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화 그 방법이 좋은 것 같습니다
"진 형,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청련 낭자가 찾아왔습니다."
진영은 문 앞에 서서 공손하게 물었다.
"들어오너라."
안쪽에서 진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청련 누이, 들어가십시오. 저는 못 들어갑니다. 아, 참. 청련 누이,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진 형 앞에서 제 칭찬을 좀 해주십시오."
진영은 백청련을 가련하게 쳐다보며 전음했다.
백청련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정원에 들어섰다.
"무슨 일로 오셨소?"
진남은 흰 김을 천천히 내뱉으며 기운을 차분하게 했다.
그의 이마에 도의가 모이더니 세 개의 도문(刀紋)으로 변했다.
이 도문은 진남이 진씨 가문의 모든 도의들을 정리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진남은 세 개의 도문과 천황도술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몰랐지만, 이 정도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에 비하면 실마리라도 생긴 것이었다.
"너……."
백청련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서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오늘 벌어진 일은 모두 예상 밖이고 그녀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녀의 표정을 본 진남은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마음이 따뜻했다.
'백청련은 나를 도우려고 진씨 가문에 온 거구나.'
백청련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하긴 했지만, 이 정도 하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진운과 벗이요. 그래서 진 가주가 나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손님 대접을 해."
진남은 해명했다.
"그, 그래?"
백청련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진운 때문에 진장려와 진영이 그런 태도를 보였다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진남이 그렇게 말하니 그녀도 더 물을 수 없었다.
"마침 낭자가 왔으니 백씨 가문을 구경시켜주는 건 어떻소?"
진남이 물었다.
그는 진씨 저택에서 도의를 이미 모두 깨우쳤다.
그러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어 마침 백씨 저택에 가보려던 참이었다.
"백씨 가문에 가보고 싶다고? 잘됐어. 그럼 백씨 가문의 객(客)이 되는 건 어떠냐? 걱정 말거라. 섭섭하지 않게 대접할게."
백청련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오늘 벌어진 일들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염원은 진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백씨 가문의 객? 그건 됐소. 하지만 낭자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소."
진남이 말했다.
"좋아, 그 말은 네가 한 말이니 번복하면 안 돼."
백청련은 얼른 말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진남을 백씨 가문에 가입시키겠다고 결심했다.
진장려와 인사를 나눈 후 진남과 백청련은 진씨 저택에서 나왔다.
그때, 백청련 허리춤에 있던 영패가 반짝였다.
그녀는 신념으로 훑어보더니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무슨 일이오?"
진남은 물었다.
"오라버니가 나를 찾아. 지금 백선각에 오라네."
백청련은 콧방귀를 뀌었다.
"말로는 훌륭한 내기석이 왔다고 놀러 오라는데, 그건 거짓말일 테고……. 아마 나에게 망신을 주려는 거겠지. 진남, 나와 함께 백선각에 가는 게 어때?"
"백선각?"
진남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남주의 황성에는 황궁, 진씨 가문, 백씨 가문이 크고 오래되고 실력이 있는 세력들이었다.
그 외에도 향루라든가 백선각이라든가 예불사(禮佛寺) 같은 이름 있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 곳들은 서로 다른 도의를 감추었을 것이다.'
진남은 가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백청련의 안내를 받으며 백선각에 도착했다.
백선각은 오 층 높이에 방원 백 장의 넓이를 자랑했다.
백선각은 온통 흰색의 태고 광석으로 만들었고, 광석마다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무늬들은 모여 이상한 그림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때, 많은 무인들이 다급하게 백선각에 들어가고 있었다.
진남은 왼쪽 눈으로 훑어보았다.
백선각의 도의는 남달랐다.
그리고 향루의 도의보다 더 많았다.
일 층에 들어서자 무성 칠 단계의 중년 사내가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다.
"백 아가씨, 도련님께서 오 층에서 기다리십니다."
"알겠다."
백청련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중년 사내는 손을 뻗어 둘을 막았다.
중년 사내는 진남을 향해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백 아가씨, 그 말을 못 전했네요. 오늘은 귀빈이 오시기에 일반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건 도련님의 명령입니다."
백청련은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옆에 있던 진남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일반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을 말하느냐?"
"일반 사람? 자네처럼 경지가 부족한 사람을 말하오."
중년 사내는 눈에 비친 조롱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남은 바로 그의 심장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중년 사내는 안색이 변했다.
그는 진남이 바로 공격할 줄 몰랐다.
그는 바로 고술을 드러냈다.
하지만 절반쯤 운행한 그는 심장 부위가 고술의 약점이 되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진남의 주먹을 피할 수 없었다.
슉-!
진남의 주먹은 그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강풍에 중년 사내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중년 사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두 눈에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 그는 죽음의 기운을 느꼈다.
"이러면 자격이 충분한가?"
진남은 담담하게 웃었다.
옆에 있던 백청련은 눈을 반짝거렸다.
역시 그녀의 마음에 든 사람은 평범하지 않았다.
고작 주먹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순식간에 중년 사내를 제압했다.
"가자, 우리 올라가자."
백청련은 진남을 데리고 오 층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그들을 막는 자가 없었다.
오 층에 도착하자 무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백청련은 문을 열고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방원 팔십여 장이었는데, 안에는 크고 작은 기이한 모양의 돌들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나무 탁자가 있었다.
한 청년이 탁자에 앉아 있었는데, 안색이 창백하여 음침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이게 내기석인가?"
진남은 돌들을 훑어보며 흥미를 드러냈다.
내기석은 안에 제정 같은 보물들이 들어있거나 혹은 아무것도 없는 돌이었다.
내기석은 천지의 힘을 견뎌내며 겉면이 단단해져 보통 동술로 전혀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보물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롯이 운에 맡겨야 했다.
내기석은 보물 조각들로 하는 내기와 비슷했다.
진남은 한 돌에서 특이한 파동을 느끼고 흥미진진하게 살폈다.
그의 왼쪽 눈도 그 속을 살짝 볼 수 있을 뿐 다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동생, 오랜만이야. 그사이에 또 예뻐졌구나."
음침한 청년은 진남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
"이자는 누구냐?"
"이분은 진남이라고 하는데 제 벗이에요."
백청련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백기(白奇), 말해보세요. 왜 나를 불렀어요?"
"허허, 너는 성격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백기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요한 일을 말하기 전에 무성 경지 오 단계밖에 되지 않는 네 벗은…… 나가라고 하지?"
그는 무성 경지 오 단계를 특히 강조해서 말했다.
그의 창백한 안색에 사악한 기운이 돌았다.
백청련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불쾌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할게요. 이분은 제 벗이에요. 그러니 여기에 있을 자격 있어요. 별일 없다면 이만 가볼게요."
"간다고? 백청련, 지금 가면 반드시 후회할 거다."
백기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미 말했다. 잠시 후 존귀하신 분께서 오실 거라고. 시답잖은 애송이 때문에 그녀에게 밉보이면 결과는 엄중할 거야."
백청련은 표정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백기라고 했지?"
진남은 백기를 돌아보았다.
진남은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어제 사람 피를 빨아먹으니 시원했느냐? 네 모습을 보니 이미 수천 명의 피는 마신 것 같구나."
"그게 무슨 말이냐!"
백기는 벌떡 일어서며 표정이 바뀌었다.
'이 녀석……. 어떻게 안 거지?'
"사람 피를 빨아 먹었다고요……?"
백청련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백기 뒷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백기가 마공(魔功) 연마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지경까지 간 줄은 몰랐다.
"허튼소리 작작 하거라! 내가 황성에서 너를 죽일 수 있는 방법만 해도 수천 가지다!"
백기는 독사 같은 눈빛으로 진남을 노려봤다.
진남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아직도 거짓말하다니? 네 사악한 공법은 소성 경지에 이르렀고 두 손, 두 발이 이미 혈골(血骨)이 되지 않았느냐? 이제 삼만 명 무인의 피를 더 빨아 먹으면 완벽한 혈골을 지닌 몸이 되겠네?"
백기는 안색이 완전히 변했다.
'이럴 수가! 내가 혈서대법(血噬大法)을 수련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는다. 다들 내 심복들인데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심복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걸까?'
진남은 나무 의자에 앉으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네가 말하는 존귀한 분은 황후잖아? 그녀는 이미 옆에 있는 밀실에 와 있네. 뭘 그리 신비한 척 감추느냐?"
진남의 말에 백기는 얻어맞은 것처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그것까지 알아채다니?'
밀실은 오래된 혼돈마석으로 만든 것이라 동술, 신념 등을 막을 수 있었다.
반보 무조 강자가 와도 밀실 안의 상황은 볼 수 없었다.
'고작 무성 오 단계인데 어떻게 알아본 걸까? 진짜로 심복이 나를 배신한 거야?'
"백기, 네가 오랫동안 심혈을 들여 사람들을 키운 의미가 없구나."
방 옆에서 담담하지만, 위엄 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진법들이 풀리더니 벽면의 문이 열렸다.
수정 장화를 신고 봉황이 새겨진 황포를 여인이 그 속에서 나왔다.
그녀는 정교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표정은 한없이 싸늘했다.
그녀가 나오자 커다란 방 안에 좋은 향기가 감돌았다.
그녀의 뒤에는 곱사등 노인이 따라왔다.
그 노인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
그녀는 황후이자 백씨 가문 가주의 딸인 백령(白靈)이었다.
"고모, 저는……."
백기는 입술을 달싹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모? 진짜 여기 계셨어요?"
백청련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백령이 이곳에 나타날 줄 몰랐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설마 백기가 백령의 지지를 얻은 걸까? 한데, 가주께서 소족장(少族長) 쟁탈에는 백령이 참가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괜찮구나."
백령은 진남을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보통의 천재들은 황후의 칭찬을 들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적어도 겸손한 인사말이라도 몇 마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남은 아무런 태도도 없이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백령의 말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백령은 그런 그의 태도에 불쾌했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백청련을 보며 말했다.
"너희 둘이 계속 싸우는 건 의미가 없다. 백씨 가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오늘 온 건 백씨 가문 소족장을 정하기 위해서이다.
너희 둘은 무혼의 실력이 비슷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마침 원석이 있으니 내기를 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가려라. 한 사람당 세 개의 돌을 고를 수 있다. 더 가치가 있는 돌을 고른 자가 승리한다. 진 사람은 소주 쟁탈 영패를 내놓거라."
그녀는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규칙을 서술했다.
"고모, 고맙습니다. 그 방법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의 없습니다!"
백기는 대답하고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