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반신지국에 가보자
진남이 떠나간 후 대전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연황지령의 두 눈의 혈광도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꼭두각시처럼 청동 수정관으로 걸어갔다.
"왜 그자더러 '선' 자를 쓰게 한 거냐?"
이때,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황지령은 걸음을 멈추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바로 평온을 되찾더니 웃으며 말했다.
"내 짐작이 맞았구나. 네 삼생겁이 그 자식 몸에 있더구나."
"내 물음에 답이나 하거라."
여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나웠다.
"너처럼 무도규칙을 초월한 천재를 어렵게 만났다. 그래서 시험해보려고 한 것뿐이다."
연황지령은 말했다.
"너의 계획, 너의 음모를 나는 다 알고 있다. 지금은 '선' 자를 쓰지 말거라.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다. 또, 너는 아직 대도를 이루지 못했다. '선' 자를 썼다 해도 헛수고다."
여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십 년 후에 내가 다시 창람에 오겠다. 너에게 마지막 기회가 남았다."
"십 년?"
연황지령의 눈 속의 혈광이 세게 떨렸다.
"하하, 십 년밖에 남지 않았어? 걱정하지 말거라. 십 년 사이에 나는 반드시 대도를 이룰 것이다. 팔천 년 전에 나는 모든 걸 잘못 보고 잘못 선택했다. 이번에는 절대 틀리지 않을 거다. 비월(飛越), 걱정하지……."
연황지령의 말이 계속됐지만,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연황지령은 한참 서 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청동 수정관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 * *
그 시각, 월광동 안.
진남의 형상이 천천히 나타났다.
"너, 너……. 어떻게 나왔느냐?"
혼원구광석지령(混元九光石之靈)은 죽지 않았느냐 라고 물어보려다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것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진남이 나오지 않자 진남이 안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연황지령이 나를 죽이지 않고 내보냈어."
진남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대답했다.
이번에 '선' 자를 쓰지 못하여 연황지령이 말하는 엄청난 조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그에게 무엇을 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려는 것이 좋으면 좋을수록 바라는 바도 컸다.
진남은 연황지령이 말한 '세상에 신선이 없다', '세상의 감옥', 그리고 구천석이 더 신경 쓰였다.
그는 이것들이 창람대륙의 진정한 비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 구천석? 혹시 구천과 연관 있나?'
진남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운소산맥과 연황전장을 떠올렸다.
'운소산맥에는 구천으로 가는 길이 있다. 연황전장에는 신비한 구천석이 있다. 나중에 경지가 강해지면 이 두 곳의 오묘함을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연환지령이 너를 내보냈다고?"
혼원구광석지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것은 저도 모르게 진남이 쥐고 있는 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흐릿한 형상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세게 떨기 시작했다.
"응?"
진남은 혼원구광석지령의 변화를 느끼고 연황지령의 말이 떠올라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 물건이 큰 도움이 돼?"
"이, 이건 호월의 눈물이다!"
혼원구광석지령은 정신을 차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물건을 내게 줘. 이 물건은 나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 말했다.
"나는 이 물건을 연화할 때 혼원구광 경지를 개척할 수 있다. 안에서 수련하면 너는 밖에서 수련하는 것의 열다섯 배의 효력을 볼 것이다. 또, 네가 나에게 그 물건을 준다면 나는 너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이 말에 진남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진남은 호월의 눈물을 연황지령에게서 공짜로 얻었다.
이걸로 거래하는 것이 그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모레 나를 찾아오거라."
혼원구광석지령은 한마디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루나 기다려야 하나?"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연황전장이나 다른 곳에 가서 기연을 얻는 건 하루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하루를 버리는 것은 시간이 아까웠다.
"반신지국에 가보자!"
진남은 반신지국이 생각났다.
요 며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 그는 반신지국으로 가는 걸 잊고 있었다.
그는 마침 하루가 비어 반신지국을 돌아볼 수 있었다.
결심을 내린 진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려 하늘로 날아갔다.
반신지국으로 가려면 채색대로를 걸어야 했다.
큰길을 따라가야만 장벽을 넘고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잠시 후, 진남은 채색대로에 도착했다.
반짝이는 금을 밟으니 왠지 숙연해졌다.
"재미있구나. 채색대로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구나."
진남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떨었다.
숙연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 시진 후, 진남은 채색대로의 끝에 도착했다.
"이건……."
고개를 든 진남은 깜짝 놀랐다.
끝없는 허공에서 옅은 보라색 광막이 드리워져 온 세상을 덮었다.
광막은 중주를 두 개로 나누었다.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상이었다.
진남의 앞, 채색대로의 끝에 대문 같은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대문을 넘으면 반신지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다른 날과 달리 지금은 대문 앞에 무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후-!
진남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마음을 진정하고 대문으로 걸어갔다.
"응?"
진남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는 자신이 몇 발짝 걸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막는 힘이 커지는 걸 느꼈다.
구광석에 '선' 자를 쓸 때와 똑같았다.
"반신지국에 들어가려면 압력을 버텨야 하나?"
진남은 중얼거리며 계속 앞으로 걸었다.
앞으로 갈수록 그는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보이지 않는 저항은 이미 무조 경지 팔 단계와 대등한 수준으로 높아져 그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붕멸영역!"
진남은 낮게 소리쳐 검은색 영역을 펼쳐 빠르게 걸어갔다.
그가 문 아래에 도착했을 때 보이지 않는 힘은 실체로 변하여 문을 막았다.
"아니다!"
진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평소라면 반신지국에 들어갈 때 절대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구미요제가 미리 알려줬을 거다. 나는 왜 광막의 방해를 받는 거지? ……설마 누군가 일부러 방해하는 건가?'
"이상하다. 중주를 두 구역으로 나눈 광막은 위력이 엄청나다. 나의 왼쪽 눈은 아무것도 꿰뚫어 볼 수 없다. 적어도 무신급 강자의 수단인 것 같다. 억지로 움직인다 해도 반드시 대제급 거물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반신지국에 가본 적 없다. 그런데 대제급 거물이 왜 광막으로 나를 막는 거지? 혹시 무슨 다른 변고가 생겼나?"
진남은 빠르게 생각을 굴렸다.
이 일은 너무 기이했다.
"내가 소홀했구나. 우선 유영루에 이 광막의 내력을 알아보자.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남은 눈을 반짝이며 영패를 들어 유영루에 신념을 전했다.
대가를 좀 치러서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은 일이었다.
유영루의 영패가 반짝거렸다.
진남은 영패를 훑어봤다.
'중주에는 반신지국에 들어갈 수 있는 채색대로가 열 개 있다. 반신지국을 덮고 있는 광막은 남천신막이다. 예전에 반신지국을 나눈 후 남천문이 이 막을 내려 반신지국을 보호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강자 중에 아무도 막을 통과하지 못했다.'
진남은 깜짝 놀랐다.
'이 막이 남천문이 친 것이라니! 지금 나는 남천신막의 방해를 받아 반신지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남천문이 나를 노리고 있는 건가?'
"아니야. 남천문이 나를 노리고 있을 리 없어."
진남은 냉정을 되찾았다.
'나의 실력이나 경지로 남천문이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없다. 남천신지의 강자들이나 천재들이라도 나를 상대하기 충분하다. 남천문이 진짜 나를 노리고 있다면 틀림없이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남천신막이 나를 막은 건 무슨 변고가 생긴 게 분명하다.'
"전신은 전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드러날 위기도 커지는 것 같구나."
진남은 강한 위기감이 들었다.
그의 실력은 아직은 너무 약했다.
그는 반드시 빨리 실력을 높여야 했다.
"남천신막이 반신지국으로 가지 못하게 하니 일단 돌아가 열심히 수련하자."
진남은 중요한 문제를 깨닫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골짜기로 다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난 후, 혼원구광석지령에게서 신념이 왔다.
진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월광동으로 걸어갔다.
월광동에 들어온 그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월광동은 더 이상 동굴이 아니었다.
아홉 가지 빛을 뿜는 길이가 삼백 리에 달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삼백 리가 모두 혼원의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남, 나는 지금 탈바꿈하고 있다. 적어도 반년은 걸릴 거다. 반년 동안 너는 이 안에서 마음대로 수련하거라.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혼원구광석지령이 말했다.
"반년?"
진남은 눈이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독립적인 공간에서 수련하는 것이 외부에서 수련하는 것의 열다섯 배의 효력을 본다는 걸 그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열다섯 배다!'
더군다나 천급 오품의 무혼이 있으니 하루를 수련하면 보통 사람이 한 달 수련하는 것과 같았다.
"아예 여기서 오래 폐관하자. 중주의 백산십금구해삼하와 같은 금지에 간다고 해도 이만한 수련성지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진남은 결심했다.
'지난번에 붕멸제술을 얻은 것과 반신의 무덤에서 큰 이득을 본 건 운과 기연 덕분이었다. 운과 기연은 매번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여기서 폐관수련하자.'
"무혼, 나오거라!"
전신의 무혼을 드러낸 후 진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에 빠져들었다.
시간은 하루하루 빠르게 지났다.
진남이 폐관할 때 허무노인, 진후, 남궁위 등이 문파의 강자들과 천재들을 이끌고 연황전장의 수림으로 왔다.
그들은 연합하여 진남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진남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혈갈과 흑룡의 연합공격을 받아 부랴부랴 도망쳤다.
진남은 폐관하면서 연황지령의 관에서 낚은 세 가지 보물이 어떤 쓰임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했다.
첫 번째 보물은 보라색 용무늬가 새겨진 조롱박인데, 주선호(酒仙壺)라고 불렸다.
맑은 물을 넣으면 최상급 영주로 변했다.
순원상선주와는 비교가 되진 않았지만, 꽤 좋은 술이었다.
두 번째 보물은 낡은 깃털이었다.
한 태고 신수의 깃털이었는데, 매우 강한 허공지력(虛空之力)이 있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쓰임이 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세 번째 보물은 구규금선단(九竅金仙丹)이라는 단약이었다.
수련과 무예천부 등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단약이었다.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단약을 삼켰다.
폐관한 지 이십 일이 되었을 때 제방 서열이 다시 한 번 조정되었다.
진남은 육십칠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변화는 그리 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중주의 많은 무인들은 풍운을 휩쓰는 한 천재를 주시하고 있었다.
"육십칠 위?"
진남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용제원에 신념을 전하고는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