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화 진산신주(鎭山神珠)
현월의 말에 진남은 문득 생각나기 시작했다.
중주만상옥간에는 세력마다 원수를 청동, 백은, 황금 세 개 등급으로 나뉜다고 적혀있었다.
세력의 제자들이 청동 등급으로 분류되는 원수를 만나면 공격할 수 있었다.
백은 등급의 원수를 만나면 문파의 상부에 보고해야 하고, 황금 등급의 원수를 만나면 모든 종주가 나서서 추격해야 했다.
"괜찮소. 청동 등급이면 청동 등급이지 뭐."
진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적은 마다하지 않는다!'
현월은 눈살을 찌푸리고 침묵했다.
옆에 있던 천기견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네 마리의 짐승과 진남은 빠르게 중도성으로 가 진법을 타고 용제원으로 들어갔다.
* * *
그 시각, 용제원 신비한 금지 안.
"원장님, 혹시 요신 금지에서 소식이 와서 우리를 부른 건가요?"
구미요제가 먼저 물었다.
"그렇다"
용제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에서 소식이 왔는데, 반신지국에 상황이 변한 것 같다. 칠대 금지 중에서 오래전에 소멸한 유실약원에 후계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살신 금지 중의 살신비문(殺神碑文)이 깨졌다. 또, 삼대 세력에선 무도 규칙을 초월한 천재가 나타난 것 같다."
"네?"
구미요제와 암흑요제는 모두 안색이 변했다.
'유실약원 후계자, 살신의 후계자, 무도 규칙을 초월한 천재, 어떻게 이런 변고가 한 번에 일어날 수 있지?'
"요신은 가장 휘황찬란한 시대가 온 것 같다고 했다. 과연 이런 시대에 진남이 풍파를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겠군."
용제가 길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우리는 참견하지 말고 진남이 스스로 성장하게 하자. 언젠가 진남의 경지가 높아지면 요신이 친히 그를 만날 것이다."
"음……."
구미요제와 암흑요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이 스스로 성장하게 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음, 나는 진남이 괜찮은 녀석이라고 본다. 현월을 굴복시키고, 또 얼마 전에는 천도문의 내문제자 두 명을 죽였다. 언젠가 비범한 인물이 될 거다."
용제가 웃으며 말했다.
"반신지국을 제외한다면, 적어도 중주에서 그와 천부를 비할 수 있는 자는 매우 드물 것이다."
"맞는 말이에요."
암흑요제가 동감한 듯 말했다.
"하지만 진남의 무혼은 너무 약합니다. 하니, 저는 녀석을 도와 역천개명할 기연을 찾겠습니다."
말을 마친 암흑요제는 몸을 날려 사라졌다.
"암흑이 이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건 처음 보네요. 아들 일에도 이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을 건데 말이죠."
구미요제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용제는 암흑요제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희망이 생겼으니 암흑은 포기하지 않을 거다. 우리 요족들은 모두 피맺힌 깊은 원한이 있지 않느냐?"
용제의 말에 구미요제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매우 싸늘해졌다.
* * *
그 시각, 용제원 많은 산봉우리 위.
커다란 늑대가 엄청난 요기를 뿜으며 인족봉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현월이구나!"
"현월은 진짜 진남의 탈것이 되었나?"
"나는 처음에 농담하는 줄 알았어. 근데 진짜 진남의 탈것이 되다니!"
"보는 내가 다 창피하구나!"
"……."
현월은 속도가 엄청 빨랐지만, 산봉우리의 대요들에게 발견되었다.
현월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네놈들도 그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받으면 진남의 탈것이 되려고 할 거다.'
진남 등은 인족봉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오지 않았더니 인족봉에 큰 변화가 일어났구나."
인족봉을 바라보는 진남의 눈에 묘한 빛이 스쳤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패기가 넘치고 보라색 빛이 가득 했다.
큰 나무들이 우뚝 솟고 수많은 영약, 영초, 영화가 가득 돋았고, 평범하던 요물들이 영지가 생겨 산속에서 수련하고 있었다.
수련대전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시끌벅적했다.
"진남, 돌아왔느냐?"
산봉우리 안의 육령용맥이 가장 먼저 눈을 떴다.
기세가 전보다 많이 강해졌다.
"선배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진남이 훌쩍 날아 혼자 산봉우리 안으로 들어가 신비한 수정함을 꺼냈다.
"이건……?"
육령용맥은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이 신비한 수정함에 어떻게 단천대제의 기운이 있느냐?"
진남은 그동안 일어난 일을 낱낱이 육령용맥에게 알려줬다.
다만 사악한 길과 신방제자에 관한 일은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운소산맥에서 우연한 기회에 보물을 얻었는데, 그 보물이 단천대제가 남긴 것이었다고 육령용맥에게 알려줬다.
"좋다. 좋아, 잘했다!"
육령용맥은 흥분하며 말했다.
"단천도의 주인답구나. 단천대제와 깊은 인연이 있어!"
"선배님, 선배님은 이 물건을 아십니까?"
진남은 수정함을 열고 물었다.
수정함 안에는 두 가지 물건이 있었다.
하나는 주먹만 하고 분홍색이고 안에 신비한 작은 탑 모습이 있는 진산신주(鎭山神珠)였다.
다른 하나는 흰색 종이였다.
모양이 특이하고 육각형의 별 같았다.
이 종이가 바로 단천대제가 말하는 지도 중 하나였다.
"진, 진산신주?"
육령용맥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본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놀란 소리로 물었다.
"맙소사, 단천대제가 진짜 이 보물을 만들었다고?"
"선배님, 이것의 효능을 아십니까?"
육령용맥의 말에 진남은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진산신주를 오랫동안 관찰했지만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어떻게 쓰는 것조차 모른다면 진짜 난감한 일이었다.
때문에 육령용맥에게 물어보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육령용맥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길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안다. 나는 이 진산신주에 대해 알고 있다. 진산신주를 움직이면 인족봉에 융합되어 용제원의 다른 산봉우리의 용맥이나 도원정석과 같은 이보의 힘을 모두 인족봉으로 끌어올 수 있다."
육령용맥은 말하면서 점점 흥분되었다.
"또, 요제 등급의 강자도 이것의 오묘함을 꿰뚫어 볼 수 없다. 힘을 뺏긴 용맥들도 자신의 힘을 빨아간 것만 느낄 뿐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볼 수 없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거지!"
육령용맥의 말을 들은 진남의 눈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용제원에는 오십여 개의 산봉우리가 있었다.
각 산봉우리에는 엄청난 용맥들이 있었다.
용맥들은 제자들의 수련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천 년이나 봉쇄된 탓에 인족봉의 육령용맥은 등급이 제일 낮았다.
태고자금전룡봉, 구미천호봉, 암흑기린봉 등 대요족의 산봉우리의 용맥은 엄청 대단했다.
만약 이 용맥들을 전부 끌어온다면 인족봉은 제일 강한 수련 성지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진남은 단천대제가 이렇게 대단한 법보를 만들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육령용맥은 침착하고 말했다.
"진남, 이 일은 위험이 있다. 만약 상대방이 발견하면 너는 용제원에서……."
"할 겁니다!"
진남은 결심했다.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뭐, 뭘 한다는 거냐?"
육령용맥은 얼떨떨했다.
"어찌 이렇게 대단한 이보에 먼지만 쌓이게 할 수 있습니까?"
진남은 두 눈이 반짝거리며 말했다.
"인족봉은 오랫동안 쇠락했으니 이제 다시 일어설 때가 되었습니다."
육령용맥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이 자식은 이 일이 폭로되면 결과가 어떨지 모르나? 폭로되면 대요족의 추격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용제원에서 매우 엄한 처벌을 내릴 것이다.'
"지난번에 원장님께서는 용제원은 규칙을 지키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산봉우리의 용맥을 끌어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선배님. 우리가 다른 산봉우리들을 한꺼번에 전부 빨아올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진남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각 산봉우리에서 조금씩 빨아오면 우리 인족봉이 변화를 일으키는 건 충분합니다."
"……네 말이 옳다."
육령용맥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선배님, 진산신주를 어떻게 사용합니까?"
진남은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끼며 다급히 물었다.
그는 육령용맥보다 더 먼 앞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진산신주가 있으면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인족봉을 온갖 자원이 아무리 써도 끝이 없는 매우 강한 수련 성지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가 전문적인 수련대전을 만들면 용제원의 모든 강자가 몰려올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제정을 얻는 건 매우 쉬울 것이었다.
설령 다른 산봉우리의 강자들이 발견한 후 시비를 건다고 해도 진산신주는 요제들도 발견할 수 없는 거라 증거가 없었다.
이 일은 다른 산봉우리들은 작은 손해를 보지만 그에게는 좋은 점이 무척 클 것이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육령용맥은 진산신주를 움직이는 방법을 진남에게 알려줬다.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혈제를 올리고 신념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연마하자!"
진남은 손가락 끝을 찢어 진산신주 위에 피를 떨어뜨렸다.
윙-
주먹만 한 분홍색 구슬이 떨기 시작하더니 현묘한 빛이 반짝거렸다.
"소통하자."
진남은 신념으로 느끼더니 기쁜 표정을 지었다.
숨을 길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진산신주, 움직이거라. 다른 산봉우리들을…… 흡입하거라!"
진산신주 안에 있는 탑 중 일 층에서 부문들이 불을 지핀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진산신주는 작은 탑으로 다섯 개 층으로 나뉘었다.
많은 층을 움직일수록 위력도 더 컸다.
진남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모든 층을 움직이지 않고 살짝 위력을 알아보는 정도로 힘을 썼다.
슉-!
진산신주에서 쉰일곱 개의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쇠사슬처럼 용제원의 쉰일곱 개 봉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붉은빛은 쉰일곱 개의 봉우리 안에 있는 독특한 용맥에 꽂혔다.
"진남, 무슨 일이냐?"
육령용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진산신주의 주인이 아니었기에 진산신주의 움직임이나 붉은빛 등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진산신주의 반응을 발견하지 못했다.
"선배님,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진남은 휙 하고 공중에 날아올라 전신의 왼쪽 눈으로 아래를 굽어보았다.
우- 우- 우-.
진산신주는 마치 바람 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독특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진남은 붉은빛이 여러 봉우리에 있는 '태고자금전룡지맥', '암흑기린지맥', '구미지맥', '무두룡맥', '천일룡맥' 등 용맥들의 일부 힘을 빨아들여 인족봉에 보내는 것을 보았다.
인족봉 동굴 안에는 웅장하고 방대한 용맥지기(龍脈之氣)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하하하! 좋다, 좋아. 역시 단천대제가 만든 이보구나!"
육령용맥은 그 모습을 보자 통쾌하게 웃었다.
'대단하다!'
진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산신주가 힘을 빨아들이는 것을 여러 산맥의 용맥들과 강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일 층만 움직였는데도 이 정도 위력인데 전부 움직이면 어떨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용맥들의 힘을 전부 흡입할 것 같군!'
"선배님, 진산신주를 다른 곳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까?"
진남은 심신을 거두고 봉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웅장하고 방대한 힘을 느끼며 얼른 물었다.
진남은 지금 용제원 인족봉 봉주였다.
다른 봉우리 용맥들의 힘을 조금씩 흡수하는 건 괜찮지만, 다 흡수하면 화를 입을 수 있었다.
"음……."
육령용맥은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진산신주는 인족봉 그리고 용제원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인족봉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단천대제가 타요봉을 제련하여 용제원을 상대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진남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단천대제는 인족봉 제자였는데 왜 제련한 지보들은 전부 용제원을 겨냥한 것일까? 그러니 단천대제의 실력이 대단했는데도 용제원에서 억지로 그를 내보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