불편했다.
또, 진남과 아무런 정분이 없기에 굳이 도울 필요도 없었다.
진남은 그 말을 듣자 의혹이 사라졌다.
독령선왕이 그런 태도로 그를 대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홍 등이 얼굴도 모르는 그를 찾아온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형들……."
진남은 잠깐 고민하더니 공수하고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세 핵심제자들의 행동과 독령선왕의 태도에 기분이 불쾌했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정방(程放)이라는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
"누가 네 사형이냐? 친한 척하지 말거라! 진남, 허튼소리 하지 말고 창명목을 우 사형에게 주거라."
그러자 우홍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살짝 웃었다.
"진남, 정방이 언변에 능하지 못해서 말이 거칠다. 그러나 창명목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너는 도기가 잘려 창명목이 있다고 해도 소용없지 않느냐? 그러니 나에게 다오. 걱정 말거라. 나는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너를 홀대하진 않을 거다."
평온하게 말했지만, 말투에 오만함과 진남에 대한 무시가 느껴졌다.
다만, 주변의 내문제자들과 장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명목은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였다.
지금의 진남에게 준다면 귀한 물건을 낭비하는 것이 되니 우홍이 가지는 게 나았다.
진남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많이 겪었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창명목으로 제 도려를 구해야 합니다. 사형께 줄 수 없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진남은 시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돌아섰다.
내문제자들과 우홍 일행은 진남이 여지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할 줄 몰랐다.
"거기 서지 못 할까!"
우홍의 호통이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
진남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사형, 다른 일이 더 남았습니까?"
우홍은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웃음을 거두고 위협을 했다.
"진남, 그딴 저급한 핑계를 대다니? 네가 진짜로 도려를 구하려 한다고 치자. 네 도려는 어떤 신분이냐? 내가 도경대성을 이루는 것과 비교나 할 수 있느냐? 너는 종주의 기명제자이니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 눈치 있게 창명목을 내놓거라."
정방과 초록색 치마를 입은 소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진남을 둘러섰다.
진남은 몸이 굳었다.
평온하던 표정이 차갑게 변하고 마음속에 살기가 일었다.
태도가 불경하거나 조롱하고 비웃는 등은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됐기에 따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홍은 묘묘 공주와 강벽난을 모욕했다.
진남은 천천히 돌아서서 우홍을 노려보았다.
그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저의 도려가 어떤 신분이냐고요? 제 마음속에서 구천지존이나 수많은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라도 그녀들의 털끝만큼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 사형, 죽고 싶지 않으면 무릎을 꿇고 그녀들에게 사과하십시오."
내문제자들과 장공은 경악했다.
'우홍더러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라고?'
'미친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