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화 공평한 게 어딨어?
황궁의 깊숙한 곳.
"마마께 아룁니다. 계획대로 백기가 사람들을 데리고 진남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흑포를 입은 사람이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좋다. 형부에 준비를 잘하라고 명령을 전하거라."
백령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 백기가 진남을 죽이면 어떻게 합니까? 백기는 다섯 무성 경지 팔 단계의 마수 고수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옆에 있던 곱사등 노인이 망설이더니 물었다.
"하하, 진남은 중주에서 왔다. 그러니 고작 다섯 무성 경지 팔 단계의 강자들로는 그의 상대가 안 될 게다."
백령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설령 진남이 죽는다고 해도 그건 백기가 죽인 거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곱사등 노인은 흠칫했다.
그는 백령이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짰을 줄은 몰랐다.
그는 갑자기 가슴이 서늘했다.
백령의 미소가 사신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 * *
황성의 거리.
진남은 그림자로 변해 주먹에 엄청난 힘을 실어 내리쳤다.
진남의 공격을 받은 흑포 무인은 당황해하며 서둘러 피했다.
하지만 진남은 이를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발끝으로 땅을 차더니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는 네 흑포 무인들 중간에 뛰어들어서 입꼬리를 올렸다.
"붕멸영역!"
촤락-!
커다란 검은 빛이 네 흑포 무인을 덮쳤다.
흑포 무인들은 굳은 안색으로 각자 지닌 방어술로 몸을 감쌌다.
그러나 그들은 방어술이 전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능천무제시신지술(凌天武帝弑神之術)!"
진남이 외쳤다.
그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제술을 펼치자 찬란한 빛이 폭발했다.
빛들은 폭우처럼 흑포 무인들에게 촘촘하게 떨어졌다.
다섯 흑포 무인들은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베어라!"
진남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온몸의 의지를 최고로 끌어올리고 강력한 도기를 휘둘렀다.
도기는 번쩍거리면서 거리를 눈부시게 비췄다.
수많은 신념과 시선들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그가 날린 한 방은 무척이나 강력했다.
"결진!"
백기는 진남이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 줄 몰랐다.
그는 빠르게 반응하며 크게 외쳤다.
다섯 흑포 무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다섯 흑포 무인은 강제로 입이 벌려지더니 혀가 오래된 진법을 이루었다.
빛이 반짝이더니 다섯의 마도 기운이 하나로 뭉쳤다.
다섯 무인은 커다란 마산(魔山)으로 변했다.
"황!"
진남은 최근에 감오로 얻은 황의 기운을 오른팔에 녹여 넣었다.
오른팔이 다섯 개의 칼로 변했다.
다섯 개의 도기는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흥! 소용없다! 이건 생사교환마신지진(生死交換魔神之陣)이거든. 이들의 경지와 생명은 이어져서 마신의 무형 장막을 이뤘다. 무성 경지 구 단계라도 이 장막을 부수지 못해!"
백기는 콧방귀를 뀌었다.
진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준비한 수를 넘을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다.
진남이 처음에 휘두른 도기와 뒤에 휘두른 다섯 도기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강한 힘으로 다섯 흑포 무인의 몸에 부딪혔다.
단천도, 하늘을 베고 땅을 베며 세상 만물을 벨 수 있었다.
"아악!"
다섯 개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다섯 흑포를 입은 무인들은 몸에 커다란 상처가 벌어졌다.
그들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뒤로 날아가 건물에 부딪혔다.
그들은 순식간에 전력을 잃었다.
거리에 있던 무인들이나 싸움을 구경하러 온 무인들은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저, 저……."
"저자는 누구지? 정말 무섭구나. 무성 경지 오 단계가 저런 엄청난 전력을 발휘하다니! 진자래 선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남주에 새로운 절세 천재가 나타난 걸까?"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일제히 들렸다.
방금 진남이 휘두른 두 번의 도기는 그들의 마음을 타격했다.
백청련은 요마에 앉은 채 이 모습을 지켜보며 얼떨떨해했다.
그녀는 진남이 신비하고 강한 걸 알았다.
하지만 무성 경지 오 단계가 한 번에 무성 경지 팔 단계 다섯을 격퇴할 줄은 몰랐다.
백기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시뻘게진 그의 두 눈에 공포가 드러났다.
"지, 진남! 너 두고 봐!"
백기는 정신이 들자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도망갔다.
살아있으면 언젠가 복수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일단은 수치스러워도 목숨을 부지하는 게 중요했다.
백기가 이 장 정도 도망을 갔을 때, 그는 문득 머리카락이 곤두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손이 위에서 떨어지더니 그의 머리를 꽉 잡았다.
동시에,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어, 어……."
백기는 입술을 덜덜 떨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와 진남은 모두 무성 경지 오 단계였다.
그러나 그는 진남의 커다란 손이 신마의 손처럼 느껴졌고 꼼짝할 수조차 없었다.
"너와 나는 아무런 원한이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사람까지 데리고 와서 나를 제압하려고 해? 그리고 이 세상에는 배울 수 있는 공법들이 무수히 많다. 그 많은 것들 중에 하필 그렇게 사악한 공법을 연마하다니. 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진남은 시선이 차가워졌다.
"진남, 안 돼!"
백청련은 무언가 알아차리고 안색이 변했다.
"진, 진남……. 나를 죽이지 말거라. 나를 죽이면 백씨 가문에서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황실에서도 너를 봐주지 않을 거다! 제발 살려줘……. 나를 살려주면 나는 너의 하인이 되어 황후를 상대해주겠다……."
백기는 목숨을 구걸했다.
그는 이 순간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흥! 허튼수작은!"
진남은 다섯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진기를 폭발했다.
이에 백기가 둔탁한 신음을 내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죽, 죽었어?"
백청련과 수많은 무인의 눈에는 충격이 가득했다.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죽이다니! 이렇게 시퍼런 대낮에, 그것도 황성의 길바닥에서!'
"황의 기운 덕분에 내 도기가 이렇게 강한 힘을 낼 줄은 몰랐다."
진남은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두 눈을 반짝거렸다.
천황도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갑시다. 백씨 가문에 가보고 싶소."
진남은 백청련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금 벌어진 싸움 때문에 황성의 절반 이상의 강자들이 놀랐다.
지금 자리를 뜨지 않으면 그들을 주목하는 시선이 더 많아질 것이다.
"어? 아, 가, 가자……."
백청련은 진남의 말에 순간 무슨 말인지도 못하고 응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문득 진남의 담담한 표정을 보자 어이가 없어졌다.
'가자고? 백씨 가문으로 가자고? 백기를 죽이고 백씨 가문에 가고 싶어?'
진남은 문득 기운이 느껴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기이한 빛을 뿜는 영패가 언제 나타났는지 진남과 백청련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백청련도 영패를 발견했다.
영패를 본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쿵-!
바로 그때 커다란 소리가 거리의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싸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떤 커다란 물건이 바닥에 부딪히며 울리는 소리였다.
주변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슉-
그림자들이 거리의 사방에서 몰려들어 진남과 백청련을 물 샐 틈 없이 둘러쌌다.
어림잡아도 칠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무성 칠 단계였다.
"응?"
진남은 의구심이 들었다.
'백기를 죽이자마자 바로 사람들이 몰려왔어.'
그는 바로 깨달았다.
십중팔구 황후가 벌인 수단인 것 같았다.
백기는 황후의 부추김에 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황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진남은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슉-!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장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먼저 날아들고 그의 뒤로 금색 장포를 입고 차가운 시선을 가진 무인들이 오십 명이 따랐다.
오십 명의 무인들은 모두 무성 경지 구 단계였다.
앞장을 선 중년 사내는 무성 경지 정상급이었다.
"형부상서! 형부상서다!"
"저 젊은이는 오늘 끝장이구나!"
"감히 황성에서 싸우고 백씨 가문 도련님까지 죽였는데 끝장 안 날 수 있겠어?"
주변의 무인들은 혀를 찼다.
형부상서가 직접 나타나고 방대한 세력까지 거느리고 누군가를 잡으러 온 것은 역사 이래 처음이었다.
"이놈! 배짱도 크구나! 시퍼런 대낮에 사람들이 다 보는 황성의 거리에서 백씨 가문 핵심제자인 백기를 죽이다니! 네 죄악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악독하구나. 나는 형부상서의 이름을 걸고 네 죄를 선포한다. 앞으로 악귀 감옥에 다섯 해 동안 가두겠다!"
형부상서는 칼 같은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보며 우레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남은 그 모습을 보자 두 눈이 차가워졌다.
"악, 악귀 감옥?"
백청련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처벌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뭐라?"
"악귀 감옥?"
"잘못 들은 거겠지? 악귀 감옥에 가둔다니!"
"전에 반조 무제 강자가 황성에서 살육을 펼쳐서 악귀 감옥에 한 해 갇혔는데 죽기보다 더 힘들다고 했어. 그런데 다섯 해 동안이나 가둔다니!"
무인들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서늘해졌다.
악귀 감옥은 그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었다.
"오?"
하지만 진남은 오히려 두 눈에 한기가 사라지고 궁금함이 떠올랐다.
황성에 들어오기 전에 진남은 동술로 금지 등을 살펴봤었다.
다른 곳들은 다 확인했고, 천지 감옥이라는 범인들을 가두는 곳도 확인했다.
하지만 진남은 악귀 감옥이라는 곳은 발견하지 못했다.
"악귀 감옥이 내 동술을 막았나 보구나."
진남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동술을 막을 수 있는 악귀 감옥은 평범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수련 중이다. 혹시 악귀 감옥에도 강한 도의가 있는 게 아닐까?'
"대, 대인……. 오해예요! 백기가, 백기가 먼저 공격했어요. 그가 먼저 진남을 죽이려고 해서 진남이 반격을 한 거예요! 이건 정당방위예요. 진남을 처벌하시는 건 불공평합니다!"
백청련은 큰소리로 호소했다.
그녀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불공평하다고? 내가 직접 봤다. 백기가 진남을 시늉만 했는데 진남은 그를 죽였다. 진남은 살인 마두다! 뭣들 하는 게냐? 진남을 붙잡거라.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함께 체포하거라!"
형부상서는 냉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공평? 공평한 게 어디 있어? 엄청난 천재라고 해도 감히 황성에서 황후 마마에게 미움을 사다니!'
칠십 명의 무성 칠 단계 무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도를 들고 진남에게 달려들었다.
하늘에선 오십 명의 무성 구 단계 무인들이 성자의 기운을 풍겼다.
만약 진남이 반항한다면 그들은 곧바로 공격할 것이었다.
백청련은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았다.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른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비록 엄청난 세력들이 나타났지만, 진남이 전신의 혼을 드러내고 단천도를 휘두른다면 피바다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데, 그러면 악귀 감옥의 도의는?'
진남의 머릿속에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전의를 거두고 옅게 웃으며 말했다.
"악귀 감옥에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