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화 재수가 없구나
천지칠자란 수신량, 나염 등 제일 진전제자와 다른 지존 종문의 제자들 그리고 정천기 등이었다.
구천선역의 개세천재는 생각보다 세력이 더 방대했다.
"임청파, 네 실력으로 천지칠자로 불리는 게 가당하기나 하냐?"
수신량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임청파, 나는 수신량이 싫지만 저 말은 일리가 있다."
나염은 술잔을 들고 냉랭하게 말했다.
"너희 둘. 억울하다면 음양소세계에 들어가서 끝까지 상대해줄게."
임청파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대전에 불꽃이 튀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개세천재들도 암암리에 신경전을 벌였다.
"응?"
진남은 살기를 느꼈다.
그는 눈썹을 추켜세우고 살폈다.
고진일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평범한 외모에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눈에 띄지 않는 청년이었다.
"네가 쇠신 진남이지? 용(龍) 장로가 네 머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의 옆에 두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들도 차갑고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진남을 쳐다봤다.
셋의 기운은 심연처럼 깊어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체내에 신비한 기운이 가득했다.
파란색 도포를 입은 청년보다 경지가 살짝 낮았다.
개세천재일 가능성이 컸다.
"진남, 파란색 도포를 입은 청년은 천허조교의 제일 진전인 사인선(賜人仙)이다. 저자가 태어날 때 많은 선인들이 축하를 해줬다는구나. 예삿일이 아니다."
혈안인선은 그들을 보더니 전음했다.
진남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사인선과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사인선이 그를 죽이려는 것은 용현령 때문이었다.
용현령은 천허조교에서 거물급으로 성장했다.
사인선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옆에 있던 세 사람을 데리고 천허조교의 자리로 갔다.
사인선은 진남의 실력이 대단하고 평범하지 않은 개세천재지만 자신이 나서면 진남을 죽이는 건 쉽다고 생각했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그는 다른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더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 뒤로 구궁금선궁의 패자와 다섯 태상장로들이 대전에 나타났다.
그들의 인도하에 신경전은 사라졌다.
여러 세력의 장로와 제자들은 서로 오가며 다른 세력의 거물과 천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수신량을 제외하고 임청파, 사인선, 나염, 정천기 등의 주변에는 많은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여러 도우들이 한곳에 모였다니 참 귀한 일이오."
잠시 후, 구궁금선종의 태장 장로가 일어서서 우렁차게 말했다.
"선고가 열리면 여러 소년 영웅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승선을 하게 되오. 다른 도우들과 유월도성의 몇십만 무인들 모두가 선고에 참가할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함께 즐깁시다."
말이 끝나자 대전은 정적이 흘렀다.
무상도통의 거물들이나 개세천재들이나 모두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구궁금선종이 또 성대한 도박을 열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남도 관심이 갔다.
열다섯 선고가 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진남은 구궁금선종이 조직한 도박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규칙은 다들 알고 있을 테니 이번 도박에 대해 설명하겠소. 이번에는 등급을 금삼궁(金三宮)으로 나누었소."
거물들은 두 눈에 빛이 떠올랐다.
구궁금선궁의 도박판은 거의 등급을 나누지 않았다.
등급을 나눈다면 금삼궁(金三宮), 금육궁(金六宮), 금구궁(金九宮)이었는데 금구궁이 가장 컸다.
금삼궁은 가장 낮은 등급이고 흔했다.
승선 싸움에서 제일선 싸움을 제외하고 딱 한 번 금삼궁 도박판이 벌어졌다.
"이번에 우리가 얻은 소식에 따라 승선방(升仙榜)을 만들었소. 승선방에는 음양소세계에 들어갈 개세천재들이 있소. 여러분은 승선방을 보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소. 그리고 판돈을 걸고 싶으면 승선방에서 바로 조작하면 되오.
오늘 밤 자시가 되면 판을 마무리하겠소."
말을 마친 후, 다섯 태상 장로는 함께 법인을 만들었다.
거물들과 천재들을 제외한 몇십만 무인들은 방대한 유월도성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허공에 빛무리들이 떠올랐다가 사람들 앞으로 날아가 영롱하고 투명한 옥석으로 변했다.
옥석 위에 여러 법문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힘에 의해 문자와 숫자가 가득한 수막으로 바뀌었다.
무인들은 옥석을 살폈다.
"승선방이구나."
"일 위, 임파청. 무상도통 극생문의 제일 진전제자. 천지칠자 중 한 명. 천신 정상의 경지. 도경소성. 승선 가능성은 배율이 일 대……."
"이 위, 화간도(花間道). 무상도통 윤회종(輪回宗)의 진전제자. 진짜 경지는 확실치 않음. 천지칠자 중 오회생과 싸워서 지지 않았음. 승선 가능성……."
"삼 위, 수신량. 무상도통 환선도종의……."
"사 위, 정천기. 남세선왕의……."
"오 위, 나염……."
이름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름 뒤에는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
또, 무인의 우세와 열세 등도 잘 분석해놓았다.
대전의 여러 거물들과 개세천재들 그리고 몇십만 무인들은 승선방의 이름들을 확인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육, 육십칠 명의 개세천재?"
음양소세계에 이렇게 많은 개세천재들이 참가할 줄 몰랐다.
승선싸움에 참가한 개세천재는 도합 삼백 명도 되지 않았다.
"허허, 승선방은 개뿔. 임청파와 화간도가 어떻게 나보다 위일 수 있어?"
수신량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표정이 음침했다.
나염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개세천재들도 마찬가지였다.
개세천재들은 콧대가 높았다.
그런데 근거가 없는 승선방으로 그들의 실력에 순위를 매기니 불쾌했다.
진남은 하나씩 살피다가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오십삼 위, 진남. 액운지체. 쇠신 진남이라 불림. 차하계에서 올라온 비승자……. 배율 일 대 일점오."
"오십삼 위?"
구홍, 서선지, 혈안인선은 순위를 확인하고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진남이 고작 오십삼 위라니?'
"승선방은 개뿔. 우리 진 형이 고작 오십삼 위라니! 말도 안 돼!"
구홍은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이건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수모를 주려는 게 분명해!'
"진남이 오십삼 위인 게 무슨 문제야? 전력이 괜찮은 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꼴찌였을 거야."
이때, 앞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 머리카락이 허리에 닿고 이목구비가 그림 같고 금색 무늬가 있는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이 대전에서 들어섰다.
청년은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았다.
그가 나타나자 대전이 훨씬 밝아지고 따뜻해졌다.
청년은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감히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청년의 오만함은 뼛속 깊이 새겨졌다.
"소종주를 뵙습니다!"
구궁금선종의 패자와 다섯 태장 장로는 동시에 일어나 인사했다.
"소, 소종주?"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구궁금선종은 구천선역의 십삼대 무상도통에서 서열 일 위였다.
구궁금선종의 소종주는 지위나 다른 것들이 패자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자가 왜 직접 왔을까?'
"구궁금선종의 소종주? 맹구궁(孟九宮)?"
다른 무상도통의 거물들과 나염 등 개세천재들은 표정이 흔들렸다.
"맹구궁?"
서선지도 놀랐다.
그녀는 빨리 반응하고 진남과 구홍 등에게 전음했다.
"구궁금선종의 종주는 아들이 두 명 있어. 큰아들 맹금선(孟金仙)은 절세천재이고 둘째 아들 맹구궁은 미래의 종주야. 맹구궁은 인선 정상의 경지인데 지금까지 무도 사극지경을 돌파하지 못했어. 다만, 천정적으로 대단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녀는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홍운지체(鴻運之體)라는 체질이야."
진남과 구홍 등은 어리둥절했다.
'홍운지체?'
서선지는 소곤거렸다.
"맹구궁이 인선 경지를 돌파할 때 몇백 명의 천신들에게 포위공격을 당했어. 맹구궁은 아무런 수단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천신들이 다 죽었어. 또, 맹구궁이 절세흉지에 잘못 들어섰는데 세 걸음을 옮기자 엄청난 전승이 나타나고 바로 승선했어."
구홍, 만소, 혈안인성 등은 헛숨을 들이켰다.
맹구궁이 가진 홍운지체가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가졌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계가 크니 별 기이한 일이 다 있구나."
진남은 두 눈에 빛이 스쳤다.
동시에 관심이 생겼다.
'홍운지체는 무적의 체질이 아닐 거야. 어딘가 약점이 있을 건데 어떤 방법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여러분, 승선방은 내가 얻은 소식에 따라 순위를 정한 것이요. 다들 이의가 없겠지?"
맹구궁은 주인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불만을 토로하던 나염 등 개세천재들은 입을 열었다.
그들은 맹구궁이 구궁금선종의 소종주로서 식견이 비범하여 함부로 순위를 매기지 않았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수신량은 냉소를 짓더니 또 비아냥거리려고 했다.
옆에 있던 눈치 빠른 장로가 그의 입을 막았다.
"네가……."
맹구궁은 진남에게 시선을 돌렸다.
"쇠신 진남이겠구나?"
대전의 모든 시선이 진남에게 쏠렸다.
"진남도 왔어?"
정천기, 고진일 그리고 많은 개세천재들은 깜짝 놀랐다.
진남은 대전에 온 후로 줄곧 구석진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남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무상도통의 거물들과 수신량 등 개세천재들도 진남의 내력을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진남은 실력이 괜찮은 개세천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맹구궁이 왜 그를 주목할까?
"너는 상고시대의 액운지체라고 들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껏 처음 나타난 홍운지체다."
맹구궁은 진남이 대답하기 전에 선주를 들고 이어서 말했다.
"그것 때문에 너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거물들과 개세천재들은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열다섯 개의 선고가 동시에 열리는 것은 희귀한 일이었다.
그러나 구궁금선종의 종주가 직접 나타나 도박판을 열 정도는 아니었다.
"설마 진남이 맹구궁의 평생 숙적이야?"
여러 거물들과 개세천재들은 중요한 문제를 알아차리고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맹구궁은 다른 개세천재와 절세천재들과 달랐다.
천선 경지나 패자가 와도 그를 죽일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숙적이 있다는 건 다른 세력들에게는 무척 좋은 일이었다.
"맹구궁에게 찍혔어?"
구홍, 만소, 혈안인선은 안색이 변했다.
맹구궁이 진남을 숙적으로 여긴다면 좋은 일은 아니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말거라. 나는 진남을 숙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맹구궁은 입가에 조소를 띠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네 실력은 승선방에서 적어도 오 위는 할 수 있다. 그런데 너는 운이 나빠서 나를 불러들였다. 내가 와서 제압하면 너는 빼도 박도 못하고 쇠신이 된다. 승선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말이 끝나자 인선의 위세가 대전을 휩쓸었다.
맹구궁의 몸속에서 찬란한 빛이 솟구쳤다.
이 빛이 사람들이 말하는 운수라는 것이었다.
"진남은 재수가 없구나."
거물들과 개세천재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처음에 두 사람을 숙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남의 액운지체는 맹구궁의 홍운지체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구홍, 만소, 혈안인선은 표정이 구겨졌다.
맹구궁이 처음에 진남에게 꼴찌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했던 말을 그들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진남은 평온했다.
오해를 푸는 방법은 쉬웠다.
진남은 자신이 액운지체가 아니라고 사실을 말하면 되었다.
그러나 진남은 도발하는데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승선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