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0화 팔아라
"이 번이 승리했다. 이번 승선 영패는 이 번이 가져간다!"
담담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찬란한 선인의 빛이 드리우고 검은색, 흰색, 회색이 섞인 영패가 나타났다.
"고맙습니다."
만소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는 돌아서서 앞으로 걸어갔다.
모든 일들은 그가 예상한 대로였다.
"이런……."
무인들은 저도 몰래 헛숨을 들이켰다.
어떤 이들은 이미 사극지경의 무서움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든 큰 충격을 받았다.
삼극지경과 사극지경은 한 단계 차이지만 힘은 천지 차이였다.
'역시 구천선역의 개세천재야. 경지가 강하구나. 내가 만소를 이기려면 적어도 육 할의 힘은 사용해야겠군.'
진남은 감탄했다.
그의 몸속에서 전혈이 들끓었다.
진남의 생각이 알려진다면 상행천소선역에 큰 파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번 승선 영패 쟁탈전은 끝이 났다. 참여한 도우들 고맙다."
담담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의외의 상황이 생겨 승선 영패를 하나 더 내놓기로 했다. 이 영패는 쟁탈전을 하지 않고 바로 진남 도우에게 주겠다."
말이 끝나자 찬란한 선인의 빛이 허공에서 떨어져 진남의 앞에 모였다.
선인의 빛은 승선 영패로 변했다.
"구리거울, 고맙습니다!"
진남은 영패를 받고 홍승에게 신념을 전했다.
그는 표정이 평온했다.
구리거울이 그에게 영패를 준 건 아주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광경에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무인들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굳은 채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줄곧 담담하던 소붕왕 만소도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본 그는 표정이 굳었다.
비월여제가 패자가 된 후로 무인들 대부분은 비월여제가 십 년마다 승선 영패를 한 개 발급한다는 걸 알았다.
신분이 높고 배경이 대단한 천재들은 싸움에 참가하여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승선 영패를 그냥 가져가려 했었다.
그러나 모두 무정하게 거절당했다.
몇천 년 동안 줄곧 그러했다.
'이 무명 무인이 어떻게 비월여제가 처음으로 선례를 깨게 한 거지?'
'설마 이 무인이 바로 구천지존의 진전제자인가? 비월여제마저 체면을 봐줄 수밖에 없나?'
잠시 후, 소붕왕 만소가 진남에게 걸어와 포권하고 물었다.
"너는 어느 소선역에서 왔느냐? 어느 지존이 너의 스승님이시냐?"
이 물음은 모든 이들의 의문점이기도 했다.
지존의 후계자!
신분만으로도 대단한 존재였다.
사방을 위협할 수 있었다.
지존의 후계자들은 적어도 개세천재 등급의 존재였다.
평소에 그들은 이름만 들었지 본존을 만날 수 없었다.
만소의 물음과 사람들의 표정으로 진남은 바로 깨달았다.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해했어. 나는 창람대륙에서 왔어. 스승님은 구천지존이 아니야."
왠지 묘했다.
청룡 성주는 그의 스승이었다.
전신은 그의 가장 큰 기연일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이기도 했다.
반면, 전신은 선인들 중에서 오 위였다.
전성기에는 구천지존 등급의 존재였을까? 아니면 지존보다 더 강했을까?
"창람대륙에서 왔다고?"
만소와 많은 무인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창람대륙이란 곳을 들어본 적 없었다.
"생각났어. 창람대륙은 차하계 안의 세상이야. 비월여제 대인이 창람대륙에서 비승했어."
한 천신 강자가 말했다.
"비승자라고?"
만소와 무인들은 순간 뭔가 생각난 듯했다.
진남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깊이 생각해보면 지존의 후계자라 해도 비월여제 대인이 몇천 년의 규칙을 깨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진남은 창람대륙에서 왔으니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와 비월여제 대인은 같은 곳에서 왔고 천부가 있었다.
비월여제 대인이 옛정을 생각해 승선 영패를 바로 줬을 것이다.
"저 자식은 운이 너무 좋구나!"
많은 천신강자들과 천재인물들은 눈에 부러움과 질투가 드러났다.
그들은 이번에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영패를 얻지 못했다.
"도우, 나는 승선 싸움에 참가할 수 있어. 네 영패를 나에게 파는 건 어때?"
문득 천신 정상의 강자가 공수하고 웃으며 말했다.
"도우, 나에게 팔아."
다른 천신들과 천재들도 정신을 차리고 연달아 말했다.
"가격을 말하거라. 그것을 나에게 팔거라."
만소는 진남을 보더니 뒷짐을 지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말하자 다른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만소가 영패를 한 개 얻고도 더 얻으려 할 줄 몰랐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싸울 수 없었다.
"미안하다, 나는 승선 영패가 필요하다."
진남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
"너의 천부와 자질로 이 승선 영패가 있다 해도 승선하는 건 어림도 없어."
만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진남이 자신을 거절할 줄 몰랐다.
"다섯 개의 천신지기를 주겠다."
무인들은 암암리에 감탄했다.
천신지기는 작은 세력에게는 진교지보(??至寶)였다.
만소는 그런 천신지기를 한 번에 다섯 개나 주겠다고 했다.
"꼭 이 승선 영패를 갖고 싶으면 천신지기를 다섯 개 내놓지 않아도 돼. 지금 나와 싸……."
진남은 눈에 금광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아주 오랜 시간을 천재들과 싸우지 못했다.
"도우, 너의 승선 영패를 나에게 파는 건 어때?'"
이때, 선음 같은 소리가 먼 허공에 울려 퍼졌다.
머리를 허리까지 드리우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검은색 비단 치마를 입고 신비한 기운을 뿜는 여인이 멀리서 날아왔다.
마치 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았다.
"응?"
여인을 훑어본 진남은 그녀에게 끌렸다.
여인은 인신 정상의 경지밖에 안 되고 무도 경지도 삼급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인의 체내에 매우 방대한 힘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속에 도의가 들어있었다.
"서선지(徐仙芝)?"
"뭐? 저 여인이 서선지라고?"
"광유선체인 서선지? 저 여인이 어떻게 왔지?"
무인들 대부분은 눈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이 여인이 나타난 건 소붕왕 만소가 나타난 것보다 충격이 작지 않았다.
"저 여인도 올 줄 몰랐어!"
혈안지신도 조금 놀랐다.
진남에게 전음했다.
"저 여인은 신분이 만만치 않다. 상행천소선역의 삼대 도통 중 하나인 삼청고교(三?古?)의 내문 제일 제자이고 패자의 후계자이다. 그리고 광유선체이다. 소문에 저 여인이 천신 경지에 도달하면 사극을 장악할 가능성이 팔 할 정도 된단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극지경을 장악할 가능성이 팔 할이나 된다고?'
그는 이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의 체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사극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도경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영패를 나에게 팔면 선기(仙器)를 한 개 줄게. 어때?"
서선지는 말했다.
그녀도 승선 영패를 사려 했다.
그러나 말투나 표정이 부드럽고 편안했다.
"선기를 한 개 주겠다고?"
다들 헛숨을 들이켰다.
일부 인선이나 지선도 선기가 한 개도 없었다.
때문에, 선기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비월여제의 승선 영패는 쓰임이 많고 가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기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만소는 몸이 굳었다.
담담한 얼굴에 어쩌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지,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에게 승선 영패를 줄 거다."
서선지는 만소를 힐끗 보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번째 승선 영패가 있으니 만 오라버니를 번거롭게 하지 않겠어요."
무인들은 바로 많은 걸 깨달았다.
만소가 직접 싸우러 온 건 서선지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서선지는 만소의 호의를 받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만소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싸늘하게 진남에게 전음했다.
"만약 네가 승선 영패를 선지에게 주면 나는 나중에 너를 죽이겠다!"
사람들이 짐작한 것처럼 그가 이번에 승선 영패를 쟁취하러 온 건 서선지를 위해서였다.
그도 서선지가 자신에게 빚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결심을 내렸다.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진남을 위협했다.
그는 진남과 비월여제 대인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신분이나 지위 그리고 실력으로 진남이 스스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남은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만소가 이토록 포악하여 자신을 죽이겠다고 할 줄 몰랐다.
"선지 도우, 진짜 미안하다. 이 승선 영패는 내가 써야 한다. 너에게 줄 수 없다."
진남은 포권하고 말했다.
'이 여인은 신분이나 지위가 만소보다 낮지 않다. 그러나 전혀 오만하지 않다. 존중할 만하다.'
"그럼 강요하지 않겠어."
서선지는 조금 실망했다.
그러나 더 말하지 않았다.
"좀 생각이 있구나……."
만소는 안색이 부드러워졌다.
두 개의 천신지기를 꺼내 진남에게 건네려 했다.
그는 항상 그랬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복종하고 분수를 지키면 그는 상대방에게 좋은 점을 줬다.
"그러나 너. 나를 죽이겠다고? 그럼 덤벼라. 언제든 상대해주겠다."
진남은 만소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소는 붕왕의 아들이다. 나의 탈것이 될 자격이 된다.'
"저자가 만소에게 대들다니?"
사방의 무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차하계에서 온 비승자가 무슨 배짱으로 감히 만소와 대드는 거지? 죽을까 봐 두렵지도 않나?'
"너……."
만소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엄청난 기세가 쿵 하고 폭발하더니 많은 깃털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는 진남의 태도에 화가 나 바로 공격하려 했다.
"만소! 함부로 행동하지 마요!"
서선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진남의 앞을 막았다.
그녀는 만소가 암암리에 먼저 상대방을 위협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만소, 창람고성은 아직 네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때, 담담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승선 영패를 빼앗는 것 외에는 이 성안에서 싸워서는 안 되었다.
천선이 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님, 제가 실수했습니다."
만소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허공에 예를 올렸다.
그는 칼처럼 예리한 눈길로 진남을 보며 말했다.
"너, 이 고성을 절대 떠나지 말거라!"
말이 끝나자 그는 발끝을 차고 허공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차하계의 무인에게 도발을 당하고 계속 여기 남아있으면 그는 체면만 더 깎일 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도우, 걱정할 것 없어. 이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거야. 내가 잘 해결할게."
서선지는 떠나가는 만소를 보며 눈에 혐오감이 스쳤다.
그녀는 미안해하며 말했다.
"괜찮아."
진남은 손을 저었다.
사실 그는 조금 실망했다.
그는 한번 제대로 싸우려고 준비를 마쳤었다.
"도우, 이름이 뭐야? 나는 서선지야. 기회가 된다면 우리 삼청고교에 와서 나를 찾아."
서선지는 영패를 하나 건넸다.
그녀의 두 눈에는 호기심이 드러났다.
'개세천재의 위협을 받고도 이토록 침착하다니,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 같다.'
그녀의 광유선체는 진남에게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나는 진남이야."
진남은 담담하게 웃으며 영패를 받았다.
서선지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
알고 지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진남 도우구나. 나는 종문에 다른 볼일이 있어 이만 돌아가겠어."
서선지는 눈을 깜짝이더니 발끝을 차고 사라졌다.
"저자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무인들은 이 광경을 보자 고개를 저으며 눈길을 거두었다.
'서선지가 미안한 마음에 진남을 도와 한두 번 위기를 해결해줄 수는 있어. 하지만 계속 해결해줄 수 있을까? 개세천재의 배후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