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화 천재도회
"선배님은……."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앞에 있는 사람은 당청산 선배의 도제 사형인가?'
"나를 비범도제라고 불러도 좋고, 사형이라고 불러도 좋다."
비범도제는 손을 흔들더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당청산은 명색이 내문제자 일 위라는 녀석이 대전이 너무 궁상맞아. 재미가 없는 녀석 같으니!"
"선배님,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진남은 공수하고 담담하게 물었다.
대단한 비범도제가 한담이나 하자고 진남을 찾지는 않았을 거다.
"오, 일이 있기는 하지. 얼마 전에 당청산이 나를 찾아와 사제를 불렀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지라고 하더구나. 즉 너를 지지해달라는 뜻이겠지. 그래서 당청산 같은 괴짜와 사형제를 맺은 자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비범도제는 말했다.
"보아하니 너도 만만치 않구나. 한 방에 도왕비를 베다니. 예전의 나보다 조금 뒤처질 뿐이다."
"과찬이십니다."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음속에 확신이 생겼다.
'비범도제가 나를 찾아온 걸 당청산 선배는 아직 모르겠네.'
"너도 별로 재미가 없구나. 됐다, 됐어. 본론을 이야기하마. 이번 구도고봉에서 고도 두 개를 얻어 당청산에게 주거라."
비범도제는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당청산이 가지고 있는 흑도는 영성이 비범하긴 하지만 재질이 너무 나쁘다. 반드시 다시 연화해야 한다. 아니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고도 두 개를 얻어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진남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비범도제는 고도를 제물로 삼아 흑도를 승화시키려고 했다.
비범도제의 말이 맞았다.
흑도는 맹강녀가 자신을 연화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재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
"도제 선배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청산 선배의 도의와 천부로도 구도고봉에서 고도 두 개를 얻는 것쯤은 문제없습니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 말이 맞다. 문제없지. 그러나 고도 두 개는 너무 적다. 적어도 네다섯 개를 한 번에 연화해야 단단해지지 않겠느냐?"
비범도제의 두 눈에 빛이 스쳤다.
진남은 숨을 들이켰다.
'내 예감이 맞았어. 당청산의 사형이 될 수 있고 당청산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비범도제도 역시 미치광이라는 거야!'
구도고봉에서 아홉 개의 고도 중 하나를 얻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랜기간 동안 무인이 가져간 칼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홉 개의 고도들이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비범도제는 한 번에 네 개의 고도를 얻을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남은 바로 대답했다.
사형을 돕는 일이라면 그는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시원시원한 성격이구나!"
비범도제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당청산에게 말하지 말거라. 아니면 그 녀석이 나를 찾아와 귀찮게 할거다. 네가 칼 두 개를 가져온다면 명정오룡(明正五龍) 영패를 주마."
말을 마친 도제는 손을 뒤집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금색의 오룡 영패가 나타났다.
"명정오룡 영패요?"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너희 사형제는 제발 상식 정도는 갖추면 안 되느냐?"
비범도제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명정문의 경매는 알겠지? 열흘 후, 경매가 열리는데 이 영패가 있으면 임의로 보물 다섯 개를 살 수 있다."
"그렇습니까?"
진남은 깜짝 놀랐다.
명정문은 중주의 이성 세력이었다.
진남이 죽였던 희야도 명정문의 사람이었다.
명정문은 중주에서 크고 작은 경매를 열거나 보물 교환 모임 같은 것들을 열었다.
명정문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기에, 매번 경매할 때면 많은 무인이 몰려들었다.
비범도제가 말한 열흘 후에 열린다는 경매는 명정문이 해마다 여는 삼대 경매 중 하나였다.
이런 대형 경매에는 보물들이 많아서 수많은 강자들이 찾아왔다.
진남은 처음에 경매에 흥미가 생겼으나, 지금은 돈이 없어서 나중에 가기로 생각했다.
"좋습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진남은 거절하지 않고 인사를 했다.
"허허, 배짱은 두둑하구나."
비범도제는 감탄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다. 나는 사매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겠다."
"선배님, 잠시만요.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진남은 얼른 물었다.
"물어보거라."
비범도제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선배님, 사실 저는 궁금합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당청산의 사형이 되었습니까? 왜 당청산을 도와주는 겁니까?"
천도문에 들어올 때부터 진남은 궁금했다.
'비범도제가 왜 당청산을 도와줄까?'
"아, 그거 말이냐?"
비범도제는 산만했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의 두 눈에 불꽃이 이글거리고 제위가 뿜어져 나왔다.
"천광도제는 무제를 키우고 나는 무신을 키운다! 당청산은 그럴만한 잠재력이 있다! 내가 왜 그의 사형이 되었냐고 물었지? 그건 내가 당청산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비범도제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 녀석 성격이 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
비범도제는 말을 마치고 바로 떠나갔다.
진남은 그 말을 듣고 비범도제가 왜 당청산을 신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도문을 돌아보자."
궁금증이 풀린 진남은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천도문의 도술각(刀術閣)으로 들어갔다.
진남은 한참 동안 여러 도술에 매혹되었다.
천도문은 칼을 전문적으로 쓰는 종문이라서 각양각색의 기이한 도술들을 모아두었다.
진남은 그 중의 여러 도술에 흥미가 생겼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오늘따라 웬일인지 하늘에 별 하나 없이 온통 시커멨다.
쿵-!
천도문 진전제자 대전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도술각에 있던 진남도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왼쪽 눈으로 살펴보았다.
길이가 삼십 장이 되고 온통 빛에 둘러싸인 커다란 배가 허공에서 느린 속도로 천도문 도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북쪽의 커다란 곤(鯤, 상상 속의 물고기) 같았고 엄청난 기운을 풍겼다.
배 자체가 제기였다.
"허곤선이다. 저건 문무 사저의 허곤선이다!"
"문무 사저가 천재도회를 열려는 모양이야. 얼른 가서 구경하자."
"허허, 그거 들었어? 이번 천재도회에 문무 사저가 진남을 요청했대!"
"진남을 요청했다고? 설마……."
"에이, 그럴 리가. 진남이 감히 참가한다면 문무 사저에게 진압당할 텐데?"
천도문의 내문제자, 외문제자, 잡역제자 심지어 일부 장로와 봉주들도 놀랐다.
그때 배에서 여인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재도회가 곧 시작된다. 초청을 받은 천재들은 허곤선에 오르기 바란다. 요청을 받지 않은 자들 중 참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허곤선의 빛을 뚫고 오면 된다!"
문무의 목소리였다.
"재미있어. 문무 사저가 이렇게 패기가 넘칠 줄 몰랐어. 제기 배를 타고 도회를 열다니!"
진남은 눈을 반짝이며 도술을 덮고 도술각을 나왔다.
그 순간, 사방의 강한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허곤선과 연결이 되었다.
다른 세력에서 온 천재들이었다.
천도문의 최립허 같은 천재들이 많았다
천도문은 북적거렸다.
많은 제자들은 허곤선에 들어가 보려고 준비 중이었다.
진남은 발끝을 차고 빛이 되어 날아갔다.
그는 쉽게 배의 빛을 뚫고 들어갔다.
커다란 배에는 서른 개의 나무 의자와 다섯 개의 나무 탁자가 있었고, 탁자 위에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었다.
나무 의자에는 이미 스물세 명의 천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남이 들어오자 주변의 시선들이 그에게 쏠렸다.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고 시큰둥한 이들도 있으며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최립허는 진남을 보자 콧방귀를 뀌었다.
'문무 사저가 공격할 때도 그렇게 거만할 수 있는지 보자!'
"거의 다 모인 것 같으니 제성평원으로 가자."
배 끝에 나무로 만든 방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문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곤선은 속도가 빨라지더니 곧 흐르는 빛으로 변해 천도문을 벗어났다.
제성평원에 들어서자 허곤선은 속도를 늦추었다.
이미 어둠이 짙게 드리웠다.
그러나 제성평원은 땅 위의 신비한 정석이 뿜어내는 부드러운 빛들이 모여 낮처럼 밝았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빛을 받아 더 아름다웠다.
허곤선은 그사이를 항해했다.
사람들은 마치 별이 총총한 하늘과 꽃밭을 누비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다."
"제성평원의 밤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문무 사저답다. 배를 타고 바다를 보고 꽃구경을 하고 도의를 논하다니 서정적이야."
천재들은 감탄했다.
진남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력에는 이런 도회가 없었다.
그래서 흥미가 생겼다.
"인연이 되어 이렇게 만나는 것도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도회가 시작되기 전 최립허부터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 안면을 트자."
문무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차와 술도 준비되어 있으니 사양하지 말고 즐기거라."
아름다운 여인들이 방 안에서 나왔다.
그녀들이 들고 있는 은색 쟁반에는 찻잔과 술잔이 있고 잔 속에는 차와 술이 넘쳤다.
차와 술이 풍기는 향긋한 냄새가 사람들을 취하게 했다.
많은 천재들은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그들도 식견이 평범하지 않았기에 진귀한 차와 술을 올렸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진남은 오히려 아무 생각 없었다.
그는 술잔을 잡고 혼자 술을 마셨다.
"나는 최립허다. 천도문 내문제자인데 이번 도회에서 여러 도우들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
최립허는 술잔을 들었다.
그는 저도 몰래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황태무(煌太無)다. 무심종에서 왔다……."
"나는……."
천재들은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했다.
진남은 힐끗 훑어보다가 세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다.
첫 번째는 보제사에서 온 내문제자 진불회(陳不悔)였다.
그는 표정은 평온했지만, 몸속에 엄청난 위력을 가진 불도가 형성이 되었다.
두 번째는 혼난문에서 온 팽우(彭羽)였다.
그는 얼굴이 하얗고 손가락이 길었으며 경지가 높았다.
세 번째는 타마산장의 천재 임사(林賜)였다.
경지가 무척 강했다.
임사는 왠지 몰랐지만, 진남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나는 진남이고 용제원 인족봉 봉주다."
진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하게 말했다.
"진 형의 명성은 진작 들었소. 지난번에는 스승에게 진 형을 본받으라고 혼나기도 했소. 하하하!"
진남이 자리에 앉자 여러 천재들이 말을 걸었다.
진남은 배경이나 경지가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강했다.
그래서 그들은 진남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인연을 맺으려고 했다.
진남은 여유롭게 일일이 응대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최립허는 그 모습을 보자 속이 뒤틀려 진남을 욕했다.
끼익-
그때, 방문이 열렸다.
붉은색 갑옷을 입고 고도를 멘 짧은 머리의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그 여인은 얼굴에 흉터가 있었다.
걸음걸이가 사납고 숨김이 없었다.
"문무 사저!"
"문무 사저를 뵙습니다!"
최립허 등은 일어서서 공수했다.
문무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훑어봤다.
그녀는 진남에게 시선이 잠깐 머물더니 바로 말했다.
"다들 사양하지 말고 즐기거라. 오늘 도회는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첫 번째는 칼을 겨루겠다. 칼을 다루는 무인은 반드시 좋은 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칼을 겨루겠다."
"칼을 겨룬다고?"
"칼을 겨루는 건 재미있습니다. 저도 도우들의 칼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하하, 오늘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겠습니다."
천재들은 입을 열었다.
진남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관문이 칼을 겨루는 것일 줄은 몰랐다.
그는 절대 단천도를 뽑을 수 없었다.
천도문에서 단천도를 뽑는다면 비밀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하늘에 있는 호종신도, 심지어 구도고봉에 있는 수많은 칼들이 반응을 일으킬 것이었다.
게다가 칼을 겨루는 심사에서 단천도가 나타나면 다른 칼들은 반드시 부서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