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화 설마 겁이 나는 게냐?
"너!"
임사는 안색이 변했다.
"마자는 고집이 세고 굴복시키기 어려워야 한다는 말이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옆에 있던 문무가 말했다.
최립허 일행은 깜짝 놀랐다.
문무가 진남을 인정하고 그의 편에 서서 말할 줄은 몰랐다.
그들이 잘 모르는 게 있었다.
문무는 천도문의 모든 적들을 싫어했지만, 원칙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진남의 평가를 듣고 그의 실력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문무는 여전히 진남을 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녀가 진남을 인정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별개였다.
"내가 해 보겠다."
최립허를 따르는 내문제자가 나서서 하추지도(夏秋之刀)를 휘둘렀다.
도의가 폭발하고 하추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림엔 몽환적인 경지가 숨겨져 있었는데, 진남을 그 속에 가두려고 했다.
진남은 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더니 왼쪽 눈에서 보라색 빛을 뿜으며 모든 것을 지켜봤다.
"이 그림은 실력이 너무 별로구나. 하추라는 게 무엇이냐? 하는 불을 대표하고 뜨거운 것을 가리킨다. 너는 이 부분은 잘 그렸다. 하지만 추는? 추는 만물이 성숙하는 것을 이른다. 한데, 너는 그를 감당 못 하는구나."
그의 평가를 들은 천재들이 앞다퉈 진남에게 말을 건넸다.
"진남 도우, 평가를 부탁한다!"
"이 시는 사랑을 읊었다. 나는 사랑을 잘 모른다. 하지만 물러나겠다는 뜻이 가득하구나. 왜? 겁이 나서 물러서겠다는 거냐?"
"진남……."
"좋구나. 겨울이 곧 오니 만물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네 빙의(氷意)는 조금 부족하다. 내가 불을 조금만 지펴도 모두 녹을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절대빙봉(氷封, 얼음으로 뒤덮임)이 아니다."
진남은 사람들의 도의에 대해 일일이 평가했다.
시, 사, 서, 화 등에 숨긴 살초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단번에 지적했다.
그는 수많은 날카로운 도의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천재들은 진남에게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진남은 지금까지 열 명의 천재를 평가했다.
만약 그들이었다면 도의를 소화하는 데 아마 많은 힘을 들여야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진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동술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경지를 움직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모든 도의의 결함들을 짚어냈다.
"좋다, 좋아. 역시 진남 도우야. 덕분에 내 시야가 넓어졌다. 그렇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다!"
최립허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로 천급 오품 무혼과 여섯 장 높이의 자아무수가 동시에 나타났다.
진불회 등 천재들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강한 도의를 드러냈지만 무혼과 자아무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한데, 최립허는 최강살초를 사용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혼도합일(魂刀合一)!"
최립허는 길게 외쳤다.
그의 등 뒤에 있던 고도 무혼은 제도 오월과 하나가 되었다.
풍기는 기운과 도의가 순식간에 늘어났다.
혼도합일 전과 비교하면 최소 다섯 배는 커진 것 같았다.
"칼끝이 붓이 되어 그림을 그리니 부디……."
최립허는 제도를 잡고 철령지 위에 빠르게 휙휙 그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림자가 스쳐 가는 것만 보였고, 그 뒤로 엄청난 도의가 풍겼다.
잠시 후 그는 칼을 멈추고 진남을 노려봤다.
"평가를 부탁한다!"
촤르륵-!
철령지 위에 도의가 변한 조각달 형상이 있었다.
형상은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진남을 눌렀다.
그러자 엄청난 기운에 허곤선이 흔들렸다.
"강하다!"
"이번에는 상대하기 어렵겠어!"
천재들은 가슴이 떨렸다.
그들은 엄청난 기운에 저도 몰래 한 걸음 물러섰다.
최립허는 차갑게 웃었다.
그의 혼도합일은 위력이 대단했다.
진남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설령 막는다고 해도 깊은 상처를 입을 게 뻔했다.
"혼도합일은 기술이 놀랍다. 물에 비낀 달이라 좋은 그림이야. 하지만 그림에 있는 도의는 공격에 쉽게 무너지는구나!"
진남은 평온한 표정으로 조각달의 가운데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주먹에 아무런 힘도 싣지 않았다.
하지만 주먹의 힘에 조각달은 허공에 그대로 멈추었다.
그러자 조각달에 금이 가더니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받으며 펑 하고 부서졌다.
"이, 이럴 수가……."
천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립허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한 도의를 저리 쉽게 해결한다고?'
"최립허는 천도문 내문제자 서열 이 위이자 천급 오품 무혼을 가졌다. 그런데 도의가 이렇게 저질일 줄은 몰랐다. 형편없어도 너무 형편없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진남은 성큼 나서며 비수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너!"
최립허는 붉으락푸르락했다.
그가 언제 이렇게 무시당한 적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최립허는 할 말이 없었다.
진남의 대충 휘두른 주먹에 그의 도의가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멋있구나. 진남, 네 실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
문무는 최립허를 무시하고 진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의 눈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럼, 내 도의를 평가하는 건 어떠냐?"
'문무의 도의를 평가한다고?'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경악했다.
진남이 그들의 도의를 받아내고 최립허의 도의를 쉽게 해결했지만, 문무는 제방 서열 이십칠 위인 절세 천재였다.
그녀의 도의는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천재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 좀 흥미가 생깁니다. 문무 사저, 도의를 펼치십시오!"
의외로 진남은 바로 승낙했다.
심지어 그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구나!"
문무는 감탄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엄청난 도의를 드러냈다.
그녀는 날아오르더니 제성평원에 내렸다.
"종이를 펴고 칼을 가져오너라!"
문무는 왼손을 휘둘렀다.
몇십 장의 철령지가 날아와 그녀 앞에 펼쳐졌다.
그녀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몇천 송이의 꽃들이 날아올랐다.
그녀가 오른손을 털자 몇천 개의 붉은색 도의가 꽃들을 감쌌다.
"대도무강(大道無疆), 오도제일(吾刀第一)!"
문무는 강대한 패기를 드러냈다.
그녀가 두 손을 휘두르자 몇천 송이의 도의 꽃이 몇천 개의 붓이 된 듯 철령지 위를 휙휙 날아다녔다.
쿵-!
천하(天河)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삼천 개의 도의가 변한 혈색 전사들이 혈마를 타고 혈도를 쥔 채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들은 엄청난 기운을 풍겼다.
어떠한 산이 막고 있어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권도의(畵卷刀意)!, 삼천 명의 정예 기병, 천산에 올라라!"
허곤선은 격렬하게 흔들렸다.
천재들은 안색이 변해서 강한 제술들을 펼치거나 강한 법보를 휘둘러 자신을 보호했다.
펑-!
진남은 물러서기는커녕 성큼 나섰다.
그는 온몸에서 엄청난 전의를 뿜었다.
"삼천 명의 정예 기병이 천산에 오르는 기세라니, 강하구나! 그러나 천산을 평지가 될 정도로 밟을 수는 있어도 나를 넘기는 어려울 거다!"
진남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오른팔이 살짝 떨리고 엄청난 위압감을 풍겼다.
"부숴라!"
그의 한마디 말이 의지의 강으로 변해 사납게 흘렀다.
삼천 명의 정예 기병은 강물에 파묻혔다.
순식간에 문무의 도의가 사라졌다.
허곤선의 주변은 다시 잠잠해졌다.
"……!"
타마산장의 임사, 진불회 등 천재들은 충격에 말을 잃었다.
'문무 사저의 도의가 사라졌어?'
"대단하구나. 제방 삼백일 위가 내 도의를 막아낼 줄이야. 용제원에 너 같은 인재가 나타난 것은 기쁜 일인지 걱정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문무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가 이내 감정이 복잡해졌다.
진남은 천도문의 적이고 그녀의 적이었다.
그러나 진남의 의지에 그녀는 감탄했다.
"됐다.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진남, 오늘 밤은 참 재밌구나. 우리들의 도의를 받았으니, 너도 한 수 펼쳐보는 게 어떠냐?"
문무의 말투는 전처럼 딱딱하지 않았다.
진남의 실력에 그녀가 존경을 표한 것이다.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사서화에 능하지 않습니다. 하니, 진불회 도우처럼 글자를 적어보겠습니다."
문무의 도의를 없앴지만, 그녀의 도의가 뿜은 삼천 명 정예 기병의 패기는 진남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그는 들뜬 상황에 문무의 요청을 받자 거절하지 않았다.
진남은 손을 휘둘러 철령지를 잡더니, 다섯 손가락 끝에서 도의를 뿜었다.
스윽-
진남의 팔은 용이 헤엄치는 것처럼 움직였다.
"됐습니다."
잠깐 사이에 진남은 오른손을 거두고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도의로 글자를 쓸 때 지금의 한껏 격앙된 의지를 함께 주입했다.
천재들은 호기심이 가득해서 쳐다봤다.
'이토록 강한 힘을 보여준 진남의 도의는 대체 얼마나 강할까?'
문무가 입을 열기 전에 진남은 최립허와 임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최 도우, 임 도우. 너희 둘이 내 도의가 어떤지 봐주겠느냐?"
둘은 표정이 굳었다.
"어? 설마 겁이 나는 게냐?"
진남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봤다.
최립허는 매번 그를 계략에 빠뜨렸다.
또, 임사는 처음 만났는데도 진남을 공격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흥! 보면 될 게 아니냐!"
최립허와 임사는 서로를 잠시 마주 보더니, 심호흡하고 앞으로 나섰다.
보는 눈이 많으니 그들은 도망갈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진남의 도의가 아무리 강해도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임사, 우리 진남의 도의를 함께 막아내자. 그리고 저자를 조롱하는 거야."
최립허는 임사에게 전음했다.
그는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그는 진남이 아까 그의 도의가 별로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함께 철령지를 열었다.
"호심현경(護心玄鏡)!"
"마맥공(魔脈功)!"
둘은 동시에 낮게 외치며 법보와 제술을 펼쳤다.
둘의 방어력은 엄청난 경지에 이르렀다.
둘은 확신에 차서 진남의 글을 살펴보았다.
우르릉-!
둘의 머릿속에 우레가 들렸다.
철령지에는 크고 작은 '전(戰)'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둘은 귓가에 포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눈앞에 엄청난 전의를 가진 전사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전의는 점점 짙어졌다.
마치 거대한 바다가 그들을 삼킬 것만 같았다.
"깨어나거라!"
그때, 일갈이 들렸다.
최립허와 임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분명 호심현경과 마맥공이 운행하고 있었음에도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들은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몸이 떨리고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아직도 엄청난 전의가 흉악한 야수처럼 입을 쩍 벌리고 그들을 삼키려는 것 같았다.
"진남 도우의 도의가 보통이 아니구나. 최립허와 임사도 저토록 겁을 먹다니."
문무는 두 눈에 어린 호기심이 점점 짙어졌다.
그녀가 방금 일갈하지 않았더라면 둘은 중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주변의 천재들은 놀랍고 궁금했다.
'대체 어떤 도의길래 둘이 저토록 겁을 먹은 걸까?'
"너희들도 보거라."
진남은 옅은 미소를 짓고 철령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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