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시사서화(詩詞書畵)
"천도문의 내문제자인 내가 먼저 나서겠다."
최립허는 진남을 보며 말했다.
"내 칼은 오월(傲月)이다."
최립허는 은색의 장도를 뽑았다.
낭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칼은 날카로운 도기를 풍겼다.
마치 달의 오만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오월은 제기 보도였다.
"오월, 멋있는 제도(帝刀)구나. 그럼 부끄럽지만 내 불도(佛刀)를 보거라."
보제사의 진불회가 합장한 손을 벌리자 불광에 둘러싸인 단도가 떠오르고 주변에서 불창(佛唱)이 들렸다.
"불도 무념(無念), 삼천의 번뇌를 베거라!"
최립허가 들고 있던 제도 오월은 무언가 느낀 듯이 연신 진동하더니 엄청난 도의를 폭발했다.
마치 불도를 누르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불도 무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에서 해탈한 부처 같았다.
"제도 오월과 불도 무념이라, 역시 최립허와 진불회 도우답다. 내 마도(魔刀) 적혈(滴血)도 빨리 겨루고 싶어 하는구나."
타마산장의 임사의 호탕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살기가 서늘한 마도에서 엄청난 마기가 휘몰아쳤다.
"오늘은 정말 견식을 넓혔다. 내 유수단상도(流水斷傷刀)가 빛을 잃는 것 같구나."
"하하, 도우는 너무 겸손하다. 내 늠동(凜冬)이야말로 좀 뒤처지는 것 같아."
천재들은 연이어 자신의 칼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배에는 여러 칼들이 겨루느라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 도의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천재들은 서로 물러서지 않고 칼 중 왕이 되려고 겨루었다.
"진남 도우, 다들 칼을 꺼냈는데 너는 왜 안 꺼내느냐?"
문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은근히 압박하는 느낌이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그녀의 눈빛에 크게 위축됐을 것이었다.
사람들도 궁금한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맞아, 진남은 왜 칼을 안 꺼내지?'
진남은 일어서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포권을 하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 칼은 함부로 꺼낼 수 없다. 함부로 꺼내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니 다들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의 말에 문무와 다른 천재들은 안색이 변했다.
천재도회는 서로 칼을 겨루는 자리였다.
'우리는 모두 칼을 꺼냈는데 진남이 칼을 꺼내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다는 말은 진남의 칼이 너무 대단해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인가?'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다니. 네 경지가 좀 높다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냐?"
최립허는 차갑게 말했다.
"진남 도우, 칼을 꺼내거라."
"허허, 진남, 칼을 꺼내거라. 어떤 일이 벌어지던 내가 다 감당하겠다!"
"진남 도우, 오늘 도회는 쉽게 오는 자리가 아니다.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고 얼른 칼을 꺼내거라."
천재들은 너도나도 말했다.
일부 천재들은 진남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말했다.
문무의 두 눈에 서늘한 빛이 번뜩였다.
"진남, 너는 천도문의 적이다. 당청산이 네 뒤를 봐주기에 나는 너를 죽일 수 없다. 하지만 계속 주제 파악을 못 한다면 설령 당청산이 온다고 해도 나는 너를 봐주지 않을 거다! 빨리 칼을 꺼내거라!"
칼을 꺼내라는 말이 진남을 압박했다.
동시에, 배에 엄청난 도의가 휘몰아쳤다.
그녀가 화를 내자 천재들은 안색이 변했다.
문무는 천도문의 진전제자이자 제방 이십칠 위였다.
게다가 그녀는 경지가 자아무조 정상급에 이르렀다.
최립허는 그 모습을 보자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수단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진남이 스스로 문무를 화나게 했기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죄송하지만 꺼낼 수 없습니다."
진남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꺼낼 수 없어?"
문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엄청난 힘이 몸속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진남,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최립허는 불 난 집에 부채질했다.
"허허, 진남 도우 정말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내가 보기에는 진남 도우가 겁을 먹은 거 같아."
자리에 있던 천재들 대부분은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배의 분위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문무가 화를 내기 전에 보제사의 진불회가 갑자기 나서서 높은 소리로 외쳤다.
"아미타불!"
그의 말이 봄바람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 그들의 화를 가라앉혔다.
"다들 내 말 한번 들어보거라."
진불회는 합장하고 말했다.
"천재도회는 우아한 일이고 겨루기를 하는 곳이 아니다. 칼을 꺼내든 말든, 이는 모두 당사자의 마음이다. 그러니 강요하면 안 된다. 억지로 강요한다면 이건 도회가 아니라 대결이다."
그의 말에 천재들 두 눈에 이글거리던 화가 많이 사라졌다.
다들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진불회의 말이 맞았다.
강요하면 도회가 아니었다.
최립허는 눈빛이 서늘해졌다.
'땡중이 진남을 위해 변명을 하다니.'
진남도 살짝 놀랐다.
그는 진불회와 교류를 한 적이 없었다.
"진남은 천도문 앞에서 도왕비를 박살 낸 사람이다. 그러니 일을 벌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청산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여, 내 생각에 진남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다."
진불회는 문무를 보며 물었다.
"문무 사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무는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너를 강요한 것은 내 잘못이 맞다. 하지만 오늘 도회에서 다들 흥이 났는데 네가 칼을 꺼내지 않은 것은 역시나 잘못된 일이다."
옆에 있던 최립허는 그녀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계략을 꾸몄다.
"문무 사저,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말해도 되겠습니까?"
문무는 그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을 바라보는 최립허의 눈에 살벌한 빛이 스쳤다.
"진남 도우는 단왕비를 자른 사람이니 도의가 강한 건 분명합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두 번째 관문에서 도우들이 도의로 시사서화(詩詞書畵)를 하면 진남 도우가 먼저 평론하는 게 어떻습니까?"
여러 천재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드러내자 최립허는 살벌함을 감추고 웃으며 말했다.
"천재도회의 두 번째 관문은 너희들이 도의로 시사서화를 하고 서로 평론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제야 어리둥절했던 천재들도 알아들었다.
그의 말을 들은 천재들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최립허, 참 음흉하구나!'
허곤선에는 문무까지 스물아홉 명이 있는데, 모두 여러 세력의 천재들이었다.
제방 서열도 칠백 위 아래는 없었고 도의도 강했다.
최립허의 말대로 진남이 첫 번째로 나서서 평론을 발표하면 여러 천재들의 도의와 충돌할 수 있었다.
진남의 경지는 확실히 높았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한다면 버틸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했다.
그렇게 된다면 문무도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예전에는 천재도회를 할 때 두 번째 관문에서 항상 문무가 가장 먼저 평론을 했다.
그녀의 경지만이 여러 천재들의 도의를 전부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겠다!"
"난 그 제안이 마음에 든다!"
"음, 최립허의 말이 옳다. 진남 도우는 경지가 비범하고 도의가 짙다. 그러니 우리를 평론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거다."
천재들은 한마디씩 했다.
진불회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진남이 칼을 꺼내지 않아 천재들은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최립허의 말에 동조했다.
문무도 고개를 끄덕이고 냉담하게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첫 번째 관문에서 칼을 뽑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두 번째 관문에서는 최 사제의 말대로 하거라. 설마 겁을 먹은 건 아니지?"
진불회는 그녀의 말을 듣자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쉬었다.
진불회가 진남을 도운 것은 사형인 진자래가 진남을 만나면 절대 적이 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진자래는 진남을 만나면 최대한 도와주라고 했다.
그러나 최립허가 수단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동시에 진남을 공격하자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진남은 최립허와 문무를 쳐다보고 또, 다른 천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관문에서 첫 번째 평론은 내가 하겠다."
그는 최립허의 꿍꿍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진남에게는 단천도가 있고 왼팔이 있으며 심신은 전신의 위압의 세례를 받았다.
때문에, 여기에 있는 천재들이 한 명씩이 아니라 단체로 몰려와도 진남은 버틸 수 있었다.
물론 그는 거절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사람들의 도의를 잘 살펴보고 그 도의로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려고 했다.
위기는 기회이고, 모든 순간은 수련이었다.
짝짝짝-
"좋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구나!"
문무는 박수하며 말했다.
"천재들에게 종이를 주거라."
아름다운 여인들이 방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나무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쟁반에는 서로 다른 종이가 있었다.
종이에서 옅은 영광이 반짝이고 옅은 향기를 풍겼다.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천재들은 눈앞이 환해졌다.
"문무 사저는 통이 크십니다. 고음차(古音茶), 회감주(回甘酒)에 이어 철령지(鐵靈紙)까지! 모두 진귀한 보물들입니다. 그럼 제가 먼저 재주를 뽐내보겠습니다. 들고 있는 불도로 글자를 새기겠습니다."
최립허가 입을 열기 전에 진불회는 선지를 들고 허공에 펴더니 불도를 댔다.
칼끝에서 불광이 번쩍이더니 부처의 형상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어깨를 움직이자 불도 도의가 철령지 위에 금빛이 반짝이는 글자를 새겼다.
"진남 도우, 평가해 보거라."
진불회는 불도를 거두고 합장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살폈다.
커다랗고 금빛이 반짝이는 '정(靜)' 자가 부드러운 불의를 드러냈다.
진남은 마음이 평온해지고 단단해져 사악한 마귀의 침범을 받지 않았다.
"좋다. 필체가 유창하고 불의가 완벽하다. 진불회 도우는 종사의 품격을 갖추었구나."
진남은 입꼬리를 올리며 담담하게 웃었다.
진불회는 크게 불호를 외웠다.
그는 영지를 사람들 앞에 펼쳐놓았다.
진남이 먼저 평가하고 사람들이 구경했다.
진불회의 글을 확인한 많은 천재들은 생각에 잠겼고, 최립허와 일부 천재들은 콧방귀를 뀌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진불회의 정자는 진남을 누를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중놈이 너를 보호하려는 것 같구나. 나는 저놈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게 하겠다! 진남 도우, 내 것을 확인해 보거라!"
타마산장의 임사는 냉소를 지으며 나섰다.
그는 마도 적혈의 칼끝을 선지에 대고 휙휙 그었다.
웅-
칼끝이 떨리며 소리를 내더니 마곡(魔曲)을 만들었다.
마음이 울려 퍼지고 개세마두의 형상이 나타나 진남에게 부딪혔다.
진남의 몸에 옅게 남아있던 불의가 완전히 사라졌다.
"한 수의 마곡이다. 평가해 보거라."
임사는 칼을 멈추었다.
천재들은 저도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불자나 마음이나 둘 다 평범하지 않았다.
최립허는 비웃음을 드러냈다.
'진불회가 봐주면 뭐 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걸.'
"보기에는 날카롭고 잔인해서 마음에 충격을 가하는 것 같지만 사실 허점이 가득하다. 마자(魔者)는 고집이 세고 굴복시키기 어려운 자라서 혼자 다니고 개성이 강하다. 그런데 네 마음은 살기와 어두운 마음밖에 없다."
진남은 날카로운 말투로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타마산장의 제자도 별거 아니구나."
진남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진불회에게 도움을 받았기에 그를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임사의 도의는 그를 공격하는 것이었기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