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6화 선명노인
한마전장 밖.
진남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속도가 무신 경지 이 단계 강자와 맞먹었다.
문득 진남은 몸을 흠칫 떨었다.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눈이 나타나 진남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멀리서도 나를 찾아낼 수 있어?"
진남은 깜짝 놀랐다.
구천의 천재들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단이 더 강했다.
'이대로라면 저들에게 잡힐 거다. 여러 세력의 강자들이 동시에 올 수도 있으니 몸을 숨길 곳이 필요해.'
진남의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그는 단천도가 없어 보이지 않는 봉쇄를 뚫을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저기로 가자."
진남은 결정을 내리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잠시 뒤, 한명립의 목소리가 오래된 금술을 통해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진남의 머릿속에 날아들었다.
"구홍, 너는 지금……."
"허튼소리 하지 말거라."
진남은 제력을 사용하여 목소리를 차단했다.
"다 왔다."
진남은 발걸음을 늦췄다.
그의 앞에는 전에 본 적이 있는 기이하고 적막하며 차가운 검은색 수림이 나타났다.
이곳의 기운을 보면 여러 무신 강자들이나 더 강한 강자들이 와도 막을 수 있고 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남은 수림에 날아드는 순간 무언가 느끼고 안색이 변했다.
쿵-!
엄청난 공격을 받은 것처럼 허공이 무너졌다.
엄청 강한 진기들이 사방에서 솟구쳤다.
강한 기운들은 허공의 깊은 곳에서 폭발하는 화산처럼 연신 나타나 하늘을 진동했다.
그들은 무신 경지를 초월하고 진남이 만난 적이 없는 인신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다.
"도둑놈아, 죽어라!"
우레 같은 호통과 함께 초록색의 뇌정을 가득 감은 큰 손이 허공을 지나 진남을 힘껏 내리쳤다.
진남은 커다란 신산에 눌린 것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구천에는 무신 경지 위에 인신, 지신, 천신 그리고 선인이 있었다.
무신 경지에 도달하면 몸속에 신격이 생겨나고 신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인신이 되면 신격은 변신을 해서 현묘하기 그지없는 영성을 가지게 되었다.
영성은 '인간은 만물의 우두머리이고 천지 바로 아래'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인신이라는 칭호도 그렇게 따온 것이었다.
지금 나타난 인신 강자는 한 명이 아니라 열한 명이나 되었다.
각각 순선궁, 늠혼교, 무검파에서 온 자들이었다.
"과천일격!"
생사의 갈림길에서 진남은 고함을 지르며 의지를 움직였다.
그는 몸속에 굳은 대제의 힘을 전에 없던 속도로 미친 듯이 움직였다.
슉-!
순식간에 진남은 제자리에서 사라지고 검은색 수림으로 들어갔다.
"응?"
허공 깊은 곳에 있던 열한 명의 인신 강자들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의 공격은 무신 경지 육 단계도 벗어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런데 구홍은 어떻게 빠져나갔지?'
슉-! 슉-! 슉!
이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한명립, 강정산, 양백룡 등 무신 강자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들 뒤로 몇천 리 떨어진 곳에 서동결, 왕연, 상관빙옥 등 대제 거물들이 따라왔다.
"이 구역의 금제를 이용하여 자신을 지키려고? 어림도 없다!"
무검파의 인신 강자는 먼저 반응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옥의 뱀 같은 검기가 솟아오르더니 수림으로 사라졌다.
검기는 마치 영지가 있는 것처럼 나무들 사이를 누비며 엄청난 검 망을 이루어 진남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웅-!
게다가 다른 열 명의 인신 강자들도 법인을 만들었다.
엄청난 신력들이 공중에서 팽팽해졌다.
그들은 혹시 모를 경우에 동시에 공격하려고 했다.
상대방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진남은 비록 만고제일제지만 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하찮은 존재 같았다.
"목숨 걸고 싸우자!"
진남은 당황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의 몸속에서 불멸의지와 전신의지가 용솟음치더니 엄청난 붕멸전도의 모습으로 변했다.
"베어라!"
진남은 날아올라 전도로 허공을 베었다.
수많은 도의가 검은색 수림의 사방으로 뻗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한명립 등은 당황했다.
진남의 도의는 난잡하고 질서가 없으며 검기들을 막지 않았다.
'설마 포기한 거야?'
쿵-! 쿵-! 쿵-!
이때, 검은색 삼림에서 방대한 신광이 솟아올라 고검, 흉수, 신도 등 여러 이상으로 변했다.
이상들은 위력이 대단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인신이 드러낸 수많은 검기는 순식간에 이상에 부딪혀 사라졌다.
"허, 이곳의 금제를 전부 건드린 거야?"
한명립 등은 그제야 '구홍'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들은 한마전장에 대해 잘 알았다.
검은색 수림은 삼백 년 전 갑자기 한마전장 밖에 나타났다.
수림에 들어갔던 강자들은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때문에 이곳은 가장 공포스러운 금지로 되었다.
그런데 구홍은 금제를 전부 건드려 인신들에 대항하고 살 생각을 했다.
"박력 있는 녀석이구나! 이런 일을 벌이다니!"
늠혼교의 인신 강자는 눈에 빛이 스쳤다.
그는 명령을 내렸다.
"한명립 등은 내 명령을 듣거라. 지금 바로 흩어져서 수림에 들어가거라!"
무신 경지 이상은 한마전장의 바깥쪽을 들어갈 수 없었다.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면 강한 수단을 사용하여 인신 일 단계로 경지를 낮추어야 했으며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짧았다.
그래서 그들은 무신들과 연합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한명립 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한 명의 인신 강자들과 스무여 명의 무신 강자들은 절세의 신검처럼 사방에서 검은색 수림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은 금제를 전부 부수고 진남에게 다가갔다.
"보답천하!"
진남은 그 광경을 보자 속도를 최고로 높였다.
날아가는 동안 그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 금제들을 공격해서 자신에게 유인했다.
"어라?"
그러던 문득, 진남은 안색이 변하고 뒤로 물러났다.
멀지 않은 곳에 신광이 펼쳐지더니 엄청난 검진이 나타났다.
진남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검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었다.
진남은 수림의 모든 금제를 건드려 여러 인신들과 무신 강자들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전신의 왼쪽 눈이 없기에 전부 피할 수 없었다.
운이 나쁘면 다칠 수도 있었다.
"순선지(純仙指)!"
몇천 장 밖에서 이상 금제를 부순 인신 강자는 그 모습을 보자 기회를 포착하고 날아올라 손가락을 튕겼다.
쿵-!
찬란한 선광이 모여 선지를 이루어 나무들을 뚫고 진남에게 날아왔다.
"과천……."
진남은 제술을 사용하려고 했다.
이를 본 인신 강자는 비웃음을 지었다.
커다란 선지는 부서지더니 선광으로 변해 사방에서 진남을 덮쳤다.
'방금 그 공격을 겪었는데 또 도망가게 할 것 같으냐?"
"큰일이군!"
진남은 몸이 살짝 굳고 식은땀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이 파국을 넘길 수 있을까?'
"삼대 세력의 사람들은 배짱도 크구나. 감히 내가 휴식하는 곳까지 뛰어들다니!"
이때, 검은색 수림의 깊은 곳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깡마른 큰 손이 엄청난 거리를 건너뛰어 날아왔다.
펑-! 펑-! 펑-!
선광들은 전부 부서졌다.
인신 강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강한 적을 만났을 때처럼 오래된 신술을 펼치며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다른 인신 강자들은 깜짝 놀라 공수하고 물었다.
깡마른 큰 손만 봐도 상대방의 실력이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허허, 고작 몇백 년이 지났다고 내 목소리를 잊어버리다니……."
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수림 깊은 곳에서 남루한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두 눈에 초록빛이 반짝거리고 강한 기운을 뿜는 노인이 나왔다.
"선명이라는 두 글자를 기억하느냐?"
"서, 선명노인?"
"죽은 게 아니었어?"
인신 강자들과 한명립 등 무신들은 안색이 변하였다.
몇백 년 전에 선명노인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성격이 이상해 무인들을 자주 학살했다.
삼대 세력의 많은 제자와 강자들도 그의 손에서 목숨을 잃었다.
삼대 세력에서 연합하여 그를 추격하고 죽음으로 몰았다.
그러나 선명노인은 인신 최고 경지에 이르고 오래된 전승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사극지경의 삼극을 장악하고 선근을 수련했기에 삼대 세력은 매번 실패했다.
결국 삼대 세력의 장로들이 나서서 선명노인을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선명노인은 지신이 되는 데 실패하고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줄 몰랐다.
"선명 선배님, 저희가 모르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화를 푸십니다. 지금 당장 떠나겠습니다……."
순선궁의 인신 강자는 빠르게 반응했다.
그는 말하면서 손을 내밀어 진남을 잡으려고 했다.
일단 지금은 옥패를 가져오는 게 더 중요했다.
선명노인에 대해서는 돌아가서 장로에게 보고를 하면 되었다.
선명노인은 흉악하기로 유명했다.
마찰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유리한 점이 전혀 없었다.
"이 녀석은 나와 인연이 있어 오늘 이곳에 남기겠다. 나는 지금 기분이 무척 좋아서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썩 꺼지거라."
선명노인은 눈살을 찌푸리고 보이지 않는 기세를 뿜었다.
"선명 선배님, 그게 무슨……."
여려 인신 강자들은 표정이 살짝 변했다.
"시간을 조금 주마. 그동안에 썩 꺼지지 않으면 결과는 나도 모른다."
선명노인은 입을 헤 벌리고 기이하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냈다.
그에게서 강한 살기가 풍겨 주변의 허공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커다란 수림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고 나무들은 되살아난 것 같았다.
분위기는 딱딱하게 굳었다.
인신 강자들과 무신 강자들은 가슴이 꽉 막히고 서늘해졌다.
"사형,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한명립 등은 심호흡을 하고 전음으로 물었다.
"우리는……."
인신 강자들은 안색이 변해서 서로 시선을 교류하더니 입술을 깨물고 전음했다.
"지금 당장 가서 장로에게 보고해야 한다. 우선 이곳을 떠나자!"
그들은 수림에서 인신 경지 일 단계의 실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다.
그들이 연합한다고 해도 선명노인을 이기기 힘들었다.
게다가 수림 금지는 선명노인이 몇백 년 동안 지낸 곳이었다.
선명노인은 오랫동안 머물면서 어떤 은밀한 비밀을 알아낸 것 같았다.
"선배님, 그럼 저희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인신 강자들은 공수하고 발끝을 차서 허공으로 날아갔다.
한립명 등 무신 강자들은 진남을 힘껏 노려보더니, 억울하지만 빛으로 변해 먼 곳으로 사라졌다.
천지에 가득하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번에는 진짜 위험했다."
진남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선명노인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살아나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진남은 얼른 포권하고 선명노인에게 인사했다.
"선배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선명노인은 기세를 거두고 차갑게 말했다.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진남은 바로 되물었다.
선명노인은 그를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진남은 그 모습을 보자 더 묻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어차피 선명노인이 진남을 공격하면 그는 도망갈 수 없었다.
잠시 뒤.
진남은 선명노인을 따라 기이한 수림의 깊은 곳에 도착했다.
"응?"
진남은 의아했다.
이곳에는 커다란 검은색 제단이 있었다.
제단 위에는 많은 시체가 있었고 옅은 피비린내가 났다.
시체들은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제단의 뒤쪽에는 안개에 덮인 길이 있었다.
길에는 기이한 힘이 가득했는데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너, 사극지경에 도달했느냐?"
선명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초록빛 외에 혈광이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