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화 앞당겨진 제방심사
현월이 다가가자 육령용맥의 용머리들이 눈을 떴다.
용머리들이 두 눈이 번개처럼 날카롭게 위압을 드러냈다.
"누구냐? 요족?"
여섯 개의 용머리는 아래를 굽어보며 방대한 위압을 풍겼다.
"하하,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소일천랑일족의 소주 현월이라고 합니다."
현월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놀라지도 않으면 공수하고 말했다.
"저도 인족봉의 제자입니다. 진남과 함께 이곳에서 수련하고 경지를 높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방심사 때 좋은 성적을 거둬 인간족을 위해 명예를 쟁취하겠습니다!"
그는 늠름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어디서 기어들어 온 잡털 늑대냐, 썩 꺼지거라!"
여섯 개의 용머리는 차가운 시선으로 보더니 영기를 끓어 모아 커다란 손바닥을 만들어 현월을 힘껏 쳐냈다.
"억! 어, 어떻게 이럴 수가……."
현월의 표정은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왜 진남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거야?'
그의 질문에 대답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엄청난 힘이 실린 손바닥에 맞아 튕겨 나갔다.
그 뒤로 현월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얌전히 마원동천에 들어가 계속 수련했다.
한편, 진남은 육령용맥의 영기를 흡입하면서 계속 수련을 거듭했다.
진남의 머릿속 의지는 마치 쇠처럼 단단해졌다.
그는 영기를 빨아들이는 한편 천지 영기의 육대 의지도 계속 몸속에 있는 성자의 힘으로 흡수했다.
수련을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지났다.
용제원은 인간족 제자를 받아들인 일로 들끓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다른 이성 세력과 삼성 세력에 뽑힌 신입 제자들도 제방심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여드레가 지났다.
쿵-!
진남의 몸속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멈추어 있던 성자의 힘은 마치 어떤 속박을 벗어난 것 같았다.
"곧 돌파할 수도 있겠어."
여섯 개의 용머리는 눈을 뜨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더니 여섯 개의 빛을 진남의 몸속에 불어넣었다.
여섯 개의 빛을 불어넣은 후 육령용맥 기운은 확연히 어두워졌다.
진남은 여섯 개의 방대하고 남다른 영기가 몸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진남은 기쁜 기색으로 여섯 개의 영기를 성자의 힘에 몰아넣었다.
웅-!
진동 소리는 마치 커다란 종소리 같았다.
진남의 몸 안에 있던 성자의 힘은 반 개가 늘었다.
비록 반 개였지만 진남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진남은 기운이 달라졌다.
그는 이제 반보 전신무성이 되었다.
전신무성은 그의 자아였다.
역천무성을 넘은 뒤에는 각자의 자아가 가진 독특한 무성이 되었다.
진남은 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 더 가면 진정한 자아무성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반보 자아무성이야. 하지만 아쉽구나. 육령용맥이 강하긴 하지만 자아무성으로 진급하려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진남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내뱉었다.
그는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도 꽤 괜찮은 성적이다!"
육령용맥은 진남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녀석……."
진남의 경지는 크게 강해지지 않았지만, 그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선배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진남이 공수했다.
육령용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반보 자아무성도 돌파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남은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직 제방심사까지 시간이 있으니 계속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이때, 밖에선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 * *
중주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놀라운 소식이 빠른 속도로 여러 세력에게 전해졌다.
거물들은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제방심사를 앞당긴다고?'
"이상하다, 정말 이상해! 몇만 년 동안 제방심사를 앞당긴 적이 없는데, 왜 앞당긴 거지?"
"제방심사일은 항상 팔월 십오일이라 증도일(證道日)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와서 앞당기는 건 정말 이상하구나!"
"허참, 무슨 일인지 도통 모르겠구나. 일단 얼른 제자들에게 도장으로 향하라고 하거라."
"……."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소란도 잠시 지나니 잠잠해졌다.
떠들어 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거물들은 곧 있을 제방심사에 신경을 전부 쏟았다.
중주의 제방과 신방(神榜)은 전설적인 신물이었다.
* * *
같은 시각, 용제원의 인족봉.
'모든 제자들은 명령을 듣거라. 일 주 향이 끝나기 전에 도장에 모이거라. 제방심사가 앞당겨져서 삼 일 후 열릴 예정이다! 절대 늦지 말거라. 늦으면 자격을 취소한다!'
진남은 내문제자 영패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듣자 얼떨떨했다.
그는 제방심사가 보름이나 앞당길 줄은 몰랐다.
"이상하다, 이상해. 제방심사가 왜 앞당겨졌지?"
멀리 있던 현월은 중얼거리며 날아오다가 상 봉우리에 있는 진남을 보자 안색이 변했다.
소일천랑일족은 후각이 예민했다.
그의 후각은 보통이 아니었다.
주변의 냄새 변화와 허공의 기운으로 상대방의 경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진남의 경지가 고작 열흘 만에 크게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흥! 육령용맥의 효과지 뭐!"
현월은 콧방귀를 끼더니 어두워진 얼굴로 심통을 부렸다.
"뭐 하느냐? 제방심사가 앞당겨졌다. 빨리 도장으로 가야 한다! 서둘러라! 일 주 향이 다 탈 때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내년을 기다려야 해!"
"그렇소?"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눈에 기대가 떠올랐다.
'제방심사…….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현월은 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진남의 표정을 보자 그의 생각을 눈치채고 냉소를 지었다.
"제방심사는 여러 세력의 신입 제자들이 전부 모이는 곳이다. 적어도 몇천 명은 되고 천급 오품 무혼도 최소 두세 명은 될 거다."
"몇천 명이 모인다는 거요?"
진남은 깜짝 놀랐다.
제방심사를 참가하는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천급 일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심사의 규모가 그렇게나 크다니.
"하하, 놀라지 마라. 유명하다고 해도 심사일 뿐이다. 제방에 오른 천재들은 포함하지도 않은 수준이지."
진남은 위축되기는커녕 눈을 가늘게 뜨고 빛을 뿜었다.
"응? 이놈이……?"
진남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기대감을 품자 현월은 심사가 비틀렸다.
"갑시다!"
진남은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족봉 위에 날아올랐다.
천기견들과 천기서에게 전음한 그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남, 제방심사에 가는 거지? 나도 데려가 줄래?"
언제 왔는지 목목이 대전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진남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흠흠! 목목 도우? 가, 가자. 같이 가. 내가 데리고 가 줄게."
현월은 목목의 모습에 헛기침하며 말했다.
'참 생기발랄하게 생겼네. 우리 종족의 여인들보다 훨씬 곱구나.'
"자네가 목목에게 제방심사를 시작한다고 알려줬소?"
진남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내가 알려줬다, 왜. 제방심사를 시작한다고 알려준 게 뭐가 어때서?"
현월은 괜히 마음이 켕겼다.
그는 목목의 모습에 홀딱 넘어가서 목목과 사이좋게 지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마음이 켕길만한 게 없었다.
진남은 소리 없이 목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느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남은 공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목목은 무예를 좋아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오래 살 수 없다고 했다.
"같이 가자꾸나."
진남은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는 목목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별말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번 제방심사는 어쩌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진남 일행은 허공을 가르고 날아 수많은 요수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장에 도착했다.
도장에는 심사에 참가했던 요수들이 전부 나와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 백흥앙은 용의 위엄을 풍기며 대단한 기세로 서 있었다.
"진남이 왔다!"
"현월도 왔다!"
"저 둘이 나란히 나타나다니. 설마 안 싸운 건가?"
도장은 이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요수들의 우두머리인 백흥앙은 그들이 온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진남을 보자 그의 두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내력이 신비한 저 인간족은 제방심사에서 몇 위나 할까?'
"다들 조용하거라!"
이때,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나타났다.
임노였다.
임노는 도장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다.
"이번 제방심사는 내가 진행한다. 심사 지점은 유정도장이다. 이제부터 잠깐의 시간을 주겠으니 자신을 잘 가다듬길 바란다!"
요수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내 심신을 거두고 스스로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럼 나를 따라오너라!"
임노는 허공을 찢고 뛰어들었다.
진남이 먼저 반응하고 따라 들어갔다.
용제원의 신입 제자들도 전부 따라갔다.
* * *
"심사를 앞당겼구나."
묘령의 여인은 청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이상하다. 이번 심사에 엄청 강한 천재라도 나타난 건가?"
"아닐 거다. 제방심사에서 진남 외에 아무리 강한 천재들이라고 해도 서열 오 위 안에 든 자들보다 강하지 않을 거다."
곱사등 사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켜보시오!"
중년 사내가 보라색 빛을 풍기며 말했다.
"진남이 진짜 우리가 찾던 사람이면 제방에서 그의 천부를 알아볼 수 있을 거요. 그렇다면 서열 삼십 위 안에 드는 것도 문제없겠지."
"서열 삼십 위 안에 든다니요. 원장님, 기대가 과합니다."
묘령의 여인은 화사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도 기대로 가득 찼다.
'진남! 이들을 실망시키지 말거라! 반드시 서열 십 위 안에 들어서 이름을 날리고 천하를 놀라게 하거라!'
* * *
"다들 잘 따라오너라!"
임노는 날카롭게 외쳤다.
그는 대붕으로 변해서 허공을 가르고 바람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가는 길에도 그는 제자들을 수련시켰다.
현월은 가장 먼저 흥분했다.
그는 백흥앙을 도발적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곧 온몸에서 눈부신 은빛을 뿜으며 높이가 다섯 장이나 되고 흉악한 머리와 은색을 띤 털을 지닌 본체로 변했다.
그는 네 발로 땅을 차고 엄청난 강기를 뿜으며 빠른 속도로 임노 뒤를 바짝 따라갔다.
"흥!"
백흥앙은 차가운 표정으로 용의 위엄을 드러냈다.
그의 육체는 순식간에 이십 장이나 되는 용으로 변했다.
그의 온몸은 시뻘건 비늘이 가득했는데, 시뻘건 비늘이 마치 태양처럼 허공을 환하게 비추었다.
두 마리 대요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폭풍을 일으켰다.
덕분에 뒤따르던 요수들은 고생을 했다.
대요들의 위엄에 그들은 속도가 느려졌다.
"좋다, 아주 위풍당당하구나!"
진남은 그 모습을 보자 눈을 반짝거렸다.
홍룡이나 소일천랑을 타고 몇천 명의 천재들의 시선을 받으며 입장한다며 얼마나 패기 넘치는 일인가?
생각만 해도 진남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선 심사부터 참가하고 탈것을 고민하자!"
진남은 고개를 흔들더니 차분한 시선으로 성자의 힘과 전신의 힘을 폭발시켰다.
쿵-!
진남의 기운은 마치 맹수가 깨어난 것 같았다.
대요들은 깜짝 놀라서 올려다보았다.
진남은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대요들이 반응하기 전에 진남은 홍룡과 소일천랑을 뒤에 따돌리고 임노 뒤에 바짝 붙었다.
"엄청난 속도구나!"
임노와 백흥앙, 현월 그리고 다른 대요들은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평소 진남은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진남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백흥앙과 현월 등은 서둘러 진남을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