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7화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진남과 역봉은 한 평원을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진남, 붕멸지술을 펼칠 때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걱정되지 않았느냐?"
역봉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진남의 정체가 드러나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히 진남은 아직 반천맹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반천맹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반신지국의 사람들은 제가 일곱 무수를 가지고 있는 것만 압니다. 제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반천맹과 남천신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남천신지에서도 일부분만 잘 알고 있지요."
진남은 담담하게 답했다.
역봉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진남이 이렇게 꼼꼼할 줄 몰랐다.
"선배님,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진남은 화제를 돌렸다.
"나에게 역천개명을 할 수 있는 지도가 있는데, 기린 산맥을 가리키더구나. 기린 산맥으로 가자꾸나."
역봉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설명을 보충했다.
"이 지도는 반천맹에서 준 것이다. 반천맹에서는 심사를 통과하거나 임무를 집행하면 일정한 기연을 상으로 준다."
진남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는 점점 더 반천맹에 관심이 갔다.
이 세상의 여러 세력들과 격이 완전히 달랐다.
둘은 이틀을 날아서 기린 산맥에 도착했다.
구름까지 높이 솟은 산들이 서로 모여 있었다.
산은 모두 영광에 덮여있어 현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패기 가득한 기린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었다.
진남은 왼쪽 눈으로 훑어보았다.
산마다 강한 요수와 무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네 동술이 나보다 강하니 네가 길을 인도 하거라."
역봉은 지도를 넘겨주었다.
진남은 지도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산맥에 들어섰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둘은 아무런 위험도 만나지 않고 막힘 없이 들어갔다.
역봉은 점점 놀랐다.
그는 진남을 시험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진남의 동술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 녀석은 대체 얼마나 강한 실력을 숨기고 있는 거야?'
"응?"
진남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느냐?"
역봉은 주변을 훑어보더니 물었다.
그는 아무런 강자의 기운도 느끼지 못했다.
"방원 십 리에 모두 붉은색 꽃이 있습니다. 이 꽃은 영기가 없고 특별하지 않지만 방대한 진법을 이루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행적을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진남은 미소를 지었다.
동술이 강한 자를 대비하려고 이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진법을 친 사람도 대단했다.
만약 진남에게 전신의 왼쪽 눈이 없었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진남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수림에서 강풍이 불었다.
슉-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들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스물세 명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역봉은 안색이 변했다.
스물셋 중 열다섯은 무조 경지 정상급이었다.
남은 여덟은 무조 구 단계이거나 팔 단계였다.
이들 무리는 무척이나 강했다.
"놈, 실력이 좀 있구나. 네가 유일하게 내 진법을 보아낸 사람이다. 그 점을 높이 사서 가지고 있는 납계, 저장주머니 그리고 모든 재물을 다 놓으면 이 적월홍(赤月紅) 어르신께서 살려는 주마."
보라색 수피를 입은 비열하게 생긴 중년 사내가 말했다.
"그래?"
진남의 몸에서 스산한 기운이 풍겼다.
'내가 먼저 강탈하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오히려 나를 강탈하려고 해?'
"너 설마 우리와 싸울 거야?"
적월홍은 어이가 없었다.
그의 뒤에 있던 스무여 명의 무인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에게 포위당했던 사람들은 모두 얌전히 재물을 내놓았다.
삼대 세력이나 육대 금지, 팔대 고족의 사람들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싸울 태세를 취해?'
"허허, 배짱이 크구나. 형제들, 함께 공격하거라. 이 녀석에게 내가 왜 적월홍인지 가르쳐주거라!"
적월홍은 명령을 내렸다.
스무여 명의 무인들은 동시에 살기를 드러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때, 기린 산맥의 깊숙한 곳에서 찬란한 붉은 빛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 허공을 찔렀다.
잠시 후, 그 붉은 빛은 사라졌다.
진남과 역봉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붉은빛이 솟구친 곳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 표시된 곳이었다.
"응? 보물이 나타났어?"
적월홍과 무인들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린 산맥에서는 묘한 빛의 파동이 자주 있었다.
보물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선배님, 갑시다!"
진남은 적월홍 등을 차갑게 훑어보더니 발끝을 차고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도망가려고? 어림도 없다! 만화대진(萬花大陣)!"
적월홍이 호통을 치더니 손을 내밀었다.
순식간에 몇만 송이의 꽃잎들이 하늘을 덮고 비범한 위력을 가진 대진을 만들었다.
진남은 이를 보곤 손가락을 튕겼다.
도의가 나와 대진을 산산조각 냈다.
그와 역봉은 수림 속으로 사라졌다.
"……!"
무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적월홍의 진법이 쉽게 풀릴 줄 몰랐다.
"……멍청하게 서서 뭣들 하는 게냐? 쫓아가!"
적월홍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들에게 포위된 후 도망간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적월홍은 이 수모를 견딜 수 없었다.
* * *
기린 산맥의 다른 곳에 있던 강자 무인들도 붉은빛을 발견하고 기린 산맥의 깊숙한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응? 이건……?"
기린 산맥의 수림에서 한 청년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남천각인의 기운이다. 녕검비를 죽인 녀석이 온 건가? 녕검비를 죽인 걸 보니 실력이 강한 자이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와 장로들도 불러서 한 번에 포위해서 공격해야겠어!"
청년은 영패를 꺼내 신념을 불어넣었다.
잠시 후, 청년의 영패에 빛이 반짝거렸다.
여러 신방의 천재와 장로들은 그의 부름에 대답했다.
* * *
진남과 역봉은 엄청난 속도로 적월홍 등을 멀리 따돌렸다.
일 주 향이 타는 시간이 지나자 진남과 역봉은 속도를 늦추었다.
"응?"
진남은 눈썹을 살짝 추세 세웠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산골짜기가 있었다.
산골짜기 밖에 무조 경지 정상급 셋, 무조 경지 팔 단계 둘, 무조 경지 칠 단계 한 명이 제술들을 펼치고 있었다.
산골짜기는 짙은 혈광에 덮여있었다.
입구 쪽엔 혈색 부문과 혈색 대진이 있어 매우 위험했다.
무조 경지 정상급 강자라도 함부로 뛰어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섯 무인은 입구의 진법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진남, 사방에서 적어도 서른 개의 강한 기운들이 몰려온다."
역봉은 눈을 움직이며 전음했다.
그의 동술은 진남보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볼 수 있는 범위는 엄청나게 넓었다.
"두 분, 이곳 혈광은 공격을 받으면 반격을 해서 억지로 들어갈 수 없소. 유일한 방법은 이 부적과 진법을 없애는 것이오. 두 분은 우리와 함께 연합……."
이때 여섯 무인이 진남과 역봉의 기운을 느끼고 외쳤다.
그들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진남은 역봉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끝을 차고 빛이 되어 산골짜기 입구로 날아갔다.
역봉도 그 뒤를 따라갔다.
여섯 무인은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부문과 진법은 무조 경지의 강자도 죽일 수 있었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건 죽으러 가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장면을 목격했다.
진남이 움직이는 곳에선 강한 위력을 발휘하던 부문과 진법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진남과 역봉은 그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어……?"
여섯 무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모든 부문과 진법을 꿰뚫어 본 거야?'
"빨리 공격해!"
한 무인이 정신을 차리고 고함을 질렀다.
두 사람이 보물을 다 가져가면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산골짜기에 몰려든 무인은 더 많아져 열일곱 명이 되었다.
적월홍도 스무여 명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그 둘은 어디로 갔지?"
적월홍은 씩씩대며 주변을 둘러보곤 한 무인을 잡고 흉악하게 물었다.
"방금 흰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과 노인을 못 봤느냐?"
"그, 그 둘은 이미 산골짜기에 들어갔소. 그들을 찾으려면 우리와 함께 진법과 부문들을 부숩시다."
여섯 무인 중 한 명이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뭐라? 들어갔어?"
적월홍은 깜짝 놀랐다.
그는 바로 부하들에게 동시에 공격하라고 명했다.
* * *
진남과 역봉은 부문과 진법을 지나서 굴에 도착했다.
굴은 높이가 칠 장, 넓이가 사 장이었다.
안은 시커메서 끝이 보이지 않았고, 피비린내가 흘러나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진남과 역봉이 굴에 들어서자 깊숙한 곳에서 수시로 무조 팔 단계 경지의 힘을 가진 핏물로 만들어진 기린이 달려들었다.
"이곳은 참 이상하구나. 산골짜기 위에 나타났던 혈광이나 입구 쪽 부문과 진법 그리고 핏물 기린을 보면 배후에서 이것들을 펼친 힘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방해 수단들이 거칠고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역봉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에게 이 힘을 주고 금제를 치라고 하면 매우 위험했을 것이다. 진남처럼 무도규칙을 초월한 천재라고 해도 깊숙한 곳에 들어가려면 애를 먹을 것이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의심 가는 점이 많았다.
둘은 핏물 기린을 죽이며 앞으로 나아가 굴 끝에 도착했다.
끝에는 혈색의 구리 문이 있었다.
구리 문에는 기린 그림들이 있었고 짙은 요기를 풍겼다.
진남은 문을 훑어보다가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쿵-
혈색 구리 문은 주먹 끝에서 퍼지는 붕멸의지에 의해 부서졌다.
"이건……."
진남과 역봉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깜짝 놀랐다.
구리 문 뒤에는 넓은 땅이 있었다.
땅 위에는 길이가 삼천팔백 장 넓이가 이천삼백 장이 되는 거대한 도장이 떠 있었다.
도장은 혈색이었고 방대한 요기와 영기를 풍겼다.
도장에는 호수가 있었는데, 호수 주변에는 짙은 영기를 풍기는 기이한 형태의 화초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특히 세 그루의 고목이 있었는데, 높이가 십 장이 되고 도장처럼 시뻘건 색이었다.
고목은 나뭇잎이 무성하고 나뭇가지에는 기린 그림들이 있었다.
심지어 고목은 풍기는 기운마저 기린 같았다.
"기린목(麒麟木) 세 그루, 사상고목(四象古木), 무엽고목(無葉古木), 한살고목(寒煞古木), 무비상류(無非相柳), 백린초(百麟草), 기린혈생화(麒麟血生花) 등등 모두 기린혈로 키워야 하는 천재지보들이다……."
역봉은 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이게 전부 태고 기린혈이 굳어서 생겨난 거란 말이야?"
* * *
같은 시각, 산골짜기 밖.
사람들의 공격에 부문과 진법은 조금씩 부서졌다.
바로 그때, 열세 개의 강한 기운이 허공을 뚫고 그곳에 내려왔다.
적월홍 등은 돌아보고 안색이 변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남천신지 사람들이 열세 명이나 왔어?'
'남천신지 신방 제자가 다섯, 장로가 여덟 명이네?'
"별 볼 일 없는 놈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건 낭비 아니냐?"
한 장로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로, 녀석은 실력이 꽤 강합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연합해야 하지요. 게다가 이곳에 반드시 큰 보물이 있을 겁니다."
한 내문제자가 소리 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자는 이 산중에 있다. 함께 들어가자."
위엄이 있는 장로가 손을 흔들었다.
그들 열셋은 동시에 산골짜기에 들어섰다.
그들은 여러 현묘한 수법을 사용하여 부문과 진법을 지나갔다.
적월홍 등 무인들은 그 모습을 보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방대한 무리까지 기린 산맥까지 올 줄은 몰랐다.
'남천신지의 장로 말을 들으니 누구를 죽이러 온 것 같던데……. 설마 방금 전 그 두 사람인가?'
생각하던 적월홍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청년과 노인은 무조 경지 정상급이었다.
남천신지에서 대단한 사람들을 보내 추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상대들이었다.
"에이, 몰라! 일단 다들 계속 공격해. 이제 거의 다 왔는데 물러설 거냐? 우리도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느냐?"
적월홍이 외쳤다.
다른 무인들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천신지의 사람들은 강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든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