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명정고성
"선배님, 너무 과분합니다."
진남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부적은 대제의 부적이었다.
이성 세력들 중 진전제자나 지위가 높은 내문제자들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비범대제가 진남에게 준 부적은 완전히 달랐다.
부적은 엄청난 피 냄새를 풍겼다.
비범대제의 정혈로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했다.
위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천도문의 일은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다. 이제 명정문에 가보자!"
진남은 부적과 명정오룡 영패를 잘 간직하고 사마공에게 신념을 전했다.
사마공은 도제 후계자이라 보물에 미친 듯이 집착했다. 마침 보물 다섯 개를 마음대로 골라도 된다고 하니 사마공을 불러 보물 두 개를 고르게 할 생각이었다.
진남은 당청산에게 편지를 남기고 바로 천도문을 떠났다.
진남은 천도문을 떠나는 길에 외문제자들과 내문제자들을 마주쳤다.
그들은 진남이 고도를 얻지 못한 일을 다시 언급하며 조롱했다.
진남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진남은 중도성을 지나 명정문으로 가는 진법을 탔다.
주변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은 북적거리고 오가는 무인들도 많았다.
그는 왼쪽 눈으로 마을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기이한 작은 마을이 서른 개 이어져 있었다.
"어?"
진법에서 내린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왜 이제야 왔소?"
사마공의 우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남은 고개를 들었다.
한동안 못 봤더니 사마공은 많이 야위었다.
그는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허리에 술 조롱박을 차고 있었다.
작은 눈은 거의 붙다시피 했다.
아무리 보아도 가난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러나 진남은 사마공이 걸친 도포나 술 조롱박이 제기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제기였는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허허, 도제전승을 얻은 겁니까?"
진남은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
그는 사마공의 경지를 볼 수 없었다.
무언가에 막혀있었다.
"하하, 그걸 말이라고 하오? 이 사마공이 나섰는데 고작 도제전승이 다 뭐요?"
사마공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진남의 묘한 표정을 보더니 이내 울상을 짓고 말했다.
"에잇, 도제전승은 뒤통수를 쳤소. 그것 때문에 죽을 뻔한 걸 생각하면……."
명성이 자자했던 도제의 전승이다.
어찌 그리 쉽게 얻을 수 있을까?
"후, 그 말은 그만합시다. 자네, 명정오룡 영패를 얻었다는 게 진짜요?"
사마공은 먹이를 만난 늑대처럼 작은 눈을 부릅떴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사마공은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이고 심지어 침을 삼키며 말했다.
"명정오룡 영패가 있으면 이번에는 황천 점포에 갈 수 있겠구먼."
"황천 점포요?"
진남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건 됐고, 우리 먼저 명정고성에 가야 하오. 경매가 곧 시작되오.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테니 교환하는 보물도 적지 않을 거요. 우리 빨리 갑시다. 늦으면 안 되니까."
사마공은 빠르게 말했다.
사마공의 안내를 받으며 둘은 작은 마을을 누볐다.
서른여 개의 작은 마을은 사실 하나의 거대한 진법이었다.
명정문에 가려면 반드시 진법의 진안(阵眼)을 찾아야 했다.
진안을 통과해야 명정문에 갈 수 있었다.
물론 작은 마을에는 명정문으로 가는 방법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만 가격이 너무 높았다.
상황을 잘 모르는 제자들만이 방법을 샀다.
슉-!
진남과 사마공은 진안을 통해 명정고성으로 들어갔다.
땅이 발에 닿자 수많은 향기와 떠들썩한 목소리가 물밀듯이 밀려와 연회에 참가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라?"
주변을 살펴보던 진남은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는 방금 한 기운이 그의 몸에 내려앉아 구석구석 전부 살펴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몰래 금인을 운행하여 몸속을 보호했다.
그리고 왼쪽 눈을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넓은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길 위에는 보물 판매상들이 가득하고 많은 사람이 오갔다.
여러 세력에서 온 제자들과 무인들이 왔다 갔다 해서 여간 북적한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길 위의 고풍스러운 멋은 여전히 눈에 띄었다.
아무리 무조 정상급의 기운을 가진 강자가 지나가도 덮어지지 않았다.
"여기가 명정고성이요. 명정문은 성 중앙에 있소. 듣자 하니 명정고성은 제기 보물을 뛰어넘었다고 하오. 그리고 명정고성의 아래에 저승길이 있는데 이상(异象)의 땅이요. 옛 비밀들이 숨겨져 있소."
사마공은 진남에게 전음했다.
그는 중주와 반신지국의 모든 세력을 잘 알았다.
"그렇습니까? 성 아래가 이상의 땅이라니!"
진남은 왼쪽 눈으로 아래를 살폈다.
그러나 기운에 막혔다.
방금 진남의 몸에 떨어진 기운과 똑같았다.
"갑시다. 중주에서 거래가 가장 많은 고성을 보여주리다."
사마공은 흥분해서 진남을 데리고 넓고 커다란 거리를 유유하게 거닐었다.
거리를 거닐다 보니 진남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명정고성에는 보석 내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보물 내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역천지도도 있었다.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내기하는 사람들만 빼면 명성고성은 질서가 있었다.
한 강자가 시비를 일으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명정문의 장로와 제자들이 당장에서 제압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다.
"중요한 걸 잊었소. 거리를 거니는데 정신이 다 팔렸소. 우리 이제 경매장 근처에서 괜찮은 객잔을 찾아야 하오."
사마공은 이마를 치며 말했다.
"객잔이라……, 방금 보니까 이 근처에도 객잔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진남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자네가 몰라서 그러오. 명정고성에는 규칙이 있소. 오야(午夜, 자시의 한 가운데, 밤 열두 시)에는 반드시 객잔에 있어야 하오. 절대 밖에 나가면 안 되오.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명정문은 책임지지 않소."
사마공은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객잔을 찾아야 하오. 그것들의 비명은 무척 듣기 싫거든, 그리고 음풍도 불고. 좋은 객잔에는 도대(道臺)가 있는데, 그것도 이유 중 하나요."
"네?"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의 두 눈은 빛이 났다.
사마공은 괜찮은 객잔을 찾았다.
안팎으로 강한 진법으로 금제를 치고 정원에는 연못, 화원, 도대가 있었으며 천재지보도 있어 영기가 더 짙었다.
진남은 높은 도태에 앉아 명정고성을 바라봤다.
고성은 길이가 어림잡아 삼만 팔천 장은 되고, 넓이는 이만 사천 장이 되며, 크고 작은 거리가 일흔세 개가 되었다.
"경매는 사흘 후에 시작되오. 며칠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녀 봅시다. 혹시 강한 보물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소."
사마공은 이상한 나무를 꺼내더니 두 눈에 빛을 반짝이며 무언가 만들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붕멸제술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북적거리던 명정고성은 밤이 되자 조용해졌다.
밤이 깊어 오야가 되자 조그마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인들은 모두 규칙을 지키고 객잔으로 돌아갔다.
"음, 이제 오겠네."
사마공은 기지개를 쭉 폈다.
진남은 눈을 떴다.
그의 왼쪽 눈에서 강렬한 보라색 빛이 뿜어졌다.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를 엄청난 음풍이 불어왔다.
두 눈은 시뻘겋고 창백한 이빨을 드러낸 귀신들이 거리에서 빠르게 날아다녔다.
이어 몸집이 큰 요수 귀신, 악기가 엄청난 수라 등등이 연이어 나타났다.
고성은 마치 지옥이 된 것 같았다.
"모두 저승길에서 온 건가?"
진남은 고성의 모든 궁전에서 빛을 뿜으며 귀신들을 막는 것을 보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명정문은 뭘 하려는 걸까?'
진남은 명정고성의 중앙에서 온몸이 금빛을 뿜는 그림자들이 연신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들은 옛 거리에서 제술을 움직여 귀신들을 상대했다.
어떤 그림자는 귀기가 가득했다.
이들은 명정문의 제자였다.
"그렇구나. 명정문의 제자들은 대부분 정기와 지옥 귀기를 연마하잖아? 마침 성 아래에 있는 저승길의 힘을 빌려 제자들을 단련할 수 있겠어. 대단하다, 대단해!"
진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명정문을 만든 사람은 자신의 수단으로 명정고성과 저승길을 완벽하게 결합시켰다.
진남의 생각처럼 명정문은 귀신절 같은 명절도 있고 저승길을 일부 열어놓고 제자들이 들어가서 수련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명정문을 만든 사람은 명정고성과 저승길을 완벽하게 결합한 것은 더 깊은 의도가 있었다.
진남은 흥미가 생겼지만 지금 상황에서 깊이 알아볼 순 없었다.
"방금 황천 점포가 뭐라고 하셨습니까?"
진남은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진남, 자네가 모르는 게 있소. 명정문은 한 해에 세 번 경매를 진행하오. 동시에 세 번의 경매가 끝나는 날 황천 점포 같은 이보 교환의 장이 열리오."
사마공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거기에서는 다른 종문에서 빼앗아온 지보나 훔쳐온 물건이나 모두 정당하게 팔 수 있소. 신분도 가릴 수 있고 들키지도 않고……."
사마공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남은 알아들었다.
쉽게 말하면 서로 신분을 모른 채로 떳떳하지 못한 보물을 교환한다는 말이었다.
어떤 보물들은 얻고 나면 빨리 제정으로 바꾸고 싶은 것도 있었다.
어디에 놓든 무척 위험한 보물들이 그러했다.
"그게 명정오룡 영패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진남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거야 서로 신분을 모르긴 하지만 무제 강자들도 여기에서 거래한단 말이오. 무조 경지인 자네가 수단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무제 강자들이 상대나 해주겠소?"
사마공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화가 나서 말했다.
"지난번에 황천 점포에 갔다가 무조 경지 정상급 강자 여덟, 반보 무제 둘, 무제 한 명을 만났소!"
지난번에는 사마공이 행동이 빨랐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큰일 날 뻔했던 것이었다.
"그렇습니까?"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정고성에 잘 온 것 같았다.
경매나 황천 점포는 꽤 흥미로웠다.
'마음에 드는 보물을 만날 수 있을까?'
진남은 집중해서 수련했다.
다음 날 날이 밝아지자 고성 중앙의 명정문에서는 이상한 빛을 뿜었는데, 태양보다 더 환하고 나고 정기가 가득했다.
고성에 수많은 무인들은 객잔 도대에 날아올라 빛을 느끼며 수련을 했다.
진남도 한번 해봤더니 정기에 대한 느낌이 많아졌다.
이틀이 훌쩍 지났다.
사마공은 객잔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며 가격이 싸지만 내력이 평범하지 않은 보물들을 샀다.
진남은 오직 제술을 깨우치는 데 집중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붕멸제술 네 번째 단계를 깨우쳤다.
"대원만까지 조금 남았구나."
진남은 중얼거렸다.
"진남, 갑시다. 경매가 곧 시작되오."
사마공은 재촉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마공과 함께 성 중앙의 경매장으로 갔다.
잠시 후, 거리가 환해지더니 거대한 옛 도장이 나타났다.
옛 도장 위쪽에는 육백 장이 되는 커다란 궁전이 떠 있었다.
궁전 대문에서 시작된 수정 계단은 바닥까지 이어졌다.
옛 도장은 사람이 가득했다.
무인들은 초청장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소문 들었어? 제기 열 개를 경매한대!"
"제기 열 개가 다 뭐야. 옛 제기야말로 중대한 볼거리지!"
"듣자 하니 이번에 역천개명하는 이보도 경매한대. 여러 종문에서도 그 이보 때문에 왔대!"
"이번 경매에 무제 강자들도 올까?"
사람들의 열띤 목소리를 들으며 진남과 사마공은 뒤쪽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그들은 명정오룡 영패가 있기에 초청장은 필요 없었다.
바로 그때.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비키거라. 썩 물러나!"
강한 기운이 뒤쪽에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