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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947화 (947/1,498)

947화 지존화(至尊花)를 피우다

무엇 때문인지 진남의 영혼과 마음속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달갑지 않고, 분노하고, 차갑고, 감동이었다.

화르륵-!

이때, 그의 머릿속에서 도광이 번쩍이더니 시커먼 구멍이 생겼다.

담홍색의 도의가 뿜어져 나오는 고도가 안에서 날아 나왔다.

"이건 상행천소선역이잖아?"

옛 그림을 본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안에서 날아 나온 고도는 서른세 개였다.

'구천선역은 서른세 개의 소선역으로 나누어진다. 그럼 이 고도들은 각 소선역과 대응되나?'

고도가 계속 안에서 날아 나왔다.

나중에 나온 고도들은 더는 담홍색이 아니라 자금색이었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서른세 개의 고도보다 훨씬 강했다.

일흔두 개가 되어서야 고도는 더 날아 나오지 않았다.

웅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고도는 한데 뭉쳐 손바닥만 한 보라색 수정으로 변했다.

수정은 동그랗고 모서리가 없었으며 선이 가득했다.

수정 깊은 곳에는 천지의 모든 현묘함이 들어있고 많은 시대의 대단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진남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떨렸다.

그는 자신이 매우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대상계와 차하계에서 만 년이나 찾았다. 숨이 간당간당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꼈을 때 너를 찾아냈다. 너는 더는 예전의……."

이때 전신의 오래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는 살기가 하늘을 찌를 듯 변했다.

"죽일 놈! 이 천지는 너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생각하지 말거라. 아니면 나는 모든 걸 뒤엎더라도……."

목소리는 다시 무겁고 낮게 변했다.

끝없는 시공간을 넘어 온 것 같았다.

"너는 그 일을 잊지 말거라, 절대 잊어서는 안 돼! 꼭 명심하거라. 너는……."

목소리는 또 변했다.

이번에는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울부짖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비명을 지르는 소리뿐이었다.

이름 모를 곳에서 전에 없는 대단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이것들은……."

진남은 저도 모르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슉-!

조용하던 보라색 수정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진남은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다.

알 수 없는 느낌에 그는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그때, 천지에 변화가 일어났다.

도장이 사라지고, 궁우선산도 사라지고 무인들도 사라졌다.

그는 이름 모를 땅에 서 있었다.

세상과 구천선역 전체에 그만 남은 것 같았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

그는 깜짝 놀랐다.

'하늘'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동력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해진 것 같았다.

대신 하늘에 가득한 빛을 반짝거리는 크기가 다른 별들이 보였다.

잠시 후, 그는 혼란스럽고 조용한 끝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빛이 혼란스러움 속에서 솟아올랐다.

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패기 있는 왕좌로 변했다.

왕좌에는 늙은 형상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흐릿하고 선명하지 않았지만, 진남도 형상의 두 눈이 별들을 넘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 * *

같은 시각, 무명지.

절세형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녀의 방원 몇십만 리의 천지는 혼란스러워졌다.

몇십만 개의 대단한 힘이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 속에는 옅은 지존의지도 있었다.

"응?"

절세형상은 아름다운 눈을 번쩍 뜨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진작에 진남이 이번에 승선하면 대단한 변고가 일어날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곧 지존을 돌파할 거라 떠날 수 없었다.

다른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수단들도 진남에게서 일어난 변고를 막을 수 없단 말인가?'

잠시 후, 그녀는 새하얀 손바닥을 들어 법인을 만들어 자신과 몇만 리가 떨어진 삼생홍승을 움직였다.

"이건……."

그녀의 차갑고 아름다운 얼굴에 전에 없던 놀라움이 드러났다.

'전생의 의지가 어떻게 나타났지?'

그녀의 마음속에 의문이 가득했다.

전에 창람대륙에 있을 때 그녀는 진남에게 삼생겁을 가르쳐줬었다.

그러나 진남은 이미 열 번이나 윤회를 겪어 처음의 상태로 돌아갔기에 수련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전생의 의지가 나타났을까? 이건 설마 전신의 전생인가? 아니면…….'

* * *

같은 시각, 궁우태황종 휘하의 스물세 개의 고성 중 운라고성의 한 주루 안.

음양소세계의 음양지령을 죽인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창가의 나무 상에 앉아 영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나무 상의 무인들은 가끔씩 궁금한 눈길을 보냈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몇 시진 전부터 여기 앉아있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꼼짝도 하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매우 기이했다.

"응? 깨어났나 보구나."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뭔가 느낀 듯 중얼거리며 술잔을 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일이 이 지경이 될 줄 생각지 못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봐, 네가 갖고 있는 그 선검을 나에게 줘. 대신 네게 연단하는 공법을 주겠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고개를 돌려 잘생기고 귀족 같은 소년을 보며 말했다.

"네?"

잘생긴 소년은 어리둥절했다.

"영감탱이 노망났나?"

"저자의 말을 듣지 말거라. 연단 공법이 어찌 선검과 비교가 되겠느냐?"

주위의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어떤 사람들은 소년에게 충고를 했다.

지금의 구천선역에서 연단이나 연부, 진법 등은 선석을 조금 얻을 수 있을 뿐 지위가 높지 않았다.

"선배님, 이 선검으로 뭘 하실 겁니까?"

정신을 차린 잘 생긴 소년은 거절하지 않고 궁금한 듯 물었다.

그는 이미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를 오랫동안 관찰했었다.

"사람을 죽일 거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말을 마치자 그는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주위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잘생긴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제자리에서 살아질 수 있을 정도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악! 내 검! 어? 이, 이건……?"

잠시 후 비명이 들려왔다.

* * *

그 시각, 궁우지계, 산꼭대기.

"지선 경지 삼 단계로 진급했어!"

"승선하자 바로 지선 경지 삼 단계에 도달하다니! 몇만 년 동안 수많은 승선대조에서 진남만이 이뤘을 거야!"

"지선 경지 삼 단계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오천 년 전에 여제가 나타난 후 제일선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이 말은 과거가 될 것이다."

"그러게, 지금의 진남은 예전의 여제 대인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어. 그는 명실상부한 제일선이다!"

무인들은 모두 감탄했다.

부생선왕 등은 더욱더 기뻤다.

무상도통의 패자와 거물들은 진남과 원한이 없었다.

하지만 진남이 강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진남의 명성은 구천선역에 널리 알려져 모두가 알게 될 것이었다.

남세선왕은 눈빛이 싸늘해지고 살기가 꿈틀거렸다.

융왕장사와 용현령은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용현령은 소매 안에서 주먹을 꽉 쥐고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진남은 이미 지선 경지 삼 단계에 도달하여 천선 정상의 경지와 멀지 않았다.

진남이 천선 정상의 경지에 도달하고 패자가 되면 진남의 자질과 대단한 전력으로 그는 처지가 매우 위험해질 것이었다.

"저자가 진짜 승선했구나. 이제 어떡하지……?"

만소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전에 진남과 내기를 했었다.

진남이 승선에 성공하면 그는 진남의 탈것이 되어야 했다.

'만약 아버지가 이 일을 알게 되면 내 껍질을 벗기려 하실 거다.'

"오회생! 너 뭐 하는 거야?"

주도문의 패자가 반응하고 우레처럼 소리쳤다.

주도문에 있을 때, 패자는 오회생이 마음에 들어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오회생이 검을 내리치지 못할 줄 몰랐다.

'설마 주도대법을 전부 잊었나?'

"진 숙부, 화를 푸십시오. 저는 절대 그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를 공격한다면 저는 평생을 후회할 겁니다."

오회생은 곧게 서서 뜨거운 눈길로 허공에 있는 진남을 보며 말했다.

"저자가 승선에 성공해야만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저자를 격파할 겁니다."

패자는 더 화가 났다.

"너……!"

"잘했다! 진 형, 주도문은 인재가 많소. 나는 진짜 부럽소."

이때,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먼 하늘에 보라색 무늬가 있는 두루마기를 입고 두 눈이 불처럼 이글거리는 중년 사내가 가득한 선기를 머금고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열 명의 태상 장로와 서른여 명의 천선 등급의 거물들이 따랐다.

그들은 기세등등했다.

"화어(華禦) 부장로를 뵙습니다."

풍화장사, 융왕장사, 월절장사는 살짝 놀랐다.

무상도통의 패자들과 거물들도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했다.

"뭐? 화어 부장로?"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상행천소선역에서 화어는 명성이 자자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각 무상도통마다 두 명 혹은 세 명의 부장로가 있었다.

장로가 물러나면 부장로들이 장로가 되려고 싸움을 벌이곤 했다.

그러나 궁우태황종에는 부장로가 화어뿐이었다.

장소지존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가 바로 궁우태황종의 종주였다.

외부에는 또 화어는 반보지존이 된 지 이미 몇천 년이 되고 이제 곧 구천지존을 돌파해 구천선역의 거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런 인물이 나타났다? 설마 진남 때문인가?'

무인들은 빠르게 뭔가 생각나 눈에 부러움이 드러났다.

그들은 이번 전쟁이 끝난 후 진남이 이름을 떨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화르륵-!

화어 부장로가 말하기도 전에 하늘 깊은 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처럼 많은 도광이 뿜어져 나와 산꼭대기에 떨어졌다.

도광은 허공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내더니 예쁘고 눈부신 몇십만 개의 꽃송이로 변했다.

무인들은 꽃바다에 들어간 것처럼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지존지화다!"

한 천신 경지의 무인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개세천재는 패자의 자격이 있는 자를 가리켰다.

절세천재는 구천지존의 자격이 있는 자를 가리켰다.

진남은 의심할 것 없는 절세천재였다.

그러나 모든 절세천재가 지존화를 피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전에 고서에서 본 적 있었다.

누가 지존지화를 피우면 그가 천지대도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나중에 구천지존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일 줄이야.

화어 부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남을 바라보았다.

좋아하는 눈길로 말했다.

"좋다. 승선하자마자 지존화를 피웠구나. 이런 자질을 가진 자는 구천선역 전체에도 열 명이 넘지 않을 거다."

그는 모든 것이 끝난 후 어떻게든 진남을 궁우태황종에 가입시키겠다고 이미 결심했다.

장로가 스스로 나서더라도 반드시 꼭 이루겠다고 결심했다.

'제길! 이 정도에 도달하다니. 지존지화를 피우다니! 안 돼,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겠어. 진남이 궁우태황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죽여…….'

용현령은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머릿속으로 많은 계획을 세웠다.

쿵-!

이때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산꼭대기에서 우레 같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길이가 방원 팔만 리 되는 허공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많은 강기가 꿈틀거렸다.

손에 선검을 든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낮게 웃었다.

순식간에 천지가 살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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