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화 진자래가 나타나다
"수호자!"
왕립풍, 백령 등은 그 모습에 공수했다.
수호자라는 것은 남주 황성을 수호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평소엔 폐관수련을 했다.
그들은 반보 무조 경지의 강자들이 황성을 공격할 때만 나섰다.
"너는 잠시 후에 다시 보자!"
우두머리 노인은 백령을 노려봤다.
그리고 다섯 흑포 무인들을 돌아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는 흑룡과 적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흑룡도 황성이 만만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 서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게 어떠냐?"
다섯 흑룡 무인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향은 아직 두 주 반이 남았다."
진남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건방진 후배구나. 상의할 여지도 없는 것 같으니 나도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
우두머리 노인은 차가운 빛을 뿜으며 손바닥을 날렸다.
나머지 여섯 노인들도 강대한 성광을 드러냈다.
'대화할 여지가 없으면 먼저 공격해서 흑룡의 무인들을 물리치고 이들에게 우리의 대단함을 보여주자!'
그 순간, 상황이 변했다.
쿵-!
커다란 주먹이 허공을 부순 것처럼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일곱 명의 수호자들과 왕립풍, 백령 그리고 거물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들은 저도 몰래 하늘을 쳐다봤다.
뿐만 아니라 황성에서 폐관 중이거나 수련 중인 모든 무인들이 안색이 변해서 하늘을 쳐다봤다.
방금 들린 소리는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본 그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황성의 하늘에 허공이 커다랗게 찢겨있었고 흑룡 같은 큰 배가 떠 있었다.
배는 가슴 떨리는 공포스러운 기운을 풍기며 나타나서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제, 제기? 흑룡?"
일곱 수호자들은 그 모습을 보자 안색이 변했다.
왕립풍, 백령 등은 제 자리에 얼어붙었다.
황성의 모든 무인들은 마음속에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남주 황성을 공격하러 온 건가?'
"다들 듣거라. 열 개의 무리로 묶어 순서대로 내려가거라. 진남은 악귀 감옥에 있다. 그 누구도 진남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 알겠느냐?"
외침이 구름을 뚫고 울려 퍼졌다.
"알겠습니다!"
흑룡의 무인들이 동시에 외쳤다.
엄청난 기운이 하늘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이어 반조 무조 경지의 기운들이 배에서 폭발하더니, 수많은 그림자들이 빛으로 변해 악귀 감옥으로 날아왔다.
열.
스물.
일흔.
눈 깜짝할 새에 백열세 개의 그림자가 악귀 감옥 회랑에 내려왔다.
그들은 한 쌍씩 서서 엄청난 기운을 풍겼다.
천지 감옥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이, 이런……."
일곱 수호자들과 왕립풍, 백령 그리고 거물들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마음속에 한기가 가득 찼다.
'백열세 명의 반보 무조 경지라니…….'
이들의 원래 실력은 무조 사 단계 이상은 되는 강자들이었다.
심지어 실력을 반보 무조로 억제했지만, 무조 정상급의 강자들도 있었다.
'설마 흑룡 전부가 남주 황성에 온 거야? 진남을 위해서?'
둥-! 둥-! 둥-!
땅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흑룡 통령은 엄청난 기운을 풍기며 악귀 대문을 향해 걸어왔다.
그는 일곱 수호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 무슨 일이 있었소? 이들이 자네를 감옥에 다 가두다니?'
황성의 모든 무인이 충격에 빠져도 흑룡 통령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진남에게 물었다.
흑룡 통령뿐 아니라 모든 흑룡 무인들이 동시에 시선을 돌리고 진남의 대답을 기다렸다.
"별일 아니오. 수련일 뿐이지. 황후가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겠소? 경지를 무성 오 단계로 억제했더니 내가 마음에 안 든 모양이요."
진남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흑룡 일행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황후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하하하! 재미있어, 재미있군. 남주처럼 작은 곳에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다니!"
흑룡 통령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곧 그는 웃음을 거두고 두 눈에 혈광을 뿜었다.
그의 목소리는 우레처럼 성 전체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 귀에 박혔다.
"황실을 멸망시키겠소? 아니면……. 성 전체를 부수겠소?"
수호자들과 황제 황후 그리고 모든 무인들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두 눈에 분노와 두려움이 떠올랐다.
'이렇게나 건방지다니! 입만 열면 황실을 멸망시키느니, 성을 부수느니 하는구나!'
그러나 그들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열세 명의 반보 무조 경지 강자들이 공격하면 남주엔 재앙이 들이닥치는 것과 같았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단지 황후와 원한이 있다. 내가 살인을 즐기는 자도 아니고 이유 없이 황실을 멸망시키고 성을 부수겠는가? 그저 황성을 짓밟기만 하고 무고한 생명들은 다치지 않게 할 것이다.'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향 두 주가 남았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진남은 수호자와 황제를 바라보며 평온하게 말했다.
흑룡 통령은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흑룡의 무인들과 함께 황제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진남이 한 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집행하면 될 일이었다.
"그, 그게……."
수호자들과 황제는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들은 진남이 이렇게 강한 배경을 가지고 있을 줄 몰랐다.
미리 알았더라면 강경한 태도로 밀고 나가지 않고 방법을 바꾸어 진남에게 사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황후 백령에게 스스로 경지를 폐하게 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백령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두 눈에 두려운 기색이 가득 차서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오만함과 위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알량한 자신의 오만함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것이었다.
"아, 안, 안 돼요! 진남,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눈이 삐어서 너를 못 알아봤다. 그러니 제발 경지만은 폐하게 하지 말……."
다급한 마음에 백령은 고개를 숙이고 연신 사과를 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진남은 무덤덤했다.
일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 결과를 책임져야 했다.
사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있었다.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살수를 뻗지 말았어야 했다.
"예전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다. 스스로 하거라. 내가 나서게 하지 말고!"
우두머리 수호자가 콧방귀를 뀌며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
"나, 나는……. 나는 경지를 폐하고 싶지 않아……. 맞다, 그래 진자래! 나에게 한 번 신세를 졌잖아! 나 좀 구해줘!"
백령은 뒤로 물러서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서 크게 외쳤다.
"스스로 죄를 지었으면 죽어 마땅하다. 한데, 진자래에게 구해달라고 하다니?"
수호자는 차가운 시선으로 반보 무조의 힘을 드러냈다.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진자래를 부른다는 것은 큰 손실이었다.
이때.
웅-
불창이 허공 깊숙한 곳에서부터 성 전체에 은은하게 울려 퍼져 무인들의 귀에 들어갔다.
황성 가운데 우뚝 선 석상이 금빛을 뿜었다.
눈이 부시지 않고 부드러운 금빛이었다.
황성 무인들의 마음속에 있던 공포, 두려움 등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이건……."
"불상이 신통력을 발휘했어! 진자래 선배님이 왔어! 이제 살았다!"
"하하, 소문이 맞았어. 남주 황성이 커다란 위험에 처하면 진자래 선배가 우리를 보호해주는구나!"
무인들은 환호하고 흥분했다.
진자래는 그들에게 전설이고 신 같은 존재였다.
진자래가 나타나면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제방 삼위, 불타 진자래야?"
흑룡 통령과 흑룡 무인들은 표정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허둥대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상황도 예상했다.
흑룡 통령은 시선을 거두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은 표정이 여전히 고요한 수면처럼 잔잔했다.
그는 호기심이 동했다.
'진자래가 오면 진남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일곱 수호자와 황제 백상생 그리고 거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백령의 부름이 진짜 진자래를 불러올 줄 몰랐다.
진장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진자래가 백령을 돕지 않고 나를, 진씨 가문을 도울 텐데.'
"하하하! 진남, 나더러 경지를 폐하라고? 꿈도 야무지다! 그거 알아? 진자래는 나에게 신세를 졌다. 내가 그에게 너희들을 소멸하라고 해도 들어줄 거다! 이 모든 것은 네가 나를 궁지에 몰았기 때문이야!"
백령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흉악한 표정을 드러냈다.
'어차피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사용했으니 진자래더러 저 도둑놈들을 없애라고 해야겠다!'
"닥쳐라!"
이때, 커다란 호통이 공중에서 터졌다.
불광은 하늘에서 내려와 백령의 몸을 비추더니 그녀를 봉인했다.
백령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진자래의 불상은 두 손을 모으고 불동(佛瞳)으로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미타불. 진남 시주,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이번 일은 미안하다."
그의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무인들은 미소가 사라지고 표정이 굳었다.
수호자들과 황제 그리고 거물들도 경악했다.
갇힌 백령도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남주의 전설이자 중주의 제방 삼 위인 진자래가 진남에게 사과하다니?'
"응?"
흑룡 통령 일행들도 얼떨떨했다.
'진남은 고작 제방 오십이 위의 천재이고 진자래는 삼 위이다. 둘은 서열이 하늘과 땅 차이인데 진자래가 진남에게 사과하다니?'
진남은 고개를 들고 커다란 석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외구나. 이 여인이 너를 불러내다니. 설마…… 직접 나타난 건 나를 막기 위해서냐?"
방대한 전의가 진남에게서 솟구쳤다.
그의 시선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백령의 경지를 폐하게만 하고 죽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진자래와 진불회와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자래가 그것도 막는다면 참을 수 없었다.
해결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싸움.
단 하나였다.
흑룡 통령과 여러 무인들은 몸을 살짝 떨었다.
수호자들과 황제 등도 움찔했다.
황성의 무인들은 그 말에 넋을 놓고 지켜봤다.
그들은 진남이 진자래에게 시비를 걸 줄 몰랐다.
백령은 진자래가 나타나자 처음에는 무척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었다.
진남의 태도를 보니 그의 신분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았다.
"진남 시주, 오해하지 말거라. 황후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맞다. 다만, 진남 시주가 사정을 좀 봐주면 고맙겠다."
진자래는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젓더니 백령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경지를 폐하십시오."
그는 부처이고 중생을 구하는 수행을 하지만 죄악을 범한 자에게도 너그럽게 대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동시에, 백령을 구속하던 불광이 사라지고 그녀는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너……."
백령은 몸을 부르르 떨며 진자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이를 악물고 자신의 단전을 힘껏 때렸다.
강한 힘이 퍼지면서 그녀의 경맥, 성자의 힘 등을 모두 부쉈다.
그녀는 묵직한 신음을 내뱉더니 그대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