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2화 진남을 먼저 공격하거라
산꼭대기에 무인들이 모였다.
네 개의 등급을 나타내는 네 종류의 의자에는 이제 거의 반이 찼다.
많은 무인들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다.
많은 신념들이 진남을 훑어보았는데 어떤 자들은 그냥 스쳐 지났고 어떤 자들은 아예 진남의 몸에 머물러서 샅샅이 살폈다.
진남은 여전히 안색이 변하지 않았지만 몰래 전신의 선동을 움직여 청룡목 의자의 천재들을 살폈다.
청룡목 의자에 앉은 자들은 싸움에 참여하는 인선들 외에 개세천재거나 지선 경지 이상은 되는 자들이었다.
한참을 살피던 진남은 시선이 멈추었다.
진남과 멀리 떨어진 맞은편에 흰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높이 틀고 얼굴이 정교하며 피부도 하얀 여인이었다.
여인은 신비한 검 세 개를 메고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무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시끌벅적했지만, 그녀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는 여전히 눈에 띄었다.
마치 진흙 속의 흰 연꽃 같았다.
"저 여인은 혈안선배님이 말했던 천지칠자이자 윤회종의 제일 진전제자인 연경연일 거다."
진남은 중얼거렸다.
천지칠자는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대부분 무인들이나 개세천재들은 승선한 후 잘해봤자 인선 경지 사 단계까지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경연은 이미 인선 경지 육 단계를 돌파했다.
이때, 연경연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였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자 진남과 시선이 부딪혔다.
그녀는 놀라지 않고 별다른 말도 없이 진남에게 공수했다.
진남도 인사를 하면서 의혹이 생겼다.
그는 윤회종의 화간도를 진압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악의가 없고 오히려 선의로 진남을 대했다.
진남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눈길을 돌렸다.
눈에 띄는 자가 네 명 더 있었다.
사마심북(司馬尋北)은 승천응화교의 제일 진전제자이고 인선 경지 육 단계였다.
그는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부채를 들고 있었다.
우아한 군자 같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소녀들을 찾아 쉴 새 없이 구르고 있었고 내뱉는 말은 들어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조괄(趙括)은 인선 경지 칠 단계이자 소속이 없는 무인이었다.
그는 철혈의지를 풍기고 패기가 하늘을 찔렀다.
혈안인선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는 상고 지존의 부하인 천선대장군의 환생이라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세 번째는 황보후(皇甫侯)라는 자에게 진남은 시선이 갔다.
인선 경지 칠 단계이고 궁우태황종의 제일 진전제자였다.
온몸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것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 같았다.
진남은 저도 몰래 구리거울을 떠올렸다.
마지막 한 명은 진남과 안면이 있는 주도문의 제일 진전제자 오회생이었다.
그는 승선을 하고 인선 경지 칠 단계를 돌파했다.
"진남,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의 약속을 잊지 말거라."
오회생은 신념을 전했다.
무덤덤하던 그의 두 눈에 빛이 돌고 전의가 떠올랐다.
지난번 싸움이 끝나고 그는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했다.
수련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을 차분하게 할 수 없었다.
진남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게 됐다. 구천선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널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이렇게 많다니."
모습을 감추었던 맹구궁은 진남의 옆자리에 앉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마찬가지로 진남의 옆자리에 앉은 구홍은 그를 경계했다.
만소가 없어진 걸 진남은 살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백옥 의자에 숨어있는 만소를 발견한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종주의 홍운지체야말로 다시 보게 되는구나."
맹구궁은 표정이 굳어서 이를 갈았다.
'이놈은 매를 버는구나.'
구홍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종주처럼 신분이 고귀한 자는 선룡자 의자에 앉아야 하지 않아?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맹구궁은 그를 힐끗 보더니 진남에게 오만하게 말했다.
"전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너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너도 잊어버린 것 같으니 다시 알려주려고 왔다. 나는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나중에 선도복지 두 개를 고르거라."
그 말을 들은 진남은 괜히 찔렸다.
그는 이 약속을 잊지 않았다.
두 개나 되는 선도복지를 잊어버릴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제대로 승선하지 못했다.
제일선 싸움에서 마지막 신력마저 선력으로 변하면 모두 알아차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잊어먹은 척했다.
의외로 맹구궁이 먼저 찾아와 언급하니 진남은 살짝 부끄러웠다.
"도우들, 미안하다. 내가 늦었구나."
이때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산꼭대기에서 울려 퍼졌다.
무인들은 저도 몰래 고개를 들고 살폈다.
환한 미소를 지은 잘생긴 청년과 살기가 가득한 중년 사내 그리고 청색 옷을 입은 여인이 허공에서 걸어왔다.
"풍화장사(風華掌使) , 융왕장사(融王掌使), 월절장사(月?掌使)를 뵙습니다."
십삼 대 무상도통의 거물과 제자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공수했다.
부생선왕 등 패자들과 맹구궁도 마찬가지였다.
"궁우태황종과 천허조교, 삼청고교의 장사들인가?"
진남은 눈을 반짝거렸다.
장사란 종주의 사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무상도통의 종주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보통은 측근을 장사로 임명하여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이번 제일선 싸움이 그런 경우였다.
장사들의 경지는 패자 정도지만 신분과 지위는 훨씬 높았다.
"하하, 다들 예를 차리지 말거라. 도우들이 멀리서 궁우태황종까지 와준 것만 해도 영광이다."
풍화장사는 호탕하게 웃고 손을 흔들더니 제자리에 앉았다.
품위나 말투 등은 봄바람처럼 따뜻해서 거리감이 없고 다가가기 쉬웠다.
경지가 낮은 무인들은 슬며시 안도했다.
"이제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풍화장사는 패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진지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종주를 대표해서 선포한다. 제일선 싸움을 시작하겠다!"
말을 마친 그는 진남을 보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배짱이 큰 저 녀석은 나에게 복덩어리다.'
융왕장사는 혐오하는 눈빛으로 풍화장사를 보더니 바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제일선 싸움의 규칙은 간단하다. 첫 관문에서 개세천재들은 바로 진급하고 나머지는 추첨을 통해 무예를 겨루겠다."
그는 손을 휘둘렀다.
궁우태황종과 천허조교 그리고 삼천고교의 장로들이 도장 아래로 날아갔다
싸움에 참여하는 인선 경지 무인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도장 아래로 날아가 추첨을 하고 각 구역에서 무예를 겨루었다.
선광들이 번쩍이고 폭발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오, 얼굴을 가린 청년의 경지가 괜찮구나."
"방금 승선했는데 인선 경지 사 단계를 돌파하다니 평범하지 않다."
"저 여인은 무도 사극지경을 곧 돌파할 수 있겠구나. 저 여인의 내력을 알아보거라. 만약 소속이 없다면 데려와야겠다."
무상도통과 패자 세력의 장로들 그리고 다른 무인들은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침묵했다.
사극지경을 장악하지 못한 무인들이 제일선 싸움에 참가하는 것은 제일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혹여 거물의 눈에 띄어 지원을 받는다면 앞날이 창창했다.
시간이 흐르고 도장은 열기가 가득하고 의논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진남은 진지하게 몇 번의 싸움을 살핀 후 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몇 시진이 지나고 첫 번째 관문이 드디어 끝이 났다.
도합 이백열 명의 인선 경지들이 진급에 성공했다.
도장의 분위기도 살짝 변화가 생겼다.
서로 대화를 나누던 패자들은 입을 닫고 도장을 주시했다.
일부 경지가 낮은 무인들은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추첨방식을 통한 싸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려한 것은 뒤에 있었다.
이 싸움에서 사방을 휘젓고 눈에 띄는 자들은 무상명예를 얻고 구천선역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월절장사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살짝 열리고 목소리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듣기 좋은 목소리가 사람들 가슴을 흔들었다.
"두 번째 관문은 모든 무인들이 함께 혼전을 벌인다. 생사는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을 이기고 마지막까지 남으면 승선지조의 제일선이 될 수 있었다.
가장 위에 앉은 풍화장사는 호탕하게 웃고 말했다.
"이번 제일선의 상품은 무척 풍성하다. 우리 세 무상도통 내에서 하나의 선도복지를 선택하여 반년 동안 수련할 수 있고……."
상품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개세천재들은 무상의 영예를 위해 싸움에 참가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상품을 더 보태겠다."
풍화장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위엄 있는 목소리가 시공을 넘어 산꼭대기에 전해졌다.
보이지 않는 기세가 삽시간에 퍼졌다.
패자들이라 해도 그런 기세에 보잘것없이 작아져 가을 낙엽처럼 느껴졌다.
"종, 종주?"
풍화장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의 말에 다른 두 장사와 패자들 그리고 무인들은 경악했다.
수많은 제일선 싸움이 일어났어도 무상도통의 종주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오천 년 전이었다.
비월여제가 모두를 이기자 종주가 놀라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말이 많아도 제일선 싸움은 결국 인선 경지들의 싸움이었기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수많은 제일선 싸움이 일어나고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들이 나타났지만 결국 천선이나 지선 경지도 되지 못했고 심지어 죽는 이들도 많았다.
구천지존이 주목할 싸움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궁우태황종의 종주가 제일선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상품을 추가하겠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종주를 뵙습니다."
"장소지존(長?至尊)을 뵙습니다."
풍화장사 등 거물들은 정신을 차리고 공수했다.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장소지존의 목소리가 천지 사이에 메아리쳤다.
"갑자기 흥이 오른 거라 어떤 상품을 더하면 좋을까? 음, 이렇게 하자. 제일선이 된 자는 하루 동안 내가 직접 지도하겠다."
그의 말에 무인들은 감동했다.
하루 동안 구천지존의 지도를 직접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안목이나 대도에 대한 깨우침 혹은 다른 방면에서도 엄청나게 진보할 수 있었다.
"그럼 싸움에 참가하는 무인들을 대표해서 미리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풍화장사는 다시 공수했다.
그는 의아했다.
장소지존과 알고 지낸 지 삼천여 년이 흘렀기에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장소지존은 갑자기 흥이 올라 이유 없이 일 처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은 왜 상품을 추가하겠다고 한 걸까?'
다른 두 장사들과 패자들도 미간을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풍화장사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우들, 잘 들었느냐? 종주를 대표해서 선포한다. 제일선 싸움의 두 번째 관문을 시작한다."
말이 끝나자 무인들은 꿈에서 깬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조괄, 연경연, 황보후, 오회생, 사마심북 등 개세천재들은 엄청난 기세를 드러내고 빛으로 변해 도장으로 날아갔다.
진남도 도장으로 날아갔다.
다른 인선 경지 무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도장에 입장했다.
"대전이 시작되었다."
천선 경지의 거물들은 긴장해서 도장에 정신을 집중했다.
도장의 분위기는 풍운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내 명령을 전하거라. 사마심북은 다른 무인들과 연합하여 진남을 죽여라."
"오회생, 먼저 진남을 공격하거라."
승천응화교와 주도문의 개세천재들은 전음을 받고 두 눈에 차가운 빛이 떠올랐다.
진남이 음양소세계에서 한 행동 때문에 그들은 손실도 크고 체면도 잃었다.
이제 기회가 생겼으니 그들은 놓칠 수 없었다.
남세선왕과 현령종의 두 눈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그들도 비슷한 신념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