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7화 전신의 진정한 신분
"사극지경에 도달한 게 맞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허허, 어린 나이에 사극지경에 도달하다니, 대단하다. 방금 그놈들이 눈이 멀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너를 두고 떠나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종문에 데려가려고 했을 거다."
선명노인은 입을 쩝쩝 다셨다.
그의 두 눈에 혈광이 점점 더 늘어나더니 마치 절세의 악마 같아졌다.
목소리도 귀에 거슬렸다.
"내가 네 목숨을 구해줬으니 너는 그 육신으로 나에게 보답하거라!"
웅-!
검은색의 기이한 제단이 진동하더니 검은빛을 뿜었다.
검은빛은 마치 지옥의 뱀처럼 진남에게 달려들어 그를 꽁꽁 감쌌다.
선명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서 진남을 구한 것은 그의 몸을 탈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삼극지경(三極之境)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기에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그래서 사극지경인 사람을 보자 참을 수 없었다.
'이 청년의 육신을 탈사해서 사극지경에 이르고 내가 몇백 년 동안 준비한 것들까지 합하면 한마선묘의 전승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전승을 얻으면 그는 천신이 되고 선인이 되며 심지어 더 높은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었다.
"선배님."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상황을 파악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저를 구해주셨으니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육신을 탈사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반드시 죽습니다."
진남은 선명노인에게 겁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
진남은 영혼의 상태로 구천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구리거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자 그는 확신했다.
구리거울은 기묘한 상태로 존재했다.
지금껏 그는 구리거울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다.
삼생겁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구리거울이 선명노인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죽는다고?"
선명노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뒤, 그는 귀청이 찢어질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하! 내가 죽는다니? 나는 반보 지신의 경지이다. 그리고 몇백 년 동안 검은색 제단의 도움을 받는 법을 연구했다. 지신 경지 삼 단계 강자가 와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는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선명노인은 사극지경의 천재 제자들은 엄청난 기연을 만난 적이 있기에 비장의 수가 많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비장의 수라도 그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삼대 세력도 선명노인을 어쩌지 못하는 것은 삼극지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비장의 수가 있었다.
인신들이 발견하지 못한 진남의 경지를 그가 발견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선배님,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를 믿지 못하면 천지에 대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진남은 다시 강조했다.
선명노인은 그를 살려주었다.
그는 될 수 있으면 선명노인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천지에 맹세하겠다고? 너는 내 도심을 흔들려는 게냐? 나는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네 놈의 그깟 잔머리는 아무 소용도 없다!"
선명노인은 조롱하며 말했다.
"버둥거리지 말거라."
말을 마친 그의 몸에서 짙은 혈광들이 솟구치더니 흉악하고 살기가 가득한 악귀로 변했다.
악귀는 진남의 몸속으로 들어가 영혼에 달라붙어 물어뜯었다.
둥-!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수많은 칼들이 그의 뼈 마디마디에 꽂힌 듯한 통증이 머릿속까지 전해졌다.
만고제일제인 진남도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어떤 비장의 수를 가지고 있는지 보자!"
선명노인은 시커먼 혀로 입술을 날름 핥으며 손으로 법인을 만들었다.
* * *
선명노인은 알지 못했다.
끝없는 허공에서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시공간을 넘어오려는 절세의 여인이 엄청난 수단으로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창람대륙의 수많은 거물들이 언급하던 대인-비월여제였다.
"탈사? 마침 내가 가서 시험해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진남의 무혼이 무진도서(無盡道書)에 기록된 다섯 번째 주선이 맞는지 오늘 지켜보자."
그녀는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진남의 무혼을 만난 이후로 그녀는 구천에서 수많은 수단을 동원하여 오래된 금기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녀는 추측만 할 뿐이지 확신은 하지 못했다.
* * *
쿵-!
잠시 뒤, 진남은 머릿속에서 천둥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는 폭풍우가 그의 머릿속을 내리치는 것처럼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의 동공은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했다.
몸 안에 있던 제력은 마치 곧 붕괴하는 산처럼 위태로웠다.
"하하하, 내가 죽을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 영혼은 이제 나에게 물려 죽을 거다. 아무리 대단한 수단이 있다고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선명노인은 또 귀청이 찢어질 듯이 웃었다.
그는 속이 후련했다.
'감히 나에게 겁을 줘? 꿈 깨라!'
"녀석아, 이제 그 몸은 내 거다!"
선명노인은 흥분하며 빠르게 법인을 바꾸었다.
알 수 없는 신력이 퍼지며 그의 몸은 점점 흐릿해졌다.
"만도혈식(萬道血?), 문선하재(問仙何在), 천지부족(天地不足), 후(後)……."
오래되고 현묘한 선문(仙紋)들이 나타나 대지를 덮었다.
탈사는 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다.
* * *
"그자가 아닌가?"
비월여제는 두 눈에 선광이 스쳤다.
그녀는 손을 들어 법인을 만들었다.
그녀의 구리거울은 진남의 영혼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진남의 육신이 죽고 영혼이 흩어지면 그녀의 구리거울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진남의 영혼이 타격을 받아 부서지고 사라진다면 그녀에게도 피해가 컸다.
진남의 영혼은 다치면 안 되었다.
그때였다.
그녀는 진남의 깊은 곳에서 엄청난 청색 빛이 폭발하는 것을 발견했다.
청색 빛은 원고 세계처럼 강한 위엄을 풍겼다.
그녀는 구리거울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그 사람이구나!"
아무리 비월여제라도 이 순간은 속으로 경악했다.
"그 사람이 맞는다면 얽힌 금기가 너무 강하다. 그렇다면 무진도서에 기록된 그……."
여기까지 생각한 비월여제는 선명노인의 법인이 곧 완성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두 눈은 차갑게 빛났다.
"고작 인신은 그 사람을 만날 자격이 없다."
쿵-!
선명노인의 법인이 완성되는 동시에 진남의 몸에서 엄청난 선광이 펼쳐졌다.
차가운 여인의 형상이 떠올라 사방을 얼려버렸다.
* * *
"누구냐?"
선명노인은 안색이 변했다.
그는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변고가 생길 줄 몰랐다.
"너, 넌……? 설마 비월……."
선명노인은 고개를 들어 형상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형상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선명노인이 얻은 전승에 어떤 강자가 절세의 여인을 우연히 만나서 싸웠으며 천지를 뒤흔든 장면을 똑똑히 기록했다.
그 강자는 엄청난 힘을 들여 흐릿한 그림을 그렸다.
선명노인은 십 년 동안 그림을 느껴서 인신 경지를 돌파했다.
"죽어라."
그가 말을 채 뱉기 전에 차가운 한마디가 그의 생기를 가두었다.
그렇게 선명노인은 죽었다.
진남은 방금 벌어진 일을 전혀 몰랐다.
그의 의식은 무거운 돌처럼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깨나거라!"
문득, 호통이 들리고 금색 손이 그의 의식을 위로 당겨 육신에 돌려놓았다.
"습."
진남은 두 눈을 천천히 뜨고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고맙습니다, 구리거울."
잠시 뒤, 진남은 안정이 되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명노인의 시체를 보자 그 형상에 대고 공수했다.
구리거울이 아니었다면 진남은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없었다.
"내가 사극지경 위에 또 다른 경지가 있다고 했던 말 기억하느냐?"
차가운 여인의 형상은 돌아서서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진남은 그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다.
"기억합니다. 왜 그러십니까?"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 경지는 허무하고 멀어서 구천선역에도 거기까지 돌파한 사람이 몇 안 된다. 원래 너는 그 경지의 문턱에 닿으려고 해도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너에게 기회가 생겼다."
구리거울은 말했다.
"무혼을 드러내거라."
"무혼을 드러내라고?"
진남은 얼떨떨했다.
창람대륙 무인들의 무혼은 육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신의 혼도 마찬가지였다.
진남은 이번에 영혼 상태로 구천에 왔는데 어찌 무혼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인가?
'설마…….'
진남은 문득 드는 생각에 바로 의식을 움직였다.
"무혼은 모습을 드러내라!"
쿵-!
그의 등 뒤로 엄청난 청색 빛이 반짝이었다.
비록 전신의 혼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청색 빛은 여전히 엄청난 위엄을 풍기며 사방을 휩쓸었다.
땅이 살짝 흔들리고 검은색의 기이하고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흔들렸다.
진남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검은색 제단도 무서운 것을 만난 것처럼 벌벌 떨었다.
"이게 대체……."
진남은 충격을 받았다.
창람대륙에서 전신의 혼을 드러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진남, 구천에 온 건 네 무혼이 아니라 전신의 영혼이다. 즉, 너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 다만 아직은 경지가 부족하여 너는 그것을 불러낼 수 없다."
"전신의 영혼? 그럼 어떻게 창람대륙에서 무혼의 빛을 가지고 있고 등급을 진급할 수 있었던 겁니까?
진남은 바로 질문했다.
상식대로라면 그는 영혼인 상태로 무혼을 사용할 수 없었다.
"창람대륙의 무혼은 남천문과 창람대륙 천신들이 무도규칙을 바꾸면서 나타난 거다. 전신의 혼이 그런 신비한 힘을 가지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느냐?"
구리거울은 말했다.
"전신의 혼은 일부러 그렇게 한 거다. 그래서 너를 한 걸음 한 걸음 무도의 길에서 나아가게 한 거지."
진남은 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전신의 왼쪽 눈, 청룡성주, 단천도 그리고 남천문 깊은 곳에 남겨진 전신의 육신을 떠올렸다.
전신의 혼까지 생각해보니 전신은 처음부터 판을 만들고 한 걸음씩 그를 인도하고 도와주었다.
진남이 사극지경에 이른 것은 스스로 노력한 것도 있지만 전신의 노력과 공로가 컸다.
"구리거울은 어떻게 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거지……."
진남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전신의 진정한 신분도 아십니까? 설마 구천의 천신 강자 중 한 명이었던 겁니까?"
진남은 전신이 구천에서 왔다는 것은 알았다.
그는 예전에 전신의 왼쪽 눈이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은 진남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있었다.
다만, 그는 이제 전신의 신분을 알고 싶었다.
수많은 무인들 중에서 왜 하필 자신을 택했는지 진남은 궁금했다.
"천신 강자? 진남, 한 사람의 도호는 그 사람의 경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비월여제라고 부르지만 나는 천신을 쉽게 죽일 수 있다."
여기까지 말한 구리거울은 보기 드물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아직 전신의 진정한 신분을 알 자격이 없다. 나도 알려줄 수 없다. 아니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그녀는 진남에게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전신의 진정한 이름이 이 세계에 나타나면 이 세계는 순식간에 멸망할 수 있었다.
천신이나 대제나 모든 생명들이 전부 죽어야 했다.
전신의 진정한 이름은 구천선역에서 오래되고 무서운 금기였다.
그녀의 지금 경지로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다고?"
진남은 왜인지 모르지만 마음속에 파문이 일었다.
그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신의 이름을 알게 되면 진남은 엄청 중요한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너는 이제 의념으로 전신의 혼과 교류하거라. 그리고 전신의 혼을 이용해서 수련해 봐."
구리거울은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