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화 유혹
당청산과 강벽난은 진남의 앞을 막고 위압을 드러냈다.
당청산은 무표정했고 강벽난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이다. 하하!"
사마공은 상황을 파악하고 크게 웃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당청산과 강벽난에게 말했다.
"당 형, 강 도우, 오랜만입니다. 도와주어서 고맙습니다."
당청산은 그를 차갑게 훑어보고, 강벽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공은 마른기침을 하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한 명은 살신이고 한 명은 똑똑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둘에게 함부로 장난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현월과 목목은 그제야 회복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진남의 납계에서 강한 생명의 힘이 그의 몸을 치료해주고 있어. 아마 반 시진이면 다 회복할 수 있을 거야."
강벽난은 진남을 훑어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심각한 상처는 보통의 생명력으로 회복하기 힘들 텐데…….'
"반시진?"
당청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아홉 개의 제명쟁탈전을 쳐다보았다.
그는 진남을 보호하기 위해 제명쟁탈전을 포기했다.
그러나 반 시진 후까지 다른 천재들이 제명을 받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었다.
강벽난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마공은 둘을 힐끗 보다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싸움터로 시선을 돌렸다.
* * *
중주 유정도장.
금빛에 둘러싸인 유정도장엔 계속해서 도음이 감돌았다.
만 리 밖에 있는 여러 세력의 무인들은 눈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안에 있는 천재들이 성공적으로 제명을 받기를 기다렸다.
이때, 별안간 시커먼 안개가 빠른 속도로 스치더니, 유정도장에 스며들어 금빛 안으로 사라졌다.
"어?"
"방금 그게 뭐지?"
"검은 그림자를 본 것 같았는데?"
무인들은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 바라보았지만,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어떻게 유정 도장에 들어갔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인데?'
* * *
신비한 검은 그림자가 유정도장에 들어섰을 때, 중주의 허공 속.
신비하기 그지없는 궁전이 수많은 빛 속에 떠 있었다.
설령 무제 강자가 지나가도 궁전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무연각이었다.
"이런! 진남이 위험하다!"
신비한 청년은 벌떡 일어서더니 안색이 변했다.
"걱정 말거라."
천기 할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리고, 설령 걱정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제명쟁탈전에서는 너와 내가 아니라 제방도 간섭할 수 없다."
"이 일은 너무 이상합니다. 진남의 실력은 중주의 천재들을 다 이기고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중주의 천재들이 연합하여 진남을 다치게 하다니……."
신비한 청년은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모든 것이 운명이다."
천기 할멈은 한참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비한 청년은 그 말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 * *
중주의 기이하고 신비한 곳.
백발노인이 정원에서 바둑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둑판엔 검은 바둑알이 가득했다.
백발노인의 뒤에 열다섯 명의 제사가 서 있었다.
백발노인은 제방의 영이었다.
펑-!
바둑판에서 폭발음이 들리더니 금이 여럿 생겼다.
열다섯 제사는 그 모습에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럴 리가?"
"누가 제명쟁탈전에 들어왔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이건 제명쟁탈전이다. 무신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단 말이다!"
그들은 천 년 동안 제사 직에 종사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백발노인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한참 후,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그자가 이런 수단을 쓸 줄은 몰랐다. 지난번에 제어와 진남을 미끼로 그가 공격하게 한 것이 화근이구나."
열다섯 제사들은 서로 바라보았다.
"제방 대인,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한 제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강자가 제명쟁탈전 세 번째 관문에 들어와서 모든 천재들을 죽게 만든다면 제사들은 천지의 엄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우리라고 하더라도 제명쟁탈전 세 번째 관문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러니 임기응변할 수밖엔 없다."
백발노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너무 심각한 건 아닐 거다. 세 번째 관문에 들어온 게 그자의 본체는 아니니 경지가 대제는 안 될 거다."
열다섯 제사들은 안심했다.
대제 경지가 되지 않는다면 진남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제방 대인, 무례하지만 여쭙겠습니다. 대체 누가 공격한 겁니까?"
한 제사가 한참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남천문."
고작 세 글자였지만, 마치 청천벽력 같았다.
* * *
세 번째 관문에 참가한 천재들은 지금 외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석청범은 걸음마다 연꽃을 피웠다.
그는 신비한 제술을 펼쳐 주변의 천재들을 죽이고 한걸음에 제단에 올랐다.
불타 진자래는 보제나무로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제단에 올랐다.
둘은 거의 동시에 풍화홍뇌대겁을 일으키고 제명의 심사를 받았다.
천재들은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들은 이내 결심하고 온갖 수단을 펼쳤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졌다.
잠깐 사이에도 수많은 천재들이 죽어 나가며, 피가 도장을 흠뻑 적셨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마녀 천천, 오창천, 음천도인 셋도 제단에 올라 대겁을 불러 제명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도장에 남은 제명은 진남의 것을 제외하면 이제 네 개밖에 없었다.
천재들은 더욱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당청산과 강벽난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반 시진까지 이제 겨우 절반이 지났다.
남은 시간 동안 제명을 쟁탈할 수 있을까?
제단에 오른 자들은 모두 천재들이었다.
제명을 받을 확률이 무척 높았다.
특별한 의외의 사건이 없는 한 모두 제명을 받을 것이었다.
기회는 점점 적어질 것이었다.
바로 그때, 혼수상태였던 진남의 의식이 돌아오고 천천히 눈을 떴다.
"내가 왜……."
진남은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쿵쿵거리는 싸움 소리와 천재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모습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긴장하고 전의를 풍겼다.
동시에, 제명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며 중상을 입고 기절한 것이 기억났다.
"진남, 깼소?"
사마공은 그를 보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당청산과 강벽난도 그 모습에 안심했다.
"어? 사형? 강벽난? 사마공? 어떻게 다들……."
진남은 그 사람들을 보고 다시 멀리 싸움터를 보더니,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를 지키기 위해 이들은 제명쟁탈전을 포기하고 달려 온 것이었다.
"다들 가서 제명쟁탈전을 하세요. 나는 이제 괜찮습니다."
진남은 감동을 억누르며 빠르게 말했다.
그는 이들의 앞날에 방해가 되기 싫었다.
"제명은 개뿔. 저것들은 미쳤소. 연약한 내가 끼어든다면 맞아 죽을 수 있소."
사마공은 입을 벌리고 웃었다.
현월과 목목도 어깨를 으쓱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네 경지는 이제 겨우 삼 할밖에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 가면 저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 육 할 정도 회복되면 나도 떠나겠다."
강벽난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녀와 당청산이 자리를 뜨면 천재들이 살초를 펼치며 달려들 것이었다.
진남이 무도 규칙을 초월했다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감당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진남은 사양하려고 했다.
"그만 말하거라. 우리를 빨리 보내고 싶으면 얼른 회복에 집중하기나 하거라."
당청산이 차갑게 말했다.
진남은 코끝이 찡했다.
그는 심호흡하고 신념을 옥패에 주입했다.
그 속에서 생명의 힘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진남의 몸속에 들어가 회복을 도왔다.
'이 은혜는 가슴에 기억해야 해.'
"응?"
문득 강벽난은 무거운 표정으로 당청산에게 전음했다.
"이변이 생겼어요. 도장에 다른 사람이 나타났어요."
"뭐?"
당청산도 깜짝 놀랐다.
제명쟁탈전 세 번째 관문은 대제나 무신이라고 해도 들어올 수 없었다.
제방도 쉽게 누군가를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었다.
제명쟁탈전의 모든 것은 규칙대로 진행이 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백쉰세 명의 천재가 있었어요. 그중 쉰셋은 죽고 아흔 명이 남았는데, 지금은 아흔한 명이에요. 그자의 경지는 대제에 못 미쳐요. 그러나 기운을 변화시키는데 능해서 누군지 판단이 안 돼요."
강벽난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청산은 신념으로 훑어봤다.
과연 강벽난의 말처럼 아흔한 명이었다.
"제명 혹은 천재 때문에 왔을 거예요. 진남을 노리고 왔을 가능성이 크죠. 진남은 단천도와 무도 규칙을 초월하는 신비를 알고 있으니까요. 억지로 세 번째 관문에 들어온 걸 보면 실력이 강한 자일 거예요. 진남은 회복 중이니 우리가 단단히 준비해야 해요……."
강벽난은 두 눈이 빛났다.
흔적을 통해 단서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네 말이 맞다."
당청산의 눈에도 빛이 번뜩였다.
그는 몸속의 살신경을 움직이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둘은 진남이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도장을 노려봤다.
싸움에 빠진 천재들은 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가부좌를 틀고 제단에 앉아있던 석청범, 불타 진자래, 마녀 천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삼대 천재들은 제명의 심사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아직 네 개의 제명이 남아있었다.
도천중은 천재들을 죽이고 제단에 올랐다.
그는 당청산을 보며 호탕하게 웃은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대겁과 마주했다.
제명은 이제 세 개 남았다.
스스스-
진남은 생명의 힘을 받고 육신과 경맥 근골이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그의 경지는 육 할 가까이 회복됐다.
바로 그때였다.
진남은 심장이 찌릿했다.
전신의 왼쪽 눈, 전신의 왼팔, 전신의 오른팔이 무언가 느낀 듯이 빛을 반짝였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곧 기이한 목소리가 진남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네가 진남이냐?"
"누구냐?"
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도장에 있는 천재들은 모두 그를 알았다.
'왜 나에게 진남이냐고 묻는 자가 있지?'
"나는 남천영사(南天靈使)이다. 너는 남천문과 인연이 있고 삼성급이 되었다. 네가 나와 협력할 의향만 있다면 우리 사이의 원한은 없던 걸로 해주마. 게다가 남천문 안에 있는 것들도 너에게 주마. 그리고 무제는 물론이고 심지어 무신이 될 수 있게 해주겠다."
남천영사는 그를 유혹했다.
진남은 안색이 변했다.
'원한을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안에 있는 물건을 다 주겠다고? 남천문은 전신의 육신에 관해 알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남천문을 부수려고 한 것도 알고 있을까?'
수많은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 왼팔, 오른팔에서 빛이 반짝이던 것이 생각났다.
'아니다! 남천문이 전신의 육신에 대해 안다면 전신은 나에게 알려줬을 거다! 전신이 남천문을 부수려고 하는 것도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남천문이 이를 나에게 다 주겠다고?'
의혹이 다 풀리지 않았지만, 진남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남천영사는 결코 좋은 마음으로 그에게 접근한 것이 아닐 것이었다.
"흥! 내가 그리 속이기 쉬운 줄 아느냐?"
진남은 차갑게 웃었다.
그는 몰래 전신의 왼쪽 눈으로 도장을 훑었다.
"네가 그렇게 멍청하고 호의를 무시하니, 네 몸을 탈사해야겠구나!"
남천영사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이어서, 도장에서 눈에 띄지 않던 천재의 기운이 대폭 증가하더니 검은색 그림자가 되어 진남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