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화 제영궁에 모이는 천재들
"아, 구리거울. 왜 음양소세계로 가야 합니까? 명월천궐에 가면 안 됩니까?"
진남은 궁금한 게 생겨 붉은 끈에 신념을 전했다.
"방금 확인해보니 명월천궐이 저와 더 가깝습니다."
붉은 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남이 어이가 없다고 느낄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진남의 머릿속에서 느긋하게 울려 퍼졌다.
"명월천궐은 음률에 능한 사람이거나 음률에 천부가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너는 그런 재능이 있느냐?"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명월천궐에 가려면 그런 조건이 있는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음률이라는 것은 악곡의 선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악기나 악곡 등을 가리켰다.
진남은 음률에 능하지도 않고 재능도 없었다.
물론, 굳이 엮는다면 주룡포효술을 배운 것과 엮을 수도 있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진남은 포권했다.
"마지막 선고이니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이번에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나."
구리거울은 한참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진남은 그 말을 듣자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구리거울은 성격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예전에는 벌어질 위험들을 미리 알고 있어도 진남에게 귀띔하지 않았다.
이번에 주의를 주는 걸 보면 매우 강렬한 예감이 든 게 분명했다.
진남은 전에 나타났던 '조심'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둘을 결합해 보면 반드시 대이변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진남은 심호흡을 하고 표정이 평온해졌다.
이변이 일어난다면 진남은 전신이 남긴 각인을 하나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승선해야 했다.
구리거울의 목소리가 다시 진남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삼 개월 후, 나를 구리거울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제일지존이라고 불러야 한다."
"제일지존?"
진남은 깜짝 놀랐다.
구리거울이 그런 경지까지 오를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럼 미리 제일지존이 된 걸 축하드립니다. 구리거울 도우."
진남은 구리거울을 놀려줬다.
차가운 목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남은 이미 익숙했다.
그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걸음을 놀렸다.
* * *
하루가 지났다.
만소와 진남은 음양소세계에 도착했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시선이 쏠렸다.
허공에 웅장한 고성이 떠 있었다.
오만여 리가 되는 성은 고철로 만든 것 같았고 기세가 대단했다.
특히 성벽에서 반짝이는 달빛에는 도의가 섞여 있었다.
진남이나 만소 그리고 사방에서 모여든 무인들은 그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아 보였다.
이 성은 이미 선기의 단계를 넘어 반보도기 경지에 이르렀다.
"이 성은 유월고성이다. 구궁금선종의 녀석들이 마지막에 더 큰 도박판을 벌이기 위해 내놓은 곳이다."
만소는 설명하는 한편 요력으로 온몸의 깃털을 전부 자금색으로 바꾸었다.
그는 기운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지막 두 개의 선고, 특히 음양소세계에 얼마나 많은 개세천재와 거물들이 모일지 몰랐다.
심지어 패자들이 올 수도 있었다.
만소는 자신을 잘 감추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
진남은 어이가 없어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허공에 대고 포권을 하고 신념을 전했다.
"선배님들, 저는 먼저 성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자 부생선왕의 목소리가 진남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가거라. 우리 셋은 이곳에 머물겠다."
지혼선왕도 대답했다.
"진남, 이건 마지막 기회이니 잘 잡아야 한다. 다른 건 걱정하지 말거라. 엄청난 일을 저질러도 우리가 대신 해결해주마."
홍금선왕과 부생선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진남이 승선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진남이 실패하면 지존동부의 물건을 가질 희망이 사라졌다.
"선배님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반드시 승선하겠습니다."
진남은 약속을 하고 만소와 함께 성으로 날아갔다.
성에 들어서는 순간 둘은 깜짝 놀랐다.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그들을 덮쳤다.
거리에 무인들이 가득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매우 많은 무인들이 와 있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곳에만 해도 무인들이 삼만 명은 더 돼. 그럼 성안에 무인들이 몇십만 명은 된다는 소리야?"
만소는 기가 찼다.
한 성에 몇십만 명의 무인들이 있는 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십만 명의 무인들 중 절반은 음양소세계에 가려고 온 것이었다.
무인들의 경지 또한 지선 경지 오 단계 이상은 되었다.
그 아래의 경지는 몇 되지 않았다.
"좋네."
진남의 두 눈에 빛이 스쳤다.
무인이 많을수록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진남은 전에 없이 성대한 장면이 필요했다.
"대인, 명성이 자자한 쇠신 진남 대인이 맞으시지요?"
이때,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궁도안이 있는 옷을 입은 지선 정상의 경지인 청년이 진남에게 다가왔다.
"응? 무슨 일이냐?"
만소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입은 옷을 보니 구궁금선종의 내문제자인 것 같았다.
"진남 대인은 상행천소선역의 개세천재십니다. 장로의 명령에 따라 제영궁(諸英宮)으로 모시겠습니다."
청년은 안으로 들라는 손짓을 했다.
"다른 개세천재들도 그곳에 있습니다. 오늘 밤에 대장로께서 연회를 열고 개세천재들을 모실 겁니다. 진남 대인, 구궁금선궁의 면을 봐서 함께 해주십시오."
진남은 그의 말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잘 부탁한다."
구홍과 서선지도 제영궁에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
진남은 연회에 참가하여 여러 개세천재들도 만나보고 싶었다.
청년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진남을 데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고성의 뒤쪽으로 향했다.
* * *
몇백 개의 크기가 다르고 신마도안을 새긴 궁전들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진남은 동술로 안을 살폈다.
그러나 어떤 힘에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남 대인, 오늘 밤 연회는 정전에서 진행됩니다. 꼭 참가하시기 바랍니다."
청년 제자는 진남을 한 궁전에 데려갔다.
그는 금색 글자가 새겨진 초대장을 넘겨주고 물러갔다.
"진남 도우."
"진 형."
진남의 소식을 받은 서선지와 구홍 그리고 혈안인선이 찾아왔다.
예전과 달리 서선지는 청색의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하얀 가슴팍을 드러내고 쇄골에 옅은 금색의 옥돌을 걸었다.
승선한 그녀는 기세가 더 생동했다.
두 눈은 수정처럼 빛이 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만소는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진남도 저도 몰래 두어 번 더 쳐다봤다.
구홍과 혈안인선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위를 살짝 풍겨 인선임을 느끼게 했다.
"어? 자금신조잖아?"
서선지는 만소를 궁금한 시선으로 살폈다.
자금신조는 상고 이족이었다.
그녀는 예전에도 본 적이 있어서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자금신조를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남, 절대 선지에게 알려주면 안 돼!"
만소는 당황해서 얼른 진남에게 전음했다.
자신이 진남의 탈것이 되었다는 것을 서선지가 알면 만소는 이번 생에 그녀를 만날 희망이 사라질 것 같았다.
"음, 우연한 기회에 얻었다. 이 새가 웬일인지 나한테 붙어서 떨어지지 않더라고."
진남은 살짝 웃었다.
"그래서 탈것으로 거두었다."
만소는 피를 토할 것 같았다.
'진남,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응?"
문득, 셋은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진남도 파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슉-!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커다란 성안에 울려 퍼졌다.
다른 무인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제영전의 한 궁전에서 옅은 노란색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빛은 흩어지더니 커다란 바둑판 모양으로 변했다.
"심심해서 그러는데 어느 도우가 신력을 바둑 삼아 나와 한판 두겠느냐? 물론 연합하여 나를 상대해도 된다."
무인들은 경악했다.
그들은 이렇게 성대한 모임을 하는데 바둑을 두려는 사람이 있을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영궁의 개세천재라고 해도 다른 개세천재나 강자들의 불만을 불러올 수 있었다.
평소에 개세천재들은 여러 소선역에서 멋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 되었다.
커다란 성에 어떤 인재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흥, 저 녀석은 역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군."
구홍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무척 싫은 티를 냈다.
"저자는 누구냐?"
진남은 흥미가 생겨 질문했다.
빛으로 바둑판을 만드는 순간 진남은 바둑판에 엄청난 환의(幻意)가 숨어 있는 걸 발견했다.
환의는 보통 상대방의 심지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바둑판의 환의는 패기와 살기가 가득했다.
"십삼대 무상도통 중 하나인 환선도종의 진전제자인 수신량(修神良)입니다."
구홍은 더욱 싫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자는 성격이 이상합니다. 상대방의 경지가 어떤지를 상관없이 다 비웃습니다."
구홍은 어제 환선도종에 오자마자 수선량에게 조롱을 당했다.
하마터면 그와 싸울 뻔했다.
서선지는 살짝 웃더니 말했다.
"저자는 확실히 이상해. 그런데 태어날 때 신비한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서 매우 강한 개세천재가 되었지."
이때, 여러 무인들이 성에서 날아올랐다.
"바둑을 두고 싶다니 내가 상대해주겠다."
"도우가 흥이 난다는데 상대해줘야겠지?"
무인들은 천신 정상의 경지이고 바둑에 조예가 깊었다.
그들은 수신량이 바둑판을 벌이고 도발하는 모습이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바둑으로 수신량을 제대로 혼내주려고 했다.
하지만 바둑판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쿠쿠쿵-!
굉음이 세 번 울려 퍼졌다.
세 무인은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강한 의지에 맞은 것처럼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저자가 감히 공격을 했어?"
무인들은 경악했다.
유월도성에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저들은 경계심이 아주 낮구먼."
탄식하는 무인들이 더 많았다.
유월도성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다만 무인들끼리 무도의지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없었다.
또, 양쪽 모두 동의하면 무력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실력으로 감히 나와 바둑을 두려고 하다니."
수신량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커다란 성에 울려 퍼졌다.
"너희들은 너무 멍청하구나. 내가 정말로 바둑을 두려고 했을까? 그냥 핑곗거리를 찾아서 하찮은 것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거다."
그의 말에 많은 무인들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수신량은 너무 건방졌다.
그는 무인들을 하찮은 것이라고 비하했다.
"아미타불. 수 시주, 악기가 너무 강하다. 우리 보제고찰문에 귀의하거라. 아니면 큰 화를 입을 것이다."
이때, 불경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흰색 승려 옷을 입은 노인이 불광에 둘러싸여 나타났다.
그는 자상한 표정으로 다가와 바둑판에 들어섰다.
무형의 의지가 폭발했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흰색 승려 옷이 펄럭거렸다.
"시주가 판을 만들었으니 나도 예를 차리지 않겠다."
노인은 두 눈에서 금빛을 뿜었다.
그는 얼굴이 빠르게 변하더니 잘생긴 청년으로 변신했다.
기운이 폭발한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펑-!
커다란 검은 바둑돌이 나타나고 사방이 흔들렸다.
"수신량, 너무 건방지게 굴면 안 돼. 나도 오래전부터 너를 혼내주려고 했다고."
이때,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루한 도포를 입었지만 두 눈이 절세신검처럼 날카로운 청년은 걸음마다 연꽃을 피우며 바둑판에 들어섰다.
그는 경지가 확 바뀌었다.
손가락으로 짚으니 눈부신 빛이 모여 또 다른 검은 바둑돌이 되었다.
두 개의 강한 의지는 흑룡처럼 무형의 환의에 충격을 주었다.
방대한 강기가 휘몰아쳤다.
아무도 선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의지들이 싸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