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배신한 게 아니다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안색이 변했다.
화간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았지만, 태도로 보아 수단을 펼쳐 진남을 상대하려는 것 같았다.
진남도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는 절대 제정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화간 때문인지 소문을 듣고 온 요족 제자들은 모두 멀리에 서서 다가오지 않았다.
교역대전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이때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방대한 기세가 교역대전에 강림했다.
요조 정상의 기세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원기가 왕성한 노인이 걸어왔다.
노인의 두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요족 제자들은 그를 보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전공 장로다! 전공 장로가 왔다! 소문에 전공 장로는 공정하고 엄격하고 배신하는 걸 제일 싫어한대.
진남이 인족봉의 모든 제술을 꺼내 팔려고 하니 인족봉을 배신한 거나 마찬가지지. 전공 장로는 진남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화간은 수단이 좋구나. 남의 손을 빌어 진남을 처리하려 하다니!"
"……."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모두 심신이 떨렸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을 파악했다.
측은한 눈길이 진남을 바라봤다.
그들은 진남이 인족봉 제술을 파는 것이 이해되었다.
인족봉은 이미 텅 비어 진남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전공 장로가 알게 되었으니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장로를 뵙습니다!"
그를 본 진남은 공수하고 인사했다.
용제원에서 장로들은 지위가 높고 권력이 막강했다.
진전 제자만이 그들과 겨룰 수 있었다.
진남은 내문 제자이니 당연히 예의를 지켜야 했다.
"장로를 뵙는다고? 허허, 너 우리 용제원을 신경 쓰긴 하느냐?"
전공 장로는 걸음을 멈추고 진남을 훑어보더니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네가 지금 파는 물건들은 너희 인족봉의 모든 제술이냐?"
"네."
진남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허, 당당하구나! 나는 너희 인간족에 하나도 좋은 사람이 없다는 걸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전공 장로는 두 눈에 불을 뿜으며 사납게 소리쳤다.
"인족봉은 지금은 몰락했지만, 여전히 용제원의 일부분이다. 한데, 너는 인족봉의 제자로서 모든 제술을 내다 팔고 있구나. 너의 행동은 인족봉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말이 우레처럼 교역대전에 울려 퍼졌다.
대전도 그의 천둥 같은 외침에 크게 떨렸다.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모두 아무 말도 못 했다.
화간의 입가엔 냉소가 점점 짙어졌다.
'제방 순위가 고작 이천백일 위인 용제원의 인간족 따위가 감히 내 말을 거절하다니? 이게 바로 거절한 대가다!'
진남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장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인족봉에서 저는 많은 걸 얻었습니다. 하니, 인족봉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오기 전에 이미 여든여섯 개의 제술을 전부 배웠습니다. 그리고 인족봉에는 제자가 저밖에 없습니다. 유일한 제자인 제가 모두 다 배웠으니 이것들을 처분하는 것은 문제가……."
"다 배웠다고?"
전공 장로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제방심사에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나흘밖에 안 된다. 네가 입문한 때로부터 계산해도 보름밖에 안 된다. 그런데 네가 보름 사이에 여든여섯 개 제술을 다 배웠다는 거냐?"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름에 여든여섯 개 제술을 배웠다고? 농담도 정도가 있지!'
'제방 순위 십삼 위인 화지진도 불가능한 일이다!'
전공 장로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 진작에 원장에게 인간족과 인간은 좋은 놈이 없다고 말했었다. 단천대제도 전에 배신했었지.
천 년 후에 받아들인 네놈도 배신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인족봉을 배신하는 것뿐이지만, 나중에는 용제원까지 배신할 것이 틀림없다.
인간은 모두 양심이 없다. 다들 탐욕스럽고 무정하다. 됐다. 이만 썩 꺼지거라. 그리고 모든 제정은 남겨두거라. 아니면……."
"그만하십시오!"
전공 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통이 울려 퍼졌다.
진남의 목소리가 대전에 메아리쳤다.
화간을 포함한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남은 진짜 담이 크구나. 감히 전공 장로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전공 장로는 순간 얼떨떨했다.
그는 진남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선배님, 저는 선배님의 뜻이 틀리지 않다는 건 압니다. 그러나 선배님 잊지 마십시오.
첫째, 저는 인족봉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모든 인간족이 선배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양심 없는 건 아닙니다. 양심 없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진남은 싸늘한 눈길로 말했다.
"셋째, 선배님은 이제부턴 일을 제대로 알아보시기 전에는 함부로 얘기하지 마십시오."
진남은 진짜 화가 났다.
진남은 전공 장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놓고 인간족을 모두 나쁜 사람 취급하는데 그가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은 정이 깊고, 감정과 의리를 중히 여기고, 세상을 걱정하고 기개가 꿋꿋하다.
더구나 그 자신도 절대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니었다.
"제대로 보십시오!"
진남은 낮게 소리치더니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빛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강한 기운을 뿜었다.
"이, 이건……?"
전공 장로는 숨이 멎었다.
주위의 제자들도 심장이 세게 떨렸다.
연거푸 뿜어져 나오는 빛은 제술들이었다.
어느 빛에선 악기가 하늘을 찌르고, 어느 빛에선 검광이 번쩍였다.
빛이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빛은 여든여섯 개의 빛줄기가 모두 뿜어져 나오고 나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대전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전공 장로나 화간이나 다른 제자들이나 모두 경악했다.
'진남은 용제원에 온 지 보름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 보름 사이에 제술들을 전부 습득했다고? 도대체 무예 천부가 얼마나 대단한 거야…….'
만약 진남이 사흘 만에 제술을 다 습득했다는 걸 알았다면 그들은 더욱 놀랐을 것이었다.
아마 용제원 전체가 시끄러워질 것이었다.
"아직도 우리 인간족이 모두 탐욕스럽고 무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 양심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남은 전공 장로를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그게……."
전공 장로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인족봉의 제술을 전부 습득했다면 내다 파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인족봉에는 진남 혼자밖에 없었기에, 나중에 인족봉에 제자를 들인다고 해도 진남이 제술을 전수하면 되었다.
"어……. 진남 도우, 내가 오해했다."
전공 장로는 안색이 변하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좀 전에는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헛소리했다. 진남 도우 부디 마음에 두지 말고 나를 용서하거라."
그가 잘못했으니 아무리 인간족에게 편견이 있고 지위가 높고 권력이 세다 해도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좀 전의 오해는 상대를 모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진남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싸늘했다.
그 누구라도 오해를 받으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전공 장로는 진남의 태도에 뭐라 더 말할 수도 없었다.
"화간, 나를 따라 궁전으로 가자!"
그가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길로 화간을 보며 말했다.
'저놈이 소식을 전한 거잖아.'
전공 장로는 고지식하지만 미련하지 않았다.
화간이 자신을 이용하려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네……."
화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진남을 힐끗 보더니, 순간 표정이 싸늘해졌다.
'내가 놈을 만만하게 봤구나.'
이내 전공 장로가 화간을 데리고 떠나고 나서야 요족 제자들은 모두 정신이 들었다.
"대단하구나. 보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제술을 습득하다니!"
"진남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겠어."
"……."
감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족들은 강자에게 탄복했다.
그들은 진남이 드러낸 무예 천부를 보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남은 스무 개의 제술도 쉽게 팔렸다.
임효의 제술 여섯 개 외에 진남은 모두 팔십 개의 제술을 팔았다.
족히 만 사백 개의 제정을 얻었다.
수수료를 빼면 구천팔백팔십 개의 제정이 남았다.
진남은 장사를 끝내고 교역대전을 떠나 인족봉으로 돌아왔다.
그는 많은 양의 제정을 보며 기뻐했다.
* * *
인족봉, 수련대전.
육령용맥과 얘기를 나눈 후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제정을 모두 꺼냈다.
"복용하자!"
진남은 중얼거리며 제정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었다.
천 개!
이천 개!
삼천 개!
오천 개 복용했을 때 진남의 등 뒤의 전신의 혼이 굉음을 냈다.
두 번째의 붉은색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전신의 혼의 위압이 더 강해졌다.
그의 체내에도 네 번째 홍몽지기가 생겼다.
"돌파했다!"
진남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천급 이품 무혼에 도달하고 자질은 중하급 정도 되었다.
삼품으로 진급하면 중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전부 삼키자!"
진남은 남은 제정을 한꺼번에 삼켰다.
그의 체내의 홍몽지기가 다섯 개로 늘어났다.
"전신의 혼을 천급 삼품으로 진급시키려면 첫 번째보다 제정이 적어도 배는 더 필요할 거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 인족봉의 제술을 팔 수 있었지만, 다음번에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해. 우선 전신의 혼을 높이는 일은 여기까지 하자."
진남은 빠르게 생각을 굴렸다.
"지금은 경지를 무조로 진급시키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
그의 눈에 빛이 스쳤다.
단천대제가 남긴 글은 진남의 뼛속 깊은 곳의 의지를 깨웠다.
때문에, 이번에 그는 규칙을 깨고 전혀 다른 새로운 무조가 될 수 있을지 한번 도전해 보려 했다.
이때.
수련대전의 첫 번째 층의 두 비경 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천기견들과 천기서가 안에서 뛰어나왔다.
그동안의 수련을 통해 그들의 몸에는 변화가 생겨 털이 금색으로 변했다.
다만 경지는 아직 없었다.
"진남!"
대황이 눈을 반짝거리며 소리쳤다.
"보고 싶었다. 이렇게 오래 보지 못하여……."
그것은 진남의 몸에 올라가려고 훌쩍 뛰었다.
진남은 한 방에 대황을 차버렸다.
"속상하다! 내 포옹을 받아주지 않다니!"
대황은 두 눈에 눈물이 글썽하여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과 헛소리할 시간 없다. 그동안 잘했다. 홍몽지기를 하나 줄게. 둘이 나누거라."
진남은 손가락을 튕겨 홍몽지기를 한 개 뿜었다.
"와! 진남, 사랑한다!"
대황과 대흑은 감동되어 흐느꼈다.
그들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드디어 홍몽지기를 가졌다!'
"이건 네 거다."
진남은 천기서를 보며 웃더니 홍몽지기를 하나 튕겼다.
"어? 아니지. 우리는 둘인데 하나밖에 주지 않고 저 자식은 혼자인데 한 개를 주느냐?"
좀 전까지도 천당에 올라간 것처럼 행복하던 천기견들은 순식간에 기분이 지옥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우리 천기견들을 무시하는 거야?'
"한 개 준 것도 고맙게 생각하거라."
진남은 천기견들을 힐끗 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홍몽지기가 허공을 넘어 산봉우리 안의 육령용맥의 몸에 떨어졌다.
천기견들이 눈을 흘겼다.
'또 한 개잖아!'
"진남, 이건 홍몽지기냐?"
육령용맥은 깜짝 놀라 용안(龍眼)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진남은 어디서 이렇게 진귀한 물건을 얻었지?'
"선배님, 그동안 보살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홍몽지기는 제가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겁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말했다.
중주만상옥간을 통해 그는 중주에서 홍몽지기가 매우 소중하고 하나로 제정 천여 개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진남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소중해도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거면 그는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