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화 나에게 팔아라
"고모,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백청련은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이 모든 걸 백기가 꾸민 짓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동의할 수 없다고? 그럼 너는 그냥 진 거다. 앞으로 소족장은 백기이다."
백령은 차가운 시선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의 위엄을 드러냈다.
원래 그녀는 소족장 경쟁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백기가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나타나 내기석 대결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어떻든 백기가 어떤 계략을 짰든 그녀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녀가 규칙을 정했으니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
거스르는 자가 있다면 그녀의 화를 받아야 했다.
백청련은 안색이 살짝 하얗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내기하면 질 게 뻔한데……. 하지만 내기에 임하지 않으면 백령의 미움을 받을 테야…….'
그때, 크고 따뜻한 손이 백청련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러자 백청련은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진남이 입을 열었다.
"내기를 하는 건 전혀 문제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먼저 골라야 합니다. 두 번째, 백기가 진다면 백선각은 우리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진남!"
백청련은 놀라서 외쳤다.
"걱정 마시오. 다 생각이 있소."
진남은 그녀에게 전음했다.
백청련은 떨떠름했다.
이때, 진씨 가문 사람들의 태도나 백기의 사악한 공법을 알아본 일 그리고 황후를 발견한 것까지 떠올린 그녀가 침묵했다.
더구나 이제 물러설 길이 없으니 진남이 내기를 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우습다. 너무 우스워."
백기는 비웃었다.
"내가 왜 그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느냐? 그리고 이건 나와 백청련의 내기이다. 너 같은 외부인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재주가 좀 있다고 안하무인으로 설치는구나."
백기가 멍청하게 그의 조건에 대답할 리 없었다.
그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고 싶지 않았다.
"이 세 개의 제술을 걸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면 이 세 개의 제술을 황후 마마께서 가지십시오."
진남은 백기를 무시하고 백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남이 손을 휘두르자 짙은 제의를 풍기는 옥간이 나타났다.
"오?"
백령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재미있구나. 네 말대로 하거라."
"고모, 그건……."
백기는 안색이 변해서 반박하려고 했다.
그러나 백령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켰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백령과 그는 단지 한 번의 거래를 했을 뿐이었다.
백령에게 미움을 사면 결과는 처참할 것이었다.
"좋다. 너희들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지금 시작하거라!"
백기는 심호흡하며 겨우 화를 눌러낸 뒤 말했다.
"청련, 저 돌을 선택하시오."
진남은 손을 뻗어 가리켰다.
백령과 백기 그리고 곱사등 노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빨리 선택한다고?'
백청련은 진남의 괴이함에 이제 익숙해졌다.
그녀는 묵묵히 다가가 주먹만 한 크기의 원석을 안아들었다.
"다 됐다. 네가 고르거라."
진남은 담담하게 말했다.
"골랐다고? 하나만 선택할 거냐?"
백령과 백기 그리고 곱사등 노인은 충격을 받았다.
'이번 겨루기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 그러니 세 개의 원석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하나만 선택했어?'
'하하! 저 원석에서 값이 나가는 보물이 나온다고 해도 세 개의 보물이 합친 것보다는 못할 게 당연하거늘! 설마 절세 지보라도 들어있는 줄 아는 걸까?'
"하하, 재미있어. 정말 재미있다. 이렇게 오래 살았지만, 너처럼 내기석을 고르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겠다!"
백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세 개의 크기가 다른 원석을 골랐다.
진남은 힐끗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역시 백기는 이미 고를 원석을 표시해 놓은 상황이었다.
진남이 고른 돌을 제외하면 백기가 고른 세 개의 원석이 가장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럼 내가 먼저 돌을 자르겠다. 내가 고른 세 개의 원석은 네 것처럼 지보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백기는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진남과 백청련이 충격을 받아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백기는 줄곧 백청련의 아름다운 눈과 정교한 얼굴에 절망이 가득 차는 것을 보고 싶었다.
오늘 그의 꿈이 이뤄질 수 있었다.
"쓸데없이 돌을 베지 말거라."
이때, 진남이 사람들이 놀랄만한 말을 꺼냈다.
백기와 백령 그리고 곱사등 노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내기석을 하는데 돌을 베지 말라고?'
긴장한 백청련은 진남 때문에 더 황당해했다.
"첫 번째 가장 큰 원석에는 초록 수정으로 된 불상입니다. 불의가 있어 괜찮아 보입니다."
"두 번째 원석은 붉은색 정석입니다. 화도의지가 강해 불을 다루는 무인에게 적합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얼음 수정입니다. 연화를 하면 오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진남은 평온한 표정으로 단숨에 다 말했다.
백령, 곱사등 노인, 백기, 백청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찌 된 일이지? 원석의 진신을 볼 수 있는 거야?'
"흥! 신비한 척 그만하거라. 네가 수단이 좀 있다고 한들 원석을 알아보겠느냐? 잘 보거라. 세 개의 원석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백기는 콧방귀를 뀌며 경멸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핏빛 사도(邪刀)를 휘둘러 가장 큰 원석을 베었다.
웅-
커다란 방에 금빛이 가득 차더니 불창(佛唱)이 은은하게 들렸다.
돌 중앙에 초록색 불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불상은 두 손은 합장하고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마치 오래된 경문을 읽는 것 같고 살아있는 것 같았다.
"이런……."
백령도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진남의 말이 맞았다.
커다란 돌에 불상이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절대 불가능해!"
백기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고함을 질렀다.
그는 다시 칼을 휘둘러 두 개의 돌을 베었다.
화염의지와 차가운 기운이 퍼졌다.
두 돌에는 각각 붉은색 정석과 얼음 수정이 있었다.
이를 본 백기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그가 들고 있던 사기지도(邪氣之刀)도 사라졌다.
진남의 말이 전부 맞았다.
진남은 세 개의 원석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진남이 고른 원석에는 지보가 있다는 말인가?'
"대단해!"
백령은 놀란 듯한 표정이 사라지고 두 눈에 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저도 몰래 감탄했다.
황후인 그녀는 기이한 사람과 일들을 수없이 겪고 남주의 천재들도 많이 만나봤지만, 원석까지 알아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곱사등 노인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혼탁하던 두 눈에 빛이 돌았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듯 진남을 지그시 쳐다봤다.
"내가 말했잖아. 그런데 못 믿고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진남은 탄식하며 손가락 끝에 도기를 모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내 차례구나."
그는 손가락을 휘둘렀다.
백령과 곱사등 노인은 저도 몰래 벌떡 일어나서 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원석을 알아본다면 그가 고른 원석에는 어떤 보물이 있을까?'
쿵-!
엄청난 도의가 솟아올랐다.
엄청난 도의는 회오리바람처럼 방 안을 감싸더니 백선각 전체를 감쌌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백선각에 있던 모든 무인들은 경악했다.
"응?"
진남은 돌 안의 긴 칼 모양의 정석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는 원석에 보물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도배(刀胚, 칼이 만들어지기 전 초기 상태)일 줄은 몰랐다.
도배가 가진 도의는 그가 깨우친 세 개의 도문과 비슷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진남이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백선각에서 여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청난 도의다!"
"오 층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 듣자 하니 백기 도련님이 원석을 한 무더기 가져왔다고 하던데. 설마 보물이 나온 걸까?"
"뭐라고? 원석? 누가 벴는지 크게 벌었구먼!"
"허, 나는 왜 그런 운이 없는 거야!"
무인들이 사실을 알게 되자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도배! 도배라니! 이렇게 엄청난 도의를 가진 도배를 연화하면 역천개명을 하거나 경지가 엄청 높아질 거다!"
곱사등 노인은 도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목소리마저 떨렸다.
백령은 마음이 일렁이었다.
그녀는 진남이 벤 원석에 도배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황궁의 국고에도 이 도배와 비교할만한 보물이 거의 없었다.
"이, 이런 엄청난 도배라니……."
백청련은 넋을 잃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정신이 들고 표정이 활짝 피었다.
"진남! 우리가 이겼어! 우리 도배는 백기의 세 보물보다 가치가 높다! 우리가 이겼다고!"
그녀는 흥분해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음모에 빠진 상황에서 진남이 이렇게 멋있게 상황을 타파할 줄은 몰랐다.
"지금은 살필 때가 아니오."
진남은 도배를 납계에 넣고 백기를 바라보았다.
백청련이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백기에게 다가가 콧방귀를 뀌었다.
"약속대로 오라버니가 졌어요. 그러니 백선각도 우리에게 내주고 영패도 내놓으세요."
"너!"
백기는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오고 두 눈이 시뻘게졌다.
그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졌다니! 큰 대가를 치르고 백령을 모셔오고 판을 짰는데 이런 결과라니!'
"진남이라고 했지? 백청련이 너 같은 사람을 찾아오다니. 내가 방심했어! 하지만 두고 보자!"
백기는 분노를 겨우 누르며 음침하게 한마디하고 영패를 백청련에게 넘겨줬다.
백령이 지켜보고 있으니 그는 발뺌할 수도 없었다.
진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백청련을 도와준 것은 세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는 그녀에 대한 느낌이 괜찮았다.
두 번째는 백선각을 가져 도의를 깨우치려기 위함이었다.
세 번째는 백기가 싫었다.
백기가 그를 공격한다면 진남은 도리어 백기를 죽일 수 있을 테니 더 좋았다.
"진남, 고맙다. 어떻게 이 고마움을 보답해야 할지……."
백청련은 여전히 기쁨이 가득한 표정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남이 무척 고마웠다.
이번에 진남이 돕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길 희망이 없었다.
"내가 낭자를 돕겠다고 하지 않았소."
진남은 웃었다.
백청련의 일을 해결하고 나자 그는 알 수 없는 감회가 들었다.
'천황도술을 깨우친다는 건 단순히 도의만을 깨우치는 게 아니라 수련하는 일종이 아닐까?'
"진남, 우리 남주에 너 같은 인재가 나타났다니 대단하다."
그때, 백령이 입을 열었다.
"그 도배를 나에게 팔지 않겠느냐?"
"죄송합니다만 이건 못 팝니다."
진남은 일고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
도배는 천황도술과 연관이 있기에 그는 팔 수 없었다.
그의 무혼은 제정을 먹어도 진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남은 더 이상 제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바로 거절할 게냐?"
백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도배를 나에게 팔거라. 그럼 내가 너에게 신세 한 번 진 것으로 해줄게."
백청련과 백기는 마음이 흔들렸다.
남주의 황성에서 백령은 단지 황후가 아니었다.
그녀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국 대장군인 진장려도 그녀를 두려워했다.
그런 백령이 신세를 졌다고 하는 것은 무궁무진한 기회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