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화 천하에 군림해주십시오
진남에게서 뿜어져 나온 도광은 부서지는 속도가 더 빨라져 일곱 가지 빛으로 변했다.
일곱 가지 빛은 지금 아직까지 무척 약해 도경소성도 안 되었지만 기세는 무척 강했다.
보통 도광과 전혀 달랐다.
모든 빛이 전부 일곱 가지 색으로 변할 즈음, 마지막 한 조각에 두 가지 색이 더해졌다.
색깔이 너무 옅어서 아무런 흔적도 기운도 없었다.
강한 도술을 펼치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웠다.
두 가지 색이 더해지자 도광의 기운은 겨우 도경의 문턱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동시에 무형의 힘이 진남의 몸을 통과해 건원호에 있는 몇백 마리의 화도선염지룡에게 갔다.
쿵-!
화도선염지룡의 거대한 몸집은 몇백 배로 커지고 웅장해져서 통천주(通天柱) 같았다.
그것들은 엄청난 영성을 가진 것처럼 몇십 마리만 건원호를 흡수하고 나머지는 옥존영롱호로 뛰어갔다.
"무, 무슨 일이지?"
아직 영롱옥정을 연화 중이던 팔요마왕은 용 무리에 깜짝 놀랐다.
"이건 아까 불꽃들이잖아? 설마 진남이 도기를 다시 만드는데 선력이 부족해서 화룡들이 힘을 더 빨아들이게 도와주는 거야?"
팔요마왕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어 몇십 마리의 화룡들은 입을 쩍 벌리고 호수의 선력을 빨아들였다.
호수의 색이 점점 옅어졌다.
선력을 빨아들이는 속도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에잇, 진남 이 자식은 그렇게 많은 좋은 점을 가지고 이제는 나하고 옥존영롱호까지 빼앗으려고 해? 퉤! 나쁜 용들아, 죽어라!"
팔요마왕은 화가 나 고함을 질렀다.
그는 두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더니 피가 가득 묻은 마검 두 개를 꺼내 몇만 개의 검기를 날렸다."
그는 지선 경지이고 수단이 남달랐다.
그의 살초는 천선 경지 일 단계도 이길 수 있었다.
크롸아아아-!
이때 화룡 한 마리가 고개를 젖히고 포효하며 거대한 용발을 힘껏 내리쳤다.
엄청난 힘은 검기를 전부 부셨다.
다른 화룡들도 멈추고 팔요마왕을 돌아보았다.
"이, 이런……."
팔요마왕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화룡들이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것들아! 오늘 이 설움은 이후에 반드시 복수할 거다!"
팔요마왕은 목을 잔뜩 웅크린 채 독한 말을 내뱉고 도망쳤다.
'사내대장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피할 줄 안다.'
팔요마왕이 날아가는 잠깐 새에 화룡들은 커다란 옥존영롱호의 선력을 전부 빨아들였다.
화룡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호수에서 뛰쳐나왔다.
서른 마리의 화룡들은 무언가 느낀 듯이 수많은 거리를 지나 팔요마왕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 * *
청석고옥 안.
방대한 선력을 받은 진남의 칠색 도광은 점점 밝아졌다.
엄청난 도의가 주변에 풍겼다.
"영감탱이, 정신 차려요."
입도지존은 정신을 차리고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몸을 흠칫 떨더니 정신을 차렸다.
"영감탱이, 진남은 도대체 신분이 뭐예요?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에요?"
입도지존은 연거푸 질문했다.
그녀는 진남의 진실한 신분에 호기심이 생겼다.
"하하하."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창(蒼), 생각 못 했지? 나는 소주가 환생한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는 잠깐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모든 것들이 뒤집힐 날이 곧 올 거다,""
그는 속이 후련했다.
옆에 있던 입도지존의 밝은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영감탱이, 제가 질문했잖아요. 왜 무시해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그제야 그녀를 보며 웃었다.
"미안하다. 너무 흥분했다. 그러나 저자의 신분을 말해줄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구나."
입도지존은 눈썹을 꿈틀했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진지하게 말했다.
"전에 진남의 도려가 되라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부터 진남에게 위험이 닥치면 도와서 해결해주거라."
입도지존은 응당 기뻐해야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녀는 오히려 불쾌해서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영감탱이, 무슨 뜻이에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예요? 진짜 나를 막 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이유를 듣고 싶으냐?"
입도지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망설이다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주마. 네가 지존 이상의 단계를 돌파한다고 해도……. 자격이 없다."
* * *
지존동부의 무명공간.
팔요마왕은 날아가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진남 이 나쁜 놈은 사람도 아니야! 의리도 없어! 비월이 뒤를 봐준다고 내가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팔요마왕은 진남에게 복수하려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비월을 건드릴 배짱이 없었다.
'못 이기면 피하면 되지.'
크라아아아-!
귀청을 찢을 듯한 용의 포효가 그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사방은 화로로 변한 듯이 온도가 올라갔다.
"어? 이것들이 어떻게?"
팔요마왕은 놀라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서른 쌍의 용발이 그의 머리 위에서 엄청난 흡입력을 폭발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선력을 가진 영롱옥정들이 그가 특수 제작한 저장주머니에서 빠져나왔다.
화룡들은 영롱옥정을 가지고 사라졌다.
"나쁜 용놈들아! 간덩이가 부었구나. 옥존영롱호를 빼앗고 지금은 또 내 정석까지 빼앗아가다니!"
팔요마왕은 화가 나서 상고마도의 문도법을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마염(魔焰)이 타올랐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만들어 동시에 네 개의 마술(魔術)을 날렸다.
서른 마리의 화도선염지룡은 아무렇지 않게 용발을 살짝 흔들었다.
엄청난 힘이 생겨나 네 개의 마술을 부수고 나머지 힘은 채찍처럼 팔요마왕에게 날아갔다.
팔요마왕은 연신 뒤로 물러서고 마염이 빛을 잃었다.
팔요마왕은 화가 사라지고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화룡과 싸울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을 잠깐 잊었다.
"나쁜 용놈들아! 그리고 진남 이 나쁜 놈아! 두고 보자!"
팔요마왕은 억울해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둔술을 사용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몸에 각인을 새겼는지 서른 마리의 화룡은 이내 그가 숨은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며 빠른 속도로 쫓아갔다.
"아니, 이 놈들아. 왜 또 쫓아왔느냐!"
팔요마왕의 고함이 다른 공간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체내의 마도정혈을 소모하여 더 강한 둔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존동부에 웃기는 장면이 벌어졌다.
서른 마리의 화룡이 패자를 쫓아서 공간을 이리저리 넘나들었다.
패자는 때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나쁜 놈들아,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
"흡수하지 말거라. 더 가져가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용 대인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안 돼! 내 이보!"
* * *
같은 시각, 신비한 동부의 청석고옥.
방대한 선력의 힘을 받아 진남의 도광과 도의는 전부 몸속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 있던 전신의 혼도 종소리가 울리자 사라졌다.
도기를 다시 만드는 일도 절반이 끝나고 조금 남은 부분은 진남이 스스로 도경에서 깨우쳐야 했다.
"자격이 없다고요?"
입도지존은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그녀는 구천지존이고 몇만 년 전에는 삼대 지존 중 한 명이라고 불렸다.
태고금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몇만 년 전에 이미 제일지존이 되었을 것이었다.
콧대가 높은 그녀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이렇게 평가하니 불쾌했다.
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제가 꼭 도려가 되겠다고 하면요? 영감탱이는 어차피 얼마 후면 사라질 거잖아요. 그럼 저를 말릴 사람도 없어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입도, 저자의 도려가 되지 말라고 한 건 너를 위해서다. 나는 죽지만 다른 사람이 또 기다리고 있다. 너도 아까 보지 않았느냐? 하늘에서 진남에게 무릎을 꿇고 주인님이라 부르고 불사주천산에서 진남을 기다리겠다고 한 사람을 말이다. 그자가 누군지 아느냐?"
입도지존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누구입니까?"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제오주선인 전신의 형님이자 십 대 주선들의 우두머리이다."
입도지존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제일주선? 왕좌에 있던 자가 제일주선이라고?'
십 대 주선은 구천지존 위에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주선 사위 안에 든 자들은 경지가 더 높았다.
제일주선은 쉽게 구천선역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진남을 주인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입도지존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지존을 초월하면 제일주선과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진남의 도려가 될 자격이 없습니까?"
그녀는 자격이 없다는 말이 내키지 않았다.
진남의 전생이 그녀의 상상보다 대단하다고 해도 자격이 없다는 건 너무한 것 같았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고개를 젓더니 말없이 진남을 바라보았다.
입도지존은 빛을 잃은 그의 육신을 보며 한참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진남의 전생의 기억을 빼앗았다고 하셨는데, 그럼 이제 저자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다. 둘째 형님이 가져간 건 소주의 전생의 기억뿐이다. 소주의 진정한 전생 기억은 아직 그의 몸속에서 각성하지 않았다.
입도,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약속해다오. 소주의 도려가 되지 말거라. 그리고 위험에 닥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거라."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당부하고 두루마기를 벗었다.
칼로 깎은 것처럼 강인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허약한 몸을 이끌고 망설임 없이 진남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죄가 많은 소신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는 쿵 소리가 나게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실력과 신분이 높은 그였지만 이런 예의를 차린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곧 죽을 거라는 공포도 없고 두 눈에 기쁨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그가 꿈꿔왔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소신이 감히 주인님의 도기를 베었습니다. 좋은 마음에서 저지른 잘못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소신은 이제 사라지게 됩니다. 주인님과 함께 불사주천산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주인님. ……소신이 감히 요청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주인님께서 반드시, 반드시 천하에 다시 군림해주십시오."
그의 육신은 더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흩어졌다.
그는 하늘을 가득 채운 빛으로 변해 혼백이 흩어졌다.
도경에 깊이 빠진 진남은 몸을 살짝 떨더니 한참이 지나서 평온해졌다.
입도지존은 그 모습을 보자 한참 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경지의 사람들은 강골들이라 쉽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소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녀도 죽으면 죽었지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녀는 기분이 묘하고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전생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입도지존은 진남을 바라보았다.
도경에 깊이 빠진 진남은 표정이 평온했지만, 미간에 영기가 가득했다.
한참을 바라보던 입도지존은 진남이 생긴 것도 괜찮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 네가 전생에 누구였는지 상관없어."
입도지존은 시선을 거두고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영감탱이가 최선을 다해서 너를 도우라고 했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다만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구나. 내가 영감탱이에게 신세 진 게 있거든. 네가 출관하면 다시 보자."
말을 마친 그녀는 제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