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화 영보전에 있다
고뇌대제는 냉소를 지었다.
그는 허망대제를 믿지 않았다.
다만 고뇌대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진남이 말했다.
"고뇌대제, 허망전주의 말이 맞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영주는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고뇌대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허망대제는 진남이 속은 것 같아 더욱 짙은 냉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남과 사대 장로는 영주를 모두 마셔버렸다.
진남은 열 병을 마셨다.
사대 장로는 비교적 적게 마셔 다섯 병밖에 되지 않았다.
진남의 몸에서는 옅은 술기운이 감돌았고 사대 장로들의 술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옥상극락주는 보통 영주가 아니었다.
"왜 아직 취하지 않지? 무수 때문인가?"
허망대제와 사대 장로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강한 천재들이라도 열 병을 마시면 분명 허심액이 발작할 것이다.
그들은 이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도 했다.
"진남 장로, 실컷 마시고 이 열 병을 가져가시오. 내가 한 병 권하겠소."
사대 장로 중 유일한 여인인 유설은 진남에게 눈을 깜빡이며 열 병을 건네고 스스로 한 병을 꺼냈다.
"또 열 병이야?"
그 자리에 있던 장로, 집사들도 혀를 끌끌 찼다.
스무 병이면 십육만 공헌점이 있어야 했다.
"유설 장로 고맙다."
진남은 또 한 병을 다 마셨다.
"진남 장로……."
위명은 얼른 일어났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고 사대 장로는 또다시 돌아가며 술을 권했다.
하지만 진남은 여전히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진남의 술기운은 짙어졌고 사대 장로는 몰래 제술을 움직여 술기운을 진압했다.
진남이 또 열 병을 다 마시자 주위의 장로, 집사들은 더욱 놀랐다.
일곱 그루의 무수를 가진 사람답게 무려 스무 병의 옥상극락을 마셨지만 아무 일 없었다.
고뇌대제도 슬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망대제와 사대 장로는 안색이 변했다.
'어떻게 된 거지?'
'허심액이 발작하지 않다니?'
'일곱 그루의 무수가 아무리 강해도 스무 병이면 반응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사대 장로, 오늘 정말 고맙소. 옥상극락은 정말 좋은 술이오. 염치불구하고 물어보겠소. 혹시 더 있소?"
진남은 공수하고 웃었다.
"계속 마시거라."
허망대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전음했다.
'오늘 한번 두고 보자. 일곱 무수가 무적인지.'
"하하, 물론 더 있소. 오늘 실컷 마시시오!"
위명은 거짓 웃음을 지으며 납계에서 또다시 옥상극락 열 병을 꺼냈다.
"위명 장로, 통쾌하오. 내가 한 병 권하겠소."
진남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한 병을 들고 바로 마셨다.
"진남 장로……."
잠무, 유설, 여비한이 잇달아 일어섰다.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다만, 앞의 두 번과 달리 아무리 경지가 강한 사대 장로들이라도 옥상극락의 술기운을 못 이기고 강한 제술을 움직여 누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진남은 제술을 움직이기는커녕 체내의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그의 경지가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 병의 옥상극락을 또 다 마셨다.
"주량이 대단해."
"역시 진남 장로야."
주위에 있던 장로, 집사의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
지금까지 진남은 무려 삼십 병의 옥상극락을 마신 것이다.
그들이었다면 열다섯 병을 마셔도 대단한 일이었다.
허망대제와 사대 장로는 안색이 변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설마 허심액이 진남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걸까?'
"스승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위명, 음무 등은 이제 힘들었다.
그들은 이미 몇십 병을 마셨고 계속 마신다면 엄청난 수단을 써야 술기운을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하하, 역시 통괘하오. 사대 장로, 더 있소?"
진남은 네 사람을 보며 크게 웃었다.
말을 마친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마셔라. 계속 같이 마시거라. 열 병만 더 마시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망설이던 허망대제는 진남의 변화를 예리하게 알아차리고 사대 장로에게 전음했다.
'이미 삼십 병의 옥상극락을 마셨는데 이런 기회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네."
그 말을 들은 위명, 음무 등은 진남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오대 장로이고 대제의 제자이며 신방 천재인 그들이었다.
자신들이라면 진남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남 장로, 더 마시고 싶다면 내가 사겠다."
허망대제는 손가락을 튕겨 옥상극락 열 병을 진남의 앞에 놓았다.
나머지 몇 병은 각각 사대 장로 앞에 놓았다.
"전주, 고맙습니다. 위명 장로, 내가 먼저 한 병 마시겠소."
진남은 공수하며 웃었다.
그는 한 병을 다 마셔버렸다.
기세는 여전했다.
"음무 장로……."'
진남은 다 마신 뒤 쉬지 않고 또 다른 한 병을 집었다.
앞에 세 번과 다른 것은 처음에는 사대 장로가 그에게 술을 권했지만, 지금은 진남이 권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옥상극락은 또 동났다.
연이어 마신 사대 장로는 체내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술기운이 감돌자 네 사람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들은 서둘러 결인을 만들고 강한 제술을 움직여 급히 진압하려 했다.
하지만 진남은 여전히 표정이 부드러웠다.
"와, 옥상극락 사십 병을 마셨어."
"진남 장로의 주량은 너무 대단하다."
그 모습을 본 주위의 각 장로, 집사들은 탄식했다.
허망대제와 사대 장로는 안색이 보기 싫게 변했다.
'이럴 수가?'
'대제라도 그렇게 많은 허심액을 마시면 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남 장로, 옥상극락 사십 병을 연달아 마셨는데 괜찮은 거냐?"
허망대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는 말투를 최대한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위명, 음무 등도 진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허망전주, 사대 장로, 잘 모르겠지만 식해를 산처럼 움직이기 힘들게 만들었더니 옥상극락 마흔 병을 마셔도 괜찮습니다."
진남은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식해가 견고하면 더 많이 마실 수 있다고?"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다음에 술 내기를 하면 미리 준비해야겠어."
그 말을 들은 사대 장로, 집사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처음에 진남이 많이 마실 수 있었던 것이 일곱 그루 무수의 효능 때문이라 생각했다.
고뇌대제는 그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달았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허망대제를 바라봤다.
허망대제와 사대 장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피를 뿜을 뻔했다.
'견고한 식해가 주량을 높여준다고?'
'높여주긴 개뿔!'
진남이 그 말을 한 것은 계획을 이미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다만 식해가 아주 대단해 그들의 허심액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허망대제는 앞서 진남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허심액 때문인 줄 알았다.
한데, 이제 보니 진남이 일부러 그를 속인 것이었다.
"허망전주, 사대 장로, 이제야 느낌이 오는데 옥상극락이 더 있습니까?"
진남은 일부러 물었다.
허망대제와 사대 장로는 안색이 굳어졌다.
'너와 또 마시라고?'
'또 너와 술을 마시겠느냐?'
그들은 이미 사십 병의 옥상극락으로 이십만여 점의 공헌점을 잃었다.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
"하하, 진남 장로는 역시 주량이 세구나. 내가 보기엔 더 이상 마실 필요가 없다. 난 일이 있으니 먼저 가겠다."
허망대제는 일어서서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떠났다.
"진남 장로, 우리도 이만 가겠다."
사대 장로도 일어서서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허망대제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더 있다가는 괴로워서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대전의 장로, 집사들도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이제야 기이한 분위기를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하하하, 진남 장로, 대단하구나."
고뇌대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하지만 허망대제 등이 진남에게 본전도 못 찾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세 시진이 지나서야 자리를 떴다.
영주를 좋아하던 많은 무인들은 돌아간 뒤 미친 듯이 식해를 수련했다.
그들이 다음번 술 내기를 했을 땐 식해가 강해지자 주량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이제 자리가 잡혔으니 암영전에 다녀올 때가 됐구나."
진남은 궁전으로 돌아와 잠시 생각했다.
그가 계획을 세우고 일어나려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그의 가슴에 붉은빛이 빛나면서 빠르게 움직이더니 미친 듯이 한데 모였다.
짧은 시간에 붉은빛이 신비로운 붉은 부문으로 변했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부문은 그가 녕검비 등을 만났을 때 본 적이 있는 신방부문이었다.
'신방부문이 왜 내 몸에서 나타난 걸까?'
"진남, 제방 순위에서 지워지고 이례적으로 신방에 들어갔다. 순위는 팔천일 위이다."
노인의 목소리가 진남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례적으로 신방에 들어갔다니? 설마 이 목소리는 신방의 영?"
진남은 놀랐다.
그것은 너무나 수상쩍었다.
신방에 들어가려면 중주 제방처럼 시험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반천맹이나 다른 세력과 달리 진남은 신방에 들어가면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방에서 이례적으로 나를 끌어들이다니?'
그는 무도규칙을 초월했지만, 제위에 오르지 못해 그를 특별하게 대할 이유가 없었다.
"구린 구석이 있구나. 신방의 영이 뭔가를 꾸미려는 거겠지? 이 문제는 당장 답이 없으니 그냥 두자. 일단은 빨리 창람 나무의 조각을 찾아야 해."
그는 증제하고 진정한 대제의 힘을 가져야 제방, 신방 혹은 남천문 등 대단한 거물들의 계략에 대항할 수가 있었다.
"암영전으로 가자."
진남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발끝을 차더니 암영전으로 날아갔다.
반천전과 달리 반천맹의 제자는 암영전으로 들어가려면 공헌점을 내야 했다.
비밀을 알아보려면 암영전 장로전에 들어가 삼만 공헌점을 내야 했다.
만약 태고의 비밀들을 알아보려면 오만 공헌점을 내고 오대 장로전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진남처럼 반천전에서 일정의 지위 이상을 얻은 사람들은 낼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진남은 반천전 오대 장로라 암영전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남은 암영전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전당은 어두웠다.
주위의 벽에는 푸른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 앞에는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진남 장로구나. 암영전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노인은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노인은 암영전 오대 장로 중 한 명이었다.
"선배님, 저는 반신지국 혹은 중주에서 창람 나무의 조각이 나타났는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진남이 공수하고 물었다.
창람 나무의 조각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진남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거물들이 알더라도 기껏해야 아홉 무수를 융합하는 데 사용할 거라고 추측할 것이었다.
설마 그가 증제하는 데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할 것이었다.
"창람 나무의 조각?"
노인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그걸 찾는 거냐?"
"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남 장로는 모르는 것 같구나."
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리 반천맹 영보전의 다섯 번째 층에 창람 나무의 조각이 있다. 필요하면 영보전으로 가보거라."
"영보전에 창람 나무의 조각이 있단 말입니까?"
진남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는 반천맹 영보전에 창람 나무의 조각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