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6화 생일잔치의 시작
대응책을 생각하고 있던 고원선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눈을 깜빡이며 낮은 소리로 전음했다.
"만소, 네가 생각한 거랑 다르다."
만소는 사람들과 인사하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생각한 거랑 다르다고? 그럼 어떤 건데?"
고원선은 화를 내며 말했다.
"방금 한 무인이 줄곧 선지 옆에 붙어있었다. 선지는 매우 화가 났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했어. 내가 꺼지라고 했는데도 그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만소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몇 마디 꾸며대도 만소가 진남을 공격할 거라는 걸 잘 알았다.
"누구야? 감히 선지를 괴롭히다니!"
만소는 안색이 더 싸늘해져 앞을 바라봤다.
그는 이번에도 전음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커다란 궁전 안에 울려 퍼졌다.
'볼만하겠는데.'
궁전 안의 강자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붕왕 만소가 서선지를 사모한다는 건 상행천소선역 무인들이 다 알았다.
고원선과 조리점은 마주 보며 더 활짝 웃었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은 짐작이 갔다.
'소붕왕 만소는 진남을 공격할 것이다.'
"진, 진남? 왜 네가 여기에……?"
그러나 진남을 보자 만소는 얼굴의 싸늘함이 사라지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진남이 자신을 밟고 자신을 탈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광경을 그는 아직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잊을 수 없었다.
"왜? 내가 여기 오면 안 되느냐?"
진남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 자식은 하필이면 조리점이 공격을 펼치려는데 나타난 거야. 나의 계획이 틀어졌잖아.'
"어……"
만소는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 많은 강자들과 고원선, 조리점은 어리둥절했다.
그 소붕왕 만소가 진남을 만나고는 천적을 만난 것처럼 기운이 사라지다니.
"네가 진남이냐? 네가 명음 태자를 죽이고 우리 소주님을 공격하고 소주님을……."
인신 정상 경지의 두 강자는 자신들이 말실수를 한 것 같아 화제를 돌려 살기등등하게 말했다.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금시붕왕 아래의 세력들은 이미 진남을 큰 적으로 생각했다.
제자든 장로든 진남을 만나면 공격해야 했다.
"저자가 명음 태자를 죽였다고?"
대전 안의 많은 강자들은 깜짝 놀랐다.
흑포를 입은 여인도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고개를 들고 까만 눈동자를 드러냈다.
고원선과 조리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세천재가 되는 건 매우 어려웠다.
보통은 서로 싸운다 해도 상대방을 죽이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개세천재들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는 건 매우 어려웠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알 수 없었다.
'진남이 명음 태자를 죽였다면 그의 실력이 평범한 개세천재를 초월했다는 거 아닌가? 설마 도경의 문턱에 도달했다는 건가?'
"헛소리하지 말거라."
진남은 만소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아니면 나의 탈것이 될 것이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진남이 감히 소붕왕 만소를 탈것으로 만들겠다고?'
'미친 거 아니야?'
"네 주제에 감히 나를 탈것으로 만들겠다고? 말해줄게. 나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너를 죽일 거다! 갑시다!"
소붕왕 만소의 눈에 분노가 드러났다.
그는 낮게 소리치고는 인신 정상의 경지의 강자 두 명과 함께 궁전을 떠났다.
진남이 그에게 주입한 봉인하는 힘은 이미 풀렸다.
그러나 계속 싸우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다.
만일 진남이 무예를 겨루자고 하면 그는 상대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간 거야?"
강자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무리 봐도 만소는 기세가 없었다.
그 행색이 마치 부랴부랴 도망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탈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만소가 이러는 걸 보면 뻔했다.
만소는 진남을 매우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소붕왕 만소를 이 정도로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상행천소선역 전체에 몇이 없을 거다.'
서선지의 눈에 묘한 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가볍게 전음했다.
"진남 도우, 혹시 도우는 비월여제 대인의 후계자야?"
'구리거울의 후계자?'
진남은 얼떨떨했다.
이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나는 절대 그녀의 후계자일 리가 없다."
구리거울의 차갑고 과묵한 성격을 생각하면 그녀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조 도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 우리 이 잔을 비우자."
진남은 다시 잔을 들었다.
"진남 도우, 술을 마시려고 한 건 자네를 떠보기 위해서였소. 이제 자네의 능력을 알았으니 됐소."
조리점은 몸을 떨더니 빠르게 반응했다. 품위를 잃지 않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전에는 잘못했소. 진 도우가 양해해주시오."
그는 포기할 때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도리를 잘 알았다.
작은 일 때문에 진남처럼 가늠할 수 없는 개세천재의 미움을 살 수 없었다.
옆에 있던 고원선은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다."
진남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좀 전의 풍파를 겪은 후 진남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여러 세력의 장로나 천재들은 연달아 그에게로 와 술을 권했다.
진남은 흥미가 없었지만 모두를 상대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술시가 되었다.
만장천역의 크고 작은 궁전에 찬란한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만장천역의 가장 깊은 곳에는 신비한 구멍이 생긴 것처럼 천역지기가 솟아올랐다.
앞선 양보다 다섯 배나 많아졌다.
평소에 팔던 법보나 선술 등은 모두 가격이 낮아졌다.
무인들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했다.
무정진인의 생일잔치도 시작되었다.
"도우들 이번 술자리는 이제 끝냅시다. 이제 우리 함께 가서 스승님의 생신을 축하해드립시다."
조리점은 사람들에게 포권하고는 가장 먼저 사람들을 거느리고 대전을 나갔다.
이번 생일잔치가 열리는 곳은 만장천역 세 번째 층에서 가장 웅장한 대전 안이었다.
대전은 선광이 하늘을 찌르고 기세가 비범했다.
땅에 엎드려 있는 긍고거수(?古巨獸) 같았다.
대전 문의 양옆에는 서른 명의 제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붉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무인들을 맞이했다.
"삼청고교에서 왔습니다."
"천허조교에서 왔습니다."
"궁우태황종에서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삼대 무상도통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몇십 명의 제자들이 동시에 큰소리로 소리쳤다.
상행천소선역에서 무정진인 등급의 연회는 개세천재가 왔다 해도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패자가 직접 오거나 무상도통이 사람을 보냈을 때만 이런 대접을 받았다.
"이렇게 많은 무인들이 왔어?"
진남은 구홍의 옆에 서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본 그는 저도 모르게 조금 놀랐다.
대전은 방원 오천 장 정도 되었다.
대전의 주위에 몇백 가지 다른 선기(仙氣)가 있었다.
듣기 좋은 선악(仙樂)이 매 귀퉁이에서 울려 퍼졌다.
선석(仙石)으로 만들고 짙은 선의를 뿜는 천 개의 상이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진법 같았다.
연회가 방금 시작되었지만 이미 천 개의 상 절반에 자리가 찼다.
무인들이 몇천 명은 되었다.
무인들은 모두 기운이 매우 강했다.
"진 형, 저 노인은 삼청고교의 내문 장로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은 천허조교의 내문 장로와……."
구홍은 자리에 앉자 진남에게 신념을 전했다.
여기 있는 신분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전부 소개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전신금동을 움직여 훑어봤다.
하늘을 보고 열을 안다고 그는 이번 모임을 통해 상행천소선역 전체에 대해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정천기(丁天奇)가 왔어!"
이때 시끌벅적하던 대전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 나는 곳을 바라봤다.
키가 일 장 되고 피부가 까맣고 얼굴에 보라색 무늬가 가득한 청년이 대전 밖에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조용해졌다.
보이지 않는 기운에 무인들이 놀란 것 같았다.
그는 몇천 명의 무인들을 보지 못한 것처럼 빈 상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응?"
진남의 눈에 금광이 반짝거렸다.
정천기는 매우 기이했다.
기운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동술을 움직여 보자 깊은 못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정천기는 조리점과 함께 남세선왕의 양대 진전으로 불려. 저자는 이미 도경의 문턱에 닿았어. 상행천소선역 전체에서 인신 경지 아래의 개세천재들 중에서는 최고급이라고 할 수 있어.
향풍이 진남을 스쳤다. 서선지는 다른 상에서 진남 옆으로 와 앉았다.
그녀의 눈에는 빛이 반짝거렸다.
"다만 저자는 한 가지 결함이 있어."
진남은 되물었다.
"결함?"
서선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소문에 저자는 무상전승을 얻었대. 그러나 영혼이 큰 충격을 받아 인격을 잃어 싸우기를 좋아하고 대화를 잘하지 못한대. 매번 싸울 때마다 상대방의 단전을 파괴해야 한대. 전에 조리점과 싸울 때도 조리점의 단전을 파괴한 적 있어. 봐, 조리점은 절대 저자를 아는 체하지 않잖아."
진남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서선지의 말대로 조리점은 사람들 속에서 걸으면서도 정천기의 방원 삼십 장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거물들도 무시했다.
"진남……."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소붕왕 만소와 고원선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두면 서선지가 진남에게 넘어갈 것 같았다.
이때, 남세선왕 아래의 천선 강자들과 다른 세력의 천선들이 들어왔다.
천선들은 패자와 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행천선소선역의 최고급 강자라 할 수 있었다.
신분이나 지위가 범상치 않았다.
이어 대전 안의 선악이 높아졌다.
용이 그려진 붉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대전 가장 앞에 나타났다.
"도우들, 장로들 먼 곳에서 와 나의 천 살 생일잔치에 참가해 주어 정말 고맙소. 많은 도우들을 직접 맞이하지 못한 것을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오. 나는 오늘 누가 권하는 술이든 다 마시겠소.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소."
노인은 목소리가 우렁찬 종소리 같고 기세가 비범했다.
그가 바로 이번 생일잔치의 주인공 무정진인이었다.
"기운이 익숙하다……."
진남은 무인들 속에서 눈을 찌푸렸다.
그는 조리점과 정천기에게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무정진인에게서는 느꼈다.
이 역겨운 기운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무정, 긴말하지 마시오. 어서 의식을 끝내시오. 오늘 나는 자네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실 거요!"
천허조교의 사람들이 앉은 상 쪽에서 두 눈이 독수리 같은 노인이 우렁차게 말했다.
노인은 기세가 방대했다.
노인은 천선 정상의 경지의 강자였다.
"하하, 신응(神鷹) 장로가 그리 말하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무정진인은 큰소리로 웃으며 첫 상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 서 있던 조리점은 바로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첫 번째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생일 선물을 올리시오!"
그 말에 많은 무인들은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이 먼 길을 마다하고 이곳에 와 생일잔치에 참가하는 건 생일 선물을 줄 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무정진인의 기억에 남는다면 가장 좋았다.
설령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눈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으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