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세전혼-597화 (597/1,498)

597화 혈갈 통령의 정체

"당연하오."

화지진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얼굴을 가린 여인은 말했다.

"알려줘도 괜찮다. 그러나 한 글자에 백만 개 제정씩 총 사백만 개 제정인데 듣고 싶으냐?"

"사, 사백만 개 제정?"

화지진과 송동은 깜짝 놀랐다.

'농담하는 거겠지?'

두 사람이 깜짝 놀란 걸 보자 얼굴을 가린 여인은 기분이 좋은 것처럼 깔깔 웃더니 진법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 * *

파란 하늘에 진남이 유성처럼 스쳐 지났다.

중도성의 진법은 구석진 곳까지 연결되었다.

연황전장과 꽤 거리가 멀었다.

진남은 걸음을 멈추고 재채기를 했다.

"……갑자기 웬 재채기지?"

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와 같은 경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왕 경지라도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다.

일반 사람들이 평상시에 겪는 일을 그들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의문스러워하던 그는 또다시 재채기했다.

"진짜 기이하구나."

진남은 어리둥절하여 몸을 살펴봤지만,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세 번째 재채기가 나올 것 같지 않자 고개를 젓더니 앞으로 날아갔다.

진남은 네 시진이 지난 후에 멈췄다.

앞쪽 몇십 리 시커먼 땅에 낡고 큰 성이 나타났다.

성벽은 기혈마찰광(嗜血魔刹礦)으로 지어져 있었다.

겉은 암홍색이고 살기가 가득했다.

햇살이 비추자 석양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시각, 하늘에서 무인들이 빛으로 변하여 성문 앞으로 내려와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기운이 매우 강했다.

이 성은 잔양성이었다.

그 뒤쪽이 바로 연황전장였다.

무인들이나 천재들은 반신지국이나 연황전장에 가려면 우선 성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면서 정보를 알아보았다.

"뒤쪽이 연황전장인가?"

진남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체내의 혈액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잔양성 뒤쪽에 전의가 하늘에 가득하고 한데 뭉쳐 있었다.

"연황전장은 보통이 아니구나. 안은 어떤 상황일까?"

진남은 중얼거리며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는 전신의 후계자이기에 전의가 들끓는 곳에 친밀감이 있었다.

전의가 짙을수록 더 좋았다.

"우선 성으로 들어가 상황을 알아보자."

진남은 곧 성문 앞에 도착했다.

성문을 지키는 사람은 시위들이 아니었다.

열 명의 살기등등한 사내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사내들은 어깨에 혈색 전갈과 흑룡도안을 새겼다.

"혈갈이오, 신분을 밝히시오."

"흑룡이오, 신분을 밝히시오!"

진남과 무인들이 문 앞에 오자 두 사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혈갈? 흑룡?"

진남은 의심스런 표정으로 용제원의 영패를 꺼내 흔들었다.

사내들은 표정이 굳더니 손으로 안을 가리켰다.

진남은 성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있던 무인은 이 광경을 보자 표정이 어두워져 말했다.

"왜 저자는 제정을 지불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나는 천 개의 제정을 지불해야 하오?"

"처음 왔소?"

어깨에 혈갈 그림을 새긴 사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규칙이요. 신분이 존귀하거나 경지가 무조 팔 단계 이상이면 그냥 입장할 수 있소. 저자는 용제원 봉주 등급의 인물이요. 아직도 질문이 있소?"

진남의 신분을 몰랐던 무인은 깜짝 놀라 고분고분 제정을 지불했다.

앞에서 가던 진남은 이 광경을 모두 느꼈다.

"혈갈과 흑룡은 잔양성의 양대 세력인가 보구나."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리를 바라봤다.

거리에는 오가는 무인들이 수없이 많았다.

거리 양쪽에는 법보나 단약, 지도를 파는 노점상들이었다.

힐끗 훑어본 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는 방금 몇십 명의 무조 정상 경지의 강자들을 봤다.

무조 구 단계, 팔 단계, 칠 단계, 육 단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무조 오 단계 아래는 극히 드물었다.

또, 그는 열몇 명의 이성 세력의 내문제자들도 발견했다.

"고작 한 거리인데 강자들이 이렇게 많구나. 잔양성 전체에는 강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역시 연황전장구나. 이렇게 많은 강자들을 끌어 오다니."

중얼거리던 진남은 문득 눈길이 싸늘해졌다.

그는 거리의 몇 명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걸 느꼈다.

강한 변화술을 썼지만, 그는 본 모습을 꿰뚫어 봤다.

유영루의 사람들이었다.

"잊고 있었구나. 지금 여러 세력들이 내가 갖고 있는 단천대제가 남긴 보물을 주시하고 있었지……."

진남은 눈에 빛이 반짝이더니 앞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이미 발견되었으니 그냥 따라오게 하자. 나중에 연황전장에 도착한 후에 따돌리면 된다.'

"응? 잔양낙일(殘陽落日)?"

진남은 고목으로 지은 삼 층 높이의 궁전을 발견했다.

옆에 '잔양낙일'이라는 문패가 세워져 있었다.

그는 전신의 왼쪽 눈을 움직여 안으로 들여다봤다.

잔양낙일은 주루였다.

"가보자."

진남은 앞으로 걸어갔다.

정보를 얻기엔 주루만한 곳이 없었다.

연황전장에 대해 그는 중주의 만상옥간에 적힌 정도만 알았기에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주루에 들어서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오. 얼마 전에 나는 탁마산장의 여제자를 만났소. 경지는 높지 않지만 다른 능력은 매우 강했소."

"자네 들었소? 요즘 내장(內場)이 시끌벅적한 것 같소. 혈갈과 흑룡의 큰 형이 모두 사람들을 거느리고 갔소. 또 어떤 제자도 왔다고 하더군."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내장은 우리 같은 신분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진남은 무표정하게 빈 상에 앉아 차를 주문했다.

일 층에는 무인들이 몇십 명뿐이었다.

진남이 들어왔지만,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방금 잔양성에 왔소? 어느 종문이길래 이 주루에서 차를 마시는 거요?"

이때, 경멸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한 사람은 어깨에 혈갈 그림을 새긴 대머리 중년 사내였다.

사내는 하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는 경지가 무조 육 단계였다.

다른 상의 무인들은 힐끗 보더니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일에 익숙한 것 같았다.

진남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말 없느냐?"

대머리 사내가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무조 육 단계라……. 신분이나 내력이 좀 있는 것 같구나. 그러나 잔양성에 왔으면 잔양성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제정을 천 개 주면 오늘 너를 봐주겠다."

진남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무인들이 조롱하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못 줘."

진남은 눈길을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

"못 준다고?"

대머리 사내는 눈을 찌푸렸다.

그가 엄청난 살기를 뿜으며 사납게 소리쳤다.

"이 자식 이성 세력이면 두려운 게 없느냐? 너 오늘 제대로 혼나봐라! 악!"

진남은 주먹을 날려 대머리 사내의 어깨를 내리쳤다.

대머리 사내는 큰 산에 맞은 것처럼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벽에 부딪혀 큰 구멍을 냈다.

시끄럽던 주루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무인들은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진남의 경지나 기운이 무조 육 단계인 걸 발견했다.

때문에, 똑같은 무조 육 단계인 대머리 사내가 진남의 주먹에 맞아 날아갈 줄 몰랐다.

'이 청년은 실력이 적어도 무조 칠 단계 이상이겠다.'

"하하, 역시 제방 서열 구십육 위의 용제원 인족봉의 봉주 진남답다. 진짜 강하구나!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어."

이때, 큰 웃음소리가 주루의 이 층에서 울려 퍼졌다.

"뭐? 제방 서열 구십육 위?"

"저자가 진남이라고? 지난번에 제방 서열이 칠백여 위나 올라간?"

일 층의 무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진남의 이름은 들은 적 있었다.

잔양성에는 수많은 신방 천재들이나 대제들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서둘러 떠나갔다.

제방 서열 백 위 안에 든 천재라면 그들 눈에는 거물이었다.

"진남 봉주, 존함을 많이 들었소. 올라와 이야기나 나누지 않겠소?"

이 층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진남에게 이런 상황은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잔양성은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좀 전의 대머리 사내는 무조 경지 육 단계였다.

때문에, 설령 누군가를 괴롭힌다 해도 적어도 자신보다 경지가 낮을 사람을 괴롭히지 진남처럼 이성 세력에서 오고 자신과 경지가 비슷한 사람을 선택할 리 없었다.

누군가 대머리 사내를 시킨 게 분명했다.

수포를 입은 노인이 진남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진남 봉주, 나를 따라오시오. 우리 어르신이 봉주를 만나고 싶어하오."

"어르신?"

진남은 눈썹을 찌푸렸다.

'수포를 입은 노인은 경지가 무조 칠 단계다. 그가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배후의 인물은 혈갈의 거물인가보다.'

'나는 혈갈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대체 왜 나를 만나려는 거지?'

그는 마음속의 의문을 누르고 진남은 노인을 따라 삼 층의 독실로 갔다.

독실은 길이가 삼십여 장이었다.

양옆에는 기이한 꽃과 풀이 있었고, 가운데는 고목으로 만든 술상이 있었다.

그러나 술상 위에는 술이 없었다.

상 맞은편에는 얼굴이 새하얗고 두 눈이 파란 중년 남자가 앉아있었다.

"어르신."

수포를 입은 노인이 앞으로 걸어가 입을 열려고 하자 중년 남자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는 진남을 바라봤다.

파란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반짝거렸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 진남을 덮쳤다.

'무조 구 단계, 천급 사품. 경지가 높구나.'

중년 남자의 압력에도 진남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왼쪽 눈을 움직여 중년 남자를 꿰뚫어 봤다.

"진남 봉주, 나는 좌천수(左千水)요. 혈갈의 부통령 중 한 명이요."

좌천수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통령의 부탁을 받고 이 옥간을 자네에게 주려고 왔소."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자네가 주루에 오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사람을 파견하여 자네를 찾았을 거요."

"통령의 부탁을 받았다고?"

진남은 어리둥절하여 옥간을 받더니 신념을 주입했다.

옥간에는 연황전장의 지도가 있었다.

지도에는 여러 가지 표시가 있었다.

각각 들어가면 안 되는 금지와 보물을 얻을 확률이 큰 곳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도 아래에는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곽무룡 등 삼대 제자가 흑룡과 연합하여 이미 연황전장의 중장에 들어갔다고?'

'표묘환부의 반제, 허무(虛無) 노인이 내장에 있어?'

'제방 서열 삼십일 위의 진후(秦厚)와 제방 서열 삼십구 위의 남궁위(南宫威)가 내장으로 갔다고?'

진남은 보면 볼수록 놀랐다.

옥간의 정보들이나 표기된 곳들은 매우 소중한 정보였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표기된 곳들은 그 가치가 더했다.

다년간의 경험이 없다면 연황전장에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혈갈 통령이 왜 이런 옥간을 나에게 주는 거지? 혈갈과 흑룡은 잔양성을 오랫동안 운영하고 꽉 잡고 있다. 그렇다면 양대 세력은 모두 약하지 않을 것일 텐데……. 더구나 그들의 통령은 중주에서도 대단한 인물일 것이다.'

좌천수가 말했다.

"이 옥간 외에 통령께서는 자네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소. 첫 번째는 석일현령각누식(昔日玄靈閣樓識), 수년중주불망정(數年中州不忘情)."

"석일현령각누식, 수년중주불망정?"

어안이 벙벙하여 몇 번 되뇌던 진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와 궁양은 현령종 무예각에서 처음 만났잖아? 궁양은 나보다 먼저 중주에 왔다. 그렇다면 이 말은 중주에 온 지 오래되고 많은 일을 겪었지만, 여전히 형제의 정을 잊지 않았단 거구나! 혈갈의 통령은 궁양이구나!'

진남은 감격했다.

그의 심성이나 경지로 그가 이렇게 감동될 일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형제의 행방을 들었는데 그가 어찌 감격하지 않고 기쁘지 않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