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그는……
진남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공주를 진씨 가문으로 데려오라고? 공주가 우리 진씨 가문을 풍비박산 내지 않을까?'
"진남아……."
진천은 손을 뻗어 진남의 어깨를 잡더니 그윽한 눈길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나의 아들 덕분에 이런 날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척이나 기쁘구나.
너는 젊으니 가능성이 무한하다. 부디 이 아비 때문에 발목 잡히지 말거라. 명심하거라, 최선을 다해 보거라. 이 아비에게 네가 세상을 뒤흔드는 걸 보여주거라."
그의 말에 진남은 가슴이 떨렸다.
이번에 중주에 가면 위험은 더 말할 것 없었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때문에, 진남은 무척 미안했다.
그는 아들로서 진천에게 효도를 다 하지 못하고 노년의 즐거움을 누리게 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거라! 절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진천은 엄숙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진남은 몸을 떨었다.
코끝이 찡했다.
그는 쿵 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
"아버지! 절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좋다! 허허허!"
진천은 박수치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는 진남을 도와줄 수 없지만, 자신이 진남의 걸림돌이 되는 건 싫었다.
"아버지, 그럼 건강하십시오!"
진남은 진천을 뚫어지게 보더니 아쉬움을 참으며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날아갔다.
그가 지금 해야 하는 건 중주에서 자신의 전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에 떠날 때 진남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그는 현령종 앞에 탑을 하나 남겼다.
탑에 금제를 설치하였다.
현령종의 제자들은 심사를 통과하면 탑 안에서 강한 고술 혹은 제술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현령종, 안녕."
진남은 허공에 서서 커다란 현령종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사라졌다.
* * *
현령종을 떠난 후 진남은 바로 중주로 가지 않고 용호산맥의 동굴로 왔다.
그가 안에 들어가자 화가 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 나를 풀어줘! 난 네놈과 결투하겠다!"
진남은 머리가 아팠다.
소리친 사람은 목목이었다.
며칠 전 하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목이 깨어났다.
진남이 아무리 설명해도 그녀는 진남을 믿으려 하지 않고 그가 자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진남은 어쩔 수 없이 목목을 여기 묶어두었다.
"자꾸 헛소리하면 나는 계속 너를 여기 묶어두겠다. 네가 평생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진남은 목목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그녀와 얘기하는 건 소용이 없었다.
목목은 두 눈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이 악마는 양심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어, 어쩌면 진짜 나를 죽일 수도 있어!'
"선배님을 뵈러 가자. 목목의 병도 고치고."
진남은 중얼거리며 몸을 날려 목목을 데리고 동굴을 나와 절벽 위로 올라왔다.
"진남, 왜 나를 안 죽여? 그냥 지금 죽이면 되잖아."
목목은 절벽에 서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남은 목목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공수하고 물었다,
"선배님, 선배님께서 여기 계신 걸 압니다. 만나주실 수 있으십니까?"
목목의 눈에 이상한 빛이 드러났다.
'나를 죽이지 않으려는 건가? 나를 살려 뭘 하려는 거야.
……근데 진남은 뭐 하려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데…….'
이때 허공에 파문이 일더니 신비한 동굴이 열렸다.
동굴 안에서 태고의 누각이 천천히 나타났다.
용호산맥은 엄청난 힘에 눌린 것처럼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목목은 눈을 찌푸리고 몸이 떨렸다.
'엄청난 누각이구나!'
그녀는 자신의 체내의 사악한 힘이 떨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무연각! 무역각이라니! 진남, 너 무연각과도 연관이 있느냐?"
진남 체내의 두 마리 개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것들은 무연각을 보고는 놀라서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진남이 어떻게 무연각과 연관 있지?'
진남의 왼쪽 눈에 빛이 스쳤다.
그는 누각을 꿰뚫어 보려 했다.
그러나 무연각의 기운은 별이 가득한 드넓은 하늘처럼 꿰뚫어 볼 수 없었다.
무연각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하하, 진남, 오랜만이다. 경지가 많이 높아지고 체내에 좋은 물건이 많구나."
무연각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응? 벌써 지보가 두 개나 있느냐? 너는 혹시 그 대인의 삼생겁이냐?"
무연각 다섯 번째 층.
정원 안의 신비한 청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진남을 만났을 때 진남의 체내에 구리거울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남이 대인의 삼생겁일 줄 몰랐다.
"삼생겁이요? 그게 뭡니까?"
진남은 어안이 벙벙하여 물었다.
"선배님 구리거울과 금인의 내력을 아십니까? 아,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남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능운무제, 태고자금전룡도 구리거울과 금인을 보고는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쓸모 있는 정보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하하,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말하면 운명에 영향 줄 수 있다. 그리고 너의 체내에 있는 대인을 화나게 할 수 있다."
무연각 안의 신비한 청년이 큰소리로 웃었다.
"좋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구리거울의 비밀은 나중에 스스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정색하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가 밖에서 무탈하게 수련할 수 있던 건 모두 선배님 덕분입니다. 하역을 지키며 우리 가문을 보호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무연각이 없었다면 그는 가족 걱정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었다.
"진남,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나는 하역에서 왔으니 하역을 지키는 건 당연한 거다. 동주도 마찬가지다. 천기할멈은 동주에서 태어났기에 동주를 지킬 거다."
무연각이 담담하게 말했다.
"진남아, 지금 창람대륙에서 중주의 기세가 가장 대단하다. 무제 경지의 강자가 구름처럼 많고 무신 강자도 있다.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동주, 서주 등을 멸망시킬 수 있다."
그의 말에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바로 깨달았다.
무연각의 말대로 중주는 너무나도 강했다.
거기에 비하면 동주는 너무 약했다.
만약 누군가 지키지 않거나 다른 세력이 중주를 제약하지 않았다면 다른 네 개 주와 하역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줄곧 저를 도와주셨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진남이 물었다.
그는 오랫동안 궁금했다.
무연각처럼 대단한 존재들은 절대 아무나 도와주지 않았다.
무연각은 분명 바라는 바가 있을 것이었다.
"내가 너를 도와주는 건 너의 잠재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너는 내가 이루지 못한 걸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연각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 일은 창람대륙의 비밀과 관계가 있다. 너는 아직 너무 약하다. 적어도 제위에 도달해야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창람대륙의 비밀과 관계가 있다고요? 그걸 알려면 제위에 도달해야 한다고요?"
진남은 눈살을 찌푸렸다.
목목과 두 마리의 천기견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깜짝 놀라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어떤 비밀이 있기에 무제에 도달해야 알 수 있다는 거지?'
"선배님, 나중에 제가 제위에 오르면 다시 선배님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제가 능력이 된다면 선배님께서 줄곧 보살펴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젓더니 길게 생각하지 않고 공수하고 말했다.
하긴 그는 무연각에 너무 많은 걸 빚졌다.
"그럴 필요는 없다."
무연각 안의 신비한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요. 선배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이 여인의 몸 안의 독을 해독할 수 있습니까?"
진남은 목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독?"
무연각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독소를 해독하는 건 무연각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진남, 세상만사는 모두 법칙이 있다. 시기가 되면 저 아이의 체내의 독소는 자연적으로 풀릴 거다. 이건 너희 둘 사이의 운명이다. 나는 참견하지 않을 거다."
그의 말은 심오했다.
진남은 실망하지 않았다.
무연각이 도와주지 않겠다니 일단은 스스로의 경지를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목목은 두 눈에 의문이 스쳤다.
그녀는 진남이 왜 자신을 죽이지 않는지, 왜 다른 사람에게 해독을 부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남은 나의 원수가 아니야?'
"진남! 그럼 네가 제위에 오르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무연각의 소리가 희미해졌다.
커다란 누각이 천천히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무제라……."
진남은 중얼거렸다.
마음속에 왠지 모를 불꽃이 점점 타올랐다.
이번 중주 행은 그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재밌을 것만 같았다.
전신의 부위!
구리거울 속의 신비한 여인의 삼생겁!
그리고 무연각이 말한 창람대륙의 비밀!
이것들은 그가 중주로 가서 강해진 후에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중주로 가자!"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목목을 잡고 몸을 솟구쳐 허공으로 들어갔다.
진남이 떠난 후, 허공 깊은 곳의 무연각 안.
신비한 청년이 머무는 정원 안에 등이 굽은 사람이 나타났다.
천기할멈이었다.
"어때요? 제가 선택한 사람입니다."
신비한 청년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처음에 자질석으로 진남을 시험했습니다. 자질석이 터졌습니다. 뭘 뜻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그리고 지금 진남의 성장은 저의 상상을 벗어났습니다."
"맞다."
천기할멈의 말투가 모처럼 정중해졌다.
"그분의 삼생겁이 됐다는 것만 봐도 평범하지 않다. 저자의 참천자(斬天者) 자질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나 진남은 지금 몇 번째 시대를 사는지 아느냐?"
"제가 기억하기론 그분 이후로 아홉 번째 시대일 겁니다."
신비한 청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맞다. 나는 전에 하늘의 수많은 별을 그림으로 삼아 창람대륙의 하늘을 관찰하여 천기를 읽어보았다. 이 아홉 번째 시대는 범상치 않다. 참천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천기할멈은 길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걸 깨뜨리려 했다. 그런데 구천에서 그녀를 불러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떠나기 전에 구 자를 언급하셨다."
"그럼……."
신비한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허, 무연. 아직은 뭐라고 단정하기 이르다. 나는 좀 더 기다려보련다. 후에 신방(神榜)과 제방의 반응을 보겠다."
천기할멈은 미소를 지었다.
신비한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는 천기할멈에게 진남이 열 살 때 구천 위의 엄청난 존재가 끝없는 족쇄를 깨고 낙뢰로 변하여 진남을 내리치고 진남과 하나가 된 걸 알려주지 않았다.
무연각은 알고 있었다.
진남의 체내에서 가장 대단한 건 그분과의 연관이 아니었다.
가장 대단한 건 진남의 무혼이었다.
진남은 당연히 참천자가 아니었다.
"그는……."
신비한 청년의 눈에 하늘을 찌를 듯한 빛이 잠시 스쳤다.