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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901화 (901/1,498)

901화 액운지체(厄運之體)

부생선왕은 대전을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저자는 내가 데려가겠다. 문제 없지?"

대전 안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방금 진남을 죽이려던 태상 장로와 다른 태상 장로들은 안색이 어두워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연합하면 부생선왕의 의지를 격파하는 건 매우 쉬웠다.

그러나 결과는 감당할 수 없었다.

"부생 선배님, 이 일은……."

무정진인은 용기를 내서 말했다.

'부생선왕이 진남을 데려가면 남세선왕 대인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응?"

부생선왕은 눈빛이 싸늘해졌다.

대전 전체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엄동설한이 된 것처럼 깊은 곳의 강한 기영들도 벌벌 떨었다.

누구나 진남처럼 패자의 위협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무정진인은 안색이 어두워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내가 남세에게 전달하겠다."

부생선왕은 한마디 하더니 손가락을 튕겨 빛을 진남에게 주입하고 그를 데려가려 했다.

"자네, 이미 만장천역에서 위엄을 제대로 부렸소. 굳이 전달할 필요가 있겠소?"

이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갑자기 대전에 울려 퍼졌다.

많은 선광이 만장천역의 깊은 곳에서 떨어지더니 천천히 흐릿한 형상을 이루었다.

형상은 남세선왕의 의지였다.

"남세선왕도 나타났어?"

대전 안의 무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세 대인을 뵙습니다!"

무정진인과 다른 태상 장로들은 기뻐하며 연달아 인사를 올렸다.

"혹시 또 다른 변화가 있을까?"

고원선과 소붕왕 만소는 눈을 반짝거렸다.

"예를 차릴 필요 없다. 좀 전의 일은 너희들을 탓하지 않을 거다."

남세선왕의 형상은 손을 저었다.

남세선왕은 진남을 힐끗 보더니 부생선왕을 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파란색 빛의 적을 데려가는 건 틀린 거 아니오?"

부생선왕은 눈빛이 긴장됐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는 잘 알았다.

남세선왕은 이미 도경대성을 이루어 도경원만과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또, 그는 남세선왕이 줄곧 힘을 모으고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언제든 도경원만의 경지로 진급할 수 있었다.

도경원만을 이루면 구천지존이 될 수 있었다.

평소라면 그는 절대 남세선왕과 맞서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진남이 갖고 있는 물건을 생각하고 결심을 내렸다.

이번에도 그는 그 물건 때문에 백 일을 보냈다.

마침 진남을 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보물로 내 사람에게 죽을죄를 내리다니. 자네가 말해보시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부생선왕은 웃으며 물었다.

"이자는 내가 데려가겠소. 대신 나중에 내가 신세를 갚겠소. 어떻소?"

남세선왕을 보자 그는 조금 양보했다.

"자네가 나에게 신세를 갚을 것까지 있겠소? 긴말하지 않겠소. 나는 오늘 반드시 그자를 죽이겠소."

남세선왕은 말투가 담담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패기가 가득했다.

"만약 내가 기어코 데려가겠다고 하면 어쩔 거요?"

부생선왕도 웃음을 거두었다.

"그럼 내가 나중에 부생천경으로 찾아갈 거요!"

남세선왕도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이토록 진남을 죽이려는 건 진남의 신분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진남이 전에 남천문을 부순 사람이라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왠지 진남이 싫었다.

그런데 마침 망도석이 반응을 일으켰기에 그는 신념을 전했던 것이었다.

그가 지금 이러는 건 상행천소선역의 다른 사람들에게 만장천역에서는 패자라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웅-!

대전 전체가 끊임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마음이 흔들렸다.

양대 패자가 대치하는 상황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런 대치 상황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다.

"역시 남세선왕이구나!"

고원선과 소붕왕 만소의 얼굴에 기쁨이 드러났다.

남세선왕이 말을 꺼냈으니 진남은 여기 남게 될 가능성이 컸다.

"역시 남세선왕이군. 패기 있소."

부생선왕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사라졌다.

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오늘 이자를 지키려는 사람은 나 뿐이 아니오."

그의 말이 끝나자 만장천역의 하늘 끝에서 별처럼 눈부신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기세가 못처럼 깊고 위력을 떨치는 형상이 끝에서 걸어왔다.

"남세, 오늘 내 얼굴도 봐주면 어떻겠소?"

형상은 목소리가 종소리 같았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웅웅 소리가 났다.

"지혼선왕(地魂仙王), 어떻게 자네도 왔소?"

남세선왕은 의아했다.

"남세 오라버니, 미안해요. 저도 왔어요."

이때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홍색 치마를 입은 몽환적인 여인이 천천히 걸어왔다.

세 번째 선왕이 나타났다.

"홍금선왕(紅琴仙王), 자네도 왔소?"

남세선왕은 깜짝 놀랐다.

진남이 파란색 빛의 적으로 지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세 선왕의 의지가 모두 강림했다.

세 선왕이 진남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진남은 비록 도경소성을 이룬 개세천재일지라도 세 선왕의 행동은 과분했다.

휘하의 개세천재들을 단련시키기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거물이나 세력들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개세천재들은 위험에 부딪혀도 스스로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서, 선왕들이 세 명이나 왔어?"

무정진인 등 강자들과 대전에 있던 다른 무인들은 놀라서 가슴이 떨렸다.

그들은 진남의 배후 세력이 이 정도로 강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제 네가 부생선왕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서선지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진남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도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부생선왕이 손을 썼다면 진남은 납득했을 것이다.

진남은 지혼선왕이나 홍금선왕과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

'두 거물은 왜 나를 도우러 왔을까? 설마 부생선왕이 나를 위해 두 분을 모셔온 걸까?'

"이자는 우리와 인연이 있어서 일부러 찾아왔어요. 그러니 남세 오라버니, 한 번만 봐줘요. 이자에게 기회를 한번 주세요."

홍금선왕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기운을 풍겼다.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악의를 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진남이 파란색 빛의 적이 된 게 이유가 있었구나. 지신 경지일 뿐인데 세 선왕이 직접 나서게 하다니."

남세선왕은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자의 자질은 이후에 우리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될 수 있소."

대전의 분위기는 다시 살벌해졌다.

부생선왕, 지혼선왕, 홍금선왕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보이지 않는 기세는 다시 평온해졌다.

남세선왕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세 분께서 직접 오셨는데 내 어찌 체면을 안 봐줄 수 있겠소? 저자를 풀어줄 수 있소. 다만, 조건이 있소."

부생선왕은 공수하고 말했다.

"남세 도우, 어떤 조건인지 말해보시오."

"부생 형님,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오."

남세선왕은 옅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조건은 간단하오. 저자의 몸을 살필 수 있게 해주시오. 내가 반드시 없애야 하는 적인지 확인하게 하면 되오."

말을 마친 그는 세 선왕이 대답하기 전에 큰 손을 내밀었다.

수많은 파란색 부문이 나타나 진남의 몸에 붙었다.

그는 진남이 바로 차하계에서 남천문을 부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세 선왕은 동시에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진남도 바짝 긴장했다.

그는 남세선왕이 그의 몸을 살펴볼 줄 몰랐다.

남세선왕은 진남의 신분을 발견하면 삼대 선왕이 있다고 해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무주궁도, 전신의 혼, 체내의 기운을 감추거라!'

진남은 속으로 몰래 외쳤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는 극도로 긴장했다.

웅-!

파란색 부문이 일제히 움직이며 수많은 무형의 힘으로 변했다.

무형의 힘은 용처럼 진남의 몸속으로 들어가 샅샅이 뒤지며 헤엄쳤다.

대전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다들 숨죽이고 지켜봤다.

그들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윽고 진남의 몸속에서 헤엄치던 무형의 힘이 흩어지더니 사라졌다.

남세선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남세 도우, 진남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적이요?"

부생선왕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물었다.

"아닌 거 같소."

남세선왕은 미간을 펴고 진남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하지만 체내의 기운을 깨끗하게 만든 도우의 수단이 대단하구나."

전승을 얻는 강한 천재는 반드시 체내에 여러 기운들이 있었다.

하지만 진남처럼 깨끗한 기운을 가진 자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남세 도우, 아직 모르는구먼. 진남은 상고에서 사라진 액운지체(厄運之體)요."

부생선왕은 속으로 몰래 안도하고 말했다.

"아직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서 체내 기운이 그 정도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만장천역도 영향을 받을 거요."

그의 말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액운지체?'

진남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언제부터 액운지체였지?'

"고마워요, 남세 오라버니.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갈게요."

홍금선왕은 살짝 웃었다.

그리고 손을 휘둘러 선인의 빛으로 진남을 감싸고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부생선왕 등도 그 뒤를 따랐다.

"진남의 일은 모레 명령을 다시 내리마. 오늘은 이만 가겠다. 너희들은 계속 연회를 즐기거라."

남세선왕은 오래 머무르지 않고 자리를 떴다.

"또 한 번 도망가게 했어."

소붕왕 만소와 조리점 그리고 고원선은 탄식했다.

그들은 실망이 컸다.

반면 구홍은 벽 쪽에서 걸어 나오며 안도의 숨을 길게 쉬었다.

"개세천재가 또 나타났어!"

"진남은 실력도 대단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세력에 소속되어 있구나!"

"진남이 액운지체라고 했잖아. 대체 액운지체가 뭐야?"

무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감탄하는 동시에 액운지체라는 것에 대해 짙은 호기심이 생겼다.

서선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자세히 알아보게 했다.

조사를 마친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액운지체란 처음에는 천지에 영향을 미치고 최고 경지까지 수련하면 다른 사람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진남이 만장천역에 온 지도 한참이 되었는데 그 주변 사람들이 변화한 건 없잖아."

한 무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운명은 확실히 존재했다.

다만 그런 경지의 힘은 구천지존이라고 해도 장악하기 어려웠다.

연회는 계속되었다.

한 주 향이 타는 시간이 지나고 만장천역에 세 개의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개의 이상이 하늘 깊은 곳에 나타났다.

무인들은 눈길을 돌렸다.

만장천역에 십 년 혹은 십오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 개의 보물지가 동시에 열렸다.

남세선왕의 세력에 속한 강자들은 깜짝 놀랐다.

대전에 있던 무정진인과 천선 경지 강자들 그리고 다른 무인들도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았다.

'액운지체가 이렇게 강한 것이었어?'

"흠흠, 선지 누님은 광유선체이고 제 형님은 액운지체입니다. 자질이나 실력 그리고 배경까지 거의 비슷한데 고민해보시겠습니까?"

구홍은 서선지에게 다가가 눈을 찡긋했다.

"만소 따위는 절대 제 형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서선지는 그를 흘겨봤다. 보통은 화가 나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매력이 있었다.

"허튼소리는 그만하거라."

말을 마친 그녀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뜨거워지고 상기되었다.

이번 일을 거쳐 진남은 상행천소선역에 처음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러 세력의 무인들은 그 뒤로 쉽게 진남을 건드리지 못했다.

진남의 쇠신(衰神) 칭호도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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