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7화 전생 때문인가?
팔요마왕은 조롱하듯 말했다.
"만야선류를 조종할 수 있으니 이겼다고 생각했소? 이거 어쩌나? 이번에는 자네들이 큰 사고를 쳤소."
말이 끝나자 팔요마왕은 변신을 하고 만요선류 아래로 날아갔다.
그는 몇만 개의 법인을 만들고 허공에서 세 개의 상고마검의 형상을 불러냈다.
"베어라!"
팔요마왕은 고함을 지르며 손을 힘껏 밀었다.
세 개의 상고마검은 세 개의 무지갯빛으로 변해 나뭇가지들을 뚫고 금문동관을 베었다.
쿵-!
엄청난 굉음과 함께 금문동관에서 빛이 났다.
묵직하고 녹이 슨 것 같은 소리가 어딘가에서 울려 퍼졌다.
스무 마리의 상고대요를 공격하던 몇백 개의 나뭇가지들은 얼른 뒤로 물러났다.
웅장한 만야선류가 살짝 흔들더니 버드나무 잎에서 흐르던 선광은 순식간에 차가운 도광으로 변했다.
좀 전의 만야선류는 신성하고 침범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만야선류는 마도(魔道)에 빠진 것처럼 냉정하고 무정하며 포악했다.
슉-!
나뭇가지 두 개가 폭발하더니 강한 도의를 품고 양대 선왕을 베었다.
양대 선왕은 깜짝 놀라 도기로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역시 한발 늦었다.
그들의 가슴팍에 기다란 상처가 나고 선혈이 흘러나왔다.
"이게 대체……."
양대 선왕은 어안이 벙벙했다.
둘이 연합하여 홍금선왕에게서 빼앗은 옥 영패에 따르면 이 영패를 얻는 자가 만야선류를 조종할 수 있다고 했다.
'왜 상황이 변한 거지?'
"허허, 자네들은 진짜 모르는군. 만야선류를 조종한다는 건 함정이요. 만야선류를 조종하여 관을 공격하면 만야선류는 조종한 자를 적으로 인식하오."
팔요마왕은 우쭐거리며 말했다.
'어디 계속 웃어봐. 아직도 웃음이 나오느냐?'
"……."
양대 성왕은 안색이 변했다.
우세에 처했던 그들은 한순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팔요마왕,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군요."
진남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당연하지, 퉤! 나쁜 놈아, 누가 쓸모가 없다는 거냐? 나는 예전에 구천선역을 휩쓴……."
팔요마왕은 화를 버럭 냈다.
끼익-!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녹이 슨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진남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요수들은 왠지 긴장되어 고개를 돌렸다.
만야선류의 깊은 곳에 있던 금문동관의 관 뚜껑이 열리고 아름답고 새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떴다.
옅은 금색의 눈동자가 모두를 둘러보았다.
아무런 위엄을 풍기지 않았지만 진남, 팔요마왕 등은 가슴이 서늘해지고 솜털이 곤두섰다.
'입도지존이 안 죽었어?'
"하암, 아직 이천 년을 더 자야 하는 거 아니었어? 왜 지금 깨어났지? 그래도…… 고맙다. 시간을 절약해줘서."
입도지존은 팔요마왕에게 눈을 끔벅거렸다.
작은 행동에 매력이 넘쳤다.
그러나 팔요마왕은 강한 살초를 본 것처럼 얼어붙었다.
'아차! 큰 사고를 쳤구나. 입도지존을 깨우다니! 설마 내가 본 고권도 함정인가?'
"다만, 내 침궁에 함부로 쳐들어오고 난장판을 만들었으니 잘 따져보자꾸나."
입도지존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만야선류가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도 흔들렸다.
몇십만 개의 나뭇가지들이 하늘로 솟구쳐 얽히더니 모든 것을 덮었다.
"얼른 여기를 뜨자."
진남은 정신을 차리곤 선력을 전부 모아 커다란 손을 만들어 스무 마리의 상고대요들을 전부 붙잡았다.
동시에 과천일격을 사용하여 호수 속으로 사라졌다.
팔요마왕도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지르더니 힘들게 모은 팔요마혈을 전부 태우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어라?"
입도지존은 깜짝 놀랐다.
'저 젊은이는 뭔가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연일까?'
"우리도 따라갑시다!"
부생선왕은 고함을 질렀다.
이제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호수에 들어가도 입도지존을 벗어날 수 없다면 진남 등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들의 생존 기회를 늘릴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나를 무시하는 게냐?"
무덤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문동관의 뚜껑이 전부 열리더니 흰색 긴 두루마기를 입은 입도지존은 작은 발로 허공을 밟으며 관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림 속에 있는 월선(月仙)처럼 아름다웠다.
"큰일 났다."
양대 선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가슴이 서늘했다.
* * *
같은 시각, 옥존영롱호.
진남 등은 호수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추위를 느꼈다.
선력으로 막아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방금 잠에서 깬 구천지존을 생각하자 진남 등은 뼈를 에는 고통을 참으며 힘껏 호수 아래로 내려갔다.
"제길, 이제 끝장이다! 후궁에 삼천 미인을 들이는 꿈을 절반밖에 못 이루고 아들도 서른여 명밖에 못 낳았는데 이곳에서 죽다니……."
팔요마왕은 비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대요들에게 명령을 내려 그의 입을 막으려던 진남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파란색 호수 속에 오만여 장이 되는 적금색 빛무리가 있었다.
빛무리 안에는 흰색의 호숫물이 흐르고 동부가 흐릿하게 보였다.
팔요마왕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거, 건원호(乾元湖)잖아? 이게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거지? 저, 저 안에 동부가 있어……!"
그는 버벅거리며 말했다.
건원호는 만야선류처럼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였다.
건원호는 더 희소한 보물이었는데 이미 몇만 년 동안 구천선역에 나타난 적 없었다.
나타나면 많은 강자들이 쟁탈하려고 찾아왔을 것이었다.
"하하, 역시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팔요마왕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크게 웃었다.
그는 마광으로 변해 건원호로 날아갔다.
그는 동부 안에 들어가면 밖에 있는 여인의 위협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펑-!
주변의 호숫물이 출렁거렸다.
팔요마왕은 힘껏 위에 부딪혔다.
반동의 힘에 충격을 받아 어지러웠다.
"설마 저것들이 무주궁도를 건드리고 있나?"
진남은 바로 무주궁도를 움직여 건원호로 날아갔다.
팔요마왕의 선례가 있었기에 진남은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옅은 금색의 빛에 닿았을 때 그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다.
진남은 순조롭게 안으로 들어갔다.
뼈를 에는 듯한 추위는 사라지고 따뜻함이 온몸을 감쌌다.
"너, 어떻게 들어갔어?"
팔요마왕은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다.
그는 곧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저기, 진남 아우. 나도 들여보내 줘. 우리가 한배를 탔다는 거 잊지 않았지?"
진남은 그를 힐끗 보더니 무주궁도로 스무 마리의 대요를 거두고 돌아서서 동부로 향했다.
"야, 진남! 이 나쁜 놈아……! 지, 진남 형님! 형님이라고 모실게, 응? 나를 버리고 가지 마!"
팔요마왕은 당황했다.
이때, 호수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거리가 멀었지만, 진남과 팔요마왕은 호수를 넘어 그들을 바라보는 입도지존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지, 진남 대인……!"
팔요마왕은 겁이 났다.
그러자 진남은 그를 무주궁도를 드러내 건원호 안으로 데려왔다.
팔요마왕이 불성실하고 진남과 아무런 정도 없었지만 적어도 진남을 해친 적은 없었다.
진남도 팔요마왕의 도움이 필요했다.
"후, 드디어 살았다."
팔요마왕은 길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건원호가 입도지존을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저 동부에 가보자."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곧 높이가 팔십 장, 넓이가 삼백여 장인 청석고옥(靑石古屋)에 이르렀다.
저택은 오래되고 소박한 기운을 풍겼다.
"이 저택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구나."
진남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금제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팔요마왕과 시선을 교류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천성용령화(天星龍靈花), 곤오수묘(昆吾樹苗), 만성초(滿星草), 육세허환선수(六世虛幻仙樹)? 이, 이건……?"
팔요마왕은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정원에서 짙은 선기를 풍기며 튼실하게 자란 고목과 선화들을 보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 천재지보들은 모두 선복 등급이었다.
그리고 선복 등급이 되지 않는 천재지보들도 많았는데 모두 진귀하고 보기 드문 것들이었다.
'진귀한 천재지보들이 왜 이렇게 많지?'
"영약들이 참 많습니다."
진남은 눈을 빛냈다.
그는 팔요마왕에게 영패를 건네며 말했다.
"영패에 적힌 영약들이 있는지 봐주십시오."
팔요마왕은 영패를 받자 어리둥절했다.
진남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패자라는 자가 저 정도밖에 안 돼?'
진남은 선복 등급의 천재지보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입도지존이라고 해도 선복 등급의 보물이 만야선류와 건원호 두 개뿐이었다.
진남은 고목과 선화들을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진남은 기분이 좋아지고 상처가 회복되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방 안을 살폈다.
방은 크지 않았고 장식들은 간단했다.
돌침대와 부들방석이 하나씩 있고 수많은 선마 그림을 새긴 향로가 하나 있었다.
"응? 저건……."
무언가 본 진남은 긴장됐다.
순간 무주궁도가 그의 식해에서 빛을 뿜으며 기뻐했다.
향로의 흰 연기 사이로 엄지손가락만 한 불꽃이 흔들렸다.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정도였다.
진남은 전에 이런 불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영혼에 박힌 듯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 불꽃이 무주궁도를 부른 건가?'
진남은 잠깐 생각하더니 조금의 선력과 의지를 불꽃에 튕겨 넣었다.
웅-!
진남의 식해가 이유 없이 떨렸다.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울려 퍼졌다.
"이건 화도선염이다. 내가 역천주단(逆天主丹)을 만들 때 천지만도(天地萬道)에 순응해 태어났다. 이 불꽃을 끝까지 수련하면 대도를 없애고 주선을 죽일 수 있다. 나는 이제 시간이 다 되어 몸이 죽고 도가 소모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인연이 있는 사람이 이 주령인(主靈印)을 수련하면 구천에 이름을 날릴 수 있다. 다만, 명심할 게 있다. 구천지존이 되기 전에 선령족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말이 끝나자 수많은 옛 문자들이 진남의 식해에 밀려들었다.
진남은 경악했다.
그는 목소리의 주인이 그를 속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좋은 일이 이유 없이 그에게 생겨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불꽃은 무주궁도를 불러들였다. 무주궁도는 전신이 나에게 준 것이다, 수피화권이 계속 무주궁도를 찾고 있다. 그럼, 전생 때문인가?'
진남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신비한 강자가 그의 전생과 사이가 좋아 화도선염을 남겼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도 그의 전생과 큰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무주궁도를 가지고 있어야 신비한 강자가 말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생에 제일주선이었는지 제이주선이었는지 몰라도 이번 생에 많은 영향을 주는구나."
진남은 중얼거렸다.
전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 그게 입도, 입도 선배님……. 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저, 저는 잘 모릅니다……."
밖에서 더듬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팔요마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몸을 떨며 방 안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의 앞에는 입도지존이 서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부생선왕과 지혼선왕이 있었다.
두 선왕도 안색이 창백했다.
내키지 않고 반항하는 기색이 두 눈에 그대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