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5화 줄곧 좋아했어
어흥-!
천지에 엄청난 포효가 울려 퍼졌다.
말로 할 수 없는 위엄 있는 형상이 우뚝 솟아올랐다.
형상은 커다란 손을 내밀어 대도를 꽉 잡았다.
시공이 굳어버렸다.
제이대륙뿐만 아니라 창람대륙 위의 반신지국도 시공이 굳었다.
흐르는 물과 구름, 무인들, 생령들, 모든 게 멈췄다.
그들은 모두 정신술(定身術)에 걸린 것처럼 완전히 고정되었다.
화르륵-!
대도의 불이 구리거울의 내세의 앞에서 활활 타올랐다.
얼마 안 돼 위엄 있고 커다란 화염 문으로 변했다.
화염 문 안에는 많은 검은 물이 꿈틀거렸다.
그중의 한 방울의 물에 빛이 반짝이더니 장면이 떠올랐다.
장면에는 드넓고 위엄 있는 선궁이 나타났다.
선궁 깊은 곳에는 높이가 몇만 장 되는 혈색 제단이 있었다.
제단에는 삼생의 힘을 뿜는 오래된 진법이 가득했다.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피부가 희고 매끄러운 극품 등급의 선옥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눈을 꼭 감고 진법에 누워있었다.
가늘고 긴 속눈썹도 선명하게 보였다.
"너 어떻게……."
구리거울의 내세만은 굳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전에 없던 놀라움이 드러났다.
그녀는 마음이 크게 떨렸다.
이 장면 속의 여인은 그녀의 본존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힘이길래 끝없는 시공을 넘어 나의 본존을 가뒀지? 이건 문도성주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죽여라!"
말로 할 수 없는 위엄 있는 형상이 순식간에 진남의 체내에 들어갔다.
진남이 내리치는 도광은 시공과 비슷한 기운이 있었다.
"이 기운은 왜 삼생의 힘과 이토록 비슷……."
구리거울의 내세는 다시 한번 놀랐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광이 그녀를 완전히 부쉈다.
물방울 속 장면의 절세여인은 몸이 떨렸다.
제단 위의 많은 진법이 일제히 부서졌다.
슉-!
그와 동시에 화염 문이 사라졌다.
제이대륙이나 창람대륙의 반신지국의 모든 것이 동시에 정상을 회복했다.
무인들이나 생령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모두 죽었나?"
이 광경을 본 무연각 등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진남이 미치면 이렇게 대단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었다.
"좀 전에는 어떻게 된 거지?"
비월여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세가 죽을 때 틀림없이 무슨 일인가 있었어. 그저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야.'
어흥-!
이때, 남천문이 완전히 부수지 못한 몇 개의 겁영이 기세가 폭등하더니 진남을 향해 포효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로 포효를 멈추었다.
커다란 손에 맞아 산산이 부서졌다.
뇌겁이 완전히 사라졌다.
진남의 체내의 신격의 힘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화를 일으키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기운은 진남의 뿜는 기운에 비하면 큰 바다에 던져진 한 알의 좁쌀에 불과했다.
느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작았다.
"죽여라!"
진남의 마동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드넓은 땅을 꿰뚫고 제이대륙의 가장 깊은 곳을 바라봤다.
쿵-! 쿵-! 쿵-!
끝없는 혈색도광이 많은 규칙을 찢고 땅을 공격했다.
남천문 일행의 죽음은 그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는 이곳의 모든 걸 없애려 했다.
"진남이 제이대륙을 없애려 한다.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
비월여제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빠르게 새하얀 옥수로 법인을 만들었다.
무연각 등의 몸에 희미한 꽃잎이 피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떠나기도 전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수없이 많은 도광에서 한 개가 커다란 전장을 내리쳤다.
그들은 도광의 공격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내 공격을 맞아 사라질 것 같았다.
슉-!
위기의 순간에 도대에서 시커먼 수정이 날아와 허공에 떠올랐다.
수정 깊은 곳에서 흰색 단발머리를 한 여인의 형상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녀는 빨간 입술을 살짝 벌리고 허공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당장 내리치려던 도광이 허공에서 멈췄다.
마선 같은 진남도 처음으로 멈춰 섰다.
수정을 바라보는 시뻘건 두 눈에 혈광이 반짝거렸다.
그가 손에 쥔 단천도의 도광이 폭등했다 가라앉았다 했다.
"깨어나거라!"
이때, 우레 같은 소리가 제이대륙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오래된 수피화권이 나타나더니 드넓은 부해(符海)가 나타나 진남을 향해 흘러갔다.
"죽여라!"
하늘 가득한 살기가 다시 휘몰아쳤다.
핏발이 끊임없이 퍼졌다.
진남의 체내의 힘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위엄 있는 형상도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안 돼. 계속 이렇게 하면 구천의 태고금기를 건드리게 된다. 방법을 찾아 진남을 진정시켜야겠다."
수피화권의 목소리가 묵직해졌다.
지금 태고금기 등이 진남의 체내의 기운을 발견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응? 저건? ……해볼 수밖에 없겠다."
수피화권은 뭔가 발견하고 도광을 막는 동시에 눈부신 청색빛을 뿜어 묘묘 공주의 몸에 주입했다.
성령의 빛이 묘묘 공주의 몸에서 반짝거렸다.
희미한 힘이 바람처럼 휘몰아치더니 마지막에 천천히 아름다운 형상을 이루었다.
무인들은 죽어도 영혼은 바로 흩어지지 않았다.
잠깐밖에 안 되지만 수피화권은 수단을 써 그녀의 흩어지고 있는 영혼의 힘을 한데 모아 그녀를 다시 나타나게 했다.
"진남."
듣기 좋은 목소리가 지옥 같은 땅에 울려 퍼졌다.
진남의 몸에서 폭등하던 기운과 그가 뿜은 혈도들은 번개에 맞은 것처럼 뚝 멈췄다.
천지의 혈색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살기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광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아름다운 형상을 보자 그는 시뻘건 눈에 생기가 돌고 목소리가 떨렸다.
"……공주?"?
* * *
그 시각, 구천 선역, 신비한 땅.
끝없는 어둠이 파도처럼 사방에서 용솟음쳤다.
파도 속에는 엄청난 선광(仙光)을 뿜는 해골이 있었다.
순식간에 시커먼 어둠 속에서 검은색 파도가 굳고 많은 사람들의 형상이 가득한 커다란 두 눈이 천천히 떠졌다.
슉-!
눈에서 대단한 선인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대도를 꿰뚫어 본 것처럼 천기의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건…… 무슨 기운이지?"
위엄 있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에 매우 기이한 도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또 이런 기운이 나타났다. 또 누군가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났나 보구나."
위엄 있는 목소리는 싸늘해졌다.
"조사하거라!"
외침이 천지에 울려 퍼졌다.
시커먼 파도 속에 있던 선해(仙骸)들의 텅 빈 두 눈에 시커먼 선화(仙火)가 솟아올랐다.
* * *
같은 시각, 차하계, 창람대륙, 반신지국.
"제이대륙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방금 왜 시뻘게졌던 거지?"
"진짜 대단한 살기다. 나의 제부도 부서졌어!"
무인들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일부 경지가 좀 낮은 무인들은 중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들은 제이대륙에서 벌어진 모든 것이 궁금했다.
"봐! 또 하나의 신의 빛이 나타났어!"
반천맹의 한 대제가 뭘 봤는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신의 빛이 나타났다고?"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
* * *
그 시각, 제이대륙.
방원 몇만 리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큰 산이든 삼림이든 도의에 맞아 모두 사라졌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차가운 살기뿐이었다.
비월여제는 남은 오래된 나무 위에 서서 차가운 눈으로 허공의 수피화권을 바라보았다.
"이 화권은 뭐지? 방금 진남 체내에 나타난 힘이나 기운은 주신오인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진남은 두 명의 주신 등급의 거물의 후계자란 말인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마음속의 소리가 그녀에게 알려줬다.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응?"
그녀는 문득 뭔가 느끼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묘묘 공주 앞에 있는 진남은 혈색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머리카락과 두 손은 여전히 시뻘겠다.
진남에게서 방대한 신의 빛이 뿜어져 나와 하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의 기운도 갑자기 폭등했다.
무신 경지 팔 단계!
무신 경지 구 단계!
무신 경지 십 단계!
묘묘 공주는 기뻐했다.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지. 이제 그 영감탱이들이 뭐라 하나 보자."
그 영감탱이들은 유실약원의 당목무신 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전에 진남 때문에 그녀는 당목무신 등과 적지 않게 싸웠다.
그것도 혼자서 여러 명과 싸웠다.
화르륵-!
진남의 몸에 적금색 전갑이 스스로 나타났다.
그것도 변화를 일으켜 무늬가 더 선명하고 기세가 당당했다.
진남의 경지와 시뻘건 머리카락이 어우러지니 진정한 전신처럼 자태가 상대할 자가 없었다.
그는 마음속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 들고 말할 수 없이 아팠다.
무연각 등은 이 광경을 보고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했다.
"됐다. 진남, 슬퍼하지 말거라. 누구나 죽는다. 나는 먼저 갈 뿐이다."
묘묘 공주는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그녀는 무신이 된 진남을 보며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라도 죽고 싶을까?
그녀는 아직 진남과 함께 세상의 많은 술을 마셔보지 못했고 여러 세력을 약탈하지 못했고 또…… 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았다.
연황전장이 끝난 후 그녀는 사저에게 물어서야 알게 되었다.
함께 잔 건 아무 의미 없고 예식을 올리고 천지에 인사하고 부모님께 인사하고 심부를 맺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부모님이 없지만 진천 숙부가 있었다.
사저는 두 사람이 도려가 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그녀와 진남이 아이를 낳으면 틀림없이 창람대륙의 제일 천재가 될 것이다.
비월여제도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진남."
묘묘 공주는 생각을 멈추었다.
형상이 희미해지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대답해줘. 꼭 구천에 올라 모든 이들이 존경하는 강자가 되겠다고."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꽃이 만발하는 것 같았다.
사방의 모든 것이 환해졌다.
"나는 계속 너의 옆에 있을 거야. 나는…… 줄곧 너를 좋아했어."
진남은 떨리는 몸으로 손을 뻗어 묘묘 공주를 안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형상은 완전히 사라져 하늘 가득한 빛무리로 변했다.
지난 일들이 그의 머릿속에 연거푸 떠올랐다.
현령종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기운이 고귀하고 옅은 금색 눈동자로 멸시하듯 그를 보며 말했다.
"나의 하인인데 바보 같구나. 정말 실망이다."
그러나 용호산맥에서 그가 왼쪽 눈에 침식되었을 때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생명본원의 힘을 바쳤다.
증제할 때는 천지를 뒤엎는 공격에도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앞을 막았다.
그녀는 영리하고, 또 기이했다.
맛있는 술을 좋아하고 자신을 공주라고 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횡포했다.
가끔씩 무지막지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그를 보호했다.
모든 걸 아끼지 않았다.
지금 진남은 기세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에 도달하여 신의 빛이 방대하고 위압이 대단했다.
모든 무신 강자들 심지어 인신거물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늘 가득한 빛무리를 보며 눈물범벅이 되었다.
남자는 울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전신의 주인이고 창람대륙의 첫 번째 무신이었다.
"공주…… 나도 너를 좋아했……."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들을 수 없었다.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진남은 두 눈이 점점 어두워지고 빛이 사라졌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생기가 없는 조각상 같았다.
그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슬픔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