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화 천지칠자(天地七子)
"옥명불(玉明佛)이라고 하는 보제고찰종의 개세천재다. 진전제자들 중 용선 바로 아래 서열이다. 사실은 여인이라는 소문도 있어."
제영전의 한 대전에서 혈안인선은 진남에게 전음했다.
"다른 한 명은 삼청고교의 진전제자인 도복청원자(道僕靑元子)다. 전에 개세천재를 한 명 죽인 적이 있다."
혈안인선은 사라진 시간 동안 인선 경지로 진급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개세천재들의 정보도 수집했다.
진남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진남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바둑판을 주시했다.
그는 수신량이 판을 만들고 어떻게 사람들을 상대하는지 보고 싶었다.
"허허, 두 개세천재들이 나를 상대하려고 나왔구나."
수신량은 조롱했다.
"하지만 예전이든 나중이든 너희들은 나에게 이름을 기억시킬 자격도 없다."
말이 끝나자 바둑판에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모였다.
신지들이 천지에 떠올랐다.
옥명불은 흔들리지 않고 불호를 크게 읊었다.
도복청원자는 냉소를 지었다.
"그래?"
둘은 모습을 바꾸어 동시에 검은 바둑돌을 두었다.
그러자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둑판은 흔들릴 뿐 금이 가지 않았다.
흰 바둑돌도 커다란 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신량의 경지는 역시 평범한 개세천재로는 겨룰 수 없구나!"
무인들은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은 수신량이 싫었지만, 그의 실력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신량, 나는 나염(羅閻)이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너에게 악몽이 될 것이다. 아무도 너를 구할 수 없다."
이때, 금색 짧은 머리에 눈은 까맣고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청년이 전갑을 입고 성문에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기운은 바다처럼 깊어서 알 수 없었다.
그가 풍기는 적멸의지는 허공을 흔들었다.
옥명불과 도복청원자는 그가 나타나자 빛을 잃었다.
"나염이 왔다!"
무인들은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진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두 눈에 빛이 스쳤다.
나염에게서 신비한 힘이 느껴졌다.
서선지의 힘과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달랐다.
"나염은 십삼대 무상도통 중 하나인 태연무생종(太衍無生宗)의 제일 진전이다. 태어날 때부터 상고시대의 적멸지체였다."
혈안인선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는 무척 포악하다. 도경의 문턱에 입문했고 도경소성을 돌파하는 중이라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들은 진남의 눈에 빛이 점점 진해졌다.
무상도통의 제일 진전제자들의 경지는 진남의 예상보다 훨씬 비범했다.
쉽게 생각할 자들이 아니었다.
"구천선역에 도합 열세 개의 무상도통이 있다. 이번에 얼마나 많은 제일 진전제자들이 모여들까?"
진남은 혼잣말을 했다.
나염은 강한 기세로 날아가 검은 바둑돌을 두었다.
엄청난 의지가 옥명불과 도복청원자의 의지를 전부 감싸고 절세일검으로 변했다.
흰 바둑돌들이 연거푸 빛을 잃었다.
"나염, 큰소리치기는. 내 눈에 너는 하찮은 축에도 못 낀다."
수신량은 두 배의 압력을 느꼈지만, 여전히 비아냥거렸다.
그는 환의를 날려 보냈다.
"수신량, 아직도 입이 살아있구나."
호통이 두 번 울리고 방대한 의지가 다른 두 궁전에서 폭발해 바둑판으로 날아갔다.
하나는 살기가 하늘에 솟구치는 것이 마치 살선 같았다.
다른 하나는 화의가 이글거리는 것이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수신량의 건방진 태도가 거슬린 두 천재도 공격에 나섰다.
"도우들, 환선도종에 인재가 없는 줄 아느냐?"
불쾌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수신량과 전혀 다른 환의가 나타나 흰 바둑돌로 변했다.
환선도종의 다른 진전제자이자 개세천재였다.
이 천재는 수신량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같은 종문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하하, 바둑은 둘 줄 모르지만 이런 싸움에 내가 빠지면 안 되지."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가 일 장이고 얼굴에 보라색 무늬가 가득한 청년이 바둑판 중앙에 들어섰다.
청년이 두 손으로 땅을 짚자 두 개의 의지가 동시에 폭발하여 양쪽 개세천재들을 공격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번쩍이는 도광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진남도 잘 알고 있는 자였다.
남세선왕의 양대 진전제자 중 한 명인 정천기였다.
정천기는 무도경지에 새로운 돌파가 생겨 도경소성을 이루었다.
"도, 도경소성?"
무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을 수 없었다.
"정천기, 너 도경소성을 이루었어?"
나염도 반응했다.
그의 기세는 더 늘어났다.
"그렇지만, 도경소성도 내 상대는 못 되지."
그는 법인을 만들어 적멸의지를 드러냈다.
"정천기, 도경소성을 돌파한 게 뭐가 대수냐? 내가 바둑 두는 걸 방해하면 가만 안 둬. 썩 꺼지거라!"
말을 마친 수신량은 의지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는 이제 금방 도경의 문턱에 이르렀을 뿐이었다.
쿠쿠쿵-!
성에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수신량의 도발에 바둑판은 이제 혼전으로 번졌다.
검은 바둑돌과 흰 바둑돌이 연거푸 떨어졌다.
때로는 검은 바둑돌이 우세하고 때로는 흰 바둑돌이 우세했다.
이때, 흰 바둑돌이 옥명불의 검은 바둑돌을 부쉈다.
옥명불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큰 충격을 입은 것 같았다.
"수신량, 선고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바둑을 두는 것뿐인데 살초를 사용할 필요가 있느냐? 그렇다면 내가 상대해주마!"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궁전에서 엄청난 의지가 솟구쳤다.
거리들도 흔들렸다.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이건 지선 경지 거물의 의지다!'
"이게 뭐야? 실력이 안 되니 어른이 꼬맹이를 괴롭히느냐?"
다른 궁전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청난 의지가 선룡대수(仙龍大手)로 변해 지선 경지 거물의 의지를 막았다.
방대한 강기가 도성 전체를 휩쓸었다.
환선도종의 지선 경지 거물이 나섰다.
"두 분, 선고대전은 인선 경지들의 싸움이다. 늙은이들이 끼어드는 건 좀 별로 아닌가?"
동시에,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맞는 말이다. 소문이라도 나면 천하 무인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다."
"웃음거리라니? 저 땡중이 먼저 참지 못하고 나섰다. 환선도종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싸우자!"
여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엄청난 기운들이 연거푸 솟구쳤다.
커다란 유월도성이 벽과 지면 등에서 몽롱한 달빛을 반짝이며 의지들의 충격을 막았다.
다른 무인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개세천재들 사이의 혼전만으로도 불안했는데, 지선 경지의 의지들까지 하늘 가득 날아다니니 무인들은 어쩔 줄 몰랐다.
곧 엄청난 폭풍이 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들은 겁이 났다.
이대로 자리를 뜨고 싶었다.
"도우들, 음양소세계가 끝난 후 싸우는 게 어떠냐?"
이때 나이 든 목소리가 모든 의지들을 덮었다.
"그때까지 내 체면을 봐서 서로 싸우지 말고 지내거라."
고작 한마디에 위엄도 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기이한 마력이 있는 것처럼 휘몰아치던 강기가 모두 사라졌다.
분위기가 평온해졌다.
입을 연 사람은 구궁금선종의 한 패자였다.
"패자면 대수인가? 내가 저들과 바둑을 두겠다는데 구궁금선궁은 너무 많은 걸 관여하는 게……."
수신량은 바로 비아냥거렸다.
패자가 나서자 그는 사실 물러설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입만 살아서 쫑알거렸다.
이때, 환선도종의 장로가 그의 말을 끊었다.
"선왕 대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만두겠습니다."
환선도종의 장로가 그리 말하자 다른 무상도통의 장로들도 따라 대답했다.
나염 등 개세천재들은 그 모습을 보자 자리를 떴다.
"도우들, 고맙다."
늙은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힘을 사용하여 빛으로 만들어진 바둑판을 부숴버렸다.
커다란 유월도성은 다시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선고가 열리는데 패자까지 와 있을 줄이야."
"맞아. 음양소세계에 대체 얼마나 많은 개세천재가 올지 알고 싶어."
"허허, 오늘 밤 연회에서 구궁금선종은 도박판을 열 거라고 하더군.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무인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수신량이 일으킨 싸움 덕에 성안의 분위기는 은근히 달아올랐다.
제영전에서 진남 등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홍, 서선지, 혈안인선은 많은 비밀들을 전달했다.
진남은 승선지조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진남은 두 개의 선고밖에 가보지 못해서 아는 것이 적었다.
* * *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다.
"진남 대인, 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구궁금선궁의 제자가 다시 나타났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진남 등은 연회를 진행하는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은 제영궁의 가운데에 자리했고 천여 장이 되었으며 웅장하고 대범했다.
대문에는 붉은색 융단을 길게 펼쳐놓았고 양쪽엔 미인들이 늘어섰다.
사방에서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무인들은 모두 기운이 비범했다.
대부분은 인선 정상의 경지였고 일부는 지선 경지였다.
그들은 십삼대 무상도통의 장로들이었다.
대전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촛불, 향로에서 타는 향 등에서 엄청난 선의가 풍겨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궁전은 보물지에 가까웠다.
"구궁금선종은 역시 십삼대 무상도통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종문답구나. 임시로 열린 연회도 이렇게 호화스럽게 장식하다니……."
진남은 저도 몰래 감탄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갑자기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대전에 모인 무인들은 이미 이백여 명이 되었는데, 각각 옥으로 된 상 앞에 앉았다.
인선 경지와 지선 경지 외에 천선 경지 거물들도 몇십 명은 되었다.
수신량, 나염, 옥명불 등 개세천재들도 자리에 나타났다.
진남은 열몇 개의 낯선 기운을 발견했다.
옥명불 등에 비해 약하지 않은 기운이었다.
"진남, 저분은 태연무생종의 태상 장로인 설미천선(雪眉天仙)이다."
"얼굴을 가린 여인은 천허조교의 범음천선(梵音天仙)이다."
"그녀 옆에 앉은 자는 개세천재인……."
혈안인선은 진남에게 낮은 목소리로 전음했다.
여러 개세천재들의 소식 외에 무상도통에서 보낸 세력들도 그는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몰래 살폈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 대전의 무인들이 점점 많아졌다.
진남은 저도 몰래 숨을 들이쉬었다.
이곳에 온 개세천재는 서른 명이 더 되었다.
"임청파(林靑破)!"
"저자가 왜 왔지?"
"설마 아직 승선하지 못한 거야?"
이때 갑자기 대전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인들은 시선은 일제히 한곳에 쏠렸다.
수신량과 나염 등 개세천재들도 고개를 돌리고 쳐다봤다.
대전 대문에 팔이 한 개밖에 없는 긴 머리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무표정하고 느긋하게 안에 들어섰다.
청년의 옆에는 진남과 안면이 있는 개세천재 고진일이 있었다.
"극생문의 사람인가?"
진남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아직 무주궁도 안에 백복을 제압하여 극생대도진경의 대강을 연화하는 중이었다.
"진남, 임청파는 극생문의 제일 진전제자일뿐만 아니라 천지칠자(天地七子) 중 한 명이다. 실력이 대단하다."
혈안인선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지칠자?"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너 모르느냐?"
혈안인선은 의아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설명했다.
"천지칠자란 무인들 중에서 전해지는 말이다. 무상도통의 제일 진전제자에 문도 대강을 수련하고 도경소성을 이룬 일곱 명을 가리킨다. 무인들은 제일선은 그들 중에서 탄생할 거라고 생각한다."
혈안인선은 한마디 보충했다.
"다른 여섯 명은 이미 인선 경지로 진급했다."
진남은 그 말을 듣자 두 눈에 빛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