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화 단 백삼십 개
"좋다, 시끌벅적하구나."
진남은 훑어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의 눈길이 가운데서 멈췄다.
교역대전에서 노점을 차리려면 우선 등록부터 해야 했다.
그 시각, 교역대전 등록처.
한 청년이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청년은 적령이었다. 오늘 교역대전 등록을 책임진 제자였다.
"하루가 지나는데 아무도 가치가 삼천 개 제정 이상이 되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없구나."
적령이 투덜거렸다.
교역대전에는 매일 정해진 거래액이 있었다.
거래액을 달성하면 그는 상을 받을 수 있었다.
거래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오늘의 거래액을 달성하려면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기분이 매우 우울했다.
"도우, 교역대전 등록을 하고자 합니다."
이때,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진남?"
고개를 든 적령은 어리둥절했다.
용제원에서 진남은 이제 명성이 자자했다.
거의 모든 제자가 진남을 알고 있었다.
적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옥간을 집어 자네가 팔려는 물건에 주입하고 신분을 밝히시오. 나중에 얼마를 팔든 교역대전에서는 백 분의 오의 비용을 받아야 한다는……."
적령은 귀찮은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의 태도는 매우 불친절했다.
진남은 인간족이었다.
인간족인 진남이 혼자서 용제원에서 얼마나 좋은 물건을 얻었을까?
적령은 진남이 팔려는 물건은 고작해야 몇백 개 제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보를 주입하고 노점을 찾으러 떠났다.
"태도가 건방지군!"
적령은 고개를 저으며 옥간을 들어 힐끗 봤다.
옥간을 보던 그는 깜짝 놀라 눈을 찌푸렸다.
진남은 교역대전을 돌아다녔다.
"뭐지?"
"엥? 진남이잖아?"
"저자가 왜 왔지?"
"물건을 사러 왔나 본데? 진남은 제방심사에서 오천 개 제정을 얻었잖아."
"……."
주위의 적지 않은 요족 무인들이 진남을 발견하고 수군거렸다.
유일한 인간족인 진남은 요족들의 주의를 끌기 쉬웠다.
"여기로 하자!"
진남은 한 점포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여든여섯 권의 제술을 하나하나 꺼냈다.
주위의 요족 무인들은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진남은 팔러 온 건가? 모두 고적들인데…… 설마 저게 모두 제술인가?'
"여기 있는 제술은 중 가장 싼 건 한 권에 백육십 개 제정이다. 선배님의 말씀대로 한 권에 백오십 개 제정으로 하면 아마 전부 팔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촉박하니 백서른 개에 팔자."
진남은 중얼거리며 결정을 내렸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인족봉의 여든여섯 권의 제술을 전부 팔겠소! 한 권에 백서른 개 제정이요. 흥정은 사양하오. 딱 오늘 하루만 이 가격에 팔겠소!"
그의 말은 마치 천둥이 친 것만 같았다.
모든 요족 무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눈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백서른 개 제정에 제술 한 권이라고?'
'여든여섯 권이나 된다고?'
한 번 거래된 적이 있는 제술은 다시는 팔지 못한다.
두 번째로 팔다 발견되면 무인들의 연합공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무인들 대부분은 적이 제술에 든 오묘함을 알게 될까 봐 강력한 제술은 팔지 않았다.
때문에, 보통 한 번에 다섯 권의 제술을 파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제술은 아무리 싸도 제정 백육십 개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진남은 파는 양도 많을 뿐만 아니라 값도 무척 쌌다.
교역대전은 잠시 잠잠하더니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어떻게 된 거야? 저자는 어디서 이렇게 많은 제술을 얻었지? 그리고 왜 이렇게 싸게 파는 거지?"
"아마 인족봉에서 얻었을 거다. 분명 인족봉에 숨겨진 제술이 있었을 거다. 아니면 진남은 이렇게 많은 제술을 얻을 방법이 없다."
"맞아! 그게 틀림없다!"
"……."
요족 무인들은 모두 질투하는 눈길로 진남을 바라봤다.
'여든여섯 권의 제술이다. 설사 한 권에 백서른 개의 제정으로 판다 하도 만개는 넘는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진남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살 사람 없소? 살 사람이 없다면 나는 그냥 가겠소."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는 시늉을 했다.
"가지 말거라. 내가 사겠다!"
"인족봉의 제술이 어떤 건지 봐야겠다. 나도 한 권 사겠다!"
"내가 먼저 왔다, 내가 먼저 고르겠다!"
"……."
교역대전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요족 무인들은 빠르게 진남을 둘러싸고 제술을 고르기 시작했다.
진남이 제시한 가격은 파격적이었다.
일 주 향의 시간도 안 돼 진남은 이미 제술을 서른 권 팔아 삼천 개의 제정을 얻었다.
동시에, 그가 교역대전에서 제술을 판다는 소문이 용제원 전체에 퍼졌다.
점점 많은 요족들이 달려왔다.
교역대전에서 제술을 팔던 요족 제자들은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진남이 제술을 파는 가격이 너무 쌌다.
그들도 진남처럼 싸게 팔면 손실이 너무 컸다.
하지만 답답한 건 진남이 내문 제자라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눈을 흘기며 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나의 본명정혈이 있다. 이걸로 제술 여덟 권을 바꾸는 건 어떠냐?"
이때, 검은색 복장을 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여덟 권의 고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옥병이 있었다.
옥병 안에는 끝없는 힘을 뿜는 시뻘건 혈액이 들어있었다.
"임효(臨曉)!"
"임효다!"
"본명정혈 한 방울을 갖고 오다니!"
"……."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임효는 용제원의 암흑기린일맥의 천재 제자였다.
그는 혈통이 천급 사품 무혼과 대등했다.
그는 제방에서 순위가 사백삼십칠 위이고 용제원에서도 꽤 유명했다.
'무조 팔 단계의 경지고 본명정혈의 혈통이면 받아도 되겠다. 후에 이것의 도움으로 자아무성 경지에 돌파할지도 모르지.'
진남은 임효와 그가 손에 쥔 옥병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손을 저으며 말했다.
"흥정은 안 되는 게 원칙이지만, 나쁘진 않구나. 단, 여덟 권은 너무 많다. 여섯 권으로 하자."
"좋다! 고맙다!"
임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가진 본명정혈은 가치가 높지만, 한 방울이라면 기껏해야 제술 다섯 권 정도 바꿀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옥병을 진남에게 건네주고 제술 여섯 권을 골랐다.
그리곤 서둘러 떠나갔다.
이 광경을 본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눈이 반짝거렸다.
"진남, 정혈을 줄 테니 제술을 두 권 줘!"
"나도 줄게. 나는 한 권이면 된다!"
"……."
진남은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모든 제안을 일일이 거절했다.
그가 임효의 정혈을 받은 건 쓸모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요족 제자들은 반보요조나 무성 경지라 혈통도 높지 않았다.
그것들의 정혈을 가진다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장내가 더욱 시끄러워졌다.
한참 후 진남은 육십 권을 팔았다.
임효가 바꾼 것까지 하면 예순여섯 권이었다.
아직 그에겐 스무 권이 남아있었다.
이때, 거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좀 비키거라. 나는 진남과 할 말이 있다!"
말소리와 함께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안색이 시퍼런 청년이 천천히 걸어왔다.
청년은 위압을 풍기고 가슴에 네 마리의 용이 휘감은 부문을 감고 있었다.
부문에는 삼백이십일이라는 붉은색 숫자가 쓰여 있었다.
이는 제방 순위가 삼백이십일 위라는 뜻이었다.
삼백이십일 위라면 방금 전의 임효보다 훨씬 강했다.
"화간(花間)이다!"
"진남은 재수 없구나!"
"이렇게 많은 제술을 팔았으니 찍히는 것도 당연하지."
주위의 요족 무인들은 안색이 변해 소곤거리며 뒤로 물러서 화간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들은 화간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진남, 조심하거라. 화간은 화지진의 동생이다!"
이때, 적령이 진남에게 신념을 전했다.
적령은 진남을 곱지 않게 봤다.
그러나 진남이 가져다줄 이익을 생각해서 진남에게 귀띔한 것이었다.
"화지진?"
진남의 눈에 묘한 빛이 스쳤다.
중주만상옥간에 쓰인 바로는 용제원에 천재가 몇 명 있는데, 화지진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제방에서 순위가 십삼 위였다.
그의 본체는 청광독유수(靑光獨幽獸)이고, 그의 아버지 화열(花裂)은 용제원에서 삼대 요제 다음 순위의 구전장로였다.
다시 말해, 화지진은 천부가 강할 뿐만 아니라 배경도 대단했다.
중주 전역에서도 거물이었다.
"무슨 일이냐?"
진남은 화간을 보며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진남, 긴말은 하지 않겠다. 너도 화지진이 나의 큰 형님인 건 알 거다."
화간은 두 눈으로 진남을 훑어보며 거절할 수 없는 어투로 말했다.
"너의 이 여든여섯 권의 제술은 공짜로 얻은 거다. 그러니 제정 삼천 개를 우리에게 바쳐라. 그리한다면 앞으로 용제원에서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못할 거다."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이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감히 진남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진남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건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제술은 가치가 엄청나고 또 공짜로 얻은 거이 분명했기에 당연히 욕심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제정 삼천 개?"
진남은 눈을 찌푸렸다.
그의 눈에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싸늘한 빛이 스쳤다.
"왜? 싫으냐?"
화간은 안색이 어두워져 목소리를 깔고 소리쳤다.
"진남, 너 우리 형님 화지진의 신분을 까먹지 말거라. 너는 용제원에서 인간족일 뿐이다. 너 감히 우리 형님과 원수가 되고 싶으냐? 너 상황을 똑똑히……."
"주지 않겠다."
화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남은 손을 저으며 말을 잘랐다.
'내 제정을 달라고? 어림없다! 설령 용제원 원장이 와도 안 된다!'
"주지 않겠다고?"
화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오기 전에 진남이 이런 반응을 내보일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긴장되는 분위기에 흥미진진한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본 적령은 고개를 젓더니 물러갔다.
화지진도 연관되게 되었으니 그는 절대 진남을 돕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
화간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진남을 노려보며 물었다.
"주겠느냐? 안 주겠느냐?"
"안 주겠다."
진남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대답했다.
"……흥! 좋다!"
화간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장사가 번창하기를 바란다."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 떠나갔다.
진남을 비롯한 주위의 요족 제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화간이 분노하여 바로 손을 쓸 줄 알았다.
화간은 제방 순위 삼백이십일 위였다.
화지진의 동생인 것을 제외하고서도, 그도 거물이었다.
하니, 어찌 교역대전에서 방금 입문한 새로운 제자나 이례적으로 입문한 제자에게 손을 쓸까?
화간은 몇 걸음 걷더니 이내 영패를 꺼내 신념을 주입했다.
영패가 반짝거리더니 신념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형님입니다. 우리는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남의 손을 통해 진남을 혼내줄 수 있겠습니다."
화간의 눈에 잔혹한 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빠르게 다른 영패를 꺼내 신념을 전했다.
신념을 전한 화간은 돌아서서 팔짱을 끼고 싸늘한 얼굴로 진남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