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1화 아, 맞다! 수정!
상행천소선역, 운라고성.
한 주루의 독실에 용현령과 남세선왕이 앉아있었다.
제일선싸움 때 용현령은 진남에 대한 남세선왕의 살기를 느끼고 스스로 남세선왕을 찾아갔다.
많은 패자들 중에서 남세선왕은 최고급의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남세선왕이 이제 곧 구천지존으로 등극할 거라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
연합하여 진남을 상대하든 아니면 남세선왕과 사이가 좋아지든 그에게는 나쁜 점이 없었다.
용현령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진남 이자는 진짜 대단합니다. 구천선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남세선왕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현령은 화제를 돌려 물었다.
"남세 선배님, 이제 어떻게 진남을 상대할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남세선왕은 용현령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우리가 상대할 필요가 있느냐? 여러 무상도통의 사람들이 진남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 사람들 명단에 올렸을 것이다."
용현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세 선배님, 무상도통은 각 소선역에 흩어져있습니다. 진남이 그들의 사람들과 마주치는 건 어려울 겁니다. 또 그들은 진남과 싸우려고 많은 거물들을 파견하지 않을 겁니다."
용현령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계속 말했다.
"진짜로 진남을 죽이려면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남세선왕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현령은 난감해하지 않고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말했다.
"다만 짧은 시간 내에는 진남을 죽이면 안 됩니다. 아니면 궁우태황종의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진남이 죽었다 해도 궁우태황종에서도 뭐라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천허조교와 삼청고교의 사람들을 불러와 진남을 죽일 판을 짜겠습니다. 남세 선배님께서는 여러 패자들에게 진남을 공격하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진남은 반드시 죽을 겁니다."
남세선왕은 머뭇거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날려 사라졌다.
용현령은 입가에 띤 미소가 점점 짙어지고 눈빛도 독사처럼 사나워졌다.
남세선왕의 태도는 명확했다.
그는 용현령의 방법을 인정한 것이었다.
이제는 용현령이 천허조교와 삼청고교를 움직이기만 하면 남세선왕도 손을 쓸 것이다.
"진남아, 너는 이미 반 정도 폐인이 되었지만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어찌 안심할 수……."
용현령은 옅은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 * *
이때, 궁우태황종의 신비한 세 번째 소세계인 무명계 안.
기세가 웅장한 선궁 안에 장소지존과 황뢰지존이 양옆에 앉아있었다.
그들의 앞쪽 상석에는 노인이 앉아있었다.
노인은 머리가 새하얗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흐릿한 눈동자는 오래된 심연 같았다.
그에게서 보이지 않는 위세가 뿜어져 나왔다.
노인은 바로 장소지존과 황뢰지존의 스승이었다.
"스승님,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신비한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왜 진남의 도기만 부수고 진남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황뢰지존은 물었다.
그의 기억에 스승님이 손을 썼지만,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이미 검을 내리쳤고 스승님도 막을 수 없었다.
"의문스러워 할 거 없다. 나는 이미 그 검의 검세를 가뒀다. 만약 그자가 기어코 진남을 죽이려 했다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인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자가 검에 다른 검을 숨겼을 줄 몰랐다. 벌도지검(伐道之劍)일 줄이야. 벌도지검은 도기를 자르는 검이다. 나도 막을 수 없다."
두 명의 지존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진남의 도기만 자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다."
노인은 눈에 빛이 반짝거리더니 말했다.
"어쩌면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너희들이나 내가 나타날 거란 걸 미리 예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두 지존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럴 가능성은 너무 작았다.
만약 이 모든 걸 미리 생각했다면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궁우태황종 전체의 내막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들이 나타날 것까지 예상했다면 너무 대단했다.
"이미 한쪽 발을 그 경계에 들여놓고 두 명의 정상 등급의 구천지존도 있었는데 결국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를 막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이때,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절세형상이 대전 밖에서 걸어왔다.
대전 안의 모든 것이 차가워졌다.
진남이 있었다면 이 형상이 비월여제라는 걸 발견했을 것이다.
"어떻게 왔느냐? 구천지존 몇 명이 너를 포위하고 죽이려 하지 않느냐? 너는 지금 지존으로 등극하는 중요한 시기다. 장난칠 때가 아니다. 어서 의지를 거두고 최선을 다하거라."
노인은 어리둥절하더니 사납게 호통쳤다.
장소지존과 황뢰지존도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비월여제가 의지를 보냈을 줄 몰랐다.
다시 생각해 보니 또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신경 쓰다니, 그것도 방금 승선한 존재를. 이것이 비월의 작풍이 맞나?'
"네 명의 구천지존일 뿐이에요. 두려워할 것 없어요."
비월여제는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아직 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어요."
쿵-!
방대한 위압이 휘몰아쳤다.
선궁이 크게 흔들리고 땅이 갈라졌다.
"비월, 침착하거라. 방금 스승님께서도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검 속에 검을 숨겼을 줄 몰랐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장소지존은 쓴웃음을 지었다.
장로나 지존의 풍채가 전혀 없었다.
상행천소선역의 사람들은 비월여제가 궁우태황종의 명예 장로이고 명실상부한 제일패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풍화장사나 화어 부장로 등 거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비월여제가 몇만 년 전부터 줄곧 무명계 끝에서 잠들어 있고 같은 등급에서 경지가 가장 높다는 건 몰랐다.
비월여제가 원한다면 장로의 자리는 그녀가 맡아야 했다.
그의 스승과 다른 네 명은 비월여제를 매우 중히 여겼다.
비월여제가 천선일 때부터 그녀를 종문에 들이려 했다.
그러나 깊이 잠이 든 그 사람을 비롯해 모두 그녀에게 거절당했다.
때문에, 궁우태황종 전체나 구천선역 전체에서 스승과 이런 태도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비월밖에 없었다.
"창피하지 않아?"
비월여제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상석에 앉아있던 노인과 다른 두 명의 지존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창피했다.
"비월, 네가 몰라 그러는데 그자는 화도선염을 장악했다. 그자는 스승님의 한 방에 육신이 멸살되었는데 영혼은 도망갔다. 주선제구인의 후계자일 가능성이 크다."
장소지존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자는 후계자가 아니야. 그가 바로 주선제구인이야."
비월여제는 싸늘하게 말했다.
"뭐라고?"
두 지존은 깜짝 놀랐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주선제구인이라면 큰일이다. 주선이란 칭호를 받은 사람들 중 어느 누가 지존 이상의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지 않던가? 게다가 그중에서 서열 구 위라니. 그들이 나타난 건 또 뭘 뜻하는 걸까?'
희미한 태고금기, 제이 선역과 제삼 선역의 상고 고족 그리고 제일 선역과…….
"너는 어떻게 그자가 주선제구인이라고 확신하느냐?"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됐다. 너는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을 거다. 그래도 주선제구인이 왜 진남을 죽이려 왔는지는 말해줘야 하지 않느냐? 그자는 육신이 부서지면서도 진남을 죽이려 했다."
노인은 이마를 쳤다.
"몰라요."
비월여제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그녀도 이 문제가 궁금한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진남의 내막을 몰라도 그녀는 잘 알았다.
'진남은 주선제오인의 후계자다. 도리대로라면 주선제구인은 진남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예전의 주선제오인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던가? 그것은 진남을 위해 위기를 해결할 수단을 조금도 남기지 않았나?'
"내가 이번에 온 건 당신들에게 나중에 내가 상행천소선역에 없더라도 진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들은 최선을 다해 지지해주라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비월여제는 생각을 거두고 싸늘하게 말했다.
"안 그러면 당신들은 평생 후회할 겁니다."
말이 끝나자 그녀의 형상은 사라졌다.
"스승님, 이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황뢰지존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진남은 도기가 없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패자가 될 것이다.
구천지존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려야 하고 얼마나 큰 기연을 얻어야 할지 몰랐다.
"생각할 것 없다. 비월의 말이 맞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진남을 지지하거라. 주선제구인이 죽이려는 걸 보면 진남은 뭔가 있는 거 같다. 도경대성을 되찾고 이름을 떨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인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비월이 그 자식을 이토록 중히 여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지존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무상도통들은 이번 승선대전이 끝나면 진남에게 시비를 걸겠지? 구천지존으로 진급한 비월여제가 알게 되면 그들은 대단하다는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 * *
그 시각, 상행천소선역의 시뻘건 하늘.
세 명의 선왕이 앞장서고 진남 등이 엄청난 속도로 신비한 지존동부로 날아갔다.
여러 가지 형상들이 눈앞을 스쳐 지났지만, 진남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는 내내 온갖 고통을 모두 겪었다.
그가 오늘의 성과를 이룬 건 매우 중요한 사람이 그를 위해 목숨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력도 모르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의 한 방에 절반이나 잃었다.
원망하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그자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진남은 이번 생에 꼭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를 죽이겠다고 선마도세를 했을 것이다.
"진 형,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고비를 맞게 됩니다. 옛말에 고난을 겪지 않고 어찌…… 어찌……."
절반쯤 말한 구홍은 뒷말이 생각나지 않아 안색이 어두워졌다.
"선홍(仙虹)."
앞에서 가던 홍금선왕은 고개를 돌리고 가볍게 웃었다.
"아, 맞다. 고난을 겪지 않고 어찌 선홍을 볼 수 있겠습니까? 좀 전의 그 보라색 신조는 보는 눈이 없습니다. 저는 진 형을 믿습니다……."
구홍이 반쯤 말했을 때 진남은 손바닥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진남의 눈에는 선화가 꿈틀거렸다.
'고작 도기가 부서졌는데 상심할 필요가 있나? 나는 처음에는 황급 일품 무혼을 각성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이 정도로 강해졌잖아. 게다가 나는 전신의 후계자이다. 머릿속에 신비한 무주궁도와 신비한 보라색 수정이 있지…….'
"아, 맞다! 수정!"
진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완전히 승선했을 때 수정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또 하늘 끝에 신비한 형상도 나타났다.
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수피화권의 말대로 이것들은 묘묘 공주와 강벽난을 부활시키는데 중요한 것일 것 같았다.
진남은 길게 숨을 들이쉬더니 표정이 엄숙해졌다.
'도기가 부서졌으면 어때서? 다시 할 수 있다. 다음번에는 더 강해질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거다. 무상도통들에게 내가 몇 가지 문도지법을 수련했는지 보여줄 거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두 명의 여인을 인간 세상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이 안에 있겠다."
진남은 중얼거리며 보라색 수정에 신념을 주입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긴장됐다.
전에 수피화권이 진남의 체내에 진정한 힘이 있고, 진남이 승선해야만 알 수 있다고 했었다.
이 비밀이 보라색 수정에 숨어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전신이 왜 하필이면 그를 선택했고, 전신의 이름이나 무주궁도의 내력 등이 전부 그 속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남은 이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묘묘 공주와 강벽난의 영혼을 다시 만들 방법만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