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세전혼-805화 (805/1,498)

804화 집념이 남아있다

"전혀 다르다. 창람대륙의 무혼은 인위적으로 바뀔 수 있지만 구천의 선근은 도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너는 아직 경지가 너무 낮아 그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구리거울은 진남의 반응을 보더니 바로 말했다.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과 도에 따라 생겨나는 차이라고?"

진남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말을 마친 진남은 신념으로 머릿속 선근과 교류했다.

방대한 영기와 옅은 선기가 사방에서 날아와 진남의 몸으로 들어가더니 강한 대제의 힘에 변화가 생겼다.

커다란 틈 아래에 있는 땅은 대단했다.

진남이 흡수했음에도 영기 등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짙어졌다.

"구천의 선근은 역시 평범하지 않구나. 이것으로 흡수하니 내가 스스로 흡수할 때보다 열 배는 더 빠르다."

진남은 중얼거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 * *

시간은 흘러 어느덧 여섯 시진이 지났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진남의 몸은 적금색의 눈부신 빛들이 펼쳐지고 엄청난 위엄을 풍겼다.

대제의 힘은 이제 만고제일제의 제력으로 변신했다.

"다른 사람의 육신이라 경지는 올라갔지만 제력은 전보다 반이나 줄었다."

진남은 육신을 훑어보고 일어서서 제술들을 사용해보았다.

낯선 육신에 들어오고 전신의 왼쪽 눈, 왼팔, 단천도 등이 없으니 어색했다.

"지금은 사 할의 실력밖에 발휘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주위에서 기연이 있는 곳을 찾아 경지를 돌파하자."

문득 진남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행동에 옮기기 전에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다음 경지는 무엇일까? 그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돌파를 하지?'

"구리거울……."

진남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려고 했다.

"구천에는 수련 경지와 무도 경지가 있다. 무성 경지, 무조 경지, 무제 경지, 무신 경지, 인신(人神) 경지 등은 수련 경지에 속한다. 무도 경지란 무도를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눈 것이지.

네가 처한 무도 경지는 만고제일제가 아니라 사극지경(四極之境)이다. 이는 힘의 극, 의(意)의 극, 경(境)의 극, 마음의 극인데, 이를 극경이라고도 한다.

극경에 도달한 사람은 같은 경지 무인들 사이에서 적수가 없다. 또, 등급을 넘어 도전할 수도 있다. 양극의 무인이 만나면 보통 둘 다 중상을 입거나 죽는다."

구리거울 속 여인은 진남의 생각을 읽은 듯 차갑게 설명했다.

그녀는 진남에게 커다란 구천선역에서도 극경에 도달한 사람을 보기 드물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오래된 종문이나 종족에서도 절세의 천재들이거나 구천선역의 엄청난 강자여야 도달할 수 있었다.

그녀처럼 말이다.

"힘의 극, 의의 극, 경의 극, 마음의 극?"

진남은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처음에 태고 무인이 되고 이어 역천 무성이 되었으며 무도규칙을 초월했다.

마침 이 네 가지와 맞물렸다.

진남이 극경에 도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럼, 극경 위에 또 다른 경지가 있습니까?"

"있다. 지금 네 경력이나 경지로는 아무리 큰 기연을 만난다고 해도 그 경지를 돌파할 수 없다."

구리거울은 차갑게 말했다.

"허나, 네가 그 경지의 문턱에라도 닿는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다. 무신이 되면 시룡멸도주선창도 들 수 있다."

"문턱에라도 겨우 닿으면 된다는 말입니까? 그건 무슨 경집니까?"

진남은 궁금했다.

"그건 구천에 오르면 알게 될 거다."

진남은 할 말을 잃었다.

'경지조차 알려주지 않다니.'

구리거울이 알려주지 않은 것은 그 경지가 진남에게는 너무 멀기 때문이었다.

구천선역에서 그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패주들이었고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 경지의 문턱에 닿는 것도 엄청 힘든 일이라 지금껏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구리거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진남도 더 묻지 않고 사색에 잠겼다.

"극경 위의 경지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럼 유일한 방법은 무신 경지를 돌파하고 수련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구천에서 대제가 되거나 무신이 되는 것엔 제명과 신격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진정한 무도를 수련하면 되었다.

진정한 무도를 수련하면 원도천산 등이 말하던 수련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변화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커다란 틈으로 날아갔다.

"응?"

진남은 날아오르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있던 틈 속은 비범한 곳이라 모든 신념과 기운을 차단했다.

게다가 전신의 왼쪽 눈도 없으니 진남은 바깥 상황을 알지 못했다.

틈 주변은 넓고 시뻘건 땅이었다.

땅에는 용 같은 골짜기들이 사방으로 뻗었는데, 그 위로 상고의 잔해들과 피가 채 마르지 않은 시체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허공의 깊은 곳과 골짜기 안쪽에는 여전히 신술의 의지들이 조금 남아 있었다.

심지어 몇몇 의지들은 진남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이번에는 심상치 않은 곳으로 왔구나."

진남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두 눈에 빛이 스쳤다.

위험한 곳일수록 기연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았다.

"가 보자."

진남은 혼잣말을 하며 기운을 거두고 날아갔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진남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곳의 커다란 산들과 기이한 이상들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구천의 모든 것들은 창람대륙이 비교할 수 없었다.

오는 내내 진남은 수확이 꽤나 많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육신이 부서지지 않은 시체들의 옷차림과 이상하고 오래된 각인을 보니 전장에서 싸움을 벌인 무인들 대부분이 이 세계의 여러 세력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전장도 창람대륙의 어떤 금지들처럼 특정한 시기에 열리는 것 같았다.

여러 세력의 강자와 천재들이 전장에서 승부를 가르고 전승을 얻을 수 있게 말이다.

"저건 뭐 하는 곳일까?"

진남은 걸음을 멈추었다.

몇백 리 밖에 하늘 높이 솟은 고목들이 모여 숲 바다를 이루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목들은 먹처럼 시커멓게 생겼고 바람이 세게 불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뭇잎들도 움직이지 않고 고요했다.

진남은 등골이 서늘하고 솜털이 곤두섰다.

"이곳은 보는 것만으로 충격이 크다. 지금 실력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겠어……."

진남은 시선을 거두고 계속 날았다.

그는 위험을 겁내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위험한 것을 전부 겪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행위는 용감한 것이 아니라 무식한 짓이었다.

"앞에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

잠시 뒤, 진남은 민첩하게 멀리서 전해오는 파동을 느꼈다.

그는 발끝을 차고 허공에 몸을 숨겼다.

"저건……?"

잠시 뒤, 진남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상황을 보자 흥분했다.

웅장한 산은 신검처럼 구름 위로 우뚝 솟아올라 날카로운 살기를 뿜었다.

웬만한 무신 정상급보다 기운이 더 강했다.

산 아래에는 오래된 도장이 있고 몇십 명의 대제 거물들이 격렬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산꼭대기에는 스무여 개의 엄청난 신광이 번쩍였다.

무신 강자들이 싸우는 중이었다.

그들은 무신 경지 삼 단계에서 육 단계들이었다.

그들은 겉모습이 진남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즉, 이들은 모두 절세의 천재였고, 그 숫자는 창람대륙보다 몇 배나 더 많았다.

"어? 저들은 뭘 두고 싸우는 거지?"

진남은 산기슭과 산꼭대기의 물건에 눈길이 갔다.

산기슭에서는 대제 경지 무인들이 열다섯 개의 붉은색 옥패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고 산꼭대기의 무신 경지 강자들은 세 개의 자금색 옥패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다.

현묘하고 알아보기 어려운 오래된 부문들이 새겨진 옥패들은 엄청난 영성과 힘을 풍기고 있었다.

대제들이나 무신 강자들은 제술과 신술로 옥패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옥패들은 용처럼 이리저리 피했다.

웅-!

이때, 진남의 마음이 두근거리더니 어떤 의지가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 * *

산기슭의 도장.

수많은 제술들이 이리저리 엉키고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강한 위력을 드러냈다.

파란색 두루마기를 입고 대제 경지 정상급에 도달한 청년이 호통쳤다.

"정태여(程太如), 너 진짜 상관빙옥(上官氷玉)을 도울 거야? 그럼 넌 우리 순선궁(純仙宮)의 적이야!"

"우리 무검파(無劍派)도 널 가만두지 않겠다!"

제창(帝槍)을 든 청년이 호통쳤다.

대제 경지 정상급의 청년은 머리카락이 침처럼 뾰족하고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다.

"호호. 서동결(徐東決), 왕연(王衍), 그런 협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제부터 정 도우는 우리 늠혼교(?魂?)의 사람이다!"

얼음 치마를 입은 상관빙옥은 두 눈에 비웃음을 띠었다.

"하하, 나는 너희 같은 자들과 적이 되는 게 좋다.

나를 죽이고 싶으면 마음껏 덤비거라!"

강한 기운을 풍기고 온몸에 붉은빛을 가득 감은 청년이 통쾌하게 웃었다.

"너……."

서동결과 왕연은 안색이 변했다.

정태여는 파벌이 없는 무인이었다.

경지가 서동결, 왕연과 비슷했지만 선근이 없었다.

다만, 정태여는 사극지경 중 두 개의 극을 장악했기에 반보 극경에 이른 것과 같았고, 때문에 실력이 서동결, 왕연보다 월등했다.

정태여가 상관빙옥을 돕는다면 옥패들은 대부분 늠혼교에서 가져갈 게 뻔했다.

한마선묘(旱魔仙墓)가 열리면 서동결, 왕연은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우리 연합하자!"

서동결과 왕연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자신의 사제들에게 신념을 전달했다.

그들은 변신을 거듭하며 수많은 제술을 드러내 제술 대진들을 펼쳤다.

* * *

멀리서 지켜보던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머릿속에 날아든 의지는 낯선 육신의 것이었다.

낯선 육신의 의지는 분노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이렇게 죽은 것이 억울했다.

"생명은 신비하구나! 몸이 죽고 영혼이 부서져도 집념이 몸에 남아 있을 수 있다니!"

진남은 감탄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도우, 너는 이미 죽었다. 이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해도 돌이킬 수 없어. 다음 생으로 윤회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그리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든 그때 여러 천재들과 우열을 겨루거라."

진남의 말에 의지는 파동이 작아졌다.

"내가 네 육신을 차지한 것도 인연이다. 이 육신으로 여러 대제들과 싸워서 저 옥패들을 전부 가져오면 되겠느냐?"

진남은 말했다.

도장에 있는 대제들은 내력이 대단했다.

그들이 쟁탈전을 벌이는 옥패는 특별할 게 분명했다.

'무슨 작용이 있든지 우선 손에 넣자!'

의지는 그제야 떨림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진남의 말에 동의한 듯 버둥거리지 않았다.

진남은 그제야 이 육신을 제대로 장악한 기분이 들었다.

"구천의 천재들이 얼마나 실력이 대단한지 한번 보자꾸나."

진남은 전의를 드러내고 발끝을 차서 앞으로 날아갔다.

"도장은 보이지 않는 힘에 덮여있네?"

도장에 들어서려던 순간 진남은 느낄 수 있었다.

도장을 덮고 있는 힘은 너무 강해서 평범한 대제 경지의 무인이 억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 힘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구나. 나는 극경 대제이다. 이 정도 힘이 나를 막을 수 없지. 산기슭의 도장이 이러면 산꼭대기의 무신 강자들도 이 힘의 속박을 받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진남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붉은색 옥패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건 내 거다!"

진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몇몇 대제들은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진남은 손을 뻗어 제력을 뿜어 붉은색 옥패를 잡았다.

옥패는 아무리 버둥거리고 반항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진남이 극경 제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