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화 심사를 통과하다
용제의 두 눈에 갑자기 서늘한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심사에 통과되지 못하면……."
별안간, 대전에 얇은 얼음이 끼고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서 뼛속까지 시렸다.
용제의 눈빛 한 번에 천지가 변했다.
마지막 말은 굳이 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차분한 시선으로 말했다.
"원장님, 태고자금전룡 선배님이 저를 박하게 대하지 않았기에 저는 용제원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족들의 목적을 잘 모릅니다. 나중에 요족들이 저에게 세상을 없애라고 하면 저는 세상을 없애야 하는 겁니까? 제가 왜 이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전체 요족의 지지를 얻는 일이라면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용제는 지금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만약 진남이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거였다.
진남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위협이었다.
무연각, 신비한 구리거울, 금인 같은 엄청난 존재도 진남을 위협한 적은 없었다.
용제는 움직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말했다.
"요족의 일은 엮인 것이 너무 많다. 네가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경지가 너무 낮기에 아직은 알려줄 수 없다. 그리고 이 심사는 참가하고 싶든 말든 반드시 해야 한다. 내 앞에서 너는 다른 길을 택할 수 없다."
그의 한마디 말에 패기가 가득했다.
"그렇습니까?"
진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신식으로 금인을 움직였다.
구리거울과 금인, 그리고 요족 사이에 큰 연관이 있었다.
그러니 이 두 지보를 움직이면 용제원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 터였다.
'심사?'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억지로 하는 심사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었다.
설령 용제원이라고 해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었다.
바로 그때, 진남의 머릿속 구리거울은 희미한 빛을 발하더니 신비로운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심사에 참가해도 된다. 너에게 나쁜 점은 없다."
"응?"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구리거울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나와 요족 사이에는 확실히 인연이 있다. 그러나 내가 한 일과 요족들이 한 일은 다르다. 그러니 심사에 참가한다면 오로지 네 힘으로 해야 한다. 나는 나서서 너의 신분을 증명해주지 않을 거다."
구리거울이 차갑게 한마디 뱉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내 신분 증명해주지 않는다고?"
진남은 얼떨떨했다.
구리거울의 말은 뜬금없었다.
진남이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으니 용제는 엄청난 용의 위엄을 풍겼다.
"진남, 쓸데없는 소리 작작하거라! 이제부터 심사를 시작하겠다! 물론 네가 강요당해서 마음이 몹시 언짢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만약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면 내가 직접 사과하겠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용제는 진남의 반감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번 심사를 통과한다면 그는 직접 사과할 의향도 있었다.
용제는 강자를 존중했다.
"직접 사과하시겠다고요? 그 말 진심입니까?"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나는 용제다. 태고자금전룡일족이 어찌 거짓말을 하겠느냐?"
용제는 뒷짐을 쥐고 거만한 기운을 풍겼다.
"좋습니다. 심사에 참가하겠습니다."
진남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구리거울은 이번 심사가 진남에게 나쁜 점은 없다고 했다.
더욱이 용제가 직접 사과를 하겠다고 했으니 언짢던 기분도 한결 가셨다.
"좋다!"
용제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심사는 간단하다. 공법, 무혼, 법보, 경지 다 사용해도 된다. 네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네 가치를 증명하거라!"
"내 가치를 증명하라는 말씀입니까?"
진남은 어리둥절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수련하는 동안 새로 만든 것들이 있는데 펼쳐 보여도 되겠습니까?"
"물론."
용제는 담담하게 그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미리 말하마. 나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중주 대륙에 무척 적다. 너에게는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
아, 그리고 네가 오늘 보여주는 것들에 대해서는 용신과 천지에 맹세하마. 절대로 밖에 발설하지 않겠다."
용제는 손을 들고 맹세했다.
'용제는 이번 심사를 무척 신경 쓰고 있구나. 사과도 하겠다고 하고 천지에 맹세도 하다니. 그렇다면 오히려 잘됐다.'
진남은 눈을 반짝거렸다.
용제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더라면 진남은 쉽게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럼 원장님 잘 보십시오."
진남에서 공수하고 신식을 움직이자 그의 머리 위로 신비한 빛이 번쩍였다.
일 장이 되고 온통 초록색인 무조의 나무가 하늘에 떠올라 짙은 무도 의지를 풍겼다.
"좋아, 자아무성이 무조의 나무를 키워내다니, 중주에서 이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적다."
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그러나 진남, 고작 이것뿐이냐? 한참 멀었다!"
'고작 자아무성이 키운 무조의 나무가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원장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남은 담담한 표정으로 신념을 움직였다.
용제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바로 그때,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보라색 빛이 진남의 머리 위에서 반짝거렸다.
"응?"
용제의 눈에 경이로운 빛이 드러났다.
그는 표정이 확 달라졌다.
온통 보라색에 높이가 일 장이 되는 무조의 나무가 떠다니면서 패기를 풍겼다.
처음에 모습을 드러낸 무조의 나무는 기운이 한풀 꺾였다.
"이, 이건……."
용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무조 나무 두 그루! 진남이 무조의 나무를 두 개 만들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팔천 년 전의 그 대인을 제외하고 천 년 전의 단천대제라고 해도 지금껏 못 했던 일이었다.
진남은 용제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용제의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신념을 거둬들였다.
'보아하니 무조의 나무 두 개로 충분하군. 나머지 네 개는 드러내지 말자.'
"원장님, 이제 심사에 통과된 겁니까?"
진남은 입을 열었다.
"통, 통과되었다!"
용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무도 규칙을 초월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진남이 팔천 년 전의 대인과 같은 재능을 가졌다는 뜻이다! 얼마 후 진남은 그 사람들의 눈에 띌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 요족과 같은 편에 서겠지! 천급 이품 무혼? 중요하지 않다!'
진남이 이런 역천 재능을 가졌는데 역천개명은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역천개명을 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은 이루지 못한 길을 갈 수 있었다.
"진남, 강압적으로 심사에 참여시킨 것을 사과한다.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말기를 바란다."
용제는 심호흡하더니 망설임 없이 공수하고 말했다.
사과하는 그의 태도가 진지했다.
진남이 실력으로 그를 감탄시켰으니 그도 앞서 약속한 대로 사과했다.
진남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는 강요받는 것을 싫어했다.
상대방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그의 본능이었다.
"이제부터 일이 있으면 이 영패로 나에게 연락하거라. 용제원은 모든 것을 동원해서 네 안전을 지킬 것이다."
용제는 영패를 꺼내 진남에게 주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진남은 영패를 받고도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다.
구리거울이 용제원과 요족의 요구가 그에게 나쁜 점은 없다고 말했지만, 진남은 그들의 목적을 알 수 없었기에 영패를 쓰지 않을 것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네가 가는 길을 무척 힘들다. 하지만 팔천 년 전에 성공한 사람이 있으니 너도 실망하지 말고 노력하기를 바란다."
용제는 지남을 그윽하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으마. 지금은 아직 시기가 아니다. 시기가 되면 요족에 대해 전부 말해주겠다."
그 말을 들은 진남은 이미 알고있다는 듯이 물었다.
"말씀하신 시기가 혹시 무제가 되는 시기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용제는 깜짝 놀랐다.
진남은 미소를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
무연각은 창람대륙의 비밀에 대해서 무제 경지가 되면 알려주겠다고 했기에 추측한 것이었다.
용제는 진남이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자 바로 자리를 떴다.
이번 심사는 매우 중요했다.
그는 얼른 가서 이 소식을 요신금지에 전달해야 했다.
"지금은 비밀이 너무 많구나. 무연각도 신비한 요족도, 그리고 구리거울도……. 후에 내가 무제가 되면 다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진남은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실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는 제정 오천 개를 꺼내 전부 삼켰다.
전신의 혼은 진급하지 못했지만, 그의 몸 안에 홍몽지기 두 개가 더 생겨났다.
"이제 신룡공간에 가서 도겁하는 제자가 있으면 나도 도겁을 시도해봐야겠다!"
진남은 눈을 빛내며 인족봉을 떠났다.
얼마 후, 진남은 신룡봉에 도착했다.
용제원의 모든 산 중에서 신룡봉이 가장 낮았다.
인족봉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꼭대기에는 옅은 용위가 감돌았다.
나무와 초목들도 용과 연관이 있었다.
일반 요족 제자들은 신룡봉에 오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반면, 진남은 산에 들어서자 온몸이 가뿐했는데, 마치 온천에 있는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산꼭대기에 거의 도착했을 때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진남, 여기는 어쩐 일이요? 설마 도겁을 하러 왔소?"
이 목소리는 오 장로였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진남은 얼른 인사를 했다.
"그렇게 인사하지 마시오. 자네도 이제는 봉주가 아니오? 우리는 이제 같은 신분이요."
오장로는 진남이 괜찮게 느껴졌다.
이는 진남이 태고자금전룡의 피로 목욕을 했기 때문이었다.
오 장로는 진남을 훑어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오. 자네 기운은 참 이상하오. 무조 경지인 것 같기도 하고 무조 경지가 아닌 것 같기도 하군. 보통의 반보 무조 경지와는 좀 다르오……."
그 말에 진남은 화들짝 놀랐다.
진남은 기운을 거둔다는 것을 깜박했다.
무조의 나무 여섯 개를 키운 일은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되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중주뿐만 아니라 반신제국 전체에 이름을 날릴 것이다.
그러면 무신들도 그에게 관심을 가질지도 몰랐다.
진남은 티 나지 않게 기운을 거둬들이며 웃었다.
"오 장로, 제가 수련한 공법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아. 오 장로 저는 곧 무조 경지를 돌파합니다. 혹시 미리 신룡공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직 무조 경지를 돌파하지 못했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진급하는 걸 구경하러 온 거로구먼."
오 장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용제원에서 강자들은 도겁하기 전에 공간에 와서 다른 사람들이 도겁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래야 다음에 자신이 도겁할 때 충분한 준비를 하고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자네는 인족봉 봉주이니 들어갈 수 있소. 그러나 하루밖에 머물 수 없소. 그리고 신룡공간의 보라색 구역은 들어가면 안 되오. "
오 장로는 금세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 장로는 손으로 법인을 만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네 개의 거룡 그림자가 나타나서 포효했다.
그들은 큰 입을 쩍 벌리고 허공을 힘껏 물었다.
용들이 이빨로 허공을 물고 머리를 젖히니 허공이 찢어졌다.
그리고 찢어진 곳에 대문이 나타났다.
"고맙습니다, 장로님!"
진남은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신룡공간에 들어서 주변을 살피기 전에 식해에 있던 신비한 금인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눈부신 금빛이 계속 파르르 떨었다.
마치 좋아하는 물건을 만나서 빨리 날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