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4화 만장천역(萬丈天域)
진남은 도정을 누르고 자세히 바라봤다.
"천지는 매우 크다. 가난한 자들은 볼 수 없다."
"천하의 많은 법술들은 모두 거짓이다. 무도에서 도경에 도달하지 못하면 아무리 경지가 높고 힘이 세다 해도 평범한 사람이다. 수련 따위는 꿈도 꾸지 말거라."
"궁우태황진경! 뭐가 궁이고 뭐가 우고 뭐가 태황이지? 세상을 선광이라고 생각하면 궁은……."
진남은 옥간에 쓰인 글들을 훑어봤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상의 존재가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도법을 전하는 것 같았다.
현묘하고 비범했다.
구홍이 그에게 준 건 궁우태황경의 첫 번째 편이었다.
첫 번째 편은 목록이었다.
궁우태황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진남은 깊이 빠져들었다.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그가 전에 도경에 들어오고 도경 대성을 이룬 건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이 돌파한 것이었다.
그는 아직 도경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
시간이 천천히 흘러 하루가 지났다.
진남에게서 도(道)광이 뿜어져 나왔다.
독실 안의 상과 의자들은 살아난 것처럼 대단한 영성이 생겼다.
더는 죽은 물건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오성을 통해 그는 도광을 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다른 등급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큰 돌파를 가져왔다.
진남도 모르게 그의 이마에 화염 같은 기이한 자국이 나타났다.
자국은 그의 신력을 빨아들였다.
한참 후, 자국에서 검은색 무늬가 뻗어져 나와 진남의 얼굴, 목 그리고 가슴으로 퍼졌다.
궁우의지가 조용히 생기기 시작했다.
이변은 계속되었다.
이틀 후, 진남의 몸에 퍼진 궁우의지는 매우 짙어졌다.
그의 방원 삼 장 안의 상과 의자 등은 의지의 영향을 받아 썩기 시작했다.
"역시 문도지법이구나. 궁우태황진경의 오묘함은 실로 놀랍다."
진남은 두 눈을 천천히 떴다.
마음은 여전히 떨렸다.
사흘 동안 느꼈지만 그의 무도천부로도 첫 번째 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대략적인 이해만 한 것이었다.
진남도 이제 도경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도경은 바로 스스로 대도를 이루는 것이었다.
대도는 '법칙'이라고도 불렸다.
모든 것의 근본이었다.
천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법칙이 없으면 천지는 혼란스러워지고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었다.
그는 왜 전에 수피화권이 도경 대성과 도경 원만은 차이가 매우 크다고 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도경 대성은 체내의 도광이 일정한 등급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도경 원만은 자신의 대도를 이룬 것이었다.
대도를 이루고 법칙이 탄생하면 무인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떤 의미에서 독립적인 자아로 변해 천지의 근본과 큰 차이가 없이 지위나 권력이 동등해지는 것이었다.
궁우태황진경을 익히면 궁우태황지도를 이루게 된다.
"궁우태황진경은 궁우태황종의 구천지존이나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 만약 진경을 배우면……."
문득 진남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
"응? 내가 왜 이렇게 변했지?"
진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설마 내가 궁우태황진경을 느낄 때 의지가 육신이 스스로 수련을 시작하게 했나?'
"구홍아,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진남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직은 궁우태황지도에 관심이 없었다. 수련할 생각도 없었다.
"됐다. 이렇게 됐으니 바꿀 수도 없다. 이 도를 수련하자."
잠시 후, 진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와 궁우태황지도는 큰 인연이 있었다.
수련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길게 숨을 들이쉰 후 진남은 손을 움직여 기이한 법인을 만들었다.
법인은 '궁'의 인이었다.
궁우태황진경의 가장 기초적인 법인이었다.
화르륵-!
그에게서 궁우태황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의지는 부름을 받은 것처럼 순식간에 진남에게 들어가 신력과 융합되었다.
융합이 성공하면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었다.
쿵-!
그 순간, 진남에게서 매우 대단한 기운이 폭발했다.
마치 구천지존이 깨어난 것 같았다.
"이건……?"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어 이변이 또 일어났다.
그가 있는 독실이 커다랗고 끝이 없는 청색 세상으로 변했다.
그의 몸속의 궁우태황의지는 힘에 끌려 나와 용 같은 도광으로 변했다.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엄이 있고 패기가 웅장하고 진면모를 볼 수 없는 대단한 형상이 나타났다.
"꺼져라!"
대단한 형상은 궁우태황도광을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청색 세상이 흔들렸다.
웅-!
궁우태황도광은 크게 떨렸다.
그것은 매우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부서졌다.
그러나 그것은 부서지지 않으려는 듯 애써 한데 뭉쳤다.
"발악할 필요 없다. 너는 자격이 없다!"
대단한 형상의 두 눈에 두 개의 뇌화(雷火)가 솟구쳐 올랐다.
궁우태황도광을 산산조각 냈다.
청색 세상은 바로 사라졌다.
진남의 이마에 난 청색 자국과 몸에 퍼진 무늬들도 전부 사라졌다.
옥간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고 꿈을 꾼 것 같았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좀 전의 그 형상은 전신의 의지였다.
'나는 전신의 혼, 전신의 육신과 융합되었다. 그런데 전신의 의지가 어떻게 나타났지? 설마 전신이 전에 나에게 남긴 건가? 궁우태황진경을 수련하는데 왜 전신의지가 나타나 강제로 누르는 거지?
너는 자격이 없다는 말은 궁우태황지도가 나의 대도와 맞지 않다는 말인가?'
"다시 해보자!"
진남은 다시 궁인을 만들었다.
그는 몸을 떨었다.
알 수 없는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저항력이 솟아올랐다.
그가 모든 신력을 썼지만 법인을 하나도 만들 수 없었다.
"나의 몸이 내가 궁우태황진경을 수련하는 걸 막고 있다. 그렇다면……."
진남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그는 전신의 육신과 융합한 후 그의 가장 큰 비밀은 전신의 혼과 무주궁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육신에도 대단한 비밀이 있었다.
어쩌면 전신이 자신이 수련한 대도나 다른 무언가를 남긴 것 같았다.
"승선하면 이 모든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진남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증제, 봉신, 이 두 경계를 넘을 때마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에 승선할 때도 마찬가지일 거다.'
"진 형, 끝났습니까? 끝났으면 함께 출발합시다!"
이때 구홍이 신념을 전해왔다.
그와 진남은 전에 한 몸을 같이 썼기에 특이한 연결이 생겼다.
작은 범위 내에서는 마음대로 소통할 수 있었다.
"알았어."
진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독실을 나섰다.
"진 형, 이미 장악하셨죠?"
구홍은 진남을 보자 주위를 살피더니 소리를 낮추고 신념을 전했다.
"마침 네가 스스로 말을 꺼내는구나……."
진남은 퉁명스럽게 구홍을 사정없이 책망했다.
그들은 비행지보를 타고 발걸음을 놀렸다.
가는 길에 진남은 구홍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구홍은 그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강한 요수를 굴복시켜 탈것으로 만드는 걸 유달리 좋아했다.
구홍은 겉으로 보기에는 내성적이고 침착하고 행동이 정도(正道)를 수련한 무인 같았다.
그러나 공격이 매우 비양심적이었다.
어떤 수단은 진남은 듣는 것만으로도 어이가 없었다.
***
이틀 후 그들은 남세선왕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남세선왕은 상행천소천역에서 가장 빨리 이름을 날린 패자였다.
그의 실력은 가늠할 수 없다.
지난번에 그는 혼자 양대 선왕을 눌렀다.
그는 이미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갔고 이제 구천지존과 멀지 않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의 선복도지는 만장천역(萬丈天域)이라고 불렸다.
만장천역은 부생천국(浮生天國)과 완전히 달랐다.
만장천역은 땅 위의 아흔아홉 개의 방대한 선산이 감싸고 있었다.
천지에서 독립적인 공간을 만든 것 같았다.
성안의 궁전들은 계단처럼 위로 뻗었다.
가장 높은 곳은 삼만 삼천삼백삼십 장이었다.
등급 구분이 엄격한 세상처럼 위치가 높은 수록 천역지기(天域之氣)가 더 짙고 다른 좋은 점도 더 많았다.
"구홍 도우, 생신을 축하해주러 오셨는데 사람들이 많다 보니 스승님께서는 직접 맞이하러 나오시지 못하셨습니다. 널리 이해해주십시오. 머물 곳은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구홍과 진남 일행이 들어서자 천신 정상의 경지의 내문제자가 빠르게 다가와 인사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성안과 궁전들은 빛이 반짝거렸고 무인들이 드나들며 매우 시끌벅적했다.
무정진인은 남세선왕 아래의 태상 장로였다.
지선 경지밖에 안 되지만 사극지경에 들어갔고 패자와 거리가 멀지 않았다.
남세선왕 아래의 많은 강자들은 최고급 경지에 도달했다.
남세선왕이 천 번째 생일을 쇠는 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만장천역 전체의 성대한 행사라고 할 수 있었다.
"천역지기가 매우 짙구나."
마당에 들어선 진남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보이지 않는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천역지기들을 빨아들였다.
무정진인의 궁전은 만장천역의 세 번째 층에 있었다.
여러 세력에게 안배한 거처도 세 번째 층이었다.
어느 곳이나 천역지기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만약 자네가 남천문 배후의 패자가 아니라면 미리 사과를 드리겠소."
진남은 중얼거렸다.
백남지화는 아직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백남지화의 위력이 이미 만장천역 전체를 휩쓸고 있다는 걸 그는 잘 알았다.
얼마 후 만장천역은 시끌벅적해질 것이다.
"수련이나 하자."
진남과 구홍은 마주 보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천역지기는 청성지기와 달리 매우 강한 공간의지가 있었다.
공간의 힘의 현묘함을 느끼게 도와줄 수 있었다.
공간의 힘은 패자가 되어야만 억지로 만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많이 빨아들이는 건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들이 수련하는 동안 삼청고교, 천허조교 그리고 다른 패자 세력의 인물들이 연달아 만장천역에 도착했다.
무정진인의 제자가 다시 초대장을 보내왔다.
연회는 밤 술시(戌時)에 시작된다.
무정진인의 후계자들은 술자리를 마련하라 했다.
수련하는 시간은 매우 빨리 지나 유시(酉時)가 되었다.
술자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진 형, 우리도 가서 상행천소선역의 개세천재들을 만나봅시다."
구홍이 전해온 신념을 들은 진남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진작부터 다른 천재들을 만나고 싶었다.
삼 층짜리 옥골로 만들고 짙은 선의가 가득한 대전 문 앞.
여러 세력의 무인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진남과 구홍이 도착했을 때 대전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다. 몇백 명은 되었다.
"구홍 도우, 오랜만이오!"
"구홍 도우, 존함은 익히 많이 들었습니다!"
"구……"
그들이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구홍에게 쏠렸다.
무인들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다들 진남은 무시했다.
"가거라. 나는 신경 쓰지 말거라."
진남은 신념을 전하고는 모퉁이에 자리 잡고 앉아 전신금동을 움직여 대전 안을 둘러봤다.
대전 안의 무인들 대부분은 여러 세력의 내문제자들이나 장로들이었다.
개세천재는 구홍까지 세 명뿐이었다.
한 명은 여인이었다.
흑포를 입고 몸에서 썩은 것 같은 흑기가 뿜어져 나와 진면모를 볼 수 없었다.
방원 몇 장 안에 아무도 가까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른 한 명은 붉은 도포를 입은 단발머리 청년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장로들과 제자들이 많았다.
그는 움직임에서부터 보이는 기질이 비범했다.
'저 단발머리 청년이 무정진인의 후계자이고 남세선왕의 양대 진전제자 중 한 명인 조리점(趙離漸)이겠군.'
진남은 도정을 움직여 도광을 두 눈에 주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